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서울메세나지원사업- 무역센터 Special 트랙> 선정 작품
막춤도 예술이 될 수 있을까? 지난 6월 8일과 9일 저녁 코엑스 컨퍼런스 룸에서 춤에 대한 막연한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무용 공연이 열렸다. 무용 <갓 잡아 올린 춤>은 제목부터 신선했다. 보기도 전에 이 춤판이 궁금해졌다. 공연 정보를 찾아보니 ‘태어나서 평생 놀기만 한 사람’이라고 자칭하는 안무가 류장현과 ‘세상에서 가장 잘하는 게 노는 일’인 10명의 댄서가 만나 처음부터 끝까지 놀기만 하는 무용이라는 후기가 인터넷에 올라와 있다.
안무가 류장현에 의하면 무용 <갓 잡아 올린 춤>은 지금 이 순간 무용수의 감정과 몸에서 바로 뽑아낸 춤을 뜻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보통 사람들이 추는 막춤과 다를 바가 없겠다. 물론 재능과 더불어 고된 연습으로 완성된 예술가들의 몸짓과 질적인 차이를 접고 하는 말이다.
무용 <갓 잡아 올린 춤>은 2012년 초연된 이후 2013년 상연 당시 매진 사례를 기록하며 현대무용 공연으로는 드물게 롱런한 작품이다. 그리고 올해 2017년, 서울문화재단 <서울메세나지원사업 - 무역센터 Special 트랙> 선정 작품으로 다시 관객을 찾아왔다. 서울메세나지원사업(Seoul Mecenat Initiative)은 서울문화재단이 2012년부터 기업과 함께 문화예술 활동을 확대하고자 추진해 온 사업이다. 한국무역협회의 후원으로 2016년 신설된 <서울메세나지원사업 - 무역센터 Special 트랙>은 매년 2개의 예술단체를 선정하여 한국무역협회 지원금, 서울문화재단 지원금, 코엑스 무료대관을 지원하고 있으며, 올 상반기에는 류장현과 친구들의 무용 < 갓 잡아 올린 춤>이 지원금을 통해 코엑스 그랜드컨퍼런스룸 401호에서 진행되었다. 세상 무엇보다 노는 것이 중요한 춤꾼 류장현과 그의 친구들이 초대하는 싱싱한 웃음과 놀이, 교감의 춤 세계로 들어가 보자.
기대한 대로 열 명의 무용수가 무대 위로 갓 잡아 올린 춤은 신나는 놀이의 결정판이었다. 매력적인 여자의 시선을 끌려고 남자 댄서들이 신경전을 벌이고, 핸드폰 카톡 소리에 맞춰 춤을 추고, 남자 무용수들이 군대 기합을 받는 상황을 유연한 몸짓으로 표현했다. 일상에서 겪을 만한 에피소드가 춤으로 등장할 때마다 객석에는 웃음 폭탄이 터졌다. 어쩌면 무용이라기보다 유쾌한 팬터마임을 보는 듯했다. 특히 머리카락을 세워 작은 키를 속이고, 경쟁자에게 밀려 멋쩍은 듯 손가락을 빨고, 그녀 앞에 얼쩡거리며 의자를 갖다 주는 순진남들의 동작이 한 마디 대사보다 더 웃겼다. 누구나 공감하는 무용, 이것이 류장현 안무가가 실현하고 싶은 컨템포러리 무용일까? 현대무용이 어렵다는 생각이 한순간에 날아갔다.
여자 무용수들의 듀엣 무대 역시 익숙한 놀이가 소재였다. 반달 동요에 맞춰 어릴 적 수없이 했던 손뼉치기였다. 가수 송창식의 사랑 노래와 이들이 손으로 추는 아름다운 춤이 아른아른 옛 기억을 불러일으켰다. ‘나는 지금 노는 게 인생의 전부였던 그 시절보다 행복한가?’ 기량이 뛰어난 무용수들의 움직임을 거치자 뜀뛰기, 공차기, 때로는 싸움도 모두 춤이 되었다. 어쩌면 이 지극한 경지의 막춤 속에 잘사는 인생의 비결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이번 춤 공연이 웃음 일색의 재미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각각의 무용수들은 차례대로 빼어난 춤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무대에 비치는 스포트라이트 아래 미끈하게 단련된 신체로 진지하게 이어가는 춤 덕분에 모처럼 눈이 호사했다.
그런데 어떻게 움직여야 춤이 될까? 이번 공연은 누구나 원하기만 하면 춤을 출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손과 발을 움직이자 무용수들이 고양이가 되고, 새가 되었다. 새의 펄럭거리는 날갯짓이 이번에는 회오리바람으로 그리고 그 바람은 나뭇가지를 흔들었다. 이들의 몸짓은 세상 만물과 더불어 살면서 주변의 작은 변화에 눈길을 주고 느끼라고 말하는 듯했다. 이게 바로 인간이 가진 원초적인 언어, 춤이 주는 즐거움일까?
공연이 끝날 무렵 열 명의 댄서들은 춤을 추다가 갑자기 ‘어머니’를 외치며 객석으로 달려왔다. 느닷없이 끌려온 어머니, 아버지, 언니, 오빠 관객들이 얼마나 당황했을지 짐작이 간다. 혹시 이들이 나를 지목할까 봐 심장이 두근거렸기 때문이다. 무대 위로 초대받은 관객들은 무용수와 함께 몸을 흔들고 움직이며 고양이, 새, 타조, 고릴라로 변신했다. 이 즉흥 무용 워크숍에 직접 참여했던 이들과 바라보는 관객 모두 자기 신체의 주인공이 바로 자신이고, 각자의 고유한 몸짓을 발견했다. 행복의 나라가 먼 데 있지 않았다
류장현과 친구들이 만들어낸 일상에서 무용 <갓 잡아 올린 춤>은 독특한 개성과 상상력이 빛나는 공연이었다. 안무가 류장현은 2012년과 2013년 LIG 문화재단 레시던스 안무가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영 아트 프론티어 1기(2009~2010), 동아무용콩쿠르 일반부 대상(2006)을 받은 실력 있는 무용가이다. 이번 공연에는 김규진, 이동하, 최우석, 장선국, 정덕효, 신원민, 최지훈, 박영상, 최예나, 장라윤 10명의 무용수가 출연해 펄떡거리는 생명력으로 무대를 가득 채웠다. 일상의 예술과 전문 무용 장르의 거리를 좁힌 이들의 행보가 앞으로도 기대된다.
이번 공연을 도운 서울문화재단의 < 서울메세나지원사업 >은 ‘모두를 향한 착한 기업(Good Business for all), 모두를 향한 위대한 예술(Great Arts For All)’을 모토로 예술로 함께 사는 사회를 만들고자 한다. 서울문화재단은 기업이 예술단체를 후원하는 금액에 재단의 지원금을 매칭하여 예술가들의 활동을 응원하고 있다. 본 사업에 참여하는 기업은 후원금에 대해 기부금 영수증을 발급받을 수 있으며, 서울문화재단의 세미나, 워크숍 등 다양한 얼라이언스 프로그램에 초청받게 된다. 2017년 기준으로 현재 기업지원금에 최대 100% 매칭(최대 2,000만원 한도 내)하여 지원하고 있다. 더 자세한 사항은 서울문화재단 홈페이지에서 안내 받을 수 있다. (02-3290-7056) 점점 더 많은 기업이 손을 내밀어 시민과 예술가 모두 더 즐겁고 다 행복한 그런 세상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