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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문화재단 Jul 11. 2017

② 청년예술가가 바라는 문화정책

[문화+서울] 새 정부에 바란다!


예술은 사회적 노동이다


지난 2011년, 고 최고은 작가의 비극적인 죽음은 예술인들을 보호하기 위한 예술인 복지제도와 법이 한국사회에도 필요하다는 사회적 논의를 촉발했다. 이전까지만 해도 조금은 낭만적인 수사로 포장되기도 했던 예술인의 빈곤과 가난의 문제는 한 예술인의 죽음을 계기로 생존의 문제로, 사회적 문제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언론에 서는 연일 예술인의 빈곤 문제를 다뤘고 예술인에 대한 동정의 여론이 들끓었다. 그리고 몇 년간 다른 법안들에 밀려 표류하고 있던 예술인 복지법이 국회를 통과하기에 이르렀고 한국에도 예술인 복지라는 새로운 화두가 던져졌다.

이 화두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고 최고은 작가의 죽음에 앞서 2003년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고 구본주 작가의 죽음을 다시 돌아볼 필요가 있다. 구본주 작가는 2002년 서울 예술의전당 젊은 작가로 선정되는 등 주목할 만한 조각가로 인정받았으나, 2003년 9월 불의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그런데 가해자의 보험사였던 삼성화재는 보험료를 산정하는 과정에서 고 구본주 작가가 지속적인 수입이 없어 소득을 입증할 자료가 불분명하고 예술활동 경력을 인정할 수 없다는 이유로 도시 일용직 노임 기준에 준하여 보험료를 산정하였다. 당시 문화예술계는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단순히 일용직 노임이 적용되었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라 촉망받는 예술가란 외피를 걷어내면 직업인으로서의 기본적인 사회적 권리, 아니 그 존재 자체도 인정받지 못하는 예술인의 비참한 현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예술인들은 일인시위와 기자회견을 통해 “예술은 사회적 노동이다”라는 구호를 외쳤다. 하지만 법원의 조정으로 고구본주 작가 측과 삼성화재 간의 소송이 종결되면서 이러한 논의들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게 되었다.

한국의 예술인 복지정책은 2011년 예술인 복지법이 제정된 이후, 2013년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이 만들어지면서 본격 시행되었다. 이 시기 박근혜 정부는 국정기조로 ‘문화융성’을 내세우며 생활고로 예술의 꿈을 접는 예술인이 없게 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 4년은 결과적으로 예술인 복지라는 이름의 지원사업을 확대한 것 말고는 예술인의 삶과 창작환경을 변화시키는 데 철저하게 실패하였다. 예술인 복지법은 몇 차례의 개정을 거치긴 했으나 예술인 복지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예술인에 대한 사회보험 적용 문제와 이를 위한 예술인에 대한 근로자 의제 반영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은 출범 초기부터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로부터의 독립성 문제로 휘청거리기 시작하더니 예술인 파견지원 사업과 같은 일자리 사업과 저소득 예술인 지원사업의 실행기구로 전락해버렸다. 수많은 예술인들과 정책전문가들이 예술인 복지를 위한 필요조건으로 지적한 독립적인 예술인 복지예산 확보와 현장 예술인에 기반한 예술인 복지제도 수립을 위한 거버넌스는 논의조차 되지 못했다.



현장 예술인과의 교감과 소통이 먼저


앞서 살펴본 고 구본주 작가의 이야기는 예술인 복지의 출발점이 무엇이어야 하는지 말해준다. 불안정한 사회적 지위로 인해 제대로 된 직업분류조차 존재하지 않고, 예술활동이란 사회적 노동의 주체로서 권리도 보장받지 못하는 현실이야말로 예술인 복지를 이야기하는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14년 전 예술인들이 “예술은 사회적 노동이다”라는 구호를 외쳤을 때 많은 사람들이, 심지어는 예술인 스스로도 예술을 노동으로 이야기하는 데 반대하였다. 하지만 이제는 ‘예술노동’이란 말은 더 이상 낯선 말도 아니고, 밥 먹고 예술하자는 외침은 외롭지 않다. 하지만 여전히 정부의 예술인 복지제도는 예술인을 시혜적인 지원의 대상으로만 보며 예술인의 권리 문제에는 애써 고개를 돌리려 한다. 이제 예술인의 빈곤과 생존, 창작환경의 문제는 예술인 개개인에게 얼마를 지원할 것인가 하는 수준의 논의가 아닌, 예술인을 착취하고 배제하는 우리 사회의 근본 구조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라는 논의로 나아가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공약 중 예술인 복지 관련 공약으로 ‘예술인의 정신적 권리, 경제적 권리, 사회적 권리 보장의 제도적 근거 마련’, ‘예술인의 창조적 노동에 대한 공정한 보상 강화’, ‘예술인 실업급여 제도(프랑스 앵떼르미땅) 도입’, ‘예술인 복지금고 지원’, ‘청년예술인을 위한 창작 주거 인프라 조성 및 안정적 일자리 창출’을 제시한 바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예술인 복지 관련 공약들은 그간 예술현장에서 요구해온 내용들을 적극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여러 가지 기대를 갖게 한다. 하지만 여전히 예술인 복지 문제를 권리보장의 개념이 아닌 보다 적극적인 지원정책의 맥락에서 접근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도 있다. 특히 프랑스 앵떼르미땅형 예술인 실업급여 제도는, 프랑스의 경우 보편복지 체계 안에 예술인에 대한 별도 트랙이 존재하고 이에 걸리지 않는 비정규 예술인들에 대해 앵떼르미땅과 같은 보조적인 실업급여 지원제도를 실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보편복지제도와 연동되지 않고는 그 실현이 불투명해 보인다. 또한 청년예술인을 위한 안정적인 일자리 창출 공약도 예술인에 대한 노동의제 적용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또 다른 나쁜 일자리 양산 사업이 될 수 있다. 결국 보편복지체계의 재설계와 임노동자 중심의 현행 노동법체계 등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 없이는 어떠한 예술인 복지정책도 임시처방이 될 수밖에 없다.

예술인 복지 문제는 그 정책적 특성상 현장 예술인과의 교감과 소통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수많은 예술인들과 정책 전문가들이 예술인 복지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거버넌스 구조 구축을 핵심적인 과제로 이야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아직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고 새로운 문체부 장관이 임명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러한 새로운 구조를 만드는 것이 말처럼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진정으로 예술인들을 위한 예술인 복지정책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결코 피할 수 없는, 피해서는 안 되는 과정임을 알아주길 바란다.




글 하장호(예술인소셜유니온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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