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우사단로 10길
예전에는 생각 없이 오가던 길들 이 어느 날 화제가 되고 사람이 붐비면 조금은 생경하다. ‘계단장’으로 ‘핫’한 공간으로 떠오른 우사단길 또한 그중 하나다. 도로명 주소가 아닐 때에는 그냥 ‘이슬람 사원 가는 길’이라고 부르는 게 피차 알아듣기 쉬운 길이었다. 조선 태종 때, 기우제를 지내는 제단인 우사단(雩祀壇)이 이곳에서 있었다고 해서 ‘우사단로’라는 이름이 지어졌다고 한다.
어쩌다 보니, 십 수년 전에 군 생활을 용산에서 했다. 우사단길 또한 주말이면 산책 삼아 가끔 와보던 길이었다. 서울 시내에 하나밖에 없는 이슬람 사원이 있는 곳이라니….. 꽤 신기했더란 말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이 길을 따라 올라가는 초입과 그 사이 골목들에는 미군들을 대상으로 하는 바(bar)와 술집들이 많다. 또 서울 시내에서 트랜스젠더 바들이 가장 많이 몰려 있기도 한 곳. 그래서 조금은 낯설고 밤에는 괜히 무섭기도(?) 했던 길이었다.
사실, 이 길은 서울에서 참 보기 드문 ‘마이너리티’들의 거리다. 종교적으로는 이슬람교도들이 많이 머물고, 성적 소수자인 트랜스젠더들의 거리였고, 또 산등성이를 따라 삶의 터전을 잡은 서민들의 거리이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그냥 관광 명소를 소개하듯 소개하기에는 그 길에 담겨 있을 많은 이야기를 놓쳐버리는 듯하여 왠지 모를 죄책감까지 느껴지는 거리이다.
사람들의 발길이 부쩍 잦아지면서 거리의 분위기가 한층 경쾌해진 것만은 사실이다. 낮에 길을 걷다 보면 어디 외국의 읍내를 나온 것 같은 느낌도 없지 않다. 코스트코 부럽지 않은 외국인 슈퍼마켓이며, 이슬람 책방, 터키식 디저트 가게와 서울 어디서도 찾아보기 힘든 이국의 레스토랑들. 마치 이스탄불의 어느 뒷골목을 헤매고 다니는 기분이다.
그런 풍경들을 뒤로 하고 조금 올라가다 보면 드디어 이슬람 사원이 보인다. 1976년에 세워진 우리나라 최초의 이슬람 사원. 1960년대 말 중동 건설 붐과 뒤이은 석유 파동 등으로 중동 산유국과의 관계 개선을 고민하던 정부가 부지를 내놓았고, 이 성의에 감동한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이슬람 국가들은 성원 및 이슬람센터 건립 비용을 전액 지원했다고 한다.
예전만 해도 들어가기가 괜히 조심스러웠는데, 지금은 구경하러 오는 이들의 발길이 잦아서인지 방문객을 맞이하는 이슬람교도들의 표정도 꽤 밝다. 성원 앞 계단에서 셀카봉으로 사진을 찍는 커플들도 눈에 띈다.
이 마이너리티의 거리, 그 이질의 모습들이 이렇게 조금씩 우리 일상 속으로 스며들고 있다는 건 그 자체로 반가운 일이다. 낯설지 않아도 될 것들을 낯설어하며 살아온 세월이 긴 탓이다. 그게 종교든, 젠더의 이슈든. 이 길을 찾는 이들의 발걸음이 늘어난 것이 조금은 다행이다 싶다.
이슬람 사원을 나서면 정면에 보이는 길이 바로 요즘 계단장으로 유명해진 우사단로 10길이다. ‘계단장’은 문화 콘텐츠와 장사를 결합하여 활동하는 ‘청년장사꾼’과 이 지역에 거주하는 젊은 문화예술인 모임 ‘우사단단(雩祀壇團)’과 2013년 3월부터 이슬람 사원 옆길의 계단에서 시작한 플리마켓이다. 화제가 되고 사람들이 너무 많이 찾아와 안전문제가 두드러지면서, 동네 주민들과 협의로 이제는 이 골목 전체가 매월 마지막 토요일이면 벼룩시장이 된다.
사실 ‘계단장’ 덕분에 유명세를 타긴 했지만, 이 지역에 아티스트와 디자이너, 자영업자들이 하나 둘 모여든 것은 2000년 즈음부터다. 재개발 구역으로 지정되었으나 재개발 진행이 지지부진한 사이 저렴한 임대료로 인해 젊은 아티스트들이 하나 둘 들어서면서, 골목들이 새롭게 재구성되었던 것. ‘재개발’이라는 사망 진단 덕분에 공간과 커뮤니티의 ‘재생’이 가능해진 셈이다.
1970~80년대의 풍경을 간직한 낡은 다세대 상가들과 그 사이에 하나 둘 자리를 잡은 젊은 아티스트들의 공방, 그리고 다른 지역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톡톡 튀는 콘셉트의 카페와 식당들. 새로운 것들이 기존의 것들을 배척하지 않고 드물게 어우러진 골목길을 만나게 될 터였다.
이 길의 끝자락에 도착하면 작은 시장이 나온다. 일명 ‘도깨비 시장’. 30여 년 전부터 있었다고 한다. 보광동과 한남동 사이의 이 고갯길은, 저 아래 시장에서 장사하다 남은 물건들을 떨이로 팔면서 생겨난 작은 시장이었다고 한다. 정식 시장이 아니다 보니 구청에서 단속을 나오면 다들 피했다가 또 단속이 끝나면 다시 나타나서 장을 여는 것을 반복하다 보니, 자연스레 ‘도깨비 시장’이라 불리게 되었다. 고작 30m 남짓한 공간에서 할머니들이 채소와 반찬을 파는 가게들이 천막으로 이루어진 작은 골목. 그 골목을 따라 내려가다 보면 또 새로이 생겨난 ‘OYE’, ’슈퍼마켓’ 같은 공방과 식당들이 자리 잡고 있으니 조금만 더 발품을 팔아보자.
그런데 도깨비 시장의 풍경이 두어 달쯤 전에 왔을 때와 사뭇 달라져 있었다. 내려갈 때도 뭔가 이상하다 싶었는데 다시 올라오다 보니 눈에 들어온다. 시장 건물의 천막과 바닥을 잇는 문구 ‘여기로 오세요.’ 그러고 보니 시장 천막들의 색감 또한 예사롭지 않다.
궁금증은 뜻밖에 쉽게 풀렸다. 도깨비 시장 바로 옆에 자리 잡고 있는 스페이스 엘로퀀스(Space Eloquence). 디자인·미술·건축·패션·사진 등을 다루는 아트 잡지인 <엘로퀀스(Eloquence)>의 이태원 캠프다. 바로 이곳에서 도시재생 아트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아티스트 빠키(www.playvakki.com)와 함께 진행한 작업이었던 것.
도시라는 공간은 그저 물리적 공간만은 아니지 않을까. 어느 도시든 골목골목 곳곳을 돌아다니다 보면, 그 길들 하나하나가 이 도시의 실핏줄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 실핏줄 사이로 사람들이 오가고, 그들로 인해 생명체처럼 움직이고 기능하는 도시. 구조적으로는 똑같더라도 그 안에 들고 나는 이들에 따라 또 달라지고 새로워지는 그런 공간의 변화 가능성.
우사단로를 보며 드는 생각은 딱 그런 것이다. 삶의 터전으로 부적당하다고 ‘재개발’이라는 사망 진단을 받았던 공간이 죽었다고 잘라내려 한 순간, 그 안의 구성원들로 인해 다시 한 번 새롭게 피가 통하고 살아나는 공간이 되었다. 어쩌면 이 공간이 어떻게 변해갈지, 또 어떻게 새로워질지 가만히 지켜봐 주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도시 개발의 새로운 대안을 엿볼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 기억들이 있다. 옆집 아저씨가 문 앞에 내어놓은 의자, 그 위에 앉아 할머니가 언제 오시나 기다리던 날들. 친구들이 우리 집 담벼락에 그어둔 낙서 하나, 한 곳에서 30여 년의 자리를 지켜온 단골 세탁소. 그것은 성형 미인처럼 매끈해져 버린 재개발의 공간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일종의 시간성과 같은 것이다. 한 공간을 잃는다는 건, 때론 참 많은 것을 잃는다는 것임을 새삼 깨닫게 해주는 골목길, 우사단로.
INFO
- 찾아가는 길
지하철 6호선 이태원역 3번 출구로 나와 100m쯤 직진 후 우사단로로 우회전.
글·사진 박정선
골목에 대한 집착 있는 남자. 패션지와 웹진에 몸담으며 공연, 음악, 연애, 섹스, 여행, 커리어 등등의 글을 써대며 8년간 밥벌이를 해왔다. 부산 촌놈이 서울을 올라와서 살다 보니, 아무리 살아도 어딘가 정이 안 가고 낯선 서울이라는 녀석의 속내가 궁금해 돌아다니다 보니 어쩌다가 『아지트 인 서울』이라는 책을 내고 말았다. 한동안 커머스 업계를 기웃거리다가 지금은 다시 모바일 매거진에 대해 고민하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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