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울문화재단 Apr 28. 2017

가해자가 기록한 #예술계_내_성폭력

<가해자 탐구_부록: 사과문작성가이드>

지난해 문화예술계에서 일어난 성폭력 사건은 피해자들의 폭로로 알려졌다. 한국 문단을 대표하는 작가, 유명 미술관 책임큐레이터, 국내 유수 잡지 영화평론가 등 영향력 있는 다수의 문화계 인사들이 가해자로 지목되어 한국 사회를 뒤흔들었다. 예술계 내 성폭력 문제는 #○○계_내_성폭력이라는 해시태그(#)를 통해 예술계 전반으로 빠르게 퍼졌고, 수많은 피해 사실과 증언들이 수집됐다. 이러한 사태를 반영하듯, SNS를 통해 수면 위로 드러난 ‘예술계 내 성폭력’을 다룬 연극이 찾아왔다. 이번 무대는 연극에서 ‘예술계 내 성폭력 문제’를 다루는 첫 시도일 것이다. 



가해자의 시선으로 

#예술계_내_성폭력 역사를

기록한 단 한 권의 책


무대 위에 놓여있는 투명한 의자가 반짝거린다. 그 의자는 무대에 놓여있고, 그보다 더 많은 의자는 공중에 거꾸로 매달려 있다. 극이 시작되면 가해자와 함께 문단에 소속된 시인들이 등장한다. ‘왜 연극인이 아닌 시인이었을까?’, 그 이유는 극 초반에서 밝히고 있듯이 ‘모든 예술은 시성(詩性)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극에서 시는 모든 예술이고, 시인은 모든 예술가를 말한다.  

이 공연은 예술계가 쓰는 ‘예술계 내 성폭력 역사의 기록’으로, 가해자들이 가해 역사를 기록하고 벌을 내리는 처음이자 마지막 책임을 알리고 있다. 작품은 기승전결이 있는 서사 중심의 기존 연극 방식에서 벗어나 ‘표지-목차-추천사-본문-후기-부록’의 순서로 나열되었다. 무대는 가해자들의 차지가 되고, 관객은 무대 위에서 가해자의 시선으로 ‘#예술계_내_성폭력 역사를 기록한 단 한 권의 책’이라는 책이 쓰이는 과정을 보게 된다. \


왜 예술계 내 성폭력 문제는
이제야 수면 위로 떠올랐을까?
외 피해자는 목소리를 내지 못할까?



‘이세계’의 가해자들이 

늘어놓는 궤변


극에서 가해자들은 ‘이세계’라는 말을 자주 언급한다. 일반인들이 살아가는 저 세상과 구분되는 ‘이세계’는 그들만의 확고한 시스템이 적용되는 곳이다. 가해자인 예술가들은 그들의 세계인 ‘이세계’를 유지하기 위해 선을 긋고 더욱 높은 담을 쌓아 올린다. 피해자들이 문제를 고발하는 것을 주저하는 이유는, 진입하기 어려운 '이세계'에서 설 자리를 잃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예술계 내 성폭력 문제가 오랫동안 수면 아래에서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 역시 이와 같은 이유에서다. 

결국, 가해자들은 그들의 논리로 사건을 기록해간다. 그러나 가해자들의 논리로 사건을 바라보다 보면 가해자들이 합리화하고 미화했다는 변명을 듣게 된다. 변명의 끝엔 그들의 ‘이세계’를 유지하고 살아남고자 하는 추악함이 난무한다. 가해자는 자기변호를 통해, 그 폭력성과 잔인함이 마치 당연한 것, 어쩔 수 없었던 일처럼 둔갑한 역설적인 상황을 스스로 보여준다.             


 


한 권의 책이 되고자 한 연극


연출가 구자혜 씨는 한나 아렌트, 수전 손택 등 많은 사상가를 극으로 초청해 ‘타인의 고통’에 대한 시선을 보여준다. 이 극은 책이 쓰여지는 과정에 따라 진행되는데, 관람하는 동안 이 책이 무엇을 말하고 있고 어느 정도 쓰여지고 있는지, 그리고 결말을 어떻게 써 내려 갈지를 추측하기 어렵다. <가해자 탐구>는 ‘이세계’로 대변되는 예술계에서 얻은 지위와 권력으로 가해의 사실을 은폐하려는 자들의 기록물이다. 책의 맨 마지막을 장식하는 <부록> 편에는 다른 예술 장르의 <가해자 탐구>가 숨 가쁘게 언급되며, 이렇게 연극이 끝난다. 연극으로써 예술계 성폭력 사건을 기록한 것처럼, 여타의 장르에서도 이 문제의 책임을 각자 예술의 장르 안에서 다루어져야 한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
작가이면서 연출가인 구자혜
동시대에 언급되고 있는 문제에 대한 자기만의 시선을 견지하며 유머를 잃지 않는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청년으로, 여성으로, 그리고 예술가로서 현실을 비관하거나 조소하지 않고 뚝심 있게 제 목소리를 내는 창작자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2013년 차세대예술인력육성사업(AYAF), 2014년 서울연극센터 <유망예술지원 NEWStage> 등에 선정되어, 2016년부터는 혜화동 1번지 6기 동인으로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대표작으로는 <킬링 타임> <commercial, definitely> <디스 디스토피아> 등이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페이퍼 아트 작가 이지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