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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국부(國父)>

여전히 살아있는 한국 현대사의 신화, 박정희를 여러 시선에서 조망하는

by 서울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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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우리의 영웅일까 독재자일까


연극 <국부(國父)> 포스터

아직도 한국 역사와 정치에서 리더십 있는 영웅 혹은 나쁜 독재자로, 두 극단적인 평 사이에서 힘겨루기하는 지도자가 있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어느덧 40여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그’는 우리 사회에서 살아 숨 쉬고 있다.

해방 전후 처참할 정도로 폐허가 된 한국. 희망을 꿈꾸기 어려운 극단의 악조건 속에서, 대한민국은 모두의 반대를 무릅쓰고, 경부고속도로를 깔며 다시없을 것 같은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뤄냈다. ‘한강의 기적’을 일으킨 카리스마 넘치는 영웅이자 동시에 5.16 군사정변을 통해 정권을 장악하며 무소불위의 권력을 꿈꾼 인물,바로 대한민국의 5 – 9대 대통령을 지낸 박정희다.

‘그’의 이름이 생각나는 이유가 있다. 2017년 올해가 바로 ‘그’가 탄생한 지 100년이 되는 해이기 때문이다. 원래는 올해 ‘그’를 기리는 28억에 달하는 대형 뮤지컬이 오를 예정이었으나, 서울에서는 연극 < 국부(國父) >의 막이 올랐다.

< 국부(國父) > (이하 국부)는 전인철 연출가의 전작 < 해야된다 >의 세 번째 에피소드인 < 초인 >을 발전시킨 작품으로, 두 달 동안 전 연출가가 ‘그’에 대해 알아가고 고민한 기록의 결과물이다. 한국 근현대사에서 빠질 수 없는 인물, ‘그’에 대한 주변 인물들의 증언과 각기 다른 시선을 통해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마치 ‘그’가 살아있는 사람인 것처럼 생생하게 보여준다. ‘그’를 경험한 세대에게는‘그’의 생전 모습으로써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그’를 경험하지 않은 세대에게는 한 편의 드라마로써 여러 사람의 향수 속에 잠겨있는‘그’를 간접적으로나마 만나게 돕는다. ‘그’는 과연 어떤 사람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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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3부에 걸쳐, 9명의 배우들이 ‘그’를 비롯, 주변 인물로 표현되어 ‘그’의 생애를 되짚는다. 그러나 ‘그’에 대해 명확한 평가를 바라는 관객에게는 그다지 친절하지 않은 연극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가 살았을 때 벌어진, ‘여수, 순천 사태’나 ‘5.16 군사정변’, 유신체제’, ‘새마을 운동’ 등에 대한 역사적인 지식이 없으면 더 연극을 이해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연극에서 ‘그’가 살았던 당시의 시대적 상황들을 시각적인 장치로써 재현해 설명하기보다는, 조명의 색깔이나 사운드, 배우들의 연기와 내레이션을 통해 빠르게 설명하기 때문이다. ‘그’의 60년 남짓 되는 생애가 1시간 반이라는 짧은 시간으로 압축되어 흘러가기 때문에 더더욱 당시 시대적 상황을 모른다면 이해하기가 어려울 것 이다.

극장을 들어가면 파란 바탕 속, 노란 글씨로 새겨진 < 국부(國父) >가 무대 중앙에 있는 스크린에 떠 있다. 극이 시작되기 전에 주변을 둘러보니 중년의 남성 관객이 많이 보였고, 노년의 부부도 보였다. 아마도 ‘그’를 다룬 연극이기에 중년 이상의 관객도 많이 모인 듯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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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사람의 기억 속에 남은 박정희의 조각들, 1부 <인터뷰>


배우들이 ‘그’의 주변 인물로서, 대통령 집권 시절의 ‘그’에 대해 어제 본 듯한 사람인 것처럼 생생하게 ‘그’와 관련된 자신의 기억을 꺼낸다. 여러 이야기 조각들이 모여 인간으로서의 ‘그’의 모습으로 표현 되었다.

연극에서는 ‘배를 곯지 않게 해준 가난의 구세주’, 군인정신에서 시작된, ‘하면 된다’ 정신으로, ‘목소리와 문화를 죽인 사람’으로, ‘5천년 역사 속 가난한 나라를 세계 10대 강국’으로 만든 사람으로, ‘한강의 기적을 일으킨 대통령’으로 ‘그’를 표현한다. 아직도 많은 사람이 기억하는 노래 < 새마을 운동 >도 나왔다. 이어 기타를 치며 다른 배우가 “우리는 박정희 대통령을 사랑해 왜~왜~” 라는 노래를 불렀는데, 반복되는 ‘왜’라는 가사가 의미심장하게 들렸다. 연극 도중 지금 어르신의 의견을 대변하는 듯한 것처럼 들리는 말도 나왔다. “나는 박 대통령이 영웅이라고 생각한다. 배 안 굶고 산지 몇 년 됐나. 왜 1번 뽑는지 아나?” 탄생부터 죽음까지, ‘그’의 인생에는 우여곡절이 있었다.



신화 속에 담긴 영웅의 모습, < 모세 > 2부


작은 나라 아이인 정희는, 태어나자마자 버려져 큰 나라에서 자라게 된다. 큰 나라의 병사를 죽이면서 정희의 고난은 시작된다. 목동이 되어 숨어 살던 정희는 신의 계시를 받아 작은 나라 사람의 도피 임무를 맡는다. 큰 나라 병사가 쫓아오는 위기 앞에 정희는 지팡이로 바다를 가르는 기적을 행한다. 순간, 머릿속에 누군가가 떠올랐는데 그는 구약성서 중 출애굽기에 나오는 ‘모세’였다. 큰 나라 사람에게서 자유를 찾으면 행복해 질 줄 알았던 정희는 고난이 있을 때마다 자신을 질책하는 사람들로 인해 고통을 겪는다. 정희는 가짜 신을 신봉하는 3천 명을 죽이며 그들은 광야에서 죽은 것이 아니라 신에게 거역해서 죽은 거라고 항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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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의 의미가 뭔지 생각해보았다. 시간이 많이 지나면, 사람 향수 속에 ‘그’의 존재가 미화되어 마치 ‘모세’처럼 여러 사람의 기억에 신화로 남는다는 의미일까. 김재규 등 그를 불신하고 반대하는 세력들로 인해 ‘그’가 영원한 지도자라는 초기의 뜻을 이루지 못한 채, 비운의 영웅으로 남게 되었다는 의미일까. ‘그’를 그리워하는 독재라는 향수의 최후의 장면일까. ‘그’가 지금 다시 돌아온다 해도 과거에서처럼 급속한 경제 발전과 사회 발전을 이루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설사 그렇게 된다 해도 다양한 가치가 공존하는 지금, 모든 사람이 ‘그’의 방식에 따르며 만족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보통사람과 다른 영웅, 신화의 시작 < 초인 > 3부


3부에서는 < 박정희의 결정적 순간들 >에서 보수 언론인 조갑제가 박 전 대통령이 총격을 맞은 상황에서도 영웅적으로 행동했다고 묘사한 장면을 그대로 인용하여, ‘그’의 마지막 순간을 보여준다. 심수봉, 신재순, 김재규 등 여러 사람이 모인 궁정동 안가에서 ‘김재규의 저격 장면’이 과하리만큼 되풀이된다. ‘그’의 의연함을 강렬한 눈빛과 함께, “뭐 하는 거야. 난 괜찮아.”라는 대사를 반복하면서 표현한다. 얼핏 보면 ‘그’의 영웅적인 자태를 < 국부 >가 칭송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탄생 전에서부터 고초를 이겨내며 살아온 ‘그’, 죽음 앞에서도 의연한 ‘그’는 정말 영웅일까. ‘그’가 구국의 영웅이었다고 해도 이 시대에도 ‘그’의 신화를 계승해야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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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시대에 우리에게 필요한 가치는 무엇일까


연극 후반부에 전인철 연출가는 배우를 통해 강력한 < 국부 > 를 갈망하는 사람들에게 경고하듯이 말한다.

군사독재 시대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의 말 속에는 상당한 공통점이 있다. 우선 그들 대다수는 강력한 리더쉽을 가진 자가 나라를 이끌어주기를 기대한다. 강력한 힘을 가진 군주가 일사불란하게 모든 일을 알아서 처리해주는 모습을 기대하는 국민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이런 심리는 종종 민주주의를 위협하며, 우리 안에 내재된 파시즘을 불러일으킨다. 민주주의는 누구라도 자신의 주장을 펼칠 수 있는 제도이다. 그렇기 때문에 국민들에게 계속해서 논의하고 생각하며 살아야 한다고 요구한다. 그것이 민주주의가 가진 가장 고귀한 가치이다. 또한 이러한 방식 때문에 민주주의는 빠르게 일을 처리하지 못한다. 매우 느린 속도로 차츰차츰 전개되어가는 것이다. 정치에 대한 조급증을 버리지 않는다면 독재에 대한 향수는 언제라도 다시금 부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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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경험한 세대,
‘그’를 경험하지 않은 세대가
연극이라는 한 공간에서 만나
‘그’를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를 둘러싼 근현대사의 고민은 양극단의 골이 깊은 갈등 대신 세대 간에 화합을 불러올 수도 있지 않을까.
세대 간의 소통 속에서 해묵은 감정은 깨끗이 정리하고, 새로운 시대를 맞이할 준비를 하게 할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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