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 도구의 진화, 카세트테이프와 CD의 추억
요즈음에는 가장 값 싼 문화상품이 음악이라는 말이 나돌 정도로, 음악을 듣는 것은 너무나 쉽고 저렴한 행위가 되었다. 불과 100여 년 전 축음기가 발명되기 전까지는 직접 악기나 목소리로 소리 내 연주하는 것을 듣지 않으면 음악을 들을 수 없었다 하니 실로 엄청난 변화다. 컴퓨터를 통해 음원으로 유통 및 소비되는 21세기의 음악 재생 방식이 없던 시절을 상상하기가 쉽지 않지만, 사실 지금과 같은 음악 감상 형태는 몇 년 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 이전에는 어떤 방식으로 음악을 틀고 감상했을까?
어린 시절, 음악을 들을 때 이용한 매체는 카세트테이프였다. 당시 납작하고 큰 기계에 테이프를 넣고, 옆의 빨간 버튼을 누르지 않도록 조심하며 삼각형 버튼을 세게 꾹 누르면 테이프 중앙의 작은 바퀴들이 돌아가는 것이 보였다. 미세한 기계소리가 시작되고 잠시 후 음악 소리가 들려왔다. 들으면서 졸다 보면 툭 하는 소리와 함께 음악이 끝났음을 알려온다.
당시 즐겨 듣던 테이프는 차이콥스키의 호두까기 인형 모음곡이었다. 피아노 학원에서 선물로 받은 모음곡집을 연습하면서 알게 된 세계 여러 나라의 춤곡을 들으면서 바비 인형을 모형 삼아 춤을 만들며 놀았다. 당시 유명 피겨 스케이트 선수인 이토 미도리를 따라 하며 안무를 짰던 기억이 난다. 이후에는 음악을 전공하면서 가족들과 함께 동네 음반가게에 가서 클래식 음반을 사서 듣곤 했다. 당시에는 CD도 나와 있었지만 가격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에 더 많은 음악을 듣기 위해 카세트테이프를 사 모았다.
음악 감상을 몹시 좋아하시던 부모님은 카세트와 함께 턴테이블도 즐겨 이용하셨다. 턴테이블의 경우 짧은 바늘을 레코드판에 살포시 올려놓아야 하는데, 이때 판에 흠집이나 먼지가 있으면 바늘 촉이 걸려서 음악이 진행되지 않는다. CD를 듣다가 가끔 튀곤 하는 그 현상과 비슷한데, 가족들이 즐겨 듣던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에 그런 흠집이 나 있었다. 공교롭게도 2악장 막바지 바이올린 솔로의 트릴 부분에서 바늘이 늘 걸려서 마치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트릴이 계속되었는데, 나중에는 그때가 다가오면 자동으로 바늘을 들어 약간 비껴가게끔 손을 보는 것이 습관처럼 되었다.
현재 30대 이상 세대들은 카세트와 턴테이블을 기억할 것이다. 굉장히 오래전 일인 듯 느껴지지만, 불과 20여 년 전의 추억이다. 이후에 CD가 보급돼 대세를 이루던 시절이 불과 10여 년 전이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시대변화가 얼마나 빠른 것인지 갑자기 실감이 난다.
CD를 처음 접했을 때는 그 편리함과 깔끔한 음색에 완전히 매료되었다. 테이프처럼 어림짐작으로 찾지 않아도 트랙을 검색해 음악이 시작되는 부분으로 자동으로 이동하는 것과 음악이 다 끝나도 툭 하는 소리가 나지 않고 조용하다는 점 이 두 가지가 몹시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처음에는 트랙을 검색하는 기능이 몹시 마음에 들어서 일부러 한 음반의 트랙들을 순서를 바꾸고 건너뛰며 듣곤 했다. 지금 생각하면 참 기본적인 기능인데도, 마치 신세계를 체험하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때 당시 갖고 있던 워크맨으로 테이프를 들으면 음이 전체적으로 높게 들리곤 했는데, 어렵게 장만한 휴대용 CD 플레이어에서는 그런 현상이 전혀 없어서 어찌나 든든한지 몰랐다. 그때 당시 휴대용 CD 플레이어는 학생들에게 초(超)럭셔리 아이템이었고, 자율학습 시간에 CD를 듣고 있자면 괜스레 어깨에 힘이 들어가곤 했다. 그때 가장 갖고 싶었던 건 소니(SONY)에서 나온 초소형 플레이어였다. CD 크기와 같고 두께가 1cm도 안 됐던 걸로 기억하는데, 당시 형편이 여의치 않아(?) 좀 더 두꺼운 파나소닉(Panasonic)을 소장하였다.
이 시절 잠시 미니디스크(MD)가 유행하기도 했는데, 주로 얼리 어답터 친구들이나 외국에 살다 온 친구들이 가지고 있었다. 손바닥보다 작은 네모난 디스크를 넣어서 재생하는 기계가 너무나 작고 귀여우면서도 훌륭한 음색을 자랑해 굉장히 탐나긴 했으나, 기계는 어찌어찌 구한다 해도 이미 CD로 지출이 심한 상태에서 도저히 그만큼의 음반을 모을 수가 없다는 어려움이 있었다.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느꼈는지, MD 시장은 의외로 금방 식어버렸고, 지금은 자취를 찾을 수가 없다.
몇 년 지나지 않아 손가락만 한 작은 기계에 500곡이 넘는 노래를 저장할 수 있다는 mp3 플레이어가 나오면서 본격적으로 디지털 음반 시장이 활성화되었다. 이전까지만 해도 한 번에 휴대할 수 있는 음악의 양이 늘 한계가 있었으므로, 이는 획기적인 기능이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컴퓨터와 인터넷을 통한 음악 보급이 이루어지면서 음반 시장은 빠른 속도로 쇠퇴했다.
몇 년 전에는 작곡과 지도교수님의 유품을 동료 제자들과 함께 정리하다가 릴투릴(reel-to-reel) 테이프를 발견하기도 했다. 이는 카세트가 만들어지기 이전의 음반 형태인데, 복잡한 고가의 재생 도구가 필요한 관계로 널리 보급되지는 않았다고 한다. 난생 처음 보는 릴투릴을 보고 차마 전부 버릴 수 없어서 일부를 간직하고 있다.
이제는 음악을 듣는 것은 마음먹기에 따라 단 한 푼도 들지 않는 일이다. 필자의 경우도 원하는 음악이 있으면 일단 인터넷으로 검색한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렇게 쉽게 찾은 음악들은 기억에 잘 남지도 않는다. 기다림의 세월을 거쳐 어렵게 용돈을 모아 듣게 되는 테이프나 CD의 음반들이 강렬히 기억에 남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얼마 전, 중학생 때 이후로 듣지 않던 마이클 잭슨의 초기 음반을 카세트플레이어가 내장된 소형 오디오를 사서 테이프로 틀어봤다. 당시에는 가사 하나하나를 음미하며 주의 깊게 들었는데, 이제는 흔한 사랑노래들이 덜 와 닿는 것처럼 이 노래들도 더 짧게 느껴지고 감흥이 덜한 것 같다. 내가 어릴 적에는 고작 이런 것에 감동을 받았었구나 하는 생각까지 들 때는 차라리 영원히 다시 듣지 말걸 그랬나 하는 회의감도 들지만, 이를 계기로 추억을 더듬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이제는 이 세상에 없는 마이클 잭슨의 풋풋한 목소리를 들으니, 가는 세월은 잡을 수 없구나 하는, 늙은이 같은 생각을 하기도 한다.
글 신지수
음대 작곡과를 졸업하고 유학을 마친 후 현재 대학교에서 강의하고 있다.
현대음악 작곡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음악에 대한 글을 쓰는 것을 즐긴다.
홈페이지 www.jeesooshin.com | 블로그 jagto.tistory.com
* 이 글은 「문화+서울」 9월호에 게재되었습니다.
서울문화재단에서 발간하는 월간지 「문화+서울」은 서울에 숨어있는 문화 욕구와 정보가 원활하게 소통할 수 있도록 예술가들의 창조적 힘과 시민들의 일상을 이어주는 다리가 되고자 합니다. 「문화+서울」에 실린 글과 사진은 서울문화재단의 허락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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