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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문화재단 Aug 06. 2018

증명사진 전문 스튜디오 ‘시현하다’ 김시현 작가

‘인증’ 아닌 ‘증명’

김시현 작가는 정형화된 기준의 증명사진이 아닌, 각자의 개성과 정체성을 표현하는 증명사진을 찍는다. 최근에는 1,000명의 증명사진으로 시대를 기록하는 사진전 <시현하다>(6. 15~7. 15)를 열었다.


사진전 <시현하다> 전시장 모습.



자존감 있는 사진 찍기

김시현 작가.

나만의 사진관을 갖는 것은 나의 로망이었다. 사진을 ‘업’으로 삼기 전, ‘증명사진’에 대해 깊이 고민해봤다. 증명사진이란 말 그대로 나를 증명하는 사진인데, 이제껏 증명사진은 어떻게 만들어지고 있나? 정말 그 사람을 표현하기보다 파란 배경에 세상이 정한 단정함을 강요해 촬영하고 있지 않나? 양쪽 귀와 눈썹을 드러낸 채 정면을 바라봐야 하는 증명사진 속에서 어떻게 하면 그 사람의 분위기를 최대한 끌어낼 수 있을지 고민했다. 그러던 중 증명사진 규정 속에서 ‘무배경 또는 흰 배경’이라는 문구를 발견했다. ‘아니, 흰색이면 흰색이지 무배경은 대체 뭐지? 아, 무늬가 없는 단색 배경이구나! 그럼 조명은? 조명에 대한 규정은 없네? 그러면 다양한 조명을 사용해도 되겠다!’ 생각은 점점 확장됐다. 
무엇보다 표정이나 의상, 메이크업에 대한 규정이 없으니 우리나라의 다양한 메이크업과 패션을 증명사진으로 보여주고자 했다. ‘피부는 하얗고, 입술은 빨갛고, 눈은 크고. 턱은 브이라인’이라는 우리의 보편적인 미의 기준을 깨고 그 사람만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싶었다. 누군가를 인증하는 것이 아니라 ‘증명’하는 사진으로서 가치가 있길 바랐다. 이 증명사진이 대중의 초상으로서 역할을 하고, 1,000장이 모이면 시대를 기록하는 역사가 되리라 생각하며 시작한 작업이 바로 <시현하다>이다. 
처음 작업을 시작할 때는 작업실이 없어 주말마다 조명 장비와 컴퓨터를 챙겨 렌털 스튜디오를 전전했다. 손님들을 그쪽으로 초대해 작업했는데 감사하게도 손님의 친구, 친구의 친구들이 결과물을 본 후 연락해와 일을 시작한 지 한 달 만에 남은 예약이 1분 안에 마감됐고 두 달 예약이 한 번에 끝났다. 그때 자신감을 얻어 친구 4명과 함께 첫 작업실을 열었다. 사진관이라고 하면 보통 딱딱하고 긴장되는 공간으로 느껴지지만, 나의 감성과 느낌을 전달하고 싶어 사진관 곳곳에 그림을 그려 넣고 특별하게 꾸몄다. 또 은속공예가와 타투이스트, 플로리스트 등 다양한 분야의 친구들과 함께 사용하는 공간이라 조금 더 트렌디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하지만 지하에 있는 작업실이라 여름에 초파리가 너무 많이 생겼다. 지금은 옥상에 있는 사무실로 공간을 옮겼는데, 훨씬 숨쉬기가 편해졌다. 
내 작업에서 배경색 말고도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는데, 바로 ‘자존감’이다. 내가 정의하는 자존감은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고 사랑할 줄 아는 힘이다. 다들 증명사진을 찍어본 경험이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원본을 본 사람들의 반응은 세 가지였다. ‘내가 이렇게 못생겼냐’며 경악하거나, 생각보다 무덤덤하거나, 원본도 예쁘다며 좋아하는 사람. 그중 원본에 만족하는 사람이 가장 드물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스스로를 예쁘다고 말하는 것에 엄격하고 외모에 대한 자기 검열도 심한 편이다. 
기억에 남는 손님이 있다. 백발에 눈썹이 없는 분이었다. 눈 밑에 다크서클이 있어 당연히 지우고 눈썹도 그리려고 했는데, 그렇게 하지 말라고 했다. 다크서클이 있어야 자기 같고, 눈썹은 원체 숱이 없는 탓에 어릴 적 놀림을 받았는데, 일부러 밀어버렸다고 했다. 나도 내 얼굴에 대한 콤플렉스가 정말 심했다. 예뻐 보여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렸고, 사진을 찍으면 포토샵 작업도 많이 했다. 자신의 ‘다름’을 인정하고 또 사랑하는 손님 덕에 나는 단점도 감추면 콤플렉스가 되고 드러내면 개성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세상에는 수천 가지의 색이 있다. 사람의 얼굴 또한 마찬가지다. 자신의 얼굴을 세상의 기준에 맞추지 않으면 좋겠다.




김시현 작가가 촬영한 개성 있는 증명사진들.



1,000명의 증명사진, 시대를 기록하다

증명사진은 10년 후, 이 시대를 나타내는 초상 사진들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1,000명의 증명사진을 찍는 작업을 1년의 시간 끝에 마무리하고, 지난 6월에는 한 달간 압구정 캐논 갤러리에서 초상전을 열었다. 다양한 인물들의 성향과 분위기를 색으로 표현하고, 사람들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과 증명사진에 대한 생각을 담아낸 전시다. 기존 사진관의 형식을 깬 작업실을 공개하고, 작업하는 과정을 보여주며 전시 기간에 만들어지는 사진들 또한 하나의 작품으로 공유했다. 
앞으로 사진관 문화를 더 멋지게 가꾸는 역할을 하고 싶다. 또 나와 같이 타인의 순간을 기록할 사진가들을 양성하고 싶다. 한 사람 한 사람 진지하게 기록을 남기려고 한다. 함께 성장하고 함께 늙어가는 사진가로 사람들 곁에 남고 싶다.

작업실 한쪽 벽면을 채운 증명사진들.




글·사진 제공 김시현(증명사진 전문 스튜디오 ‘시현하다’ 대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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