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라는 현기증
극단 백수광부의 <에어콘 없는 방>이 9월 14일부터 10월 1일까지 남산예술센터 무대에 오른다. <에어콘 없는 방>은 실존 인물 ‘피터 현’에 대한 이야기로, 1906년 하와이에서 태어나 한국, 상해, 미국을 떠돌며 살다 해방 이후 30년 만에 한국을 찾게 된 피터 현이 맞닥뜨리는 혼란과 분열을 그린다. 2007년 <오레스테스> 이후 10년 만에 <에어콘 없는 방>으로 다시 호흡을 맞추는 고영범 작가, 이성열 연출을 만났다.
이성열
대학 연극반 81년 동기이다. 학교 다닐 때는 작가와 연출로 만난 적은 없고 배우나 스태프로 참여했다. 2005년 내가 고영범 작가에게 톨스토이의 <크로이체르 소나타>를 30분 정도로 줄여서 각색해주기를 부탁했다. 그때 그 작품을 박정희 연출이 보고 작가를 소개해달라고 했고. 그 뒤로 고영범 작가와 박정희 연출이 3번 정도 같이 작업을 했다. 그 사이 2007년에 <오레스테스>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 고영범 작가에게 극본을 부탁했다. 그러니까 2007년에 작가와 연출로 만나고 10년 만에 다시 만나는 것이다.
고영범
<오레스테스>를 각색한 <태수는 왜?>이다. <태수는 왜?> 전에도 연극을 계속하긴 했다. 민중문화운동회에서 마당극을 확대해서 만드는 작업을 좀 했다. 극단 한강 창단공연인 <밝은 햇살>을 쓰기도 했고. 그러다가 가족들이 먼저 미국에 이민을 갔고 다큐멘터리를 공부하기 위해 뒤따라갔다. 미국에서 만든 단편영화 <낚시가다>가 독일 오버하우젠 단편영화제에서 입선이 되었다. 장편영화를 하려면 한국에 가서 하는 것이 좋겠다 싶어서 제작자를 소개받아 2002년에 한국에 들어왔다. 6년 동안 7편의 시나리오를 쓰면서 배우들이 읽는 모습을 한 번도 못 봤다. 그런데 연극은 초고를 쓰니 다음날 배우가 읽고 있더라. 쓰면 읽는구나, 배우들이 읽으니까, 그래서 연극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영범
미국에서 오래 살긴 했는데 거기에 속해 있다는 느낌은 별로 안 든다. 친구들이 영어로 극을 써보라는 말을 했다. 그런데 사실 미국 사회에 대해서는 하고 싶은 이야기가 없다. 시스템, 소수자 문제, 이민자 교육 문제가 있을 텐데 그것이 내 이야기 같지는 않다. 이야기의 겹을 만드는 것은 기억의 문제다. 미국 생활 같은 경우 개인적으로는 기억의 한계가 정확히 있다.
고영범
백수광부 20주년 기념 공연을 위해 극본을 쓰게 되었는데 처음 생각한 소재는 다른 것이었다. 대한제국 1885년에 주미 공사관이 만들어지는데 그때 공사관으로 떠난 사람들 명단을 보면 박정양을 필두로 해서 이완용, 이범진, 이하영 등이 있고 노비가 둘 따라갔다. 그런데 1905년에 이들이 철수할 때, 노비들이 돌아왔다는 이야기가 없다. <공무도하가>에서 강을 건너간 사람의 이야기를 두 노비의 이야기로 빗댈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문제는 남아 있는 자료들이 번역이 안 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초기 이민자들의 자료를 읽다가 피터 현의 아버지 현순 목사의 이야기가 눈에 들어왔다. 그렇게 현순 목사 이야기를 조사하다가 피터 현의 자서전을 읽게 되었다.
이성열
자기 자신을 만나는 것이 흥미로웠다. 과거의 자신을 만나 현재의 자신이 영향을 받고, 깨달음까지는 아니더라도 삶에서 앞으로 나아가는 과정에 영향을 주고받는 것. 호텔 방에서 하룻밤 동안에 자기 망상 속 인물들과 만나 대화를 나누고 아침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 현대판 천일야화처럼 느껴졌다. 피터 현이 느끼는 열기, 광염, 혼란, 이것들이 굴곡진 현대사를 살아온 한 인간의 현기증이 아닌가. 우리 할아버지가 90세에 돌아가셨는데 전쟁을 7번 정도 겪으셨다. 태어나자마자 갑신정변에서 시작해 마지막으로 한국전쟁까지. 평생 동안 10년에 한 번씩 정변 아니면 전쟁이었다. 아버지는 어릴 적에 수학여행을 군산에서 만주로 가셨다. 내 윗세대 분들의 행동반경이 그렇게 넓었다. 돌아가신 할아버지만 봐도 피터 현처럼 살아온 과정이 너무도 어지럽다. 그 어지러움이 하룻밤의 광염소나타로 터져나오는 것이 이 작품 아닐까.
고영범
피터 현이 75년에 서울에 왔었다는 이야기를 듣는 순간 이야기가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야기를 펼칠 공간이 생겼으니까. 한국에 왔는데 그럼 어디로 갈 것인가? 거기에서 방이 잡혔다. 피터 현은 미국 하원의 반미국적 행위 조사위원회에서 간신히 기소를 면하고 평범한 생활인이 된다. 한국에 올 때는 보험중개인으로 살다가 은퇴한 상태였고. 젊었을 때 엄청나게 큰 꿈이 있던 사람이 작은 점 같은 존재가 된 것이다. 그래서 방이 맞다고 생각했다.
고영범
피터 현에 대해 쓰기 시작했을 때 앨리스 현을 알게 되었다. 요즘 젠더 문제에 관심이 있는데 다음 작품은 여자의 관점에서 써보고 싶다. 나혜석, 프리다 칼로, 카미유 클로델, 앨리스 현, 주세죽 등. 요약하자면 남자 때문에 인생 망친 여자들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선택지가 그것밖에 없었던 것일 수 있다. 세계로 나가는 과정에서 남자들을 통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성열
그 부분이 고민이다. 이를테면 <변호인> 같은 영화를 즐긴다는 것은 나름대로 공감대가 있기 때문인데 이 작품은 어떤 공감대를 줄 수 있을까? 지난해에는 나라가 암울하고 걱정도 많았던 것에 비해 지금은 사람들이 새로운 정부에 거는 기대가 크다.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가고, 상식적인 선에서 일들이 이루어지고. 그래서 이 작품이 거리감이 있다.
이성열
벽면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벽면을 치면 객석 좌우 관객은 시야가 막혀서 고민이다. 영상 사용도 적극적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벽면을 없애면 투사면이 없어져서 영상을 쓸 수 있는 곳이 제한된다. 그런 논의를 하는 중이다. 극 속에서 인물의 심리적인 상태는 상당히 개방되어 있다. 물리적인 닫힘과 심리적인 개방을 잘 활용하면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
고영범
나쁜 버릇인데 관객이 작품을 어떻게 받아들일지에 대한 생각을 거의 안 한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것 외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에어콘 없는 방>을 쓰면서 제일 좋았던 것은 이야기가 진실하다는 느낌이었다.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피터 현의 이야기를 얼마나 진실하게 하고 있는가’이다. 피터 현의 머릿속에 있는 이야기를 하기 때문에 더 그런 것 같다. 자기 인생을 진실하게 돌아본다는 것. 그 방식이 외부로부터 주어진 공포에 의한 오해로 시작된다는 것. 있는 대로 열을 받고, 약을 먹고, 술을 마시고, 그러나 무엇을 보려고 애쓰는 것. 그것 자체인 것 같다.
고영범
미국에 있을 때 카메라맨 일을 하거나 사운드맨, 매뉴얼 번역 일을 많이 했다. 혹은 가구나 집을 수리하는 일도 하면서 생계를 꾸렸다. 그렇게 몇 년 지나니까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글을 조금씩 썼다. 책 번역도 했는데 작가들을 만나면서 얻는 아이디어가 있었다. 그것들이 결합되다 보니 쓰고 싶은 것이 쌓여 있더라. 생계에 심각한 문제가 생긴다면 다시 번역을 할 수도 있겠지만, 그전까지는 당분간 글만 쓸 생각이다.
이성열
자신을 한 번 정화해보는 것이 이 작품인 것 같다. 지금이 유신시대는 아니지만 ‘자기와의 만남’이라는 소재가 흥미롭지 않나. 할아버지 연배 정도 되는 이를 보면서 자신을 반추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민족이 살아온 힘을 느끼는 것. 피터 현이라는 노인을 보며 ‘그는 이렇게 살아왔구나, 나도 살아오면서 이런 어지러움을 느낄 수 있겠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우리 안에 어떤 것과 마주할 수 있는 연상을 얻어갈 수 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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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조만수 (연극 평론가)
사진 서울문화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