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지는 건 없더라도 함께 울어요, 우리
문학의 위기, 나아가 책의 위기를 말하는 시대에도 꾸준히 사랑받는 작가는 있다. 주목할 만한 30대 시인을 언급할 때 빠지지 않는 박준도 그중 한 명이다. 2012년 12월 출간한 그의 첫 시집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는 10만 부가 넘게 팔린 스테디셀러이고, 2017년 7월 펴낸 첫 산문집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도 이미 베스트셀러 자리를 굳혔다. 2017년 11월에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주관한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문학 부문)을 수상하며 대중의 사랑과 문학적 평가를 동시에 거머쥐었다. 낮에는 출판편집자로, 퇴근 후에는 시인으로 살아가는 그를 카페 창비에서 만났다.
지난해까지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다가 1년 만에 국가에서 주는 상을 받으니까, 물론 감사한 일이지만 좀 어색하네요. 많은 분들이 제 시를 봐주시는 이유를 직접 말하려니 쑥스럽지만, 제가 파악한 세계의 보편성을 좋게 생각해주신 것 같아요. 전 습작생 시절부터 새롭거나 전위적인 시는 쓸 능력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또 제가 좋아하는 문인들도, 새로움을 추구하기보다 변하지 않는 인간의 보편성을 끊임없이 건드리는 분들이었고요. ‘나는 이런 생각도 해봤어, 혹은 이렇게 상상할 수 있어’라고 말하는 게 새로움이라면, ‘나도 그런 적 있었어, 혹은 나도 그런 감정이 든 적이 있었어’ 하고 얘기하는 게 보편성인데, 그 보편성이란 감수성의 연대라고도 볼 수 있겠죠.
치기만 앞선 때였죠. ‘세상에서 내가 제일 시를 잘 쓰는 것 같은데’ 하는 자만심과 ‘왜 나를 알아주지 않나’ 하는 울분이 가득했어요. 튀어 보이려고 분홍 색지에 궁서체로 출력해서 투고하기도 하고, 라디오에 사연 보내듯이 손글씨로 시를 써 보내기도 했고요. 김수영 시인이 “시는 온몸으로, 바로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다”라고 쓴 글을 곡해해서, 정말 온몸에 시를 쓴 적도 있었어요. 멀쩡한 노트가 있는데….
그때는 시를 쓰기 전에 취재를 안 하면 마음이 불편했어요. 고시원에 대한 시를 쓰려면 고시원에서 두 달 살고, 폐지를 줍는 어르신에 대해 쓰려면 리어카 끌고 따라다니고 그랬거든요. 그러다 태백에서 광부로 일한 분들을 취재할 기회가 있었어요. 전 새로운 이야기를 들으러 간 건데 그분들은 “기술 없으면 나이 먹어서 고생한다”는 식으로, 아버지들이 흔히 하는 얘기를 하시는 거예요. 그때 문득 시는 새로운 사실을 추적해서 쓰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어요. 그보다 여러 사실을 모으거나, 혹은 사실이 아닌 것들을 모아 진실의 끄트머리를 좇아가는 게 시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부터 ‘시를 쓸 때 꼭 사실을 수집해야 한다’는 강박을 내려놨어요.
시집엔 넣지 않은 시의 첫 문장이에요. 2011년 민주노총 김진숙 지도위원님이 한진중공업에서 크레인 고공 농성을 할 때였는데, 인터넷 매체인 <프레시안>에서 그와 관련된 시를 청탁해왔어요. 작품 한 편을 쓸 때 보통 3개월 정도 걸리는데, 다음날까지 써야 한다는 거예요. 시간은 촉박했지만 이 시는 크레인 밑에 가서 써야 하지 않을까 해서 영도까지 찾아갔어요. 그게 <당신이라는 약(藥)>이라는 시였는데, 메시지가 너무 선명해서 시집에는 뺐지만 버리기 아까워서 첫 문장만 떼어 쓴 거죠.
김진숙 지도위원님을 보면서 ‘세상은 이미 병들었는데, 좋은 행동을 하는 한 사람이 있어서 바이러스 백신처럼 세상을 버티게 하고 있구나’ 싶었어요. 그래서 약국에서 ‘감기약 사흘 치 지어주세요’라고 이야기하듯 당신의 이름을 지어 먹었다는 문장이 나왔죠. 시집이 나오니까 ‘당신의 이름’을 밥으로 생각하는 분이 많더라고요. 그것도 말이 되긴 해요, 밥이 약이니까. 소중한 존재가 사람들을 살게 한다는 뜻이니까.
제가 관여한 건 아니었고 출판사에서 제안을 받아 진행한 작업인데, 좋은 의미지만 ‘할머님과 관련된 이미지를 내 시집에 피상적으로 써도 되나’ 하는 죄송한 마음도 있었어요. 그런데 돌이켜보니 저도 김복동 할머님과 작은 인연이 있더라고요. 2010년 친구들과 함께 일본에 가서 과거사 사과를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한 적이 있는데, 그때 나눔의 집에 허락을 받고 김복동 할머님의 다른 그림을 플래카드로 만들어서 신주쿠 한복판에서 퍼포먼스를 했거든요. 할머님도 그 사실을 아실지 모르겠지만 이 표지를 볼 때마다 멀리서 격려해주시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사인할 때 가끔 “울어요 우리”라고 써요. 그럼 제목과 이어져서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울어요 우리”가 되죠. 우리 사회는 효용가치에 의해 돌아가니까, 달라지지 않을 거라 생각하면 행동을 안 하게 되잖아요. 하지만 ‘달라지지 않으면 어때? 그래도 울래’ 이렇게 삐딱한 반발심이 있었어요. 울음이란 사람이 표현하는 감정 중 가장 진심에 가까운 행위라고 생각해요. 울려고 해서 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치려 해도 그쳐지는 게 아니잖아요. 그래서 누군가를 당황스럽게 만들기도 하고, 혹은 타인의 마음을 끌어들이기도 하죠. 긍정이든 부정이든 가장 무장해제에 가까운 행위가 울음이라고 생각해요.
소설은 무조건 첫 페이지부터 읽죠. 그런데 시집은 순서대로 읽기도 하지만, 보고 싶은 곳만 읽다 덮어도 돼요. 소설이 ‘권당독서’라면 시집은 ‘편당독서’죠. 제 산문집을 엮으면서 편당독서가 이뤄지는 산문집을 만들자고 생각했어요. 한 편 보고 덮어도 되고, 다음 편을 바로 읽어나가지 않아도 되는…. 길이와 글 분량도 고저를 두고 글과 글 사이에 시간을 줘서, 한 번에 다 읽어야 한다는 강박을 독자가 느끼지 않게 하고 싶었어요.
주로 시집을 기획하고 편집하는 일을 하기 때문에 선배들의 시를 가장 먼저 보게 돼요. 현대시의 흐름에 대해 끊임없이 업데이트할 수 있죠. 장점도 있지만 단점도 많습니다. 일단 시를 쓸 수 있는 물리적 시간이 짧고, 낮에 장편소설 편집을 마치고 집에 가는 날이면 아무 글자도 보고 싶지 않아요. 도로표지판도 보기 싫고, 컴퓨터도 안 켜요. 하지만 전 의지가 굳건한 편이 아니라서 산에 들어가 집필에 몰두한다고 좋은 시를 쓸 것 같진 않아요. 출퇴근을 하면서 살아가는 동시대 사람들이 일상에서 느끼는 감정도 놓치면 안 될 것 같고요. 제 작품을 읽는 분들과 함께 부대끼며 같은 감정을 경험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제가 경기도 고양시에 사는데, 동네에 사는 친한 작가들이랑 그냥 술만 마시지 말고 한 달에 한 번 낭독회를 하자고 뜻을 모았어요. 사는 곳이 고양시니까 ‘고양이 낭독회’라고 이름 붙였는데요. 2017년 11월에 신용목 시인이 1회를 진행했고, 12월에 열리는 2회 낭독회는 제가 진행합니다. 근처 카페에서 시 읽고 음악 듣고, 와인 한 잔 정도 가볍게 마시는 소규모 행사예요. 그날 눈이 오면 좋겠네요.
박준 시인은 개를 키우지만 산책길에 만나는 길고양이에게 밥을 챙겨준다. 그가 돌보는 고양이는 3.5마리. 한 마리는 이틀에 한 번씩 오기 때문에 반 마리로 계산한다고 했다. 밥을 나르며 얼굴을 익힌 고양이들은 오랜만에 그를 보면 화를 내기도 한단다. 왜 이제 왔냐고, 어디 갔다 왔냐고. “관계라는 게 무섭다는 걸 고양이를 보면서 다시 확인했어요”라며 웃는 시인의 얼굴 속에서, 일상의 작은 것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본다. 그 마음으로 빚은 시여서, 그의 책이 독자의 마음을 붙들고 울리는 게 아닐까. 가을경 출간 예정이라는 두 번째 시집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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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고경원 (자유기고가)
사진 오계옥, 백종헌
사진 제공 문학동네,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