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문화재단 생활문화사업 들여다보기
근 일과 삶의 균형을 뜻하는 ‘워라밸’, 주 52시간 근무제 등이 사회를 바꾸고 있다. 노동 환경의 변화에 따라 여가 생활에 대한 관심도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늘어나는 여가 시간을 채울 활동으로 문화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고 있는 요즘, ‘생활문화’라는 단어가 더 가깝게 다가온다.
서울시는 이런 변화에 앞서 지난 2016년 ‘생활문화도시 서울’ 기본계획을 발표했다. 예술을 단순히 소비하는 것을 넘어 능동적 예술 활동을 통해 창작자가 되도록 돕겠다는 취지다. 여기서 생활문화란 시민이 생활에서 수행하는 자발적 예술 활동을 일컫는다. 생활체육처럼 예술 활동도 일상이 되는 시대를 열겠다는 뜻이다. 서울시는 생활문화를 누리는 형태로 ‘생활예술동아리’에 주목했는데, 이는 지역이나 성향이 비슷한 사람들이 모여 자신들이 좋아하는 문화와 예술을 공유하는 모임이다. 이들은 문화예술의 관람자가 되기도 하지만 예술을 직접 창작하는 데 주력한다.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서울시는 2017년 서울시생활문화진흥 조례를 통해 서울문화재단에 생활문화지원단을 설치했다. 이를 중심으로 서울시와 25개 자치구, 민간 생활예술동아리 네트워크 간 협의체를 구성하는 법과 제도적 지원체계를 마련해나가고 있다. 서울문화재단 주철환 대표이사는 “재단의 간접지원을 통해 서울시민이 더 큰 예술 창작 기회를 얻고 이를 통해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이 생활문화지원단 사업의 목표”라고 밝혔다.
생활문화, 사람과 공간 그리고 문화를 잇는 플랫폼
생활문화지원단이 이끄는 생활문화사업의 기본 원칙은 첫째, 민간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침해하지 않도록 공공의 개입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둘째, 간접지원을 통해 생활예술동아리의 자발성과 지속 가능성을 높이고 이를 위해 연습과 발표, 회의공간 등 공간과 네트워크 지원에 집중하는 것이다. 셋째, 매개자 등 동아리 지원인력 양성을 통한 생활예술 활동 촉진이다. 사업은 ①생활문화 인프라 확충(place) ②문화주체로의 성장지원(people) ③문화자원 연결 플랫폼 구축(platform)의 3대 영역으로 구성된다.
영역별 사업을 살펴보면 첫째, 생활문화 인프라 확충(place)은 기존 시설에 생활예술 기능을 보강하거나 그동안 일반에 닫혀 있던 시설을 개방하는 방식이다. 구민회관, 노인정에서 아파트, 기업 등 민간이 보유한 유휴공간에 이르기까지 공공과 개인이 보유한 시설의 기능 재설계를 통해 동아리 및 커뮤니티 시설로 재정비한다. 구축된 공간은 주 5일 상시 개방을 유도해 지역사회 생활문화의 실행 거점으로 만들어간다는 계획이다. 사업원년인 2017년에는 자치구 기반 생활문화지원센터(생활권형) 7개소, 기초적 프로그램 지원중심센터(디딤형) 43개소를 열었고, 2018년에는 민간과 공공이 보유한 유휴공간 10개소가 생활문화지원센터로 조성된다. 2017년 조성된 생활문화지원센터 50개소 중 우수 공간은 올해 연속으로 지원받을 수 있다.
생활예술매개자, 시민을 예술가로 이끌다
둘째, 문화주체로의 성장지원(people)과 관련해서는 시민의 예술적 잠재력을 발굴해 생활예술인으로 이끌어줄 지원인력(생활예술매개자, Facilitating Artist)을 육성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일정 경력의 문화예술 분야와 동아리 영역 활동가 중에서 생활예술매개자(FA)를 선발해 25개 자치구와 장르예술 분야에 파견한다. 예술 활동에 관심이 많은 시민과 보다 많은 활동을 원하는 동아리들이 역량을 펼칠 수 있도록 지역의 문화자원을 연계하고 돕는다. 2017년에는 100명의 생활예술매개자들이 선발되어 25개 자치구에서 34명, 예술 장르별로 31명이 활동했다. 올해에는 70명이 선발되어 25개 자치구에서 50명, 예술 장르별로 20명이 활동 중이다. 생활예술매개자와 25개 자치구, 그리고 그곳에서 활동하는 생활예술동아리가 이끄는 ‘자치구 생활문화 협력체계 구축사업(거버넌스25)’은 동네 구석구석에서 생활예술동아리 활동이 활발하게 진행되도록 돕는 사업이다. 각 자치구와 서울문화재단이 선발한 생활예술매개자와의 협업으로 숨어 있는 생활예술동아리를 발굴하고, 동아리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축제를 만들도록 지원한다. 지난해에는 18개 자치구가 참여하여 1,943개의 생활예술동아리를 발굴했고, ‘거버넌스25’에 참여하는 동아리 네트워크인 ‘그루넷’에 속한 동아리는 570여 개에 이르렀다.
셋째, 문화자원 연결 플랫폼 구축은 서울시 전역에서 벌어지는 동아리 활동, 이들이 참여하는 마을축제 정보, 2017년부터 발굴 중인 25개 자치구별 동아리 현황, 동아리들의 모임과 연습·발표를 위한 장소 정보 등을 제공하는 온라인 정보 포털 ‘생활문화 플랫폼’(가칭)에서 출발한다. 올해 7월에 시범공개되었다.
동네 예술가, 무대에 서다
생활문화지원단은 생활문화예술 축제를 통한 동아리들의 활동 기반 조성에도 주력하고 있다. 서울문화재단의 대표적 장르 지원사업으로 5년 차에 이른 ‘서울국제생활예술오케스트라 축제’는 국내와 국제 부문으로 구성된다. 국내 공모를 통해 선발된 국내 생활예술오케스트라 40팀은 세종문화회관에서의 정기공연과 통인시장, 수성동계곡, 옛 체부동교회, 경복궁역미술관으로 이어지는 마을예술 오케스트라 축제를 이끈다. 또한 전 세계 생활예술음악인으로 구성된 서울국제생활예술오케스트라(SICO)는 올해 공모를 통해 32개국 53명이 선발됐다. 9월 29일경 세종문화회관과 고궁에서 기획공연을 연다.
스윙, 댄스, 살사, 어반, 발레, 재즈 등 6개 장르 댄스 동아리를 대상으로 ‘광장의 무대’를 선사하는 ‘위댄스캠프’는 18세 이상 49세 이하, 3인 이상 활동하는 동아리라면 누구나 지원할 수 있다. 선정된 동아리들은 네트워킹 파티, 마스터클래스, 합동연습, 연합공연의 지원단계를 거쳐 10월 13일, 한강시민공원 물빛무대와 너른들판에서 펼쳐지는 대형 페스티벌에 참여한다. 40세 이상 80세 이하 7인 이상으로 구성된 춤단체라면 ‘서울춤자랑’에 지원할 수 있다. 서류심사를 통과한 40개 단체 중 20개 단체가 10월 9일 여의도 KBS홀 무대에 선다.
연극, 뮤지컬, 음악, 사진·영상, 미술 장르에서 활동하는 3인 이상의 동아리를 위한 ‘동아리네트워크’ 사업도 있다. 심사를 통해 선정된 200여 동아리들이 장르별로 모여 소공연과 전시를 기획하고, 전문가의 멘토링도 받을 수 있다. 10월 27일 성수동 S팩토리에서 열리는 ‘아마추어 페어’에서 기량을 발휘하고 네트워크를 할 기회를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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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희영(서울문화재단 생활문화사업팀장) 사진 서울문화재단
서병열 도봉구 생활예술활동가
도봉구 통기타 동아리 ‘처음처럼’ / ‘흥밴드 춘자네’
➊ 단순히 먹고사는 일상을 벗어나 옛 추억을 생각하며, 나의 꿈을 하나씩 이루어갈 것입니다. 과거 대학가요제에 나가는 게 꿈이었지만 당시엔 이룰 수 없었는데요, 여가 문화가 일상이 된다면 그때 배웠던 기타로 다시 연주할 수 있도록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들을 모아 동아리를 만들고 싶습니다. 비단 오프라인 활동이 아니더라도 온라인을 통해 전국의 기타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자유롭게 소통하며 좀 더 활동적이고 능동적인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➋ 요즘 온라인이 활성화되다 보니 사람들 모으기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다만 어디서 어떻게 모여야 할지, 공간 확보가 고민입니다. 물론 회비를 받아 사설 연습실을 마련하면 좋겠지만 각자의 여건과 환경이 있기에 쉽지 않습니다. 동아리 모임이 활성화되려면 그들이 편히 모여 같이 즐길 수 있는 장소가 많아야 할 것입니다. 또한 음악 동아리의 경우 고가의 장비 구입이 쉽지 않은데, 기본 장비가 구비된다면 좋을 것 같네요.
➌ 옛 추억의 실현
이재현 2018 생활예술매개자
서울문화재단 홍보 생활예술매개자(FA)
➊ 고등학교 때 밴드를 했습니다. 지금은 혼자 즐기는 수준이지만, 같이하는 밴드는 괜히 겁이 나서 못하고 있습니다. ‘내가 다시 할 수 있을까?’, ‘해도 될까?’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인데요. 해가 지나면서 무엇인가를 다시, 새롭게 시작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님을 깨닫습니다. 주 52시간 근무제 등 정책 변화에 따라 여가 생활과 생활예술이 활성화된다면 나의 삶이 좀 더 도전적으로 바뀌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➋ 공간이나 물질적인 지원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나’를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무대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꼭 공연장 같은 오프라인 장소가 아니더라도 내가 하고 있는 활동을 보여줄 수 있는 온라인 공간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서울문화재단 생활문화사업팀에서 올해 오픈 예정인 온라인 정보 포털 ‘생활문화 플랫폼’(가칭)이 기대됩니다.
➌ ‘잘~ 노는 사람’이다. 생활예술은 내가 가장 잘 즐길 수 있는 놀이라고 생각해요. 일상의 놀이처럼, 쉼이 필요하거나 여유가 있을 때마다 찾아 행하는 것이기 때문에 생활예술가란 ‘잘~ 노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소나 2018 생활예술매개자
서울문화재단 동아리 발굴 생활예술매개자(FA)
➊ 여가 시간이 늘어난다면, 저와 같은 취미(핸드메이드 카드)를 가진 사람들과 모여 즐기고 싶습니다. 평소 관심이 많은 캘리그래피, 북아트 등을 배워 지역 커뮤니티에 공헌하려는 계획도 있습니다. 엄마로, 아내로, 생활예술매개자로 매일 바쁜 하루를 살고 있는데요, 마치 연례행사처럼 드물었던 여가 시간이 제 삶의 한 부분으로 자연스럽게 들어온다면 여유를 느낄 수 있고 심리적, 육체적으로 건강해질 것 같습니다. 궁극적으로 주위에도 그 행복을 전달할 수 있을 것입니다.
➋ 다양한 생활예술을 즐길 수 있는 생활문화지원센터 조성과 더불어 생활예술 활동을 하는 개인에 대한 지원, 다양한 장르에서 활동하는 동아리 지원 등이 필요합니다. 직접적인 지원보다는 홍보지원 등 개인이 할 수 없는 일들을 재단 등 기관에서 지원해주면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➌ 삶이라는 퍼즐 판을 행복하게 채우기 위한 퍼즐 한 조각이다.
조기호 2017 SICO 단원
유니필하모닉오케스트라
➊ 최근 근로 시간이 주 52시간으로 단축되고, 최저임금이 높아지면서 여가 시간이 늘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갑자기 늘어난 여가 시간이 당황스럽기도 하고요. 아마 다른 직장인들도 비슷한 생각을 할 것입니다. 여가 시간이 생겨 취미활동을 하게 된다면 본업에 더 충실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매일 같은 시간에 출근하고 같은 일을 하면서 느끼는 직장인들의 무료함, 매너리즘을 본인들이 좋아하는 취미활동으로 극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이를 통해 더욱 생동감 있는 사회문화가 정착되고 생산성도 올라가는 선순환 구조가 형성되지 않을까요? 그 촉매가 생활예술이 될 수도 있고, 운동이 될 수도 있고, 또 다른 활동들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술은 전 세계인이 공감하는 글로벌 언어임을 감안한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그 촉매제로서 ‘생활예술’을 같이하면 좋겠습니다.
➋ 생활예술, 특히 음악은 처음 시작하기가 어렵습니다. 고가의 악기, 레슨비 등 경제적, 시간적 여유가 뒷받침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일부 회사가 복지 차원에서 레슨비를 지원하는 경우도 있지만 제한적입니다. 따라서 정부와 지자체 차원의 지원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를테면 서울형 어린이집에서 아이들의 음악교육을 적극 지원한다든지, 성인에게는 여가 생활에 쓸 수 있는 신용카드를 제공한다든지 하는 정책이 있으면 어떨까 합니다. 궁극적으로는 더 많은 사람들이 생활예술에 관심을 가지고 예술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는 정책이 필요할 것입니다.
➌ 자동차의 엔진. 자동차를 일상생활에 비유한다면, 생활예술가는 일상을 즐겁게 살아가는 동력을 만들어줍니다. 생활예술가 스스로의 삶도, 또 생활예술을 즐기는 시민들의 삶도 건강하고 활기차게 만드는 데 기여합니다.
조성주 송파구 생활예술활동가
송파구 ‘파크 앙상블’
➊ 저는 이미 10여 년 전부터 클래식 기타 연주 등 취미활동을 하며 생활예술을 실천해왔습니다. 쳇바퀴 같은 일상을 벗어나 삶의 여유를 느끼고자 클래식 기타를 시작했는데요. 이를 통해 나이, 직업, 성별에 관계없이 다양한 사람들과의 교류가 가능해졌습니다. 지금은 생활예술이 제 삶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➋ 다행히 제가 활동하고 있는 ‘파크 앙상블’은 아파트 단지 내에 연습실이 마련되어 있어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 함께 열심히 연습하고 있습니다. 다만 발표공간이 부족하다는 문제가 있는데요. 클래식 기타의 특성상 음량이 작아 야외 공연 시 음향지원이 필수입니다. 요즘 개인 음향시설이 있다고는 하나 고가라 아직 구입을 못하고 있습니다. 저희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동아리를 위해 공연할 수 있는 공간이 지원되면 좋겠습니다.
➌ 생활예술가란 마을의 활력소다. 우리와 가장 가까운 곳에서 정기적으로, 공연과 작품을 통해 이웃에게 삶의 긍정 에너지를 전하기 때문입니다.
최미나 중량구 생활예술활동가
중랑구 여성중창단 동아리 ‘아힐’
➊ 생활문화 활성화란 막연한 생각과 계획들이 구체화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배우고 싶고 해보고 싶었지만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없어 꿈처럼 생각하기만 했다면, 이제부터는 조금씩 실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가 생활을 즐길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다면 취미활동을 쉽게 시작할 수 있을 테니까요. 그동안 품었던 막연한 욕구를 실현하며 TV 시청으로만 보냈던 여가 시간을 조금 더 다채로운 색깔로 채울 수 있지 않을까요?
➋ 가장 우선적으로 갖춰야 할 것은 ‘공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안정감을 갖고 정착할 수 있는 공간이 없어 여기저기 떠돌면서 활동해야 한다면 오래 지속되기 어려울 테니까요. 함께 모일 곳이 있어야 마음이 편해지면서 그다음을 생각할 수 있더라고요. 여행 갔다가 집에 돌아오면 편안함과 안정감을 느끼는 것처럼, 지정된 공간의 유무는 동아리 활동의 지속성이나 안전성을 결정하는 데 있어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➌ 피톤치드. 저는 항상 생활예술가가 내뿜는 생기를 느낍니다. 예술가마다 생기의 정도가 조금씩 다르기는 하겠지만 생활예술에 대한 사랑과 열정만큼은 동일하지 않을까요? 생활예술가야말로 우리 생활을 정화해주고 상쾌하게 하는 피톤치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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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 오인경(서울문화재단 생활문화사업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