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 있으세요. 예술이 찾아갑니다
대낮에도 컴컴했던 어제의 날씨가
무색하게, 오늘은 시원한 바람이
불며 볕이 따사롭게 내리쬐는
날이다. 봄날을 즐기는 이들이
가득 메우고 있는 ‘서울숲’,
거리를 오가며 분장을 한
사람들이 분홍 전단지를
나눠주고 있다. 거리예술과
서커스 공연을 보러 오라며
배우들이 직접 나선 것이다.
지난 5월 13, 14일 서울숲 곳곳에서는 거리예술 공연들이 선보여졌다. 이틀 동안 7회의 공연이 기획되어 있었던 거리예술 시즌제[봄]은 서울문화재단이 2014년부터 운영해 온 거리예술 및 서커스 공연 프로그램으로, 서울의 공원과 도심 등 일상적인 공간에서 다양한 거리예술 공연들을 선보이고 있다. ‘시즌제’ 라는 말이 담고 있는 것처럼 봄, 가을 시즌으로 나뉘어 약 4달 동안 다양한 거리예술과 서커스 작품을 선보인다.
프로그램 안내에 따라 오후 3시 공연이 예정된 야외무대로 향했다. 무대가 세팅 되고 관람객을 잘 맞이하기 위해 서울거리예술창작센터 담당자들은 방석을 준비해 속속 무대 주변으로 찾아오는 시민들에게 나눠주었다.
14일(일)의 두 번째 공연 <위로(We_low)>는 서울숲 야외무대에서 펼쳐졌다. ‘위로’가 필요한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 우리에게 필요한 ‘위로’는 무엇일까? 이 공연은 가슴 속 아픔을 가지고 있는 모든 이들의 이야기다. 야외무대를 벗어나 잔디에서 몸을 밧줄로 동여맨 한 남자가 무대로 올라온다. 결코 행복한 가벼운 몸짓이 아닌, 무언가 호소하려는 애절함이 보이는 세 명의 배우가 각자 제 몸을 움직이며 무대로 올라선다.
각자의 몸은 아픔과 슬픔을 품고 있다. 이들의 고통은 음악과 함께 표현되며 점차 서로의 몸으로 대화를 해나가며 함께 울고 웃는다. 이제 이들은 위로가 필요한 자에서 위로를 나눌 수 있는 자가 되었다.
치유의 과정을 통해 다시 살아난 배우들은 무대를 벗어나 잔디밭으로 나가 관람객의 손을 잡고 무대로 올라간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초대받은 이들에게 몸으로 말을 걸고, 상처받은 자의 모습을 보이며 관람객이 어떻게 손을 내밀까 바라보게 한다. 야외에서 30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공연이 이루어졌지만, 공연이 진행될수록 관람객들이 보다 더 많이 무대 가까이로 모여드는 광경이 펼쳐졌다.
<위로(We_low)> 공연이 열린 야외무대에서 가까운 서울숲 방문자센터로 이동해 다음 공연을 기다렸다. 배우들이 연습을 마치고 엽서를 들고 다니며 공연 홍보를 한다. “이 자리에서 4시 공연이 이루어지니 꼭 보러오세요.”라고 하며 <고백(Go_back)>이라는 엽서를 건넨다.
사람들이 오고 가는 길에 여행 가방이 놓이고 갑자기 나타난 배우들은 가방을 들고 어디론가 걸어간다. ‘어디로 가는 것인지, 단순히 배회하는 것인지’ 이들의 얼굴에는 즐거움이나 행복을 느낄 수 없는 무덤덤한 표정만이 가득하다. 이들이 보내는 시간과 공간에는 홀로 있을 뿐이다. 여행 가방이 무엇이던가? 어딘가로 떠나야 하는 숙명을 가진 물건이 아니던가. 그것을 손에 들고 있는 이들은 목적지를 향해 끊임없이 전진해야 한다. 매일 눈뜨고 사는 우리의 삶이 여행 가방을 든 사람과 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
손에 들려야 하는 가방이 머리를 가둬버려 어디로 갈 수도, 혹여 간다 해도 어디인지도 모르게 되어버렸다. 도시에 갇혀 어디로 가는지 모르고 헤매는 우리의 일상을 그리며 그 안에서 우리는 온전하게 존재하는지를 묻는다.
이 공연은 제목을 <고백(Go_back)>이라 표기했다. 나아가야 하지만 머물고, 멈추고 싶지만 전진하는 모순이 일상화된 현실을 고백하면서 “나 되돌아갈래”라고 외치는 의미를 모두 다 담아낸 것은 아닐까? 그들의 몸짓에서 가만히 멈추고 한발도 앞으로 떼지 못하거나 어디론가 늘 떠나려는 고독한 자아가 보인다.
공연이 고조되며 거리 무대 주변으로 사람들이 모이고, 어른, 아이 구분할 것 없이 몸으로 말하는 배우들에게 집중한다. 여행 가방 안에 담긴 잘게 잘려진 종이를 흩뿌리고 난 후, 이들은 각각의 개체에서 다시 만나 몸으로 서로 말을 걸면서 극은 마무리가 된다.
젊은 신체극 집단 아이모멘트의 <고백(Go_Back)>은 이렇게 꽁꽁 가두어 놓고 들여다보지 않은 자아를 꺼내보라고 한다.
비가 쏟아져 전날 공연은 저녁 7시부터 두 번의 공연으로 단축되고 14일에 못 올린 공연을 마저 선보였다. 티켓도, 그리고 예약도 필요 없이 거리를 거닐다가 멈추어 관람할 수 있는 새로운 공연환경을 제공한 거리예술 공연이었다. 그 위에 어디서 어떻게 나올지 모르는 관객들의 즉흥적 반응을 보는 것도 공연의 일부처럼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단발성 축제에서 선보였더라면 보기 힘들었을 텐데, 우연히 산책하러 나갔다가 만날 수 있는 <거리예술 시즌제[봄]>은 지난 5월 ‘서울숲’과 ‘보라매공원’에서 공연이 진행되었다. 이후 예정 된 공연은 6월 8일(목) 부터 6월 11일(일), 6월 15일(목) 부터 6월 18일(일) 까지 ‘서울로 7017’에서 선보일 예정이다.
거리예술 시즌제(봄) 서울숲 영상 보기
▶︎일정, 장소, 라인업은 이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https://www.facebook.com/SeoulStreetArtsCreationCen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