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울문화재단 Jan 15. 2018

지역문화진흥사업 간담회

지역문화, 지역 현장의 기초문화재단 직원으로부터 듣다

서울문화재단에서는 각 자치구별로 지역주체들과 함께 지역문화의 새로운 방향을 만들어나가는 지역문화진흥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2017년 처음 시작한 지역문화진흥사업은 외부의 예술가나 전문가들이 지역에 들어가 특정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서울 안 각 지역의 자원을 모아 새로운 만남과 네트워크를 만들어내고, 이를 바탕으로 프로젝트를 추진하거나 나아가서는 함께 계획을 세우는 그 과정 자체까지도 지원한다는 점에서 기존의 사업과 다르다. 이 과정에서 기초문화재단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2017년 사업을 돌아보며 현장을 가까이에서 지켜보고 만남, 네트워크, 그리고 프로젝트를 이끌었던 기초문화재단 직원들의 생각을 들어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진행 | 김진환 서울문화재단 지역문화팀 차장 
참석 | 박준영 도봉문화재단 기획홍보팀 팀장, 김민정 성동문화재단 정책기획팀, 안주용 구로문화재단 문화사업팀 
일시 | 2017년 12월 12일 오후 3시 30분 
장소 | 서울문화재단 5층 회의실




김진환
최근 몇 년간 기초문화재단들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는데요. 지역문화사업이 강화되고 있는 와중에 실무자들이 현장에서 느끼는 점들에 더 귀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올해 처음 시작한 지역문화진흥사업을 진행하면서, 자치구들이 지역 내 인적자원들과의 만남에서부터 변화와 성장의 계기를 만들어가는 것 같아 좋았습니다. 서울문화재단에서 처음부터 혼자 만들어낸 사업이라기보다는 기초문화재단 등 지역의 필요와 요구가 사업기획의 이정표가 되어주었습니다. 기초문화재단이 지역에서는 어떤 의미인지,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를 얘기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박준영
도봉문화재단은 올해 4월에 출범했는데, 거의 첫 사업으로 서울문화재단의 지역문화진흥사업을 저희 팀에서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저희는 사실 네트워크도 자원도 없는 상태여서, 자원들을 끌어 모으기에 급급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한 해를 결산하는 지금 돌이켜보니 사람을 만나서 문화농사를 지었더라고요. 재단이 처음 생겼기 때문에 저희는 이런 질문을 많이 받았어요. 뭐가 다른지, 뭐하는 곳인지 물으시는데, 확실하게 말씀드리고 싶어도 보여줄 수 있는 게 없는 거예요. 주민이 느끼기에는 가장 가깝고 편하게 말을 걸 수 있는 행정, 뭔가 처리해줄 수 있을 것 같은 행정이고요. 하고 싶은 부분을 채워나갈 수 있게 도와주는 중간자, 매개자라는 말씀을 많이 드렸고 그런 역할을 하려고 했어요. 지역문화진흥사업이 매력적이었던 이유는 사업영역에 제한이 없다는 점이었어요. 올해 도봉구에 만화인마을이 생겼는데 입주작가 분들과 만날 수 있었고, 일반 주민, 직장인, 취업준비생, 육아맘들도 만날 수 있었고, 생활예술동아리 분들과도 다른 관점에서 문화사업을 해볼 수 있었어요. 갖가지 다양한 영역의 사업을 벌일 수 있어 소중한 기회였습니다. 

김민정
저는 성동문화재단 입사 6개월 만에 이 사업을 맡게 되었는데요. 사업을 시작할 때 재단 안에서나 밖에 나가서나 “재단이 뭐지? 재단 사람들은 행정가야, 예술가야, 활동가야”라는 얘기를 많이 한 것 같아요. 농담으로 우리는 ‘반인반수’라고 하면서, 나가서는 활동가인데 들어와서는 철저하게 행정가여야 하고, 중간에서 균형을 잘 잡아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기초가 광역과 구별되는 점은 사람들에게 동네친구처럼 다가갈 수 있다는 거예요. 동 단위로 사람들과 기억과 공간을 공유하는 작업을 깊게 할 수 있잖아요. ‘동네친구’, ‘반인반수’라는 정체성으로 사업설명을 하고 진행도 했어요. 성수동의 경우 2016년에 그냥 한 번 모여보자고 예술마을 사업을 진행했는데 메아리, 반향이 부족했어요. 올해 지역문화진흥사업은 계획 단계부터 지역 주체들과 공유하고 진행했더니 왜 모여야 하는지가 쉽게 그려졌고 소통을 위한 든든한 텃밭이 처음부터 만들어졌습니다. 

김진환
성동문화재단은 작년에 비슷한 콘셉트의 ‘예술마을만들기’를 하면서 지역 내에 공유된 경험이 있어서 올해는 계획 단계에서부터 논의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서울문화재단도 ‘반민반관’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특히 기초문화재단은 활동가로서의 역할이 더 많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안주용
저는 구로문화재단에서 9년 일했는데요. 지역에서는 재단이라고 하면 재정지원, 공간, 전문성에 대한 요구가 제일 많아요. 공공기관이라 구청과 약간 연관 있고 문화예술 쪽에 특화되었다고 생각하는데, 가끔 실망도 하세요. 문화재단에서 할 수 있는 행정이나 정책과 예산의 범위에 한계가 있고, 몇 안 되는 인력이 행정가, 활동가, 기획자 역할까지 해야 합니다. 마을사람들의 다각화된 욕구를 모두 충족시키기에는 어려운 점이 있어요. 문화와 관련해서 지역에서 해야 할 일이 엄청 많잖아요. 재정과 인프라가 뒷받침되고 인력이 투입되면 복지, 보육 등 다른 분야까지 협업해서 엮을 수 있는데, 한정된 재원과 인프라 안에서는 재단 이사장이나 대표의 정치적 상황에 많은 영향을 받는 것 같아요.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문화재단의 그림은 대동소이하지만 환경에 의해 변화하면서 맞춰가는 것 같고요. 지역에서 기초문화재단에 바라는 역할은 주민들은 기본적으로는 좋은 공연, 작품을 보여주는 것 같고요. 지역에 사는 예술가나 활동가는 매개자로서의 역할과 정책적으로도 전문적이고 공무원보다는 좀 더 많은 고민을 하고 현장에서 체감할 수 있는 정책을 입안하는 데 도움을 주는 행정가의 역할, 여러 가지를 동시에 원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걸 다 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김진환
올해 지역문화진흥사업에서 필수사항으로 강조한 것이 GNC(Gathering, Network, Collaboration)였는데요. 행사 횟수, 관람객 수 등 강제하는 성과지표가 없어서 쉬울 수도 있지만 운영하는 입장에서는 지속적으로 사람들을 모으는 게 제일 어려운 일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GNC가 지역 내에서 유의미한 성과가 있었는지, 가장 인상적이었던 순간을 말씀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안주용
구로문화재단은 천왕동에 집중해 사업을 진행했는데요. 천왕마을연합회라는 네트워크가 이미 있었어요. ‘예술마을만들기’를 위한 네트워크는 아니었던 거죠. 초반에는 협의체라는 이름으로 문화예술 관련 동아리, 예술가 분들과만 따로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마을 내에서 고민이 많았더라고요. 이 사업을 하는 건 좋은데 기존의 네트워크나 마을 생태의 방향성을 망치지는 않을까 하는 막연한 걱정이 들었던 거죠. 진행하다 보니 예술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지만 마을만들기가 더 중요한 부분이어서, 문화예술 협의체가 분과처럼 활동할 것이 아니라 연합회 자체에 참여해서 하자고 제안했어요. 처음 네트워크에 들어갔을 때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소통 문화였어요. 많이 싸우는 것이 네트워크의 비결인 동네들도 있는데, 저희 천왕마을은 보다 점잖고 부드러운 방식의 소통을 선호했어요. 그것이 긍정적이라고 본 건, 다들 한마디씩 말할 기회가 있다는 점이죠. 서로 바라는 것이 다르고 관심도 다르지만 누군가 얘기하는 것을 경청하고 의견이 다르다고 중간에 태클 걸지 않고, 상생할 수 있는 부분을 이야기하고, 부득이하게 부딪히는 부분이 있으면 웃으면서 이야기하고 조율하고 풀어냅니다. 같이 일하면서 전혀 힘들지 않았던 건 아니지만 그래도 즐겁게 할 수 있었어요. 이런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문화라면 어떤 일이 있어도 대화를 통해서 풀어나갈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떻게 보면 그게 전부일 것도 같아요. 사람을 모이게 하려고 해도, 같이 무언가를 하려고 해도 서로 다르기 때문에 존중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있어야 해요. 지난 몇 년 동안 의식하고 깨우친 건지 본능적으로 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주민들이 서로 조심하는 느낌이 있었고 그렇다고 소극적이지는 않고 배려하는 모습이었습니다. 그게 사업을 하면서 서로에게 많은 힘이 되었어요. 

김진환
이미 네트워크가 있는 곳에 들어갈 경우 주의할 점과 천왕마을 분들의 소통 방식에 대해 말씀해주셨네요. 

안주용
없는 네트워크를 만들어서 가는 게 쉬울지, 있는 네트워크에 들어가는 게 쉬울지는 잘 모르겠어요. 이미 만들어진 네트워크와 함께할 때도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이 중요하고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아직도 알아가고 있어요. 심지어 위원장님이 목사이신 것도 얼마 전에 알았어요. 하나하나 알아가는 재미도 있고 몰라서 어려웠던 부분도 있고요.


김민정
성동문화재단은 2016년에 예술마을만들기를 시범 운영하긴 했지만 사업이 종료된 후 공백기가 있었기 때문에 만남이 계속 유지되진 않았어요. 처음 GNC 얘기를 들었을 때는 ‘모으고’부터가 막막했어요. 무엇 때문에 모이자고 해야 할지, 모임의 질감에 대해 생각을 많이 했는데요. 처음에는 ‘많은 사람’에 초점을 맞췄어요. 프로젝트 별로 매니저가 있었는데, 각자가 사업 이야기를 나눴던 누군가를 다음 모임에 데리고 와서 지속적으로 모임의 크기를 늘려가려고 했죠. 상반기를 지나면서 사업이든 만남이든 현미경으로 봐야 할 것과 망원경으로 봐야 할 것이 구분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올해는 현미경으로 볼 수 있도록 모임을 쫀쫀하게 가져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PM, 주강사, 보조강사, 전시에 참여한 사람들을 모으면 20명 정도인데요. 그분들이 내년에도 함께 갈 수 있는 리딩그룹이자 활동의 핵심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에 매주 ‘화요 브런치 모임’을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사업 논의로 어떻게든 참석하게 되었지만, 점차 사업보다는 만나서 얘기하는 게 좋아서 모이게 되었어요. 당장 많은 사람들을 모아야 한다는 조급함을 버리니, 보다 쫀쫀한 네트워크가 가능해졌어요. 누구는 가죽공예를 하고, 신발을 만들고, 시를 쓰는데, 모여서 뭔가 했으면 좋겠다는 얘기도 활발하게 주고받더라고요. 

김진환
단계적이고 전략적인 접근이 필요한 것 같아요. 리딩그룹이 탄탄해야 확장을 도모할 수 있는 경우가 많죠. 

박준영
저희도 초반에는 유명 만화가를 불러서 행사를 크게 터뜨려볼까 했는데 그건 지역문화진흥사업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지적을 들었어요. 결국 유명인 등에 의지하지 않고 사업의 취지만을 가지고 주민 30명 정도를 모았는데요, 그것만으로도 너무 놀라웠습니다. 그분들을 시작으로 ‘도탐이’(도봉구를 탐사하는 이들)를 만들어서 팀 단위로 마을을 탐사하고 새로운 기획을 내봤어요. 지금은 3팀, 15명 정도가 남았는데요. 저희 입장에서는 이렇게 모인 게 첫 단계 같아요. 이분들이 동아리 형태로 진화하면 ‘마을지도 만들기’, ‘주민참여제 예산으로 공간 만들기’와 같은 안을 실행할 수 있는 동력을 드리고 싶어요.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만화인마을’ 작가들이 주민의 사연을 만화로 그려보는 연계사업이었어요. 사실 그분들은 만화인마을에 입주해서 지역과 연계 없이 각자 작업만 하셨거든요. 도봉구 주민들과 같이 무언가를 하고 전시를 한 것이 의미 있었다고 좋아하셨던 부분이 기억에 남습니다. 

김진환
세 재단과 자치구의 상황이 모두 다르고, 또 그에 따라 전략도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도봉구는 자원을 찾기 힘들어서 어떻게든 사람들을 모아보는 것부터가 중요했고요, 성동구는 네트워크는 빈약하지만 주요하게 참여할 수 있는 문화적 주체는 많은 편이고요. 구로구는 기존의 마을조직에 어떻게 잘 융화해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던져주셨습니다. 자치구별로 상황도 다르지만 지역문화사업을 대하는 자세, 적극성이나 방향성, 인력이나 예산 투입, 전문성에서도 차이가 많이 날 것 같습니다. 올해는 매달 간담회를 진행했는데요. 지역 내에서 역량을 강화하거나 기초문화재단들이 지역문화의 방향성을 잡는 데 도움이 될 만한 프로그램이나 아이디어가 있을까요? 

안주용
다른 지역에서 오프더레코드로 들려오는 안 좋은 이야기가 있는데요.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훌륭한 간접경험이 될 수 있거든요. 보통 강연에서는 성공사례만 이야기하는데 이면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자리가 있으면 합니다. 

박준영
중요한 건 실패사례 같아요. 다들 어려움이 있는데 간담회에 오면 잘한 부분만 강조하고 싶잖아요. 담당자는 힘들어도 감추게 되고, 그러면 실마리가 안 풀리는 거죠. 우리끼리라도 이 문제를 어떻게 할지 의논하고 해결책을 찾는 자리가 필요합니다. 

김진환
2018년에 많으면 4개 정도 기초문화재단이 더 설립될 예정인데요. 기초문화재단이 계속 생기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기초문화재단에서 바라보는 입장은 다를 수 있을 것 같아요. 25개 자치구 중 2/3가량이 기초문화재단을 운영하면 서울 전반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 거라 생각하세요? 

안주용
저희는 공공영역에서 공공서비스를 하는 인력인데요. 구로구만 해도 인구가 40만 명이고 문화관광과 공무원이 30~40명, 문화재단까지 합치면 100명 안 되는 인원이 다 커버해야 해요. 문화 인력이 늘어나야 하는 차원에서 기초문화재단이 생기는 건 긍정적이지만, 주민 공공서비스의 파이를 키우는 일환인 건지, 구청에서 기본적인 이해도 없이 유행처럼 따라서 만드는 건지는 모르겠습니다. 항상 수익구조, 재정 악화 우려 얘기가 나오는데, 문화재단에 대한 윗분들의 인식이 바뀌어야 하고요. 지역사람들이 문화재단이 있어서 좋다고 생각해야 하는데 그건 우리의 과제인 것 같아요. 가장 안타까운 건 문화, 예술뿐만 아니라 연계, 협력 가능한 다양한 분야가 있는데, 재정과 인력이 부족하다 보니 문화 분야와 따로 돌아간다는 점이죠. 문화 분야에 뜻이 있고 전문성을 갖춘 사람들이 들어와서 노력해야 하는데 지역에서는 문화재단을 정치적인 창구로 전락시키는 경우도 있고요. 결국 문화재단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 가치를 높이려는 노력이 안팎에서 이루어져야 재단 구성원들이 힘을 내서 일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원론적인 얘기일 수 있지만 늘 원리원칙이 안 지켜져서 문제인 것 같아요. 

김민정
문화재단이라는 이름은 공유하고 있지만 조직, 사업 규모, 도서관 포함 여부, 공연장 수, 중심 가치에 따라 결이 매우 달라요. 기초문화재단이 늘어나면서 공론의 장으로 끌고 들어오는 문화예술에 대한 관점과 사업의 양태가 더 확장될 거라고 봐요. 필요성과 당위성, 중심을 잡고 갈 수 있는 조직 문화가 있다면 기초문화재단이 늘어나서 25개가 되는 건 긍정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박준영
저희는 이번에 출범했는데 도봉구 문화체육과에서는 다양한 문화사업을 벌이려는 의욕에 재단만 만들어놓으면 알아서 전문적으로 다 할 거라고 보는 경향이 있어요. 2018년도에는 동북 4구 재단끼리 모여보자는 생각도 하고 있는데요. 25개 자치구가 공동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계기를 만들고 힘을 기를 수 있으면 좋겠어요. 

김진환
지역문화진흥사업은 지역주체에 중심을 두고 움직이도록 하는데요. 기초문화재단 직원들의 문화활동가 기질이 지역주체들을 움직이게 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주민을 포함한 지역주체와 호흡하고, 긴밀히 함께하자고 제안할 수 있는 것, 기초문화재단의 사명이자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공무원들이 할 수 없는 부분을 재단이 한다는 것을 인식시켜줘야 그만큼의 독립성과 전문성을 보장받을 것 같아요. 지역문화팀에서는 지역문화진흥사업이 잠재적으로는 ‘따로 또 같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각 구에서 ‘따로’ 하는 부분이 있고 때로는 ‘같이’ 움직여야 하는 부분이 있는데요. 동시에 움직여서 힘을 보여주는 사업 또한 있으면 좋지 않을까요? 올해 지역문화진흥사업을 하면서 새롭게 다가온 부분이 있을까요? 

김민정
처음에는 내년에 예산의 일부를 자신의 것으로 취해서 지역에서 사업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함께하는 분들도 있으려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사업종료 후 주요 참여자들이 성동 지역문화진흥의 비전을 함께 즐겁게 그려나가는 자리를 보자 기우였다는 것을 알게 됐죠. 1~5월에도 정기모임을 계속하자는 약속을 할 정도로 GNC 성격에 부합하는 모임을 만든 것이 가장 인상 깊었어요. 

박준영
저희는 다양한 섹터들과 만나는 것이 초년사업에 꼭 필요했어요. 아예 연이 없었기 때문에 무작정 여기저기 찾아가서 많은 분들을 만나는 일을 사업구상 단계에서 집중적으로 진행했어요. 

안주용
축제 때 모여서 즐겁게 웃으면서 준비하고 진행했던 모습이 기억에 남아요. 축제 준비와 평가 회의를 하면서 개선해야 할 점을 이야기했지만 ‘이래서 안 좋았다’가 아니라, 참여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희열을 느끼는 걸 표정이나 분위기에서 알 수 있었어요. 자발적으로 참여해준 것도 감사했고요. 

김진환
축제도 천왕마을연합회에서 원래 하던 프로그램인가요? 

안주용
매년 했는데 올해는 문화예술 쪽 내용을 추가해서 ‘천왕마을 예술잔치’라는 부제로 했어요. 합창단 정기공연이나 어르신을 위한 실버축제도 만들었고요. 주민예술가가 강사로 나서서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했고, 청소년들이 문화예술 분야 진로를 탐색해볼 수 있는 기획자 양성 프로그램도 있었습니다. 

김진환
문화예술적인 요소를 가미한 것이 당장의 성과라기보다는 마을 의제로 올릴 수 있었다는 것 자체가 큰 변화 같습니다. 

안주용
저는 네트워크가 아직도 초기라고 생각하거든요. 큰 그림이 있으면 밑그림인데 마을사업에서 중요한 것은 이것이 누군가의 깜냥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일이 없어야 해요. 네트워크를 한다고 해도 마을사람들이 다 모인 게 아니라 좀 더 관심 있고 의욕적인 사람들만 모이는 거잖아요. 마을은 삶의 터전이기 때문에 의욕적인 분들이 생각하는 방향대로 가기보다는 마을사람들 사이에 네트워크를 더하고 결국 이상적으로는 마을구성원 모두 마을만들기에 참여할 수 있을 때, 본인이 선택하고 선택한 것을 책임질 수 있을 때 지속 가능한 자생이 이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궁극적인 목표는 자생인데 지금 우리가 하는 형태는 자생과 거리가 멀기 때문에 조금 더 조심스럽기는 합니다. 

김진환
말씀해주신 부분이 자치구나 동 단위 지역문화사업의 비전 같은데요. 앞으로 지역문화사업이 이랬으면 좋겠다거나, 정책적으로 무엇이 뒷받침되었으면 하는지를 마지막 질문으로 드리겠습니다.


박준영
‘주민들이 주체성을 가지고’도 재단 직원의 입장에서 지역이 어떻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기획을 가지고 들어가는 거잖아요. 올해는 협의체 안에서 다 같이 무언가를 했다기보다는, 저희가 그냥 안으로 쑥 들어가서 했다고 생각해요. 마지막 모임에서 차년도에 대해 고민을 해보고, 계속 같이 얘기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드는 것이 저희의 역할 같아요. 

김민정
올해 사업을 진행하면서 궁극적으로는 자치구의 예술생태계를 고민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요. 성동구에서는 지역예술가들이 진행하는 워크숍을 지역문화진흥사업에 맞게 운영하고 그 결과물을 발표하는 과정까지 진행했어요. 고민은 지원금으로 공방에서도 자체적으로 진행하는 워크숍을 열었을 때 궁극적으로 동네예술가들에게 도움이 될까 하는 것이었어요. 이미 그런 것만 찾아다니는 사람들이 많다고 해요. 문화예술계의 자생력으로 이어지려면 어떻게 계획해야 할지 모임에서도 얘기를 많이 했는데요. 워크숍을 진행하는 것 한 축, 만남을 이어가면서 공통의 고민을 공론의 장으로 끌어오는 것 한 축이 같이 가야 해요. 지역문화진흥법도 예산이 뒷받침되지 못하는 것을 한계로 지적하는데요. 이 사업을 계기로 자치구 안에서는 어떻게 힘을 유지해가야 할지를 고민했고, 앞으로도 그래야 할 것 같습니다. 

안주용
지금 구로구에서는 ‘천왕예술마을만들기’ 한 곳을 하고 있는데요. 마을은 각자의 모습이 있을 거라 생각해요. 구성원이 다 다른 것도 존중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마을사업에 있어서의 시작이자 끝 아닐까요? 그런데 하다 보면 잘 안 되는 것 같아요. 옆에서 보면 ‘내가 선도하고 가르쳐줘야 해, 문화예술은 이렇게 하는 거야, 경험이 없어서 그런 거야’ 하는 경우가 있고 그게 기획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정말 그 사람들이 원하는 것, 필요로 하는 것을 해주는 것이 정책 아닐까요? 그렇게 하려면 정책 연구가 면밀히 이뤄져야 하고, 조사도 중요한데 인력도 없고 예산을 쓰지도 않아요. 준비가 부족한 채로 누군가의 머리에서 나온 것 같은 기획에 의해 정책을 만들고 진행한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어요. 방법적으로는 자치구 내에서도 동에 각자 필요한 부분이 있을 텐데, 보조금 형태보다는 포괄적으로 지원해주었으면 합니다. 성과를 내기 위해서 실제 하려는 것과는 별도의 무언가를 만들고 포장해야 하는 부분이 없지 않은데요, 그런 것을 걷어내고 필요한 부분만 할 수 있도록 좀 더 자유롭게 실행할 수 있는 지원이 행정적으로도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진환
지역문화진흥사업에서 주목할 만한 사례가 많이 나와서, 귀납적으로 움직이게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지역의 주체로부터 나오는 지지, 질적으로 다른 문화사업 네트워크가 있어야 흔들리지 않는 예산이 될 것 같습니다. 리딩그룹에 의지나 열망, 능력까지 있는 사람을 남겨놓는 것이 중요하고요. 지역 내에서 생존하고 활동할 수 있는 예술생태계, 두 가지를 모두 고려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전자는 눈에 명확하게 보이니 신경을 많이 쓰고 계시는 것 같고 후자는 좀 더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고 연구해나갈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 토론 내용은 서울문화재단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니며 [문화+서울]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정리 전민정 (객원 편집위원)
사진 서울문화재단

매거진의 이전글 시인 박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