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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문화재단 Jul 14. 2017

⑥ 예술행정가가 바라는 문화정책

[문화+서울] 새 정부에 바란다!

                                                                                   


문화행정의 촌탁(忖度) 거부하기


지난 4월 ‘일본판 아츠 카운슬과 지역문화재단’이라는 주제의 일본문화정책학회에 초대되어 한국의 광역문화재단 운영 사례를 소개했다. 이날 학회에서 가장 많이 등장한 단어는 ‘촌탁’(忖度)이었다. ‘남의 마음을 미루어 헤아린다’는 의미의 이 한자어는 일본의 정치 권력에 대해 ‘스스로 알아서 기는’ 관료사회의 한계로 거론되었다. 영국의 아츠 카운슬(ACE) ‘팔길이 정책’(arm’s length policy)이 과연 일본 사회에 통용될 수 있을지에 대한 근원적인 논의가 이어졌다. 공공문화예술기관들은 현실적으로 촌탁 행정을 할 수밖에 없다는 문제 제기도 더해졌다. 이날 좌장인 이토 야스오 일본문화정책학회장은 문화정책의 핵심은 예술 표현의 자유라는 점을 강조했다. 예술의 자유를 위해 영국의 사례를 인용하며, 일본의 아츠 카운슬은 향후 ‘정부의 간섭을 최저 수준으로 억제’하기 위해 ‘대학과 같은 자율성’을 촉구하였다.

박근혜 정부는 문화정책의 핵심인 예술의 자유를 블랙리스트로 통제했다. 일선 문화행정기관에서는 권력자들의 심기를 알아서 헤아리는 촌탁 행위가 빈번하게 일어났다. 새 정부의 문화정책은 바로 이러한 행위의 반동으로 그 근절을 약속하게 된다. 새 정부는 ‘문화예술,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는 정책 기조와 함께 ‘표현의 자유 보장과 블랙리스트 재발 방지대책’을 제시했다. 문화예술 공적지원의 축을 담당하는 공무원, 문화예술기관의 문화행정가에게 향후 어느 정도의 ‘자율성’이 주어질지 귀추가 주목된다. 문화지원기관의 독립성과 자율성 보장은 결국 근원적으로 예술가들에게는 예술의 자유를, 권력에게는 촌탁 행위가 근절되는 것을 의미한다. 영국 아츠 카운슬의 창시자인 존 메이너드 케인스(John Maynard Keynes)의 개념인 ‘반자치적 조직’(semi-autonomous bodies)과 ‘예술가의 자유’와도 그 맥을 같이한다. 이는 새 정부 문화정책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거버넌스를 통한 정책 운용의 자율성 보장하기


새 정부는 분권에 기초한 지역문화진흥체계를 구축하겠다는 공약을 내놓았다. 지역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것이다. 분권에 기초한 지역문화 거버넌스 구축을 위해 중앙정부, 지자체, 지역문화재단 간 정책 전달 채널의 상설화가 필요하다. 또한 지역문화진흥법에서 그 역할과 위상을 보장한 지역문화재단이 정책을 제언하고 정부와 지자체가 지원하는 구조를 마련해야 한다. 그 수단으로 지역문화 재정의 자율성이 확보되고 문화 재정이 더욱 확충되어야 한다. 국가는 정책사업을 지자체 혹은 지역문화재단에 위탁 시 예산 운영의 자율성 제고를 위한 포괄적 보조 형식의 교부 내지는 직접 출연을 해야 할 것이다. 지역문화진흥법의 지역문화진흥기금 설치에 관한 조항을 임의조항에서 강제조항으로 개정하여 재원에 대한 국가의 책무를 명확히 하기를 바란다.

공공 문화예술기관은 책임성과 투명성을 통해 문화예술인들에 대한 신뢰를 확보해야 할 것이다. 특히 예산 배분에 대한 집행과 수혜자의 신뢰 관계는 ‘예술가들이 가장 고통스러워하는 정산 행위’를 감시와 통제를 전제로 하는 보조가 아닌, 지원의 목표에 부응한다면 어떤 대가도 요구하지 않는 순수지원으로 전환하는 것도 검토해볼 수 있을 것이다. 예컨대, 현재 문화예술의 보조금(subsidy) 형태에서 예산 집행의 자율성이 보조에 비해 높은 지원금(grants)이 그 방법이 될 것이다. 실제로 지원금의 가장 대표적인 형태인 장학금(fellowship)은 수혜자에게 어떠한 정산 행위도 요구하지 않는다. 상호 신뢰와 공익적 목적이 전제되기 때문이다.



지역에서 문화중산층이 문화의 분수효과 일으키기


그동안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의 지역문화정책은 ‘지역 문화격차’ 해소에 초점이 맞추어졌다. 문화의 접근성과 격차 해소를 위한 문화 민주화(democratization of culture)에 무게중심이 있었다. 이는 경제학에서 부유층의 투자·소비 증가가 저소득층의 소득 증대로까지 영향을 미쳐 전체 국가적인 경기부양 효과로 나타나는 현상인 낙수효과(trickle down effect)로 설명할 수 있다. 즉 ‘예술’을 취약 지역 및 계층에 제공하면 ‘문화의 격차’가 해소될 것이라는 기저가 깔려 있다. 문체부에서 지역문화정책을 주도하며, 예술이 지역에 퍼지도록 하는 낙수효과를 기대했었다. 그러나 실상은 공급자 중심의 획일화된 지역문화정책으로 인해 문체부의 사업을 지역에 전달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문화 민주화에 여전히 경도된 사고이다.

오늘날 문화정책은 문화의 다양성에 기반한 문화 민주주의(cultural democracy)로 전환되고 있다. 이제는 지역의 다양한 문화활동이 국가 문화로 분수처럼 퍼져야 할 때이다. ‘예술의 낙수효과’로부터 ‘문화의 분수효과’가 일어날 수 있도록 지역의 고유성을 바탕으로 지역 문화가 주체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문화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저소득층의 소비 증대가 전체 경기를 부양시키는 현상인 분수효과(trickle-up effect, fountain effect)를 주창했던 케인스, 예술지원을 국가의 책무로 받아들였던 그의 이론을 이제 문화 민주주의에 기반한 문화의 분수효과로 상치시켜야 할 것이다.

문화의 분수효과는 지역으로부터 문화적 중산층이 확산될 때 가능할 것이다. 한국사회의 경제적 중산층에 대한 대체 개념으로 문화에 대한 새로운 인식, 가치관을 규정할 수 있는 새로운 기준 제시가 필요하다. 경제적 소비 격차와 관계없는 ‘문화중산층’이라는 개념 도입이 필요하다. 실제로 경제적 중산층에도 문화소외계층이 다수 존재한다. 현재 국가의 문화정책 역시 경제적 약자를 문화소외계층으로 규정하여, 문화격차를 해소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새 정부가 문화정책의 방향을 문화격차 해소에서 문화중산층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전환하기를 기대해본다.




글·사진 조정윤(부산문화재단 기획홍보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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