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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문화재단 May 02. 2017

독백이란 세상에 외치는 진심이다

㈜인사이트엔터테인먼트 <보도지침>

권력의 언론 통제 시도가 여전히 공공연하게 일어나는 세상이다. 요즘 신문이나 방송을 보고 있노라면 과거에나 있었음직한 일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오늘의 뉴스가 되어 수면 위로 떠오른다. 마치 망령처럼 끈덕지게 이어지는, 언론을 향한 권력의 재갈물리기 시도는 결국 누군가의 폭로 혹은 양심선언에 힘입어 가까스로 중단되곤 한다.

연극은 흔히들 사회의 거울이라 한다. 요즘 상연되는 연극들에서는 한국의 바람직하지 않은 근현대사를 되돌아보려는 경향이 부쩍 많아졌다. 아마도 여기에는 과거와 현재가 마치 데칼코마니처럼 닮아 있다는 인식이 깔려 있을 것이다. 김주언 한국일보 기자가 월간 <말>지에 보도지침을 폭로한 실제사건을 바탕으로 재구성된 연극 <보도지침>에서도 이와 비슷한 인식이 읽힌다.




극장이자 광장이 되는 법정을 꿈꾸다


“원래는 보도지침 사건을 중심으로
죽 가려고 했어요. 그런데 작품을 쓰다가
선생님들 재판 기록을 보게 됐는데
최후 진술이 너무 멋있는 거예요.
재판 기록을 봤는데 마치 연극의 독백을
본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그래서
이야기 중심보다는 이 분들의 말,
기록된 글, 발언들을 마치 독백처럼
가져와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독백 개념을 살리되 어쨌든 이 분들이
법정에서 재판을 받고 있는 상황이니까
거리를 좁혀보기 위해 연극반이라는
설정이 들어갔죠. ‘여기는 법정이지만 극장이기도 하고, 광장이기도 하다’
같은 대사도 그래서 들어가게 됐어요.”

- 오세혁 작가 겸 연출가



‘보도지침’이라는 소재는 여러 가지 면에서 오늘날 우리 사회에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1986년 전두환 정권 시절 문화공보부 홍보정책실은 각 언론사에 일종의 보도 가이드라인인 ‘보도지침’을 팩스로 보내며 언론을 통제했다. 이 사건을 폭로한 언론인들은 국가보안법 위반 및 국가모독죄로 구속됐고, 9년 후인 1995년 대법원의 무죄판결을 받았다. 훗날 문화공보부 홍보정책실은 형식적인 부처였고, 모든 내용은 대통령 정무비서실에서 결정돼 통보된 것으로 알려졌다.  

연극 <보도지침>이 흥미로운 지점은 법정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에 연극이라는 테마를 접목시켰다는 점이다. 대학시절 연극반에서 함께 활동했던 친구들과 교수가 나중에 보도지침 사건을 겪으면서 각각 검사, 변호사, 판사, 피고인인 사회부기자, 편집장 등의 입장에 서서 법정에서 만난다는 설정이다. 여기에 ‘남자’와 ‘여자’라는 역할이 추가된다. 남자와 여자는 일반 대중의 서로 다른 생각과 정치적 성향을 대변하는 인물이자, 암전 없이 진행되는 이 연극에서 시공간을 넘나들도록 하는 역할을 하는 인물이다. 과거에는 서로 잘 소통했던 이들이라는 설정을 통해 연극 <보도지침>은 권력 혹은 권력을 대변하는 이들이 누군가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보다는, 자신들과 다른 입장을 그냥 있는 그대로 인정할 수는 없는 것인지 묻는다.


진심을 전하는 독백의 힘


“스스로가 자기 진심을 그대로 표현한
말이 독백인 것 같아요.
극 중 독백 경연대회를 할 때 <햄릿> 속
독백 대사도 나오고 채플린이
<위대한 독재자>에서 했던 대사도
나오지만 마지막에 어떤 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던지기 직전에 쓴, 사과를 받으려고 썼다는 말이 나오잖아요. 사실은
채플린도 훌륭하고, 햄릿도 훌륭하지만
자기 자신을 오롯이 던지면서까지
남기는, 지극히 당연하면서도
솔직한 말이 진짜 독백이 아닌가 싶습니다.”

- 오세혁 작가 겸 연출가



연극의 무대는 법정의 권위를 다소 흔드는 방식으로 꾸며질 예정이다. 법정과 광장의 느낌을 동시에 자아내는 대학로 티오엠 2관의 공간을 그대로 살리고, 법정에서 사용되는 도구들로만 무대를 꾸미되 이 도구들이 대학 연극반 장면에서도 그대로 소품으로 활용된다. 이를 테면 판사의 의사봉이 연극반에서는 다른 용도로 활용되는 식인데, 이 같은 설정에는 연극이라는 놀이를 통해 법정의 신성함이나 권위로부터 벗어나 자유롭게 사고하자는 연출가의 의도가 담겨 있다. 형식을 자유롭게 열어둠으로써 역설적으로 배우들의 말에 초점이 맞춰지도록 하려는 의도도 비친다. 각자의 배역 속에서도 배우들이 원래의 자기 말투를 그대로 표현하게 함으로써 독백의 의미를 좀 더 선명히 드려내는 것이 이번 공연의 목표지점 중 하나다.



과연 나는 내 스스로의 의지로 나의 말을 하고 있는가, 아니면 누군가의 힘에 의해 나의 말이 변해가고 있는가. 연극 <보도지침>은 작가 겸 연출가인 오세혁의 긍정적인 세계관을 토대로 역동적으로 흘러가면서도 관객에게 이 같은 묵직한 질문을 던지며 ‘나를 움직이는 힘이 내 안에 있는가, 아니면 바깥에 있는가’를 각자 따져보도록 이끈다. ‘철학이나 사상이 오른쪽이 됐건 왼쪽이 됐건 자기가 택한 것이라면 상관없지만, 오른쪽에 있는 사람을 왼쪽으로, 왼쪽에 있는 사람을 오른쪽으로 바꾸려고 하는 것은 폭력이라고 생각한다’는 오세혁 작가의 당연한 생각이 세상에서도 당연한 것으로 공공연히 인정받는 날이 올까. 연극 <보도지침>은 이 같은 질문에 대해, 각자 용기를 내어 자신의 솔직한 마음 속 생각을 바깥으로 표출해나간다면 당연히 가능해질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듯하다. 그러니까 연극 <보도지침>은 우리 각자의 독백에 대한 응원의 마음을 담은 연극인 셈이다.


사진 _ ㈜인사이트엔터테인먼트 제공




일정_ 4월 21일~6월 11일, 평일 8시, 주말 및 공휴일 2시6시(월 공연 없음)
장소_ 대학로 티오엠(TOM) 2관
작·연출_ 오세혁
출연_ 김경수, 이형훈, 봉태규, 고상호, 박정원, 기세중 외
문의_ 1544-1555



김나볏 공연칼럼니스트
신문방송학과 연극이론을 공부했으며, 공연에 관한 글을 쓰고 있다.
페이스북 facebook.com/nabye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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