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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에 돋아난 예술

싹(SSACC) 브리핑 오픈 스튜디오

by 서울문화재단

식물이 아닌 거리에도 예술이라는 싹이 있다면 그것이 움튼 모습은 어떠할까. 4월의 어느 봄날, 이러한 호기심 어린 마음을 가지고 ‘서울거리예술창작센터’에 도착했다.

서울거리예술창작센터는 거리에서 펼쳐지는 다양한 작품을 계발할 뿐만 아니라 거리낌 없이 시민과 만날 예술가를 키워내는 국내 유일의 ‘거리예술+서커스’ 실험장이다. 이곳에서 ‘싹(SSACC) 브리핑’ 행사가 4월 29일부터 30일까지 이틀 간 진행되었다. 싹 브리핑이란 서울거리예술창작센터의 영문 명칭인 ‘Seoul Street Arts Creation Center’의 약칭과 요점을 간추린 간단한 보고나 설명이란 뜻의 영어 단어 브리핑(Briefing)을 합성한 용어이다. 서울거리예술창작센터가 지난 한 해 동안 창작지원사업, 전문가양성과정 등을 운영하며 배출한 예술가들의 성과와 2017년 운영 중인 서커스 넥스트에 참여한 예술가들의 옴니버스 공연 등을 모아 시민들에게 집약하여 보여주는 오픈 스튜디오라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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싹(SSACC) 브리핑 : <마사지사> 공연


프로그램은 <마사지사>, <고물수레>, <너와 나: 거기 있다>, <저글링 옴니버스>, <나, 봉앤줄>, <트랜스포밍 92>의 순으로 진행되었다. 먼저, ‘비주얼 씨어터 꽃’이라는 예술단체의 공연 <마사지사>가 첫 발걸음을 떼었다. 관람객들이 함께 참여하여 만들어가는 공연이었던 <마사지사>는 거리의 시민들을 각각 ‘마사지사’와 ‘손님’으로 받아 손님의 몸에 종이를 덮고 마사지사가 마사지를 시작하는 것으로 공연이 시작되었다. 이윽고 손님은 그의 몸 형태가 그대로 살아난 종이, 즉 자신의 허물을 밖에서 보게 되는데, 종이 인간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하라고 하자, 그들은 이렇게 외쳤다.


지금처럼만 살자,
참 좋다,
가벼워지자,
너는 아무렇지도 않다,
너는 정말정말 괜찮다.


그 이후, 종이의 얼굴 부분을 오려 손님들의 얼굴에 부착한 뒤 우리 모두는 공연장 바로 밑 한강 둔치로 내려갔다. 손님들은 앞이 안 보이는 채로 서 있었고, 각각의 마시지사들은 이들을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안아주었다. 나에게는 이 모든 것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삶을 걷느라 수고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져서 눈시울이 붉어졌다. 비슷한 감정을 느꼈는지 다른 이들의 눈에도 눈물이 반짝였다. 이후, 다시 공연장으로 올라온 뒤 그들은 각자의 종이 인간들을 불태우는 것으로 공연이 마무리되었다.

<마사지사>를 보는 내내 죽은 뒤 영혼의 모습을 보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노쇠 해버린 몸을 두고 홀연히 돌아다니다가, 지치고 곪아버린 마음을 위로해주는 제(祭)를 받고 나서야 이 세상을 떠나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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싹(SSACC) 브리핑 : <고물수레> 공연


가슴 찡한 여운은 <고물수레>에서도 계속 이어졌다. 폐지를 주우며 근근이 생활하시는 할머니가 언덕 위에서 무거운 수레를 끌며 내려오고 계셨다. 수레에 매달려있는 라디오에서는 장사익의 노래 ‘찔레꽃’과 차들이 빵빵대며 지나가는 도로의 소음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하얀 꽃 찔레꽃,
순박한 꽃 찔레꽃,
별처럼 슬픈 찔레꽃,
달처럼 서러운 찔레꽃,
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퍼요,
그래서 울었지,
목 놓아 울었지.


나는 이렇게 오랫동안 수레를 끄는 할머니를 지켜본 적이 있었던가. 평소에 항상 스쳐 지나가며 그저 연민의 눈길만 살짝 던졌을 뿐이다, 아니, 어쩌면 그것은 진정한 연민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사회 속 부조리들을 온몸으로 받아내고 계시는 이들 곁을 지나가기만 했던 것이다. 그들을 하나의 공연으로서, 작품으로서 맞닥뜨릴 때의 기분이란 마냥 좋지만은 않았다. 정곡을 찔린 듯 마음이 아팠고 지난날의 나를, 우리를 되돌아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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싹(SSACC) 브리핑 : <너와 나: 거기 있다> 공연


이후에는 앞의 공연들과는 색다른 매력의 작품, 마임과 퍼포먼스를 가미한 <너와 나: 거기 있다>와 다양한 묘기들을 선보인 <저글링 옴니버스>가 이어졌다. <너와 나: 거기 있다>는 각종 철물들을 이어 붙여 하나의 트럭처럼 보이는 오브제 위에서 시작됐는데, 애니메이션 영화 ‘하울의 움직이는 성’을 떠올리게 할 만큼 오묘하면서 신비로웠다. 눈에 보이듯 생생한 마임을 통해 작은 상자라는 공간에 들어가 ‘나’, 그리고 ‘나’와 관계 지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그리는 모습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경계에 대해 생각하게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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싹(SSACC) 브리핑 : <저글링 옴니버스> 공연


<저글링 옴니버스>는 서커스 전문 인력 양성사업 ‘서커스 넥스트’ 참가자들의 옴니버스 공연으로, ‘날갯짓’, ‘그 밤, 손이 나에게’, ‘탁구공’, ‘더 프레임’, ‘숲속으로’ 5개의 공연으로 나뉘어 진행되었다. 가장 아름답던 때, 한창 사랑받던 시절을 관객에게 떠올리게 하는 것이 ‘날갯짓’의 기획의도였는데 그 의도는 분명 성공적이었다. 관객으로 하여금 요요를 가지고 놀던 어린 시절의 향수를 불러일으키기 충분했기 때문이다. 요요가 그렇게까지 멋있고 아름다운 도구였는지 처음 깨달았고, 그를 통해 하나의 예술을 선물 받은 기분이었다.

이 외에도 회사원의 스트레스를 통쾌하게 날려줄 만한 ‘더 프레임’과 탁구공을 통해 유쾌한 저글링을 선보인 ‘탁구공’, 신비로운 숲속과 그 속에서 호흡하는 소년의 모습을 아크로바틱으로 표현한 ‘숲속으로’ 등을 감상하였다. <저글링 옴니버스>는 기예와 더불어 사회적, 예술적 맥락까지 함께 가지고 간다는 점에서 서커스 공연의 새로운 비전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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싹(SSACC) 브리핑 : <나, 봉앤줄> 공연


공연을 마치고 90분 정도의 저녁 식사 시간을 가졌다. 친구나 가족과 동반하지 않았기 때문에 외로울 법도 했지만, 따스한 봄날의 해질녘을 벗삼아 앉아있으니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식사를 마친 후, 마지막으로 본 것은 <나, 봉앤줄>이다. 이 공연은 서커스창작집단 ‘봉앤줄’이 꾸미고 있었는데, 서커스 기예인 ‘차이니즈 폴(봉)’과 ‘타이트 와이어(줄)’를 익힌 ‘안재현’이 창작한 집단이라고 한다. 서커스와 전통연희 민요를 섞었다는 점이 눈은 번쩍, 귀는 쫑긋하게 했다. 공연자는 맨몸으로 봉과 줄을 오르내리는데, 이 모습은 또 다른 느낌의 자유를 선사한다.

보통 서커스 하면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곡예와 기술들을 보여주는 공연이 떠오를 것이다. 하지만 이 공연은 그 모든 것들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공연자들의 고독함과 인간이기에 가질 수밖에 없는 나약함까지 아울러 보여준다. 실제로 안재현 씨는 다음과 같은 노래를 흥얼거린다.


올라올라, 봉 타고 올라,
추락 추락, 봉 타고 추락,
이것이 나의 외봉인생,
이것이 우리들의 외봉인생.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주 혹은 종종 고독해지는 때가 온다. 외롭지 않은 삶은 없겠으나, 차가우면서도 단단한 봉과 줄 위에 자신을 매단 그들의 공연을 보고 있자니 경이와 감동을 감출 수 없었다.

‘싹 브리핑’을 통해 나는 거리예술 공연보다 공연자들의 삶을 보았는지도 모르겠다. 그들은 예술을 통해 사회의 부조리함을 꼬집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네 인생을 노래하고 있었다. 덕분에 미세먼지 그득했던 4월 그 끝자락에서 봄 내음 가득한 삶의 향기를 맡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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