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모닝스튜디오 기획전시 <기항지 : A Port of Call>
“기항지’는 항해 중인 배가 잠시 들를 수 있는 항구를 뜻하는 말로 각자의 목적지로 가기 위해 잠깐 머무는 장소다. 최종 목적지는 아니지만 긴 항해의 길에 반드시 필요한 이 장소는 항해의 과정과 그 경험을 보다 구체화할 수 있는 역동적인 곳이다.
- 2016 <기항지: a Port of Call> 전시 서문에서 발췌
이번 잠실창작스튜디오 9기 입주작가전에 참여한 10인의 작가는 모두 각자만의 특별한 서사와 표현방식을 보여주었다. 특히 이번 전시의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작가 김현우, 신동민, 정도운, 한승민의 발견이었다. 이 네 명의 작가는 발달장애가 있음에도 독특한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며 자신의 재능을 거리낌 없이 화폭에 뿜어내고 있다.
김현우 작가는 자신이 바라본 사물과 풍경을 특유의 픽셀을 이용해 추상적인 이미지로 구성해낸다. 본 것, 들은 것, 생각한 것 등의 단서들을 그림에 포함시켜 이미지들을 재구성한다. 자신과 관계된 사람들의 초상화를 그리거나, 가상의 친구를 만들어 편지를 주고받고 이를 작업으로 보여주기도 한다.
신동민 작가는 엄청난 집중력으로 작업하는데, 한 번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 완성하기 전까지 쉽사리 일어서지 않는다. 이국적인 색채와 과감한 구성을 캔버스에 담아내며, 두껍게 발라낸 물감의 느낌과 강한 색채 구성으로 표현한 동물들은 전시를 관람하러 온 사람들에게 가장 인기가 높다. 작가는 미술관에서 전시한다는 생각에 연신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에게 친절히 포즈를 취해주었다.
정도운 작가는 2016년에 이어 2017년에도 <기항지>전에 참여했다. 그는 인터넷을 통해 유명인들의 정보를 수집하여 일러스트처럼 그림에 글을 섞어 표현하는데, 모든 정보 검색과 표현의 결말이 가족, 삶, 죽음 등 그를 둘러싼 타인에 대한 깊은 이야기들과 겹쳐진다. 이번에는 평소의 드로잉, 마커를 이용한 일러스트 작업 이외에 석고를 이용한 흉상, 부조 작업을 선보였다.
한승민 작가는 가족과의 여행, 자신이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캐릭터, 책을 통해 접한 외부 세계를 특유의 시각으로 재구성한다. 특히 이번 전시에 내건 <수행성>은 아버지와 수족관을 관람했던 경험을 자신이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캐릭터들로 재구성해 그림으로 옮긴 작품이다. 자유롭고 쾌활한 그의 성격은 전시 현장에서도 도드라졌는데, 오프닝에 참석한 서울문화재단 주철환 대표 앞에서 당당하고 유쾌하게 자신의 작업을 설명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이번 전시에서는 화려한 색채를 분을 칠하듯 톡톡 찍어 표현하는 족필화가 김경아의 풍경화 작업, 사회적 관계의 맺음과 끊어짐에 대한 집요한 관찰을 바탕으로 변태적인 핑크빛으로 작품을 물들이는 김은설 작가 등의 작품을 만날 수 있었다. 박주영 작가는 소리가 없는 시각적 경험에 관심을 두고 있는데, 소리를 시각화하거나 소리 없이 시각으로만 전달되는 신체적 감각을 표현하는 등 다양한 실험을 하고 있다. 절단된 자신의 오른쪽 다리에서 시작한 작업이 몸을 구성하는 세포로 옮겨와 세밀하면서도 유기적으로 변화하는 세포의 세계를 추상적으로 표현하는 이동엽 작가, 어린 시절 잠자리에서 어머니가 읽어주던 전래동화에서 모티브를 얻어 전통가마 소성의 방식으로 거칠지만 따뜻한 느낌의 도예 작업을 보여주는 임병한 작가, 자신의 장애를 ‘콤플렉스’라 명명하며 의사소통 과정에서 드러나는 신체적 장애를 작업으로 표현하는 이진솔 작가 등의 면면을 이번 전시에서 들여다볼 수 있었다.
이번 전시에서는 작품에 대한 이해를 돕고 일반 시민들과 가까이에서 소통하기 위해 입주작가 개개인의 작업 이야기를 10편의 영상으로 담아냈다. 작가들이 직접 시나리오를 구성하고 출연 및 내레이션하는 방식으로 제작된 영상은 각각 2분 내외로, 작가들의 진솔한 이야기와 친절한 작품 소개를 함께 감상할 수 있다. 10편의 영상은 서울문화재단 공식 유튜브 및 서울문화재단 블로그을 통해 자세히 확인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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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원용 (잠실창작스튜디오)
사진 서울문화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