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서울] 새 정부에 바란다!
예술가라고 해서 특별히 선처를 바라거나 지원과 지지를 꼭 받아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것은 대체로 곤란하긴 하지만 가난을 팔아서 예술을 연명하고 싶지 않다는 최소한의 작가적 자존심이다. 시인이란 직함으로 살아본 20년 동안 내가 목격한 사람들은 작가들보다 훨씬 열악한 조건에서 살아보려 몸부림치고 있었다. 이러한 현실이 예술가입네 하면서 정신적, 물질적 보상을 바라는 잠시잠깐 떠오르는 허영심을 눌러버린 접점 중 하나다.
그러니까 예술정책에서 가장 바라는 바는 한마디로 이야기하면 공정성이다. 문재인 정부가 내건 문화산업 발전을 위한 공정성 보장 등과 통하는지도 모르겠다. 더불어 공정한 저작권과 공정한 제작 혹은 공정한 분배 등도 여기에 속하겠다. 공(共)과 공(公)이 만난 정(正)이야말로 개인과 지도자와 체제의 가치관을 압축해 보여주는 것 아니겠나.
최근 10년, 시골에 내려와 살게 되면서 어쩌다 보니 문화의집이나 복지관, 기초수급자를 위한 자활 후견 기관, 인권센터 같은 데서 문학 강연이나 몇 달짜리 강의를 하는 일이 잦았다. 돈은 얼마 주지 않았지만 번듯하게 남는 예산을 쓰면서 마지못해 하는 일들이 아니어서, 그 사업을 추진하는 실무자들의 열정과 의지가 넘쳐났다. 덩달아 나도 열심히 하고 보람도 있었다. 치매병동에 가서 어르신들과 글쓰기를 하면 얼마나 하겠는가만은, 공중에다 말로 글을 쓰거나 크레용으로 그림을 그리면서 몇 자 쓰거나 나누는 삶의 이야기들이 빛나고 소중했다.
그런데 향유자와 추진자, 강사 모두가 기다리고 좋아하던 그런 소박하고 조촐한 프로그램들이 차츰 줄어들더니 어느 날 감쪽같이 사라졌다. 실무자들은 지원방식이 까다로워 이제 그런 일들을 기획하기 겁난다고 했다. 조손가정 아이들에게 밥을 해주면서 방과 후 이러저러한 프로그램으로 아이들을 위해 헌신하던 어떤 실무자는 하고많은 서류가 작성인지 조작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제출한 서류를 쌓으면 바닥에서 천정까지 닿을 거다”라고 했다. 이삼일씩 걸려 밤새 서류를 만든다는 것이다. 자료와 씨름하느라 실제 프로그램에 쏟을 시간이 없다고도 했다. 이명박 정부 중기에서 박근혜 정부 초기의 일들이다. 그렇게 400~500만 원에서 1,000만 원짜리 지역의 작은 문화 프로그램들이 사라져갔다. 나는 그때 ‘참 국민 돈 가지고 쪼끔 쓰면서 엄청 유세하는구나’ 생각했다. 더불어 지역 시민의회 같은 게 있어서 프로그램에 직접 참여하는 문화예술의 수혜자이자 공정한 감독자 몇 명만 있어도 형식적인 서류가 10분의 1로 줄지 않을까 생각했다.
노장 켄 로치 감독의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빈곤과 불운과 질병을 증명해야 하는 복지제도와 빈민구제법 등의 지원을 풍자하는 영화다. 주인공 블레이크는 심장병으로 병원에서는 일을 하면 죽는다 하고, 당국에는 구직활동 의지를 증명해야 하는 이중의 감옥에 갇혀 있는 독거노인이자 장인이다. 구직활동을 하고도 그를 채용하려는 공장주에게 연락이 오면 거절해야 하는 거짓 사이에 그는 존재한다. 양심과 실직수당 사이의 톱니바퀴에 끼어 신음하는 사이에도 먹을 것이 없는 이주노동자 가족에게 제 것을 떼어 경제적 도움을 주고, 말을 잃은 아이들과 여성가장에게 희망의 모빌들을 만들어주는 사이, 정작 자기 집에는 전기가 끊기고 먹을 것도 없어진다. 말과 서류와 문자가 조합된, 소위 행정 양식이라는 것들은 가난하고 못 배우고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살아야 하는 사람들이 가장 약한 고리이다. 지지직거리는 흑백화면처럼 알아듣지도 못하는 수많은 질문과 취조에 가까운 행정절차에 ‘예스’가 떨어지길 기다리는 지난한 과정의 막바지에 그는 심장발작으로 숨진다.
사실 내가 아는 시인, 소설가 혹은 연출자들은 웬만한 노동자들보다 가난하다. 원인이 어떻든 1년에 1,000만 원 이하의 수입으로 겨우 살아가며 그 수입이란 것도 비정기적이어서 생활고의 불안 속에서 살고 있는 게 아마 일반 예술인들의 처지일 게다. 어느 소설가는 상을 하나 받고 심폐소생술을 받은 것 같다 했다. 그 상금으로 5년은 굶지 않고 글을 쓸 수 있을 거라고. 한 노시인은 정기적으로 나오는 어떤 지원을 받게 되자, 그 즈음 이제 그만 죽을까 생각하는 중이었다고 했다. 어느 작가는 문예창작기금을 받고 나서 1년 동안은 글에 전념할 수 있어서 좋은데, 제출하고 증명해야 할 서류들이 너무 많고 어려워서 소설에 지장을 주는 지경이라 했다. 기획서조차 내지 못한 나 같은 아날로그형 인간에게, 그래도 소정의 양식과 작품과 기획서를 온라인에 제출해 심사에 통과한 그의 소회가 의외였다. 안 내길 잘했다, 까지는 아니지만 나는 그런 지원 프로그램에 도저히 도전할 수 없겠구나 생각하며, 시도조차 못한 내 무능과 불성실을 자책하지 않기로 했다.
텃밭도 농사라고 몇 해째 하면서 매양 깨닫는 바는 한 가지 작물로는 취약하다는 점이다. 고추 옆에 깨랑 상추도 있고 대파랑 수수도 있어야 가뭄에도 폭우가 쏟아져도 서로 의지하면서 버티고 병해도 덜 입는다. 10년 새 강만 망가진 게 아니다. 지역주민에 근간을 두는 총체적 문화예술 생태계의 파괴는 민주주의의 철회이자 풀뿌리 정신 자체의 말살 수준이지 않았는가.
국가와 일반 대중의 수혜를 제법 받는 명망가 중앙 위주의 예술정책은 일반 시민과는 ‘너무나 먼 당신’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런 점에서 분권에 기초한 지역문화진흥체계 구축이나 사회적 약자를 위한 문화예술 교육 확대는 바로잡고 복원해야 할 중요한 정책 방향이겠다. 더불어 문화예술인의 사회안전망 구축이란 것도 일방적 시혜성이 아니라 상호 수혜성에 근거해 정책들과 연동시키면 세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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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김해자(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