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울문화재단 Jul 10. 2018

벽화 전문 사회적기업 ‘데이그래피’ 박희정 대표

유대하며 성장하기

박희정 대표가 이끄는 데이그래피(Day-graphy)는 2014년에 팀을 결성하여, 2015년 1월 예비사회적기업이 됐다. 청년들의 ‘자존감’ 문제를 해결하고자 일기 쓰기 어플리케이션과 자신의 얼굴이 새겨진 도장 등을 만들었고, 청년모임과 청년공간 운영 등 다양한 일들을 차근차근 실행해왔다. 지금은 벽화사업에 주력하고 있다.

의뢰받은 벽화를 작업 중인 데이그래피 직원들.




데이그래피 직원들.

‘좋은 일자리’에 대한 고민에서 시작

청년모임을 할 때의 일이다. 한 기수당 평균 100명의 회원들로 운영되는 독서토론 모임 등 3개의 청년모임을 만들어 운영했는데, 이를 통해 많은 청년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들은 자신의 진로와 꿈을 사회에서 권하는 틀에 맞춰나가고 있다고 했다. 그러다 보니 자기 자신을 돌볼 수가 없게 되어 자존감이 낮아진다고 했다. 이 모임에서 같은 고민거리를 가지고 다른 이들과 소통할 수 있어 고맙다는 인사를 들으며, 모임이 자존감 문제의 해결 방법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보람과 위안을 느꼈다. 
하지만 결국 ‘좋은 일자리’를 찾는 것이 이 친구들의 자존감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모임이 나에게 큰 변화를 주었다”라고 말하는 이들은 결과적으로 ‘나에게 맞는 좋은 일자리’를 찾아나가는 듯했다. 한편으로는 모임을 운영하면서 정들었던 사람들을 떠나보내고 새로운 사람들을 다시 만나는 일이 힘들어졌다. 나도 ‘좋은 일자리’를 만나 이 모임을 졸업하고 싶어졌고, 또 간접적 자존감을 높여주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직접적 자존감을 높여주는 좋은 일자리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임에서 만난, 작가를 하고 싶어 하는 어떤 친구는 작업실 임대료와 재료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나는 7년 전부터 벽화 아르바이트를 해왔고 벽화를 그려 번 돈으로 이것저것 사업을 시도하면서도 생활할 수 있었다. 작가를 꿈꾸는 친구들을 내 작업에 불러 함께 일을 시작했다. 2014년부터 쌓은 창업 경험을 바탕으로 벽화 그리는 일을 회사 차원에서 운영하게 된 것이다.

데이그래피 직원들.




자존감에 흠집 내지 않는 회사

데이그래피는 대표인 나를 포함하여 총 9명이 운영하고 있다. 사무팀과 현장팀으로 나누어 일하며, 모두 미술을 하는 사람들이라 큰 작업이 들어오면 전 직원이 함께 작업한다. 사무팀은 주로 디자인과 마케팅을 담당하고, 현장팀은 현장에서 벽화를 그린다. 한 달에 보통 30~40건의 작업이 있는데, 일이 들어올 때마다 사무팀 한 명과 현장팀 한 명이 팀을 이루어 해당 일을 책임지고 완료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전반적으로 일이 빠르게 돌아가며 수평적인 팀으로 작업하기에 서로 친하고 유대감이 깊다. 올해 초에는 모두 함께 뉴욕으로 일주일간 워크숍을 다녀오기도 했다. 
직원들에게 “이 회사가 아니었다면 회사를 못 다녔을 것 같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예술가 성향의 개성 강한 사람들이 모인 곳이라, 개성을 존중하고 독립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수평적 구조로 운영하고 있다. 일을 할 때는 프로답게, 내부적으로는 그 어떤 행동을 해도 괜찮다는 식이다. 이는 최대의 장점이지만, 책임과 의무에 대한 무게감이 나에게 쏠려 힘들다는 단점도 있다. 회사가 벌써 4년 차이고, 근속년수가 1년 이상인 직원들도 반을 넘어섰다. 최근에는 3명의 신규 직원 채용도 있었다. 밖에서 보면 아주 잘해나가고 있는 듯 보일 것이다. 예술가를 회사로 만든다면 이렇게 보이지 않을까? 내면의 기복은 심하지만 외면은 잔잔한. 데이그래피는 이러한 예술가 성향의 회사로 유지되고 발전할 것이다. 수평적 구조의 단점을 극복해 10년, 20년 후에도 회사가 존속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작은 문제 하나에도 회사 전체가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늘 주위 사람들의 조언과 직원들의 지지에 힘입어 ‘개인의 개성을 존중하는 회사(자존감에 흠집을 내지 않는 회사)’로서의 정체성과 책임감을 잃지 않을 것이다. 
나의 꿈은 원래 만화가였다. 하지만 만화를 잘 그리는 사람은 너무 많았다. 웹툰을 짧게 연재한 적도 있었는데 일주일간 한 편을 완성하기에는 지구력이 부족했고, 혼자 작업하기에는 의지가 약했다. 데이그래피에서 만화 캐릭터 같은 개성 있는 직원들과 일하면서, 한 편의 만화를 연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나아가 작가로서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도 뚜렷하니, 독자(고객)와 소통하며 탄탄한 스토리를 만들어나가는 것처럼 직원과 소통하며 탄탄한 회사를 만들고 싶다.

박희정 대표.




완벽하지 않아도 좋다

내가 해결하고자 한 자존감 문제는 나의 문제에서 비롯됐다. 나 또한 일이 재밌고 보람 있지만 때때로 예술로 돈을 버는 것이 힘들고 불안하다. 이는 창업이나 예술을 하지 않더라도 모두가 마찬가지일 것이다. 청년모임을 하면서 가장 좋았던 점은, 나만의 문제라고 생각했던 것을 모두의 문제로 인식한 것이다. 
완벽하지 않아도 좋다. 결함은 모든 사람들에게 있으므로 유대하면서 서로를 보완할 수 있다. 자신을 돌보면서 자존감을 높이는 방법도 있지만, 사람들과 유대하면서 자존감을 높이는 방법도 있다. 알을 깨고 나와 유대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삶이 흘러간다. 변화를 원한다면 무엇이든 시작하는 것이 좋다. 최선을 다한다면 흘러간 것에 대해 아쉬움은 남더라도 성찰하며 성장할 수 있다. 그렇게 자존감이 높아진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삶이라고 생각한다.

데이그래피가 작업한 족발가게 벽화.







글·사진
 박희정 데이그래피 대표

매거진의 이전글 조아제약 조성배 대표이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