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예술가 지원부터 근로자이사제까지
다사다난(多事多難)했던 2017년이 저물었다. 2016년 10월 말부터 시작된 총 19번의 촛불집회. 광장에 모인 사람만 1,500만 명이 넘었다. 광화문에서 폭발한 탄핵 여풍은 계속 이어졌다. 그동안 블랙리스트라는 무게에 짓눌려 있던 예술가들이 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문학을 비롯해 공연과 미술 등 장르를 구분하지 않았다. 그동안의 트렌드가 180도 바뀐 셈이다. 2017년 서울의 문화예술 10대 뉴스를 선정했다. 가급적 정확한 트렌드를 파악하기 위해 다양한 변수를 고려했다. 서울문화재단의 각종 채널에서 노출된 프로젝트를 조사했으며, 언론으로부터 관심이 높았던 사업을 파악했다. 이 밖에 소통 채널을 통하여 피드백이 왕성했던 것들을 우선시했다.
한국은행은 2018년 1인당 국민 소득이 3만 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예측했다. 그러나 15세부터 29세에 이르는 청년 실업률은 지난해 10월 기준으로 8.6%에 이른다. 이는 1999년(8.6%) 이후 18년 만의 최고치다. 게다가 체감 실업률은 무려 21.7%로 2015년 이후 가장 높다. 사실상 청년 5명 중 1명은 백수라는 뜻이다. IMF 이후 악화된 청년 실업의 문제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졸업을 해도 직장을 구하기가 하늘에서 별 따기만큼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문화예술계 또한 뾰족한 대안이 없다. 그래서 서울특별시는 예술인임을 증명하지 않아도 다양한 문화예술 분야의 청년예술가들이 지원받을 수 있는 길을 마련했다. ‘장벽 없이, 편견 없이, 정산 없이’라는 슬로건으로 진행된 <청년예술인 창작지원사업>은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초년생 예술가들의 창작 활동을 지원했다. 2017년에는 공공지원금 수혜 경력이 없는 39세 이하 또는 데뷔 10년 이하 청년예술인과 단체 약 900명(팀)에 56억 원을 직간접적으로 지원했다.
6,470원은 2017년 최저임금이다. 노동을 돈으로 환산했을 때, 1시간의 노동으로 벌 수 있는 금액이다. 그러나 노동의 대가를 측정하는 하나의 기준이 되어버린 6,470원으로 얻을 수 있는 삶의 행복은 제각각 다르다. ‘이 최저시급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에서 출발한 전시는 6,470원에 담긴 우리 사회의 모습을 오롯이 보여줬다. 서울연극센터는 올림푸스한국과 함께 10월 27일부터 11월 12일까지 예술가와 시민이 사진으로 소통하는 프로젝트 <엉뚱한 사진관 for 대학로>의 결과 전시를 열었다. <6470展>이라는 제목으로 진행된 전시에서는 20대부터 50대에 이르는 19명의 참여자들이 편의점, 서빙, 과외, 콜 센터 등 약 50가지 아르바이트에서 겪은 경험과 6,470원으로 할 수 있는 나만의 지출을 담은 사진을 전시했다.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최저시급과 청년 문제를 뉴미디어를 통해 보여줬다.
전 세계 28개 도시에서 100여 명의 회원도시 대표단과 문화정책 전문가들이 한자리에 모여 상호 교류, 토론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11월 1일부터 3일까지 서울시청,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등 서울에서 열린 국제문화정책 네트워크인 세계도시문화포럼(World Cites Culture Forum, 이하 WCCF)이 그것이다. 아시아에서 최초로 개최된 이번 WCCF의 주제는 ‘창조도시를 넘어서: 문화시민도시에서의 문화와 민주주의’였다. 서울시의 문화시민도시 비전과 시민의 참여로 커다란 변혁을 이뤄낸 국내 사례를 중심으로 토론한 WCCF 서울총회는 삶 속의 문화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할 수 있는지와 작은 규모의 창조적 생산이 세계도시들에서 생존할 수 있는지 등에 대해 다양한 노하우를 공유했다.
인간은 왜 자유를 원하면서 동시에 통제되기를 원하는 걸까. 11월 2일부터 12일까지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 무대에 오른 연극 <파란나라>가 던진 질문이다. 남산예술센터와 극단 신세계가 공동 제작해 같은 장소에서 초연했던 이 연극의 모티브는 1967년 미국 캘리포니아 큐벌리고등학교에서 진행된 실제 실험에서 따왔다. 이 학교의 역사교사 론 존스는 “나치는 10%에 불과했는데, 왜 90%의 독일사람들은 홀로코스트를 막지 못했느냐”는 학생들의 질문에, 실험으로 그 가능성을 알아보자고 제안한다. 실험은 첫날 학생들에게 ‘바른 자세로 앉기’ 등 간단한 규율을 제시하는 것으로 시작했지만 ‘제3의 물결’이라고 명명된 이 실험에서 ‘물결무늬의 심벌’이나 ‘나치의 경례와 유사한 경례 방법’ 등 추가적 규율이 더해지자 학생들 중 철저한 신봉자들이 생겨났다. 특히 이들 중 공동체 질서를 유지하는 조직은 규율을 어기는 일반 학생들을 협박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한나 아렌트가 말한 ‘악의 평범성’을 경험한 존스는 결국 5일 만에 실험을 끝마친다. <파란나라>는 초연 당시 꼼꼼한 학교현장 취재와 일반 학생들과의 협업, 워크숍 및 토론 방식을 거쳐 제작돼, 경쟁 시스템에 빠진 한국의 학교를 잘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미국 고교의 원래 실험 과정에다 무한 경쟁에 내달리는 한국의 고등학교 상황을 보탠 것이다. <파란나라>에는 실제 고등학생 14명이 등장한다. 4월부터 26주간 워크숍을 통해 선발된 인원들이다. 이와 함께 공고로 모집한 103명의 시민이 공연에 출연했다. <파란나라>는 한국연극협회가 선정한 ‘2017 공연 베스트 7’에 뽑히는 성과를 올렸으며, 문화예술계를 비롯해 교육계에서도 눈여겨볼 연극으로 선정했다.
거리예술은 최근 우리나라 축제의 대표 콘셉트다. 영국의 에든버러, 프랑스의 오리악 축제처럼 몇 해 전부터 우리나라의 축제들도 거리예술 중심으로 변화하고 있다. 축제의 명성을 떠나 정해진 공연장 등에서 천편일률적으로 진행하던 방식을 벗어나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렵다는 점을 깨달았기 때문 아닐까. 4년째를 맞은 <거리예술 시즌제>는 사실 이런 변화의 흐름 한가운데 서 있었다. 서울거리예술창작센터는 2014년부터 봄과 가을 시즌에 다양한 거리예술 공연을 묶어 <거리예술 시즌제>를 선보였다. 이에 따라 거리예술에 이야기가 더해지고, 서커스와 같은 대규모 볼거리가 우리의 일상으로 스며드는 데 작지 않은 역할을 해왔다. 홍대나 청계천 등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버스킹 수준을 뛰어넘었다. 지난해에는 역대 가장 긴 추석 명절 연휴의 종반부였던 10월 5~8일에 서울광장과 세종대로 등지에서 온 가족이 다 함께 즐길 수 있는 축제가 펼쳐졌다. 그동안 서울에서 열렸던 거리예술의 백미만을 모아 보여준 <서울거리예술축제 2017>은 참가 공연단 규모부터 세계적인 축제와 견주어도 뒤지지 않았다. 영국, 스페인, 아르헨티나 등 8개국의 해외초청 작품 47편을 비롯해, 거리예술이라는 실험을 거친 뒤 대중에게 처음으로 공개한 한국팀의 공연 등 총 145개의 공연을 선보였다. 이 공연들이 광장(서울광장, 청계광장, 광화문광장), 거리(청계천로, 세종대로, 덕수궁 돌담길), 도심재생공간(문화비축기지, 서울로7017, 무교재생공간)을 무대로 펼쳐졌다. 축제 첫날인 10월 5일 서울광장에서 선보인 개막작 <무아레>는 지상과 공중을 아우르는 웅장한 공연이었다. 특히 한국 대중예술을 대표하는 이승환밴드가 축제의 피날레를 장식해 관람객의 환호에 응답했다.
6월 4일, 서대문구 연세대 교정에 자리한 ‘금호아트홀 연세’에 학생 30명가량이 오디션을 보기 위해 모였다. 이들은 바이올린, 클라리넷, 첼로, 피아노를 전공하는 음악 학도들이었다. 이들의 목표는 8월 <프롬나드 콘서트>에 참여하는 프로젝트 그룹의 단원이 되는 것이었다. 프랑스어로 ‘산책’이라는 뜻의 이 행사는 탄생 100주년을 맞은 윤이상(1917~1995)을 기념하기 위해 마련한 자리였다. 문화역서울 284, 윤동주문학관, 서울로7017, 다시세운광장 등 서울 시내 곳곳에서 윤이상의 현대음악이 울려 퍼졌다.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작곡가 윤이상의 음악 세계를 들려준 콘서트에서는 클래식뿐만 아니라 같은 해에 태어난 윤동주의 작품, 오페라 <심청>의 모티브가 됐던 판소리, 우리나라의 춤을 전 세계에 알린 비보이와 현대무용까지 다양한 장르와의 협연이 펼쳐졌다.
전 세계 생활예술 음악인들의 축제, 서울국제생활예술오케스트라축제(Seoul International Community Orchestra Festival)가 9월 16~24일 세종문화회관과 광화문 일대에서 열렸다. ‘모두를 위한 오케스트라’를 슬로건으로 내세운 생활예술오케스트라축제는 2014년에 시작됐다. 지난해에는 전 세계 31개국으로부터 70개 단체, 4,400여 명이 참여해 총 60회의 공연을 펼치며 역대 최대 규모로 열렸다. 성대한 규모만큼이나 출연진도 화려했다. 우선 파라과이의 쓰레기 매립지에 있는 빈민촌 카테우라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다큐멘터리 영화 <랜드필 하모니>(2015)의 실제 주인공들이 내한했다. 버려진 깡통과 페트병으로 바이올린과 첼로를 만들어 음악을 들려주는 ‘카테우라 재활용 오케스트라’가 바로 그들이었다. 9월 17일 광화문광장에서는 435개 학생 오케스트라의 대표들과 시민들이 함께하는 ‘1000인의 오케스트라’ 협연이 성사됐다. 한편 유엔 세계평화의 날인 9월 21일, 박원순 서울시장은 29개국 63명의 시민대표들과 함께 생활예술 장려를 위한 3대 핵심 과제를 담은 ‘서울생활예술선언’을 발표했다.
스마트폰의 킬러 콘텐츠로 꼽히는 영상이 블루칩으로 떠올랐다. 스마트폰으로 동영상 콘텐츠를 소비하는 시간이 갈수록 늘어나면서 동영상 플랫폼과 영상콘텐츠의 트래픽이 고공 행진했다. 지난해 4월 서울문화재단은 기자간담회를 통해 2017년 경영전략 중 하나로 시민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는 문화정보를 생산, 전달하는 ‘아무나PD’를 발표했다. 텍스트에서 시작한 콘텐츠가 디지털 이미지를 거쳐 영상으로 진화한 것이다. 서울문화재단은 영상콘텐츠 플랫폼(바로가기)을 구축했으며, 재단을 비롯해 서울 곳곳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소식을 영상콘텐츠로 창작, 확산, 보급하고 있다.
9월 2일, 동대문구, 성북구, 강북구를 관통하는 총 13개 역의 지하철이 개통됐다. 여느 지하철과는 다르게 열차뿐만 아니라 역사까지 모든 것이 작다. 이는 총 11.4km에 이르는 우이신설선으로, 무인으로 운행되는 서울특별시의 첫 번째 도시철도다. 지하철이 지나는 서울의 동북권은 다른 지역에 비해 교통이 열악한 편이다. 게다가 이곳은 지리, 인구 통계, 경제 관점에서 문화만족도가 상대적으로 낮다. 각박한 삶에 지친 지역주민과 승객들을 위해 문화예술로 휴식을 전하는 문화철도가 시작됐다. 우이신설선에 장착된 ‘문화철도’ 프로젝트는 상업광고에서 벗어나 광고판을 문화예술 콘텐츠로 채우는 것에서 출발했다. 예술가의 수준 높은 작품을 보기 위해 전시장에 가야 하는 수고를 덜어내고, 역사와 열차에서 직접 다양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역마다 지역성을 대표하는 서로 다른 주제의 작품이 시즌별로 공개됐다. 지하철역이 서로 다른 문화예술 플랫폼이 되는 순간이었다.
근로자이사제는 근로자가 최고 의결기구인 이사회에 이사로 참석해 경영에 참여하는 제도이다. 미국 일부 지역과 독일이나 스웨덴 등 유럽에서만 시행되어왔는데, 서울특별시는 지난해 조례 개정을 거쳐 산하 투자·출연기관 중 13곳에 도입을 의무화했다. 지난해 4월 서울문화재단은 전국 문화예술기관 최초로 근로자이사를 임명하여 문화예술생태계를 조성하는 의사 결정에 직원들의 목소리가 반영될 수 있도록 했다. 근로자이사는 직원들이 직접투표로 1~2명을 선출하는 비상임 이사로, 이사회에 참여해 의결권을 행사하며 임기는 3년이다. 근로자의 참여 의식을 고취하고 노사 분쟁을 감소시키는 데 그 목적이 있는 근로자이사제가 문화예술계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ㅡ
글 이규승 (서울문화재단 IT홍보팀장)
사진 서울문화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