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서울] 새 정부에 바란다!
나는 1950년대 후반에 태어나 1980년대 초에 대학을 다녔으며, 30여 년 동안 직장인으로 생활하다 지난 연말에 명예퇴직을 했다. 흔히 말하는 베이비붐 세대다. 주변의 친구들이나 동료들도 앞서거니 뒤서거니 평생직장을 뒤로 하고, 제2의 인생설계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들이다. 누구도 예외 없이 30여 년의 직장생활에 물질적, 정신적으로 충족해하기보다는 한결같이 ‘아직은 젊고 더 일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새로운 일터를 찾아 나서기도 하고, 일부는 자영업을 모색한다. 또 정부에서 지원하는 구직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구슬땀을 흘리는 친구도 있다.
하지만 제2의 인생을 시작하기도, 새로운 직업에 안착하기도 녹록지 않은 현실을 자주 마주하게 된다. 주위에 성공 사례보다는 실패 사례의 비중이 월등히 많고, 가슴을 아리게 하는 치명적인 사례가 많아 미래를 설계하는 나 또한 두려울 때가 없지 않다. 노부모님을 봉양해야 하고, 자식들의 막바지 뒷바라지 등 고충이 절정에 이를 수밖에 없는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자녀들의 학비 문제와 취업 문제, 이어지는 결혼 문제, 그리고 손주들의 육아 문제까지… 산 넘어 산이고 결코 순탄치 않은 악산들만 모여 있는 형국이다.
나는 예전 직장이 광화문에 있었기에 광화문 풍경에 익숙하다. 광장이 광장으로 기능을 할 때, 업무 시간에 고충이 없지는 않았지만 특별한 경험을 하곤 했다. 광장에서의 함성이 건물 안으로 이입되어 들리는 소리는 하늘과 땅이 맞부딪쳐 어떤 소리를 만들고는 이내 어디로 흘러가는 느낌을 준다. 이때 가슴 저 밑에서 진한 울림을 동반한다.
87년 6월 항쟁의 넥타이 부대의 일원이었고, 2002년 월드컵 당시 붉은악마의 물결을 눈앞에서 목격했다. 명박산성을 목도했으며, 지난 연말에는 장엄한 촛불민심을 내려다보며 시민으로 직장인으로 한숨짓고 안타까워했다. 그리고 마침내 직장인의 일상에 마침표를 찍게 되었을 때 청춘은 가고 없었다.
매월 퇴근 후 가졌던 직장 내 동기모임은 모든 동기들이 퇴직하여 합류하게 되면서 평일 낮의 광화문 모임으로 바뀌었다. 50대 후반, 7~8명의 퇴직자들이 광화문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느림보 걸음으로 걷는다. 미술관에도 가고 맛집도 찾아다니고. 다음 모임은 고궁에서, 그 다음은 박물관으로. 몇 개월째 시내 투어를 하며 지나온 세월을 이야기한다. 새로운 고민거리도 나눈다.
광화문을 중심으로 인근의 명소를 찾아다니다 보면 필연적으로 눈에 띄는 것이 광화문글판이다. 글판이 교체될 때마다 노트에 적어두기도 하고, 사진으로 찍어두기도 하고, 때로는 외워서 읊조리기도 했다. 직장인의 애환을 달래주던 광화문글판은 언제나 반갑고 고마운 존재였다. 광화문글판은 누군가의 시였다. 시민에게 편안하게 보이도록 안온한 글자체와 그림을 곁들여 도시와 광장의 품격을 높여주었다. 나처럼 많은 시민들이 광화문글판의 짧지만 담백한 글귀에 위안을 받으며 일상의 애환을 달랬을 것이다. 그런데 이 글판의 원작자인 문화예술인들이 블랙리스트라는 멍에로 상처를 받아야 했다니. 촛불민심의 분노의 정점에는 블랙리스트도 있었다.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이런 작태에 치를 떨었다.
많은 이들이 문화예술을 사랑하고 지향하지만 누구에게나 재능이 주어지지는 않는지라 문화예술인을 부러워하고 그들의 재능에 감탄하며 생활인의 애환을 달래며 살아간다. 그렇기에 문화예술인을 좀 더 융숭하고 존귀하게 바라보고 대접하며 지원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베이비붐 세대로 치열한 경쟁과 고단함을 견뎌냈지만 제2의 인생을 도전하고 헤쳐 나가야 하는 지금, 어느 것 하나 순탄치 못하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체험이 무의미하게 휘발되거나 소멸되지 않도록 버팀목이 있었으면 한다. 그 한 축에 문화예술이 힘이 되어주면 좋겠다.
등산을 가거나 산책로에서 산책을 할 때, 하물며 당구를 치러 당구장에 가도 득시글대는 베이비붐 세대를 만나게 된다. 이들이 의기소침하지 않고 당당하면서도 품위 있는 삶을 살아야 하는 사유가 얼마나 많은가?
더불어민주당의 정책 공약집을 눈여겨보았다. 공공도서관을 지속적으로 확충하고 장서 구입을 확대하며, 독서문화 진흥을 위한 예산을 늘릴 것이라고 한다. 평생직장을 떠나 재충전을 위해 인근 공공도서관을 찾아가면 위와 같은 공약을 십분 공감하게 된다. 우선 열람실 자리를 확보하기가 쉽지 않아 수요 공급의 불균형이 얼마나 심각한지 실감한다.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도 수험생 일색이다. 그 속에서 수험서가 아닌 인문학이나 예술 관련 서적을 뒤적이는 것은 여간 눈치 보이는 일이 아니다.
찾아 읽고 싶은 장서가 부족한 것도 해결이 시급해 보인다. 수험서나 자기계발서도 중요하지만 다양한 지식의 보고가 되려는 공공도서관의 지향점은 유지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직장에서 신입사원들을 볼 때마다 느꼈던 소회는 두뇌 회전은 빠른데 따뜻한 가슴과 다양성, 창의성은 예전과 다르다는 것이다. 인문학을 포함한 문화예술은 더욱 강조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덧붙여 갈 곳도 쉴 곳도 마땅치 않은 수많은 베이비붐 세대들이 소박한 공간에서 편안하게 독서하고 소통하며 그들끼리의 바람직한 문화를 만들어나가는 새로운 개념의 공공도서관이 만들어지기를 기대한다. 단순한 공약 이행을 뛰어넘어 새로운 문화 창출로 이어지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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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이우만(퇴직 후 시민예술대학 <연희문학학교>를 수강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