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人_웹진] 딱 맞는 옷을 찾은 거 같아요
뿌
여러 활동을 하고 계신 것 같은데 소개 좀 부탁드려요.
강희
직업이 무엇인지를 말해야 한다면 저는 드라마터그이면서 공연평론가라고 말해요. 저의 1년이 어떻게 채워지는지를 살펴보면, 먼저 주로는 연극에서, 한 해에 한두 번 정도 무용과 미술 작업에 드라마터그로 참여합니다. 그리고 공연 관련 글을 써요. 요즘 열심히 안 하고 있기는 하지만 ‘독립예술웹진 인디언밥’의 편집인이기도 합니다. 인터뷰도 많이 했는데, 인터뷰이가 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네요.
드라마터그, 글 쓰는 일이랑 달리, 예상치 않게 업으로 삼게 된 일도 있어요. 축제와 관련된 일들이에요. 제가 흥이 별로 없는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축제 만드는 일을 매년 하게 됩니다. 1년이 공연, 글, 축제 이렇게 세 축으로 나눠져서 굴러가고 있어요.
뿌
이 질문을 정말 많이 들으셨을 것 같은데,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드라마터그는 뭐 하는 사람입니까? (웃음)
강희
예전에는 정말 교과서적으로 얘기를 했어요. 작품이 연출의 의도에 맞게 잘 가고 있는지, 바라보고 해석하는 역할이다, 연기로 치자면 스스로를 관찰하는 제 3의 눈이다. 근데 제가 주로 참여하는 작품들이 전통적인 극이 아니다 보니까 역할이 계속 바뀌는 것 같아요. 건축을 전공하시다 예술로 넘어오신 어떤 분이 건축으로 치면 설계자나 디자이너는 아니고, 마지막에 감리? 감수?의 역할을 하는 것 같다, 라고 그랬어요. 근데 이렇게 말하는 것도 딱 맞지 않는 것 같은 게, 크리에이티브 바키의 작업 같은 경우는 처음 기획 단계부터 같이 시작하는 거여서 좀 다르고… 잘 모르겠어요. (웃음) 작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마지막에 하는 역할은 감리가 맞는데 그 전에 하는 역할은 좀 다른 거죠. 저 같은 경우는 어떤 작품을 할 때 레퍼런스에 대한 라인업이 빨리 서는 것 같고, 테이블 작업 할 때는 베이스가 되는 다른 예술 분야의 뭔가가 있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이 좀 빠른 것 같아요.
아, 어떤 학자들이 한 말을 사진으로 찍어놓은 게 있어요. “드라마터그는 이론과 실천 사이의 산파라고 할 수 있어요. 생각을 하나의 구체적인 형태로 이끄는 과정을 제공할 수 있지요.” (멜라니 베디), ‘드라마터그와 희곡의 관계는 자동차와 정비공의 관계로 비유할 수 있다. 정비공은 자동차를 만들지 않지만, 무엇이 작동되는지 안다. 그는 지식을 통해 자동차를 다시 만들 수도 있다.” (베르트 카르둘로), “드라마터그는 예술가적 자질을 갖고 태어나서 학자로 길러지고 연출가로 성장하나, 드라마터그가 되는 저주를 받은 자이다.” (아르투르 카하네)
뿌
마지막 말씀 하신 분은 드라마터그를 안 하고 싶으셨던 분 같은데요. (웃음)
강희
제 지인들은 첫 번째 말에 표를 가장 많이 줬고,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그리고 마지막의 “드라마터그가 되는 저주를 받은 자이다.”는 말에도 공감을 하는 게, 저한테는 그 저주가 잘 맞는 저주예요. 제 포지션은 드라마터그와 굉장히 잘 맞구나 생각하고 있어요. ‘예술가적 자질을 갖고 태어난 건’ 증명할 수는 없는 거지만 어렸을 때 많이들 그림 그리고 노는 거 좋아하는 것처럼 저는 그림 관련된 책 보는 걸 좋아했어요. 그러니까 맞다고 치고, 학자로 길러진 건 맞고요. 마지막 ‘연출가로 성장하나’는 제 케이스는 아닌 것 같아요.
뿌
연출가한테는 예술적 재능이란 것도 있지만, 전체를 넓게 바라보는 눈이 중요하잖아요. 연출가로 성장한다는 말은 그런 의미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비슷한 점이 많은 것 같고요. 제가 드라마터그 수업을 받은 적이 있는데, 아무리 들어도 연출이랑 뭐가 다른지 모르겠더라고요. 사실 마지막까지도 명확하게 몰랐는데, 그 이유가 어쩌면 워낙 다양한 케이스의 드라마터그가 있기 때문이겠다, 라는 생각을 했어요. 연극을 하는 사람들도 정확하게 이해를 못하는 사람이 여전히 많을 것 같고, 일반 관객의 경우는 최근으로 올수록 크레딧에는 많이 등장하는데 잘 모르실 꺼 같아서, 물어봤어요. 여전히 어렵기는 하네요.
강희
그렇죠. (웃음) 우리나라에서만 그런 건 아니에요. 최근에 어떤 분이 홍콩에 학회를 다녀왔는데, 거기도 드라마터그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되게 뜨겁대요. 제가 작년에 바키랑 공연 하러 홍콩에 갔을 때도, 독일에 갔을 때에도 그 질문을 많이 받았어요. 독일은 드라마터그 전통이 강한 곳이잖아요. 전통적인 상이 확실히 있기 때문에, 전통적인 극이 아닌 다른 개념의 작업일 때 드라마터그의 역할에 대해 궁금해했던 것 같아요. 만국공통의 질문인가 봐요. 일본에서도 관심이 많아지고 있다고 들었고요.
독일에 갔을 때 아시아 친구들이 있었는데 저 빼고 다들 연출가나 퍼포머였어요. 제가 드라마터그라고 하니까 일본 친구는 일본엔 드라마터그가 별로 없는데 자기가 아는 사람은 한 명이다, 재수가 없다, 그래요. 그리고 싱가폴 친구도 자기 나라에선 드라마터그는 큐레이터 같은 역할을 하는데 잘난 척 한다, 그러고요. (웃음) 그래서 나는 아니다, 그랬죠.
뿌
듣고 보니 큐레이터랑 비슷하지 않은가 싶은데요.
강희
제가 큐레이터가 하는 일은 잘은 모르지만 좀 다른 것 같아요. 저는 아티스트랑 작업을 같이 만들잖아요. 큐레이터는 그렇지는 않은 것 같아요.
뿌
아, 그러네요.
강희
아까 얘기한 홍콩 학회에 다녀오셨던 분이, 작가와 드라마터그를 위한 플랫폼을 주제로 한 세션의 막바지에 현지 연출가가 내가 연출한 작품에 드라마터그가 왜 필요한지 모르겠다고 해서 다수의 기획자를 아연실색하게 만들었대요. 그때 한 관계자 분이 제가 처음에 말했던 감리의 역할에 대해 얘기를 했대요. “당신이 만든 설계가 제대로 만들어지고 있는지 관리감독이 필요하지 않겠느냐?”라고. 모두의 머리를 절로 끄덕였다고. 또 홍콩 쇼케이스 중에 당황스런 일이 있었대요. 극작가, 연출가, 드라마터그가 한 명으로 되었있더라는. (웃음)
뿌
말이 안 되는 거죠.
강희
그래서 그 연출가를 이렇게 설득했대요. 드라마터그는 당신의 첫 관객이다. 첫 관객을 설득하지 못한다면 그 작품을 접는 게 나을 것이다.
뿌
우리 뿐만이 아니라 다들 인식이 많이 부족하네요. 근데 일본에 정착이 안돼있다는 건 좀 놀랍네요.
강희
아마 활동하시는 분들은 꽤 있을 텐데 인식이 좀 부족하고, 제가 만난 연출가가 아직 젊은 친구여서 그랬던 것 같기도 해요. 아시아는 대체적으로 비슷한가 봐요. 앞으로는 꼭 드라마터그가 아니어도 점점 역할이 다양해지지 않을까 싶어요. 역할이 점점 세분화되니까.
뿌
장르 자체의 폭이 점점 넓어지면서, 뭐라고 불러야 할진 모르겠지만 어떤 역할을 해주는 사람이 더 많이 필요해지겠죠. 드라마터그를 하는 건 재밌으세요?
강희
저는 재밌어요. 얼마 전에 사람이 사람을 따라서 일을 하면 안 된다, 그 업을 따라가야 된다는 글을 봤어요. 저를 가만히 돌아봤더니 저는 사람을 따라가고 있더라고요. 업을 따라갔다면 재미가 있었을까? 싶어요. 일 자체도 재밌기도 하지만, 좋은 분들 만나서 작업을 많이 해서, 즐겁게 하고 있는 것 같아요. 만나는 사람들이 좋으니까.
뿌
협업에서는 너무 중요하죠. 못해먹겠다, 싶을 땐 없으세요?
강희
그렇게 많지는 않은 것 같아요. 나이도 먹고, 좋아하는 작업들을 하게 돼서. 그런데 어떤 윤리적인 선택을 해야할 때, 연출이 나와는 다른 윤리관을 갖고 있을 때 힘들어요. 예를 들면 이런 거예요. 우리 연습 시간 뒤에 다른 작품 연습이 있을 수 있잖아요. 그런 걸 고려하지 않고 계속 연습을 진행할 때. 다루는 내용은 엄청 윤리적인 건데. 이런 걸 참을 수가 없더라고요. 이런 게 쌓이면 괴로워요.
뿌
아, 뭔지 알겠어요. 제가 아는 모 극단 대표, 연출이 엄청 진보적인 사람이에요. 항상 옳은 말 많이 하는. 근데 거기 있었던 배우 얘길 들어보니까 극단을 운영하는 방식은 완전히 다른 거예요. 어린 배우들, 단원들 엄청 착취(?)하더라고요. 그 괴리감에 놀랬던 적이 있어요.
강희
네, 네, 맞아요. 그게 제일 힘들어요. 작품에선, 내용이 이상하면 말해서 고치면 되고, 설득하면 되잖아요. 근데 삶의 어떤 지점들은 (어떻게 할 수가 없으니까), 그냥 “안녕!”해야 되는 거죠.
뿌
드라마터그라는 직업은 정말 특수하잖아요. 어떻게 처음 알게 되셨어요?
강희
영문학을 전공했고 대학원에서 희곡으로, 사라 케인(영국의 현대 극작가로 흔히 말하는 급진적, 실험적인 극을 썼다)으로 석사를 받았어요. 텍스트가 너무 어려운데, 문자를 통해 상상하는 데는 한계가 있어서 무대로 보고 싶다, 그러면 연극을 해야 되나? 라는 생각을 해보기는 했죠. 당시에 사라 케인으로 논문을 쓰는 사람이 없었어요. 참고할 자료가 없어서 해외 리뷰를 많이 읽었는데, 평론가들이 살벌한 이야기를 많이 써놓잖아요. 그게 너무 재밌었어요. 그리고 사라 케인은 영국보다는 독일에서 더 인정을 받았던 작가인데, 독일에서 올려진 한 공연을 보고 작가가 속상해했었대요. 텍스트만으로는 상상이 안되니까, 도대체 어떻게 했길래 속상했을까, 궁금하고, 그런 지점들이 재밌더라고요. 관심은 가는데 연극을 할 자신은 없었어요. 하던 일도 아니고, 활발한 사람도 아니고. 근데 찾다 보니까 이론과 현장을 연결하는 포지션이 있는 거예요. 제가 원래 뭔가 설명하고 그런 걸 좋아해요. (웃음) 이건 왠지 잘 할 수 있겠다, 싶었고 그럼 해야겠다, 아주 쉽게 생각을 했어요. 깊게 생각을 했던 게 아니어서 지도교수님이 말렸으면 안 했을 텐데, 그 분은 인간은 하고 싶은 거 해야 돼, 이런 스타일이셔서… 다시 드라마터그 공부를 했어요.
뿌
드라마터그를 하기에 되게 좋은 과정을 지나오셨네요.
강희
그렇죠. (웃음) 우연치 않게.
뿌
그럼 처음에 희곡을 전공하게 된 건 연극에 대한 관심이라기보다는 문학으로서의 희곡에 관심이 많으셨던 거예요?
강희
학부는 영어교육과를 나왔는데, 그 때 희곡을 제일 좋아했었어요. 자기가 어떤 성향인지 어렸을 때도 어렴풋이 알잖아요. 나는 나중에, 언젠가는 대학원에 갈 건데, 가면 희곡을 전공하겠다, 생각을 했었죠. 일을 좀 하다가 좀 뒤늦게 대학원을 갔는데 주저 없이 희곡을 선택했죠.
뿌
신기하네요. 연극이랑 관련 없는 분들한테 얘기 들어보면 희곡 읽는 거 어렵다고 하던데요. 읽기에 익숙한 방식이 아니잖아요. 처음 재밌게 읽었던 희곡이 뭐예요?
강희
그때 선생님께서 아폴로와 디오니소스가 충돌하는 희곡들에 대해서, 20세기 미국 희곡들에 대해서 많이 소개를 해주셨어요. 그런 것들은 글자로만 읽어도 되게 감각적이고 캐릭터도 분명하잖아요. 이렇게 재밌을 수가, 그러면서 엄청 몰입해서 읽고 너무 좋아했었어요. 연극 할 팔자였나 봐요. (웃음)
뿌
희곡을 보고 연극을 좋아하게 된 경우잖아요. 이런 경우 처음 봐요.
강희
대학원에서 희곡 전공자가 저 하나였어요. 눈에 안 띄게 있으면서 다른 장르 수업은 안 듣고 희곡 수업만 실컷 들었죠. 저 졸업하고 나서 골고루 듣게 학칙이 바뀌었다고 하더라고요. (웃음)
뿌
드라마터그는 어떤 경로로 이 일을 접하게 되는 걸까, 궁금했었어요.
강희
어렸을 때부터 평론 읽는 것도 좋아했었어요. 책 뒤에 붙어있는 설명 같은 거 있잖아요.
뿌
보통 그거 안 읽고 덮지 않나요? (웃음)
강희
미술 평론을 많이 읽었어요. 드라마터그라는 존재를 알기 전에는 미술 이론을 공부할까, 고민한 적도 있어요.
뿌
정말 딱 맞는 옷을 찾으신 분 같아요. 좋으시겠어요.
강희
20대 땐 방황 많이 했어요. (웃음) 정말 운이 좋았다고 생각해요.
뿌
저는 이 일을 계속 할 수 있을까, 자주 고민하는데, 그런 고민 안 하실 꺼 같아요.
강희
하죠. 공연은 체력으로 하는 것 같거든요. 건강하지 못하면 이 일을 못하겠구나, 싶고, 감각이 무뎌지면 못하겠구나, 그런 생각도 해요. 제가 좀 비현실적이어서 현실적인 건 아예 고민을 안 하는 것 같아요. (웃음)
뿌
행복해보입니다. (웃음) 아까 변방연극제 때문에 바쁘다고 하셨잖아요. 어떤 일 하고 계세요?
강희
일단 명칭이 ‘서울변방연극제”예요. 축제드라마터그이면서 사무국장이에요. 지금쯤이면 실무적인 일을 끝내고 내용적인 것에 집중을 해야 되는데 ‘e나라도움’(지원금을 운영하기 위해 기재부에서 새로 만든 시스템) 때문에 힘들었어요.
뿌
그 시스템이 말이 많죠. 어떤 장르 창작자들은 그 시스템 문제 때문에 지원금을 포기했다는 기사도 읽었어요. 아주 작은 규모의 축제도 아니고 두 가지를 다 병행하려면 힘드시겠네요.
강희
아주 안 해봤던 일을 하는 건 아니어서 그렇게 힘들진 않아요. 프린지페스티벌에서 일을 하기도 했고, ‘아오병잉 페스티벌’이란 걸 만들어 본적도 있고요.
뿌
아, 그 제목이 너무 인상적이었어요.
강희
‘아시아 오프 병맛 잉여’를 줄여서 ‘아오병잉’인데 이름 제가 지었어요. 잘 지었죠? (웃음) 그런 축제들에서 하던 일을 하는 거고 그냥 좀 바빠서 몸이 피곤한 거죠.
뿌
이번 서울변방연극제 소개 좀 해주세요. 모르는 분들도 많을 것 같아서요.
강희
전체 주제는 ‘25시 극장전’이에요. 개막식의 제목이기도 한데요, 24시간 동안 1시간씩 릴레이로 아티스트들이 공간을 점유해서 공연을 하는 거예요. 우리가 흔히 아는 극장만 극장이 아니잖아요. 거리도, 광장도, 사람 자체가 있는 공간이면 다 극장인 거죠. 원래 서울변방연극제가 다루는 주제가 사회적인 거다 보니까, 그게 극장 안에만 묻히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있어서 광장과 극장 사이에서 연극을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 에 대한 고민을 담고 있어요.
뿌
그럼 이번 연극제는 딱 25시간만 하고 끝나는 건가요?
강희
2주를 하는데 개막식에서 24시간 릴레이 공연을 하고 중간에 10개의 공연이 올라가고, 학술회라든가 관객비평수다모임 같은 게 있고, 마지막에 참가자 대부분이 모여서 광장에서 공연을 1시간 해요. ‘서울변방연극제’여서, 처음엔 ‘연극’에 대해서 그 다음엔 ‘서울’에 대해서 그리고 마지막에는 정말 ‘변방’에 대해서 순차적으로 고민을 해보자 그랬어요. 이번엔 ‘연극’의 맥락 안에서 변방의 상상력에 대한 생각을 했었고 거기서 25시 극장전이 나온 거죠.
뿌
연극계가 한동안 사회적인 메시지를 담은 작품을 많이 했잖아요. 물론 정권이 바꼈다고 뭐가 다 바뀌진 않을 거고 여전히 세상에는 너무 많은 문제와 해야 될 얘기가 있지만, 연극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게 되는 시점인 건 맞는 것 같아요. 무슨 작품들이 올라올진 모르지만 관객들이 많이 찾으면 좋겠네요.
강희
어떻게 보면 사람들이 많은 관심을 안 가질 주제이기도 하잖아요. 거기다 아티스트들이 너무 비현실적이에요. (웃음) 다들 객석수도 너무 적게 잡고. 1대로 1로 하고 싶다, 50석만 하고 싶다, 다들 어쩌려고 그러는지…
뿌
그러니까 다들 연극하고 있는 거예요. (웃음)
강희
연극제 만들면서 창작자들을 비롯해서 자원활동가들의 요구를 충족시켜줄 수 있는 플랫폼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어제는 자원활동가를 지원한 분들을 만났어요. 현장에서 작업을 하고 있는 분들은 많지 않고 동아리처럼 다른 활동을 하면서 연극을 하는 분들이 많아요. 그 분들이 너무 절실한 거예요. 이 분들이 접할 수 있는 플랫폼이 프린지랑 서울변방연극제 밖에 없으니까, 인구수에 비해 너무 적은 거 아닌가 싶어요. 그리고 축제지원금 설명회를 갔을 땐, 오래 된 축제들이 참 많은데 방치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런 축제는 한 도시의 자산인데 누가 힘내서 안 하면 없어져버리는 건데,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 같아서, 왜 그렇게 오래 된 축제들도 허덕이면서 해야 할까, 안타까웠어요.
서울변방연극제의 연혁을 보면 지금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이름을 발견해요. 아마 그분들은 변방이 아니었으면 디딜 플랫폼이 없었을 거예요. 변방이 씨앗을 뿌릴 작은 땅 정도이지 않았을까 싶어요. 그 역할을 정말 잘 하면 되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들어요.
뿌
전통 극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는 작업들의 플랫폼 역할을 해왔죠.
강희
연초에 참가작 찾으려고 지원을 받았을 때 정말 오랫동안 작업하신 분들이 꽤 있었어요. 어려운 상황에서도 자기 색깔과 작업을 지키고 있는 분들 보면서 정말 감동받았어요.
뿌
드라마터그, 서울변방연극제 얘기하다가 시간이 다 갔네요. 좀 아쉽기는 하지만 마지막 질문 드리겠습니다.
전강희한테 연극이란?
강희
진짜 어려운 질문이네요. 삶이랑 연극하는 거랑 점점 구분이 없어지는 것 같아요. 그래서 어떤 윤리적인 지점에서 고민을 안겨주는 사람이랑 작업을 하는 게 힘든 거 같고요. 삶을 연습하는 과정이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해요.
사진 _ 김지성 jasonk17@naver.com
전강희(드라마터그·공연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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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활동
<2017 이반검열> <아임언아티스트> <비포애프터> <그녀를 말해요>(드라마투르기)
『환승+극장』 (기획, 공동저자) 『독립예술웹진 인디언밥』(편집인) 외
부새롬 연출가, 무대디자이너
달나라동백꽃 대표
주요작품 <뺑뺑뺑> <달나라연속극> <로풍찬 유랑극장> <뻘>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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