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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문화재단 Oct 02. 2015

당신의 소울 푸드는 무엇인가요?

연희문학창작촌 <문학을 요리하다, 맛있는 문학키친>


맛에 대한 기억이 오직 ‘맛’에만 달려 있을까? 맛을 미각으로만 느낄 수 있을까?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맛은 기억을 동반하고 감정을 재생시키기도 한다. 


#문학 속 음식 - 닭고기 수프 

『센티멘털도 하루 이틀』 - 아이들, 김금희 作

“생에도 함수율이라는 것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담백한 육수를 우려낸다. 나이를 먹는 것과 삶의 성숙도가 비례하였으면 하는 바람, 아버지의 새 삶에 대한 기대감 또한 함께 볶아 넣는다.”




#문학 속 음식 - 정구지 찌짐 

『센티멘털도 하루 이틀』 - 아이들, 김금희 作

“볼에 아버지에 대한 사랑 2컵(종이컵 기준), 아버지에 대한 미안함 2컵을 넣고 풀어줍니다. 절실함으로 달군 팬에 시간을 두르고 적당량을 넓게 편 후 2분 정도 바싹 익힌 후 의지로 놓고 조금 더 익히고 뒤집어 줍니다. 다시 절실함에서 2분 정도 익히며 믿음으로 3, 4번 정도 살며시 눌러줍니다.”



<문학을 요리하다, 맛있는 문학키친>은 연희문학창작촌 프로젝트 지원사업 <문학, 번지다> 선정작의 하나로, 8월 22일부터 9월 19일까지 매주 토요일 2시 연희문학창작촌 문학미디어랩에서 진행됐다. 이 프로그램은 참가자들이 문학을 읽고 느낀 감상을 요리로 표현하는 것으로, 예술을 향유하는 새로운 접근법을 제시한다. 지원자 모집 당시 300명 이상의 지원자가 몰릴 만큼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참가자들은 김영하의 ‘아이를 찾습니다’, 천명관의 ‘퇴근’, 윤선영의 ‘미세스 오’, 김애란의 ‘입동’, 김희선의 ‘라면의 황제’, 김금희의 ‘아이들’, 민정아의 ‘죽은 개의 식사시간’ 등의 소설을 읽고 작품 속에 등장하는 특정한 음식이나 어울리는 음식을 상상해 만들었다. 참가자들은 ‘음식’이라는 새로운 콘텐츠로 문학을 표현하기 위해 자신의 경험과 상상력을 적극적으로 동원했고 작품마다 자신의 감상과 감정을 글로 적어 ‘의미화 레시피’를 만들었다.



맛있는 문학키친 참가자들


문학 속 오늘의 음식 


오늘은 마지막 수업인 <문학 속으로 떠나는 문학키친 파티>가 있는 날이었다. 9월 19일 토요일, 연희문학창작촌은 막 가을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조금 일찍 도착한 터라 정자에 누워 선잠이 들었는데 저 멀리서 복작  복작하는 소리, 음악 소리가 들려왔다. <맛있는 문학키친> 참가자들이 마지막 파티를 준비하는 소리였다.


저녁을 준비하는 참가자들


마지막 파티는 함정임 작가의 단편소설 ‘저녁식사가 끝난 뒤’를 배경으로 꾸며졌다. 야외무대 가장자리에 참가자들이 직접 만든 음식들이 차려졌고 소설 속에 나오는 색소폰 음악과 함께 본격적인 저녁 식사가 시작되었다. 눈앞에서는 공연이, 입속에서는 맛있는 음식이, 귓가에는 음악이 그리고 내 옆에는 소중한 친구가 자리했다.



초대는 설렘이고, 기다림이다. 누군가를 초대해 음식을 대접한다면 아마 맛있게 먹는 모습을 상상하며 내가 제일 잘하는 음식을 만들 것이다. 맛을 함께 나누고 싶어서이다. 그 마음을 담아 <맛있는 문학키친> 참가자들도 마지막 시간을 조금 특별하게 꾸몄다. ‘저녁식사가 끝난 뒤’를 읽고 소설 속 주인공처럼 자신의 지인들을 초대해 음식을 대접하기로 한 것이다. 이날 함정임 작가도 초대받아 지인과  함께했다. “부산으로 내려가 처음 ‘방아’를 맛보게 되었어요. 말로는 설명하기 힘든 정말 세상에서 처음 맛보는 듯한 맛이었어요. 이 맛을 전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소설 ‘저녁식사가 끝난 뒤’에서 방아를 곁들인 장어요리가 등장하게 됐죠.” 



함정임 작가와의 대화


식탁에는 문학키친 파티와 어울리는 많은 음식이 맛깔스럽게 차려져 있었다. 음식들은 모두 참가자들이 작품을 읽고 파티와 어울리는 음식을 함께 토론해 선정한 것들이다. 여러 가지의 재료가 하나의 맛으로 어우러지는 김밥과 미니 핫도그, 가을의 아이콘인 햇대추, 팥떡, 찹쌀떡, 나쵸과자, 샐러드, 어묵 등 다양하게 차려졌다. 각각의 식재료가 가진 다양한 개성이 요리를 통해 조화를 이뤄 ‘함께 살아가기 위함’이라는 의미를 표현하는 듯했다.


행복이란 우리 주변에 있다. 발견되어 요리되기를 기다리는 음식의 원재료처럼 우릴 기다리고 있다. 그래서일까, 삶은 자연의 색깔을 가진 재료이고 예술은 삶에서 그것을 표현하는 행위라는 함정임 작가의 말이 와 닿았다. 이제 음식은 먹는다는  것보다 향유한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생각이 깃든 문학, 마음이 투영된 음식


문학을 읽고 어떤 음식을 만들었는지 궁금해졌다. 야외무대로 향하는 풀길에는 그동안 참가자들이 만든 음식의 사진과 문학작품 구절, 본인의 생각, 의미와 레시피가 적힌 글이 전시되어 있었다. 음식은 작품 속에서 직접 언급된 음식도 있지만, 참가자들이 상상해서 만들어 낸 음식도 있었다.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모두 읽은 사람의 마음이 투영됐으리라. 저녁을 먹고 액자에 담긴 그녀들의 이야기를 들여다보았다.


비빔만두
“힘든 일을 겪고도 식욕이 멈추지 않는 나 자신이 역겹게 느껴진 적이 있었다.” 
민정아 <죽은 개의 식사시간> 


닭고기 수프
“가라앉지 않고 모두 바다를 건너지. 그렇구나, 하면서 나는 슬쩍 눈물을 닦았다. 그렇고 정말 그렇구나. 하면서.” 김금희의 <아이들>


참가자들의 작품



저녁 식사가 끝나간다. 서서히 어둠이 연희문학창작촌을 감싸 안는다. 음식도 거의 다 먹었고 박주희, 피터 아저씨, 국악앙상블 ‘현’의 음악도 마무리가 되었다. 달달한 피곤함이 밀려온다.  


“기다리다 놓치기도 하는 거요. 그게 무엇이든...... 난 그게 더 나을 때도 있다고 생각해요.”
함정임 <저녁식사가 끝난 뒤>



글·사진 정희정 서울문화재단 '문화가인' 블로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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