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청 '토요일은 청이 좋아'
싱그러움. 이 한마디면 5월을
표현하기에 충분하다.
벚꽃 흩날리는 4월의 쓸쓸함을
달래주기라도 하듯 5월은
완연한 봄기운을 몰고 다가왔다.
푸르른 잎이 제 색을 선연하게
띨 때면 괜스레 마음이
정갈해지기까지 한다.
이 사랑스러운 마법 때문일까.
5월에는 평소에 지지고 볶던
가족, 연인, 친구와 눈을 맞추고
걷기만 해도 마냥 좋다.
설레는 마음을 더욱 북돋아 줄
공연이 서울시청 시민청에서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한걸음에 달려갔다.
매달 마지막 주 토요일, 서울시청 지하 1, 2층의 시민청에서는 <토요일은 청(聽)이 좋아>라는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여기서 ‘청’은 들을 청(聽)으로, 이름처럼 서울시와 시민이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며 호흡할 수 있는 장으로써 자리매김하고 있다. 늘 다양한 테마로 우리들 곁에 찾아오니, 다채로운 추억을 안고 갈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으면 하는 작은 바람이 있다. 지난 27일에 열린 <토요일은 청(聽)이 좋아>에서는 ‘설레는 사랑카페’라는 주제로 가족, 연인, 친구 간의 사랑과 사람 사이의 소통에 대한 다양한 삶 속 문제를 함께 이야기해보는 특별공연, 특별전시, 시민체험프로그램이 열렸다.
공연이 진행되는 활짝라운지(B1)에 들어서자 리허설이 진행되고 있었고, 생각보다 다양한 연령층의 시민들이 앉아있었다. 폭신한 소파에 함께 앉아 무대를 기다리는 동안 기분 좋은 긴장감이 맴돌았다. 약 2시간 동안 진행된 ‘설레는 사랑카페’는 시민청 예술가 ‘소노뷰’의 오프닝 공연으로 그 막을 올렸다. ‘소노뷰’는 피아노 연주와 코러스를 맡은 이은향, 감성을 노래하는 유시은으로 구성된 여성 듀오다. 그들이 말하길, 그룹명의 뜻은 불어의 'sono'와 영어의 'view'가 만나‘소리를 보다’라는 의미로, 노래를 듣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보는 것과 같이 함께 공감하고 느낄 수 있는 음악을 추구한다고 한다. 그들이 부른 노래 중 가장 와 닿은 ‘오늘도’라는 노래의 한 소절을 가져와 보았다.
뒤돌아서 후회하지 않고,
내 선택에 의심하지 않고,
남들 뒷얘기에 휘둘리지 않고
성장하는 과정이라 생각 할래.
- '오늘도', 소노뷰
사랑에 대한 희망의 메시지를 얘기하는 이 프로그램 취지에 가장 어울리는 노래라고 생각한다. 흔히들 말하는, 타인을 향한 존중과 배려는 사랑의 필수조건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보다 더 우선이 되어야 하는 것은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다. 상대방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먼저 스스로를 사랑해야 한다는 말이다. 자아도취가 아닌 진정한 자기애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오늘도’의 가사처럼, 스스로 삶의 순간순간을 선택하고 그것을 책임지면서 차근차근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소노뷰의 공연이 끝나고 소통행사인 ‘정답 없는 사랑 퀴즈’가 진행되었다. 사전이벤트를 통해 선정된 ‘가족, 연인, 친구’ 간 사랑과 사람 간의 ‘정답 없는’ 일상문제가 담긴 시민 사연을 행사에 참여한 시민들과 함께 소통하며 풀어보는 OX 퀴즈였다. 시민들의 사연이 두어 개가 소개되었는데, 우리가 공감할 수 있는 일상의 소소한 감동 이야기가 주를 이루었다. 그중 한 자매의 사연을 소개하자면, 동생이 언니 옷을 입고 나갔다가 들어오는 길에 언니와 딱 마주쳐서 싫은 소리를 들었지만, 언니는 다음날 미안했는지 동생에게 새로운 옷을 사주었다는 훈훈한 내용이다.
사실, 구구절절해서 결국은 소매를 훔치고 마는, 그러한 라디오 사연을 기대했기에 상대적으로 이 사연은 2%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면, 우리 일상은 잔물결이 이는 바다에 어쩌다 가끔 큰 파도가 밀어닥치는 그런 게 아닐까 싶다. 이 시시콜콜한 이야기는 그 잔물결처럼 소소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사랑스러운 구석이 있다.
이어서 ‘묘해 너와’, ‘너무 보고 싶어’ 등 KBS 드라마 <연애의 발견> OST를 부른 듀오로 유명한 디에이드(구 어쿠스틱콜라보)의 공연이 진행되었다. 젊은 층 사이에서의 유명세를 자랑하듯 활짝라운지로 많은 인파가 모이기 시작해, 송송 뚫려있던 빈자리는 어느새 가득 메꿔졌다. 디에이드는 ‘묘해 너와’를 통해 봄날의 처연함을, ‘닮은 거래요’를 통해서는 향기로운 봄날을 노래했다.
사랑은 손잡고서 걸어가는 봄,
봄을 닮은 거래요,
따듯한 햇살 가벼운 공기,
다른 연인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요,
내 손 꼭 잡아주는 그대만 보여요.
- ‘닮은 거래요’, 디에이드
이것은 ‘닮은 거래요’의 가사 중 일부이다. 가사도 가사지만, 무엇보다 사랑스러운 것은 관객들의 열띤 호응이었다. ‘사랑은 손’을 부를 때 손을 모아달라는 디에이드의 청유에 관객들은 다 같이 손을 모아주었고, ‘걸어가는 봄’이 들릴 때는 얼굴에 꽃받침 제스처를 취해주었다. 여느 콘서트 못지않은 가수와 관객이 찰떡같은 호흡을 자랑하는 순간이었다. 디에이드는 서너 곡의 노래를 마치고 내려가던 중 늦게나마 울려 퍼지는 작은 앵콜 소리에 못 이긴다는 듯이 다시 무대로 올라왔다. 어딘지 ‘찜찜한’ 앵콜 요청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응원가’라는 봄볕같이 따스한 노래로 일상에 지친 시민들에게 볕을 쬐어주었다.
‘설레는 사랑카페’의 마지막은 가수 ‘동물원’이 장식했다. 지난 2015년도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OST로 사용되었던 ‘혜화동’을 시작으로 동물원의 주옥같은 명곡들이 고막을 간질였다.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시겠지만, 이 노래는 어느새 어른이 되어버린 이들이 어릴 적 뛰놀던 혜화동 골목을 떠날 때 느낀 상실감을 그대로 녹아내고 있다. 이 노래를 듣고 있자니 ‘봄’이라는 단어 뒤에 숨은 가슴 시리도록 아름다웠던, 그러나 되돌아갈 수 없어 서글픈 나날이 회상되었다. 그래서일까. ‘동물원’의 멤버였던 故김광석 씨의 빈자리가 유독 크게 느껴지기도 했다.
잠시 무대를 정비하는 동안 진행자가 ‘동물원’ 멤버들에게 ‘사랑을 하기 위해 필요한 자세’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이에 유준열 씨는 겸손이, 배영길 씨는 배려가 필요한 것 같다고 답해주셨다. 너무 간단명료해서 투박하게까지 느껴지는 대답이지만, 정답에 가까운 대답임은 분명해 보인다. 그렇게 짧은 인터뷰를 마치고 그들은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변해가네’ 그리고 ‘시청 앞 지하철역에서’를 연이어 열창해주었다. 마지막 곡인 ‘나의 노래’가 울려 퍼질 때는 활짝라운지에 있던 모든 시민들이 벌떡 일어나 함께 즐겼다. ‘동물원’의 연륜만큼이나 짙은 삶의 향기를 머금은 무대는 중장년층에게는 향수를, 젊은 층에게는 경험해보지 못했던 시간을 선사했다. ‘설레는 사랑카페’는 사랑이라는 큰 주제로 시작했지만, 그 뿌리는 어느새 많은 가지로 뻗어 나가 가족과 연인, 심지어 자신까지 아우르는 사랑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고 느끼게 했던 시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