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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문화재단 Mar 26. 2017

글 쓰는 작가가 머무는 집

연희문학창작촌 이야기

연희문학창작촌 ‘문학미디어랩’ 계단에 새겨진 작가의 말들


연희는 무엇이다


봄이 왔다. 연희문학창작촌 마당에 연한 새싹이 돋고, 목련 나무 꽃망울이 봉곳하다. 3월 봄볕 따스한 날 아침 글 쓰는 작가가 머무는 집에 다녀왔다. 서울문화재단 창작공간 중 이곳을 찾을 때면 유독 설렌다. 연희에서는 글 향기가 나기 때문이다.

‘연희는 말들의 꿈자리다(소설가 김애란)’, ‘연희는 내 불면증의 밤들이었다(시인 허수경)’, ‘연희는 거대한 침묵이다(극작가 이해성)’…… 담벼락, 계단, 벤치, 여기저기 눈에 띄는 작가의 문장이 연희의 나날을 더욱 궁금하게 만든다.

“내게 연희문학창작촌은 그냥 ‘연희’라는 이름을 가진 동네 친구다.” 입주 작가였던 시인 민구의 대답이다. 시인에게 연희와의 3개월은 글이 익는 시간이었다. 그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대신 달림이(창작촌 유기견)와 숲을 산책하고, 연희의 사람들과 사귀었다. 시인의 내면을 채운 양분이 곧 시가 되었다. (2016 연희 ‘공간 에세이’ 참고)


서울문화재단 문학 전문 창작 공간, 연희문학창작촌 기념비


연희문학창작촌은 서울시에서 조성하고 서울문화재단에서 운영하는 문학 전문 창작공간이다. 원래 이곳은 서울시 시사편찬위원회가 있는 자리였다. 서울시의 다른 창작공간처럼 유휴공간을 활용해 2009년 11월에 개관했다. 서대문구 연희동 주택가에 들어선 연희문학창작촌은 방문객에게 도심의 여백 같은 풍경을 선사한다. 연희의 숲, 바람, 햇살 속에서 문학이 태어나고, 독자를 만난다.


글자를 이미지화해 공간에 설치한 도병규 작가의 아트텍스트 작품
국내 작가를 위한 입주 시설 ‘홀림’ 동


연희의 공간


‘끌림’, ‘홀림’, ‘울림’, ‘들림’… 고운 이름을 가진 벽돌집 4개 동에 국내외 입주 작가를 위한 20개의 방이 있다. 연희문학창작촌은 정문을 지나 바로 보이는 건물은 운영사무실과 세미나실, 5개의 집필실을 갖춘 ‘끌림’ 동이다. 이곳에서는 서울문화재단 직원이 상주해 입주 작가의 창작 활동을 돕고, 시민을 위한 다양한 문학 행사를 기획 운영한다.


‘홀림’ 동은 국내 작가가 머무는 8개의 집필실과 공동 주방이 있다. 야외무대와 문학미디어랩으로 가는 길목, 건물 모퉁이에 적힌 글귀에 시선이 닿는다. “연희와 연애하다.” 어떤 작가가 이 황홀해서 고독할 방을 차지하고 있을까? 기척 없는 안쪽에서는 누군가 단어를 떠올렸다가 지우고 또 지우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연희문학창작촌 야외무대 ‘열림’


야외무대 ‘열림’이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야트막한 언덕배기에 둥치 굵은 소나무가 휘어진 사이로 100석 남짓한 야외 객석과 아담한 무대가 있다. 작년 가을 여기에서 시와 영화가 흐르는 <연희극장>이 열렸다. 시인과 관객이 교감했던 연희의 밤이었다. 이외에도 낭독극장, 연극, 미니 강연과 같은 다양한 문학 행사가 연희의 자연 속에서 펼쳐진다.



연희문학창작촌 작가 입주 공간 ‘올림’과 ‘들림’ 동, 야외 화장실


‘올림’ 동에는 1층 작가 전용 공간과 3개의 집필실, 그리고 지하 계단 아래에 독서가의 아지트이자 연희문학창작촌의 숨은 매력이라 할 수 있는 문학미디어랩이 있다. 이곳은 평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방문객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문학미디어랩, 무인 책다방으로 자율적으로 운영되는 시민과 작가를 위한 휴식 공간


문학미디어랩 계단을 내려가면 책 세상이 나타난다. 문학과 예술 관련 책이 가지런히 모여 있고, 중앙 넓은 테이블과 서가 사이 군데군데 푹신한 소파가 놓여있다. 공간 한쪽에는 자유롭게 이용 가능한 차 코너도 마련되어 있다. 한 잔의 커피와 책을 들추노라면 깜박 시간을 잊는다.

문학미디어랩에서는 문학 낭독회, 문학교실, 작가 세미나 등 연중 다양한 문학프로그램이 진행된다. 2015년 이맘때 시민 독서 모임 ‘브런치 문학 카페’를 취재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일상을 바꾸는 문학의 힘이었을까? 깨어나는 숲의 기운을 느끼며 그림책 속으로 산책하는 참가자들의 표정이 환했다.

소설가 김영하는 한 편의 소설을 읽으면 하나의 얇은 세계가 우리 내면에 겹쳐진다고 말했다. 일상이라는 무미건조한 세계 위에 문학의 경험이 차곡차곡 쌓이면서 각자 고유한 내면을 만들어가게 된다. 크레페 케이크 같은 우리 안의 작은 우주를 만나는 자리. 문학미디어랩에 오면 이루어진다. 올해는 또 어떤 프로그램이 기다리고 있을까? 기대된다.


국제 레지던시로 운영되는 ‘들림’ 동과 지하 예술가놀이터


‘들림’ 동에 있는 3개의 집필실은 해외 문학가가 머무는 국제 레지던시로 운영된다. 작가의 방을 기웃거리는데 창문에 미국 소설가 데이비드 밴의 사진이 붙어있다. 그는 2014년 국제문학 교류 <LINK> 사업의 일환으로 방한해 연희에 머물렀다. 이렇게 연희의 공간은 수많은 작가의 자취로 더욱 특별해진다.

건물 지하에는 입주 작가의 체력단련실과 사랑방으로 이용되는 예술가 놀이터가 있다. 러닝 머신과 사이클, 탁구대가 갖춰진 넓고 쾌적한 공간이 가끔 작가들의 파티장으로 바뀌기도 한다. 이런 날이면 낯가림 심한 작가들도 수다스러워진다.


한영권 작가의 설치 작품 ‘쉼표’ 의자가 있는 휴게 공간과 연희 산책로

연희의 시간


작가를 위한 문학 전문 창작 터전은 매년 2월 정기 공모를 통해 창작지원(3개월)과 집중 지원(6개월) 분야 입주 작가를 선정한다. 2017년부터 기존 연 2회 지원 방식이던 제도가 연 1회로 바뀌었다. 그중 신작 집필 계획이 있는 등단작가(시, 소설, 희곡, 아동문학)를 위한 집중 지원 분야는 6개월마다 3명에서 6명으로 혜택이 늘었다. 그동안 초대 촌장 박범신 소설가를 비롯하여 은희경, 김애란, 윤대녕, 한창훈 소설가, 천운영, 장석남 시인, 오세혁 극작가 등 비중 있는 작가들이 연희문학창작촌을 다녀갔다. 올해 연희는 시, 소설, 희곡, 아동문학, 번역, 평론 등 서른여섯 명의 작가를 새로 맞이한다. 


글 쓰는 이의 가장 큰 소망은 자신의 세계를 담은 책일 것이다. 연희문학창작촌은 매년 작가의 문학창작집 발간을 지원한다. 등단 작가는 매년 12월에서 다음 해 1월까지 개인 창작집 유무에 따라 창작집(1,000만 원) 또는 첫 책(1,000만 원) 지원으로 나누어 신청할 수 있다. 


한편 연희문학창작촌은 문학 프로젝트 지원사업 <문학, 번지다>를 통해 문학가와 시민의 예술적인 만남을 주선한다. 매년 공모를 통해 문학 기반 창의적 프로젝트를 기획, 운영하는 예술가와 문화예술단체를 지원한다. 2015년에는 청소년과 예술가가 함께 만드는 콘서트 ‘Write Your Dream’, 문학과 요리에 관심 있는 시민을 위한 ‘맛있는 문학 키친’, 사진과 글쓰기 융합 프로그램 ‘연희에서 Love&Memory’ 등 독특하고 아이디어 넘치는 프로그램으로 문학을 일상으로 옮겨왔다. 


문학 시민을 위한 연희문학창작촌은 문학과 다른 예술 장르가 만나는 낭독공연 <연희극장>, 예술가와 시민의 아지트 <책다방 연희> 등 다양한 문학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또한, 2015년부터 입주작가 신작과 인터뷰, 그 해 활동을 소개하는 문학 연간지 <연희>를 발행하고 있다. 특히 올해부터 새로 창간할 온라인 웹진도 나올 예정이다. 


세계를 향한 연희의 시간도 분주하다. 연희문학창작촌은 글로벌한 문학 네트워크를 형성하고자 국내외 작가 워크숍과 낭독회를 개최한다. 지난 2016년에는 아시아 10여 개국 작가를 초대해 ‘도시와 문학’을 주제로 <아시아 문학창작 워크숍>을 열었다. 올해는 또 어떤 행사로 세계의 문인이 마주할지 궁금하다.


연희문학창작촌을 상징하는 ‘작가들의 손’ 조형 작품


오늘도 연희에서 창작하는 손은 잠 못 이루거나 말들의 꿈을 꾸고또 거대한 침묵 앞에 마주해 있다글을 쓴다는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우리가 바라보는 모든 대상의 진정한 본질을 신속하고 명민하게 꿰뚫어 보는 것” 소설가 밀란 쿤데라의 책 <커튼>에서 답을 찾았다모든 작가는 그렇게 한 자 한 자 각자의 우주를 새겨 적는다다른 세상을 만나고 싶다면 연희로 가자.


<연희문학창작촌 안내>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연희동 203-1
02-324-4600
서울문화재단 www.sfac.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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