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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문화재단 Jul 16. 2015

낮에 뜨는 달, 그들에게 일어난 푸른 기적

극단 푸른달의 '손순-아이를 묻다'

나의 작은 창에는 여러 갈래의 책갈피가 저장되어 있다. 공연예술문화, 쇼핑몰, 인테리어&소품, 인문학 공간, 그리고 네이버-다음-구글 뉴스. 언젠가부터 매일 아침 출근길이면 자연스레 1. 음악을 들으며 2. 오늘의 핫뉴스는 무엇일까 검색하는 습관이 생겨버렸다. 이런 직업병 같으니라고! 5월 8일, 일 년 내내 불효녀에서 딱 하루! 효녀 코스프레 할 수 있는 어버이날에도 나는 여지없이 출근길을 나서고 있었다. 그러나 문득 부산 생각이 났다. 다들 ‘부산’ ‘축제’ 하면 부산국제영화제를 가장 먼저 떠올리겠지만, 부산을 대표하는 봄의 축제는 뭐니뭐니해도 ‘부산국제연극제’이다. 다들 바쁘겠구나. 올해 프로그램은 뭐였더라? 주제가 ‘셰익스피어’였던가? 그렇게 ‘부산국제연극제’를 검색하다가 포털뉴스의 상위를 차지한 감동적인, 그래서 더 기적같은 이야기를 알게 되어 전한다.


“관객 4명에서 매진!매진!...‘연덕(연극덕후)’들이 만든 푸른 기적”



연극과 뮤지컬에 제대로 꽂힌 연덕(연극덕후)들이 모여 있는, 알만 한 사람들은 다 아는 인터넷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의 연극ㆍ뮤지컬 갤러리에 후기가 올라온 것이 이 이야기의 시작이다. 한 갤이 ‘부산국제연극제’에서 극단 푸른달이 공연한 오브제마임극 <보물상자>에 대한 후기를 올렸다. 지방, 평일, 노후한 소극장, 예상처럼 텅 빈 관객석. 그런데도 무대 위 배우들은 단 4명의 관객을 위해 환하게 웃었다고 했다. 이어 또 다른 갤이 작품의 자세한 묘사와 서툰 솜씨의 그림으로 후기를 남겼다.



극단 푸른달의 공연 모습(사진=푸른달 제공)



여기서 이야기는 계속된다. 극단 푸른달의 대표이자, 연출가인 진신(박진신)이 연뮤갤에 글을 남겼다. “안녕, 극단 푸른달 진신이야. 다들 고마워”라는 제목의 글. 그는 진심 어린 감사 인사와 함께 작품에 대한 설명과 기획의도를 세세하게 전달했다. 연극을 향한 마음과 배우들에 대한 미안함, 그리고 극단 푸른달의 상황과 현실적인 어려움으로 인한 극장의 폐관까지... 그는 조곤조곤하고, 덤덤한 어조로 슬프고도 안타까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안녕? 극단 푸른달 진신이야. 다들 고마워>
극단 푸른달 박진신 대표의 감사글


그리고 기적이 일어났다. 그의 글은 2만 건이 넘는 조회수를 기록했고, 푸른달 극장의 폐관작인 <손순>의 예매 행렬이 시작됐다. 단 하루 만에 4회 차의 공연 좌석이 모두 매진되었으며, 공연을 위한 프로그램북을 한 번도 만들어본 적이 없었다는 연출의 말에 연뮤갤에서 <손순>의 프로그램북을 제작해주고 싶다는 추진력 짱+능력자가 나타났다. 그리고는 폭주하는 댓글들. 인쇄업체는 어떻게 하면 되느냐, 디자인 도와줄 사람은 있느냐, 프레스콜을 열자, 펀딩에 참여하겠다, 극단 푸른달을 위해 뭐라도 해주고 싶다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감동과 기적의 일들이 벌어진 것이다. 더 놀라운 것은 매진사례로 인해 <손순>은 연장공연을 진행하게 됐고, 관객들이 보내준 티켓값으로 극장을 연장 대관해서 또 다른 작품 <인생은 아름다워> 공연을 올리기로 했단다. 응원해준 관객들에게 보답하기 위해 대표가 제시한 입장료는 단돈 500원. 그러지 마라, 티켓 가격은 우리가 정한다 등 이어지는 갤러들의 댓글도 엄청났다.



이 이야기는 비단 푸른달에만 해당하는 일은 아닐 것이다. 대학로뿐만 아니라 작은 극단, 작은 극장에서 비일비재한 오늘이다. 나 역시도  오래전에 단 3명의 관객을 두고 공연을 올린 적이 있었다. 평일 낮 공연이었는데도 끝까지 자리를 지켜준 관객들이 너무 고마웠고, 그들을 위해 무대 위에서 최선을 다한 배우들에게 미안했다. 한편으로는 나 자신에게 화도 나고, 이렇게까지 공연을 해야 하는 이유가 뭘까, 왜 아무도 몰라주는 걸까, 자괴감으로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었다. 특히 지방 공연의 경우, 로맨틱 코미디물이 아닌 이상 관객들을 극장과 공간으로 불러들이는 일은 정말, 정말 어렵다. 좋은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극단 푸른달의 ‘손순 - 아이를 묻다’ 포스터



나는 이 극단에 대해 전혀 모른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 또한 그럴지도 모른다. 누군가가 그들의 공연을 보지 않았더라면, 공연을 본 이들 중 누군가가 후기를 올리지 않았더라면, 어쩌면 누구도 그들의 존재에 대해 모르고 지나쳐 버렸을지도 모른다. ‘푸른달’은 낮에 뜨는 날, 아무도 보지 않지만 늘 떠있는 달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제 푸른달은, 적어도 아무도 보지 않는 달은 아닌 것 같다.



글 조유림 남산예술센터 기획제작PD


* 이 글은 남산예술센터 홈페이지 「남산뉘우스」에 함께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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