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살고 싶어요
국가와 개인의 관계.
떼어놓을 수 없지만
어딘지 대립적으로 느껴지는
이 관계는 종종 화두에
오르곤 한다. 특히, 지난 몇 달
동안의 정국을 보면서
이에 대해 재고하게 되었다.
국가란 무엇이고,
개인이란 또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내리기보다는, 그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치열하게 담은 연극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
을 보기로 했다.
5월 13일, 제목부터 범상치 않은 연극 공연에 대한 기대감을 가득 안고 남산예술센터 안으로 입장했다. 들어가자마자 돌출형 무대 위에 조명을 받은 채 서 있는 의자 하나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 메마른 의자는 수많은 사연을 품고 있는 듯 보였다. 하나둘 자리가 차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큰 공연장이 가득 메워졌다. 곧이어 관객석이 암전되면서, 관객들은 군 부사관 회의실로 초대되었다.
연극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는 옴니버스 형식으로 총 4개의 전쟁서사로 구성되어 있다.
1) 2016년 대한민국 경남, 폐쇄적이고 강압적인 군 체제에 환멸을 느껴 탈영한 병사.
2) 1945년 일본 가고시마의 조선인 가미카제.
3) 2010년 대한민국 서해 백령도 초계함의 선원들.
4) 2004년 이라크 무장단체에 붙잡힌 선교사.
소개된 인물들에서 알 수 있듯 이 연극은 공간적 배경뿐만 아니라 시대적 배경까지 쉼 없이 변화한다. 이 일관성 없는 시공간의 변화는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국가나 시대에 구애받지 않고 언제, 어디에서든지 국가 이데올로기가 작동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를테면 1945년 일본 가미카제의 경우, 전시 상황에는 국가를 위한 개인의 희생은 불가피하고 그것을 자랑스럽게 여겨야 한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2004년 한국군은 미군에 협조해 이라크에 파병 지원을 하게 된다. 이에 이라크 무장단체는 파병철회를 조건으로 죄 없는 한국인 선교사를 인질 삼아 협박하지만, 한국은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아 결국 그는 사살 당한다.
이러한 서사 속 거대한 담론은 ‘개인보다 국가가 우선 한다’는 것에 그 뿌리를 내리고 있다. 이 담론의 위험한 점은 국가의 이념이나 목표를 위해서는 개인의 인권,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 정당화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알아야 한다. ‘국가를 위해 개인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을 위해 국가가 존재한다는 것을.’ 이보다 더 무서운 점은 개인들 스스로가 그것을 내재화한다는 점이다.
일본 자살특공대, 가미카제를 생각해보자. 그들은 자살함으로써 적군을 공격하는데, 이는 자신의 죽음과 국가의 안녕을 맞바꾸는 것이다. 반면, 국가는 개인을 죽음으로 몰고 가 자신들의 안위를 챙길 뿐만 아니라 가미카제 스스로가 ‘자랑스러운 죽음’이라고 생각하게끔 세뇌시킨다. 조선인 가미카제의 태도가 이를 잘 드러내 준다. 그는 조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제국주의 일본 사회에서 더 이상의 차별을 당하고 싶지 않아 가미카제가 된다. 자랑스러운 ‘일본인’으로 거듭나고자 한다. 그러나 모순적이게도, 그가 사회 내 이방인들의폭력을 피해 간 곳은 일본이라는 국가를 위해 극단적으로 자기를 희생하는 이들의 집결지였다.
국가에 대한 이야기는 이 정도로 하고, 이제는 한 인간의 삶으로 들어가 보자. 연극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의 군인들의 외형은 각각 다르지만, 그 안에는 관통하는 무언가가 있다. 바로 ‘인간으로서의 나약함’이다. 보통 군인하면 대범함, 든든함, 냉철함 등이 떠오를 것이다. 그러나 이 연극의 군인들은 두려움 많고 끊임없이 고뇌하는 사람들이다. 2016년 군대에서 탈영한 병사는 군대의 그 억압적인 시스템이 미워 사회로 도망치듯 나왔지만, 사회 역시 군대와 다를 바 없이 폭력적인 곳이라는 것을 깨닫고 괴로워한다. 뿐만 아니라, 국가이념에 종속되어 개인으로서의 삶의 자유를 잃어버린 이들, 즉 국가폭력의 피해자로 그려진다. 그들에게는 그저 간절하고 처연한 사연들만 있을 뿐이다.
보통의 전쟁 서사는 국가의 성패, 영웅의 행적들에 초점을 맞춰 ‘낭만화’되어 전개된다. 그러나 그 전쟁의 모든 비극과 고통, 절망을 온몸으로 받아내야만 하는 것은 한 사람, 한 사람이다.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는 상처 입은 그들의 등을 가만히 어루만져준다. 국가의 그 검은 손에 의해 내쳐진 사람들을 수면 위로 끌어올려 준다.
연극이 끝나고 난 뒤 대담이 이어졌다. 남산예술센터 우연 극장장의 인사를 시작으로 김미도 평론가, 김재엽 연출가, 박근형 연출가가 그 포문을 열었다. 대담의 주제는 ‘문화예술계와 그 작품을 둘러싼 예술 검열 논란’이었다. ‘지금 시대에 무슨 검열이냐’라고 한다면 연극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가 지난해 예술 검열 논란의 도화선이 된 작품임을 먼저 알아야 할 것이다. 김미도 평론가와 김재엽 연출가, 박근형 연출가는 이 연극이 왜 검열의 대상이 되었고, 어떻게 무대에 오를 수 있게 되었는지에 대해 대략적이면서도 밀도 있게 그 과정을 짚었다.
이어서 김재엽 연출가의 청유로 관객 속에 있던 도종환 국회의원과 서울문화재단 주철환 대표가 무대 위로 올라온 뒤 대담의 열기는 더욱 뜨거워졌다. 대담의 논점은 ‘남산예술센터를 비롯한 국내의 모든 국공립 극장들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것으로 이어졌다. 이에 국가는 그 스스로를 비판하고, 국민들의 갈등을 공론화시켜야 한다는 의견으로 모아졌다. 더불어 김미도 평론가는 이렇게 덧붙였다. ‘지금 여기 우리가 어떤 모순 속에서 살고 있는가에 대해 개혁의 의지를 꿈꿀 수 있게 하는 것이 국공립극단의 역할이자 세금을 내서 예술을 향유하는 국민으로서의 권리라고 생각한다.’
관객들과 질의응답 시간도 있었다. 한 관객이 자기 검열하는 것에 대해 예술가들이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임해야 하는지에 대해 물었다. 박근형 연출가는 ‘내가 만든 연극이 관객들에게 울림이 있는 작품일까? 내가 진정으로 말하고 싶은 말인가?’ 정도만 스스로에게 약속하고 작업하는 편이라고 답했다.
연극부터 대담까지, 대단히 진지하고 엄숙한 분위기로 진행되어 마음 한 켠이 먹먹하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했다. 그러나 ‘국가와 개인의 관계’라는 이 묵직한 주제는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마땅히 생각하고 또 생각해야 할 것이다. 연극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를 관람하는 것에 대해 청유가 아닌, 요청의 목소리를 전하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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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이강물 ⓒ남산예술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