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왝더독’의 시대가 온다
세상이 빠르게 변화하면서 사람들의 욕구가 다양해지고 시대의 트렌드도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바뀌고 있다. 새해를 앞두고 2018년을 전망하는 각종 트렌드 서적이 쏟아졌다. 경기 침체와 청년 실업, 저출산과 고령화 등 여전한 사회적 문제들 속에서 혼란스럽고 불안정한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무엇에 감동하고 열광할 것인가. <트렌트 코리아 2018>은 사회적 약자, 즉 언더독이 약진하는 최근의 사회현상들을 포괄하는 의미로 2018년의 트렌드 키워드를 ‘왝더독’(wag the dogs, 꼬리가 몸통을 흔든다)으로 선정하고 새해를 전망했다. 책에서 이야기하는 몇 가지 키워드를 소개한다. 우리의 일상이 어디로 연장되고, 어떻게 확장될 것인지 한 번쯤 생각해보자. 새해가 됐다고 세상이 리셋되는 건 아니니까.
타인과의 관계보다 스스로의 삶을 더 소중히 여기는 문화가 확산되면서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워라밸’을 중시하는 새로운 ‘직딩’이 출현했다. 워라밸은 ‘일과 삶의 균형’(work-and-life balance)의 준말. 워라밸 세대는 호모 나이트쿠스 혹은 나포츠족에서 한 단계 더 진화한 세대다.
‘적당히 벌고 아주 잘살기’를 희망하는 워라밸 세대에게 일과 여가 활동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이들에게 ‘칼퇴’는 기본이고, 취직은 ‘퇴직 준비’와 동의어이며, 직장생활은 더 소중한 취미생활을 이어나가기 위한 방편이다. 그래서 ‘저녁시간 사수’에 심혈을 기울이고 과중한 업무와 과도한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기 위해 패스트 힐링(fast healing, 짧은 시간에 취하는 휴식)을 추구한다. 나 자신(myself), 여가(leisure), 성장(development)은 워라밸 세대에게 희생할 수 없는 가치다.
‘지금 하고 싶은 것, 지금 하면서 살자’는 ‘욜로’(YOLO, You Only Live Once) 열풍이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추구한다는 소확행(小確幸)으로 발전했다. 소확행은 1990년대 발간된,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수필집 <랑겔한스섬의 오후>에 처음 소개된 신조어로, 별 볼 일 없지만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일상에서 느껴지는 작은 행복감을 의미한다. 소확행의 핵심은 ‘사소한 일상을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이다. 꼭 특별한 성취가 없다 하더라도 나의 하루하루가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즉 행복을 바라보는 시각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행복은 미래에서 지금으로, 특별함에서 평범함으로, 강도에서 빈도로 변화했으며, 일상에서의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 중요해졌다. 이들에게 중요한 가치는 성공, 사치가 아니라 커피, 자전거, 인디음악, 아날로그, 동물, 요리, 맥주, 채식처럼 소소하고 일상적인 것으로, 뭐든 집에서 해결하는 ‘홈루덴스족’도 등장했다. 소확행은 자신만의 기준으로 자신만의 행복을 그려야 하며 행복에는 정답이 없다는 게 핵심이다.
스페인어인 ‘케렌시아’(querencia)는 투우장의 소가 투우사와 마지막 결전을 앞두고 잠시 숨을 고르는 곳을 말한다. 바쁜 일상에 지친 현대인들에게는 자신만의 휴식공간, 케렌시아가 있다. 이는 단순한 수동적인 휴식을 넘어서 능동적인 취미와 창조 활동을 위한 공간이다.
좋아하는 물건들로 자신의 책상을 꾸며 직장에서도 자기만의 공간을 만들고, 일을 마친 후에는 자신만의 아지트인 카페에 들러 잠시 재충전의 시간을 갖기도 한다. 맥주를 마시며 책을 읽을 수 있는 ‘책맥카페’나 요가와 맥주를 함께 즐기는 ‘요가카페’ 등이 속속 생겨나는 것도 나만의 방식으로 휴식을 취하려는 현대인들의 욕구가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케렌시아의 대표적인 공간은 바로 ‘집’이다. 덕분에 집을 푸른 식물로 꾸미려는 플랜테리어 트렌드 등이 인기를 끌고 있다. 수면카페, 힐링카페, 낮잠 자는 극장을 비롯해 ‘대나무숲’과 ‘블라인드’ 등 익명공간의 발달도 케렌시아가 상업적 트렌드로 자리 잡았음을 알려준다.
자신의 주관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소비자가 늘고 있다. 함부로 드러내지 않았던 자기만의 취향과 정치·사회적 신념을 ‘커밍아웃한다’는 점에서 이러한 현상을 ‘미닝아웃’(meaning out)이라고 한다. 현대인들은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고 싶은 욕구를 드러내놓고 표출한다. SNS에서의 글쓰기는 이러한 욕구를 즉각적으로 표현하는 행위라고 볼 수 있다.
미닝아웃이 전통적인 불매운동이나 구매운동과 차원이 다른 지점은 그 의미가 다양하고 표현 방법도 놀이처럼 변화하고 있다는 데 있다. 특히 SNS의 해시태그는 누구나 자기만의 생각을 세상에 소리칠 수 있게 했다. 그뿐인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장이 되기도 한다. ‘마리몬드’의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꽃 삽화 티셔츠가 출시되자마자 품절이 될 만큼 열띤 호응을 얻었고, 팔찌부터 휴대폰 케이스까지 다양한 굿즈들이 미닝아웃의 도구가 되었다. 미닝아웃의 최종 단계는 자신의 신념에 따라 일상을 바꾸는 소비를 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채식 주의다. 이제 무엇을 걸치고 어떤 가방을 들고 무엇을 먹느냐가 ‘나’라는 사람을 정의한다. 소비를 통해 부를 과시하던 시대는 저물었다. 이제 소비는 투표와 마찬가지로 신념의 표를 던지는 행위가 되고 있다.
플라시보 효과는 심리적 요인에 의해 병세가 호전되는 현상으로 위약효과 또는 가짜약 효과라고도 한다. 플라시보 효과가 경제적인 부분에서 ‘플라시보 소비’라는 새로운 트렌드로 이어지고 있다. 가성비가 중요했던 시대에서 벗어나 단순히 제품의 ‘성능’이 아닌 가격 대비 ‘마음’의 만족, 즉 ‘가심비’(價心比)를 추구하는 경향이 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트렌드는 자신이 선호하는 특정 인물이나 콘텐츠, 브랜드와 연관된 굿즈 소비로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특정 브랜드보다 자신이 아끼는 분야나 ‘팬심’에 따라 소비가 움직일 것이란 이야기다. 탕진소비와 시발비용(스트레스를 받지 않았으면 쓰지 않았을 비용)은 더욱 늘어날 것이다. 스트레스를 해소하거나 재미를 추구하기 위해 계획하지 않은 곳에 돈을 사용한다는 의미의 ‘탕진잼’은 2030세대에게는 익숙한 소비패턴으로 자리 잡았다. 탕진소비의 성지로 불리는 인형뽑기방 등이 대표적이다.
‘불편한 소통’ 대신 ‘편한 단절’을 택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고 있다. 공항에서든 패스트푸드점에서든 이제 사람 대신 모니터 화면이 고객을 맞이한다. 근 몇 년 사이 금융권을 휩쓸었던 ‘비대면 거래’에 이어, 유통업계에도 ‘언택트(un-tact) 마케팅’이 번지고 있다.
언택트는 무인 항공기의 ‘무인’(unmanned), 자율주행 자동차의 ‘셀프’(self), 사람 대신 로봇이 작동하는 공장의 ‘자동화’(automation) 등 방식은 서로 다르지만 비대면이라는 공통분모를 지닌 서비스들의 통합 개념이다. 인공지능(AI)과 빅 데이터, 사물인터넷(IoT) 등 이른바 4차 산업혁명을 상징하는 기술의 진화 역시 ‘언택트 마케팅’의 플랫폼이 되고 있다.
언택트 기술의 가장 큰 장점은 불필요한 대면 접촉에 대한 피로감을 줄이고 이전보다 쉽고 빠르게 소비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언택트 기술의 보편화는 일자리 감소와 같은 노동시장의 변화, 기술에 익숙하지 않은 고령자를 소외시키는 사회적 문제를 야기할 수 있지만, 반면에 그동안 무료로 인식됐던 인적 서비스가 프리미엄화되면서 서비스 차별화가 핵심 요소로 등장하는 등 관련 시장의 변화도 불러올 것으로 예상된다.
아파트를 고를 때 시공사와 인테리어보다 어떤 서비스를 제공하는지가 더 중요해지고 있다. 발레파킹은 기본이고 하우스키핑과 컨시어지 서비스, 호텔급 조식까지 누릴 수 있는가가 구매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 된다. 자동차를 살 때도 앞으로는 자동차 제조업체가 아니라 내부 서비스가 더 큰 고려 대상이 될 전망이다. 자동차가 그저 운송수단이 아니라 달리는 ‘서비스 단말’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서비스는 제품을 둘러싼 모든 것, 제품과 연결되고 융합된 것으로서 제품 차별의 주요한 방법이 되고 있다. 사물인터넷과 클라우드 기술의 발전은 만물의 서비스화를 더욱 앞당기는 배경이다. 따라서 비즈니스 모델은 소비자의 시간을 효율화할 수 있고, 수치화되기 어려운 감성적 만족도를 측정해 효과적인 퀄리티 컨트롤을 할 수 있는 방향으로 혁신될 것이다. 이제 서비스는 제품의 선택을 좌우하는 결정 요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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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한율 (자유기고가)
그림 최지예
참고 도서 <트렌드 코리아 2018>(김난도 외 지음, 미래의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