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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문화재단 Oct 20. 2015

10초면 충분해!

10초 국제 애니메이션 페스티벌



누구든 드루와 드루와!


“쫄딱 망한 줄 알았던 ‘10초 국제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이 죽지도 않고 또 왔습니다. 저희 페스티벌은 결코 망하지 않습니다. 망해갈 뿐입니다.”


엥? 무슨 말일까? 놀라지 마시라, 바로 제5회 <10초 국제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의 ‘공식’ 인사말이다. 범상치 않은 인사말에서도 느낄 수 있듯 <10초 국제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은 우리가 알고 있던 여느 전시, 영화제, 페스티벌과는 확연히 다른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올해로 5회 째를 맞이한 <10초 국제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이 지난 10월 7일부터 11일까지 홍대 앞에 위치한 서교예술실험센터에서 열렸다. 절대로 변치 않을 10초 국제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의 유일한 룰은 “예선 없다”, “심사 없다” 두 가지라고 한다. 일단 출품하면 단 한 명의 탈락자 없이 모두 페스티벌에서 상영될 권리를 갖고, 시상은 권위 있는 심사위원이 아닌 관객이 직접 맡는다. 치열한 경쟁 없이도 모두가 작가, 감독, 심사위원이 되어 즐길 수 있는 ‘진짜’ 축제다.




감독과 관객이 함께 만드는 폐막작 <킵드로잉 프로젝트>


서교예술실험센터에 도착했지만 애니메이션 상영까지 시간이 조금 남아서 1층 예술다방을 둘러보았다. 한쪽에서 아이들이 라이트박스 위에 종이를 대고 열심히 미술 도구를 이용해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10초 애니메이션 페스티벌 시민참여 프로그램으로 선보이는 <킵드로잉 프로젝트>이다. 관객이 그린 모든 그림은 폐막작 애니메이션의 일부가 된다. 그런데 ‘킵드로잉’이 뭐냐고? 백문이 불여일견! 제3회 페스티벌 때 만들어진 킵드로잉 애니메이션을 보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player.vimeo.com/video/69710724


각자 한 장 한 장 다르게 표현한 그림들이 하나의 움직임으로 묶여져 경쾌하게 흘러가는 애니메이션 기법이다. 킵드로잉 애니메이션을 보고 있자니 뭔지 모를 에너지가 샘솟는 느낌이다. 올해 만들어져 폐막작으로  상영될 킵드로잉 애니메이션도 무척 궁금하다.




웃음과 재치가 번뜩이는 10초 애니메이션 경쟁작


지하 1층으로 내려가 이번에 출품된 애니메이션 상영 작품을 관람했다. 바른 자세로 앉아 조용한 분위기에서 관람해야 하는 보통 영화제와는 달리 10초 애니메이션 상영관은 정말 자유로워 보였다. 애니메이션이 상영되는 동안 관람객은 앉아서 보다가 눕기도 하고 마음에 드는 작품에는 환호성과 박수를 보냈다. ‘이게 뭐야?’라는 생각이 드는 작품에는 소소한 야유가 들리기도 했다. 상영작의 수준을 떠나서 이러한 관람 방식이 매우 신선하게 다가왔다.


국내작 193편, 해외작 16편, 총 209편의 10초 애니메이션이 상영되었다. 애니메이션으로 무엇을 표현하기에 10초는 턱없이 짧은 시간이다. 하지만 짧은 시간 안에 만든 이의 센스와 재치를 확인할 수 있기도 하다. 물론 난해(?)하고 허탈한 작품도 있었지만, 공감과 웃음을 자아내는 작품들도 많았다. 수준 높은 애니메이션 기법을 사용한 고퀄리티의 작품이 있는가 하면, 컴퓨터 기본 프로그램인 그림판을 이용해 마우스로 간단히 제작한 작품들도 꽤 있었다. 하물며 어떤 작품은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면서 전혀 움직임 없는 장면으로 10초 동안 지속되다가 끝나는, 어찌 보면 허를 찌르는 작품도 감상할 수 있었다.




인터넷 짤방들 모인 <짤방의 역사>, 웹툰 작가의 <카툰드로잉쇼>


서교예술실험센터 1층에서는 이번 페스티벌에서의 전시 프로그램 <짤방의 역사>를 볼 수 있었다. ‘짤방’이란 예전에 한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짤림 방지’의 의미로 사용되다가 점차 자신의 글에 첨부파일로 올리는 재치 있는 ‘이미지’를 뜻하게 되었다. 보통 짤방 이미지는 유명 연예인이나 영화 속 인상적인 장면을 캡쳐하거나 합성해 사용한다. 인터넷 글쓰기에 어울리는 적절한 짤방 사용은 무미건조한 글에서조차 보는 이의 웃음을 유발하고 사용한 이의 재치를 드러내기도 한다.


이러한 짤방 이미지가 서울시 창작공간 중에서도 시각예술을 담당하는 서교예술실험센터에 전시되었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전통적인 의미의 ‘창작’이 아닌 ‘캡쳐하기’ ‘합성하기’ 방식의 짤방이 인터넷 하위문화로 취급받지 않고 당당히 오프라인 미술 전시장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니 말이다. 전시를 보면서 평소 인터넷 서핑 중 자주 발견하는 짤방을 확인하는 재미도 있었고, 예전에는 유행했지만 지금은 시들해져 버린 짤방을  재확인하는 것도 흥미로웠다.



페스티벌 오프닝에는 웹툰으로 인터넷을 달구고 있는 박수봉 작가의 <카툰드로잉쇼>가 진행되었다. 가로 5미터, 세로 2미터의 커다란 종이에다가 관객이 던진 두 개의 키워드를 모티브로 간단한 4컷 만화를 그리는 퍼포먼스였다.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펜 하나만 가지고 즉석으로 커다란 화면을 슥슥 채워나가는 작가의 모습은 흡사 마술사 같았다.


<10초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을 관람하면서 동네 친구들과 스케치북을 늘어놓고 아무렇게나 낄낄대며 마음껏 그림을 그리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형식의 제약도 없고, 권위도 심사도 없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놀이의 방식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10초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이 부디 내년에도 망하지 않고(?) 계속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글·사진 오재형 문화가인 블로그 기자


*‘10초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이 궁금하다면? http://10secfes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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