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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문화재단 Jan 13. 2016

개성 만점 연출가들의 무대, 막이 오른다

2015 서울연극센터 NEWStage 신진 연출가 3인


2015 서울연극센터 유망예술지원 뉴스테이지(NEWStage)의 선정작가 3인의 작품이 1월 중순부터 나란히 무대에 오른다. 박웅 연출의 <生이 死를 지배할 때>(1. 14~17)와 정주영 연출의 <#검색하지마>(1. 21~24) 그리고 박정규 연출의 <안녕, 파이어맨-강기춘은 누구인가>(1. 28~31)가 그것이다. 뚝심과 내공이 적잖이 느껴지는 3인의 연출가를 만나보았다.


뉴스테이지 공연이 열릴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앞에 세 연출가가 나란히 섰다. (왼쪽부터)정주영, 박정규, 박웅 연출


‘뉴스테이지(NEWStage)’는 서울연극센터가 2014년부터 주관해온 프로그램으로 젊은 연출가를 발굴하고 육성하는 것이 목적이다. 서울문화재단의 신진예술가 지원사업이 각 창작공간에서 직접 지원하는 방식으로 변경되면서 서울연극센터로 이관됐다. 3월 공모를 통해 데뷔 10년 이내의 신진 연출가 3명을 선정한 뒤 워크숍과 낭독회 등 작품 디벨로핑 과정을 거친 뒤 이듬해 1월 실제로 무대에 올릴 수 있다.


뉴스테이지가 2015년 두 번째로 선택한 신진 연출가 3명은 박웅, 정주영 그리고 박정규. 이들은 2016년 1월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에서 신작을 차례로 선보일 예정이다. 박웅은 14~17일 <生이 死를 지배할 때>, 정주영은 21~24일 <#검색하지마>, 박정규는 28~31일 <안녕, 파이어맨-강기춘은 누구인가>를 공연한다. 세 작품 모두 세 연출가가 직접 쓰고 연출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박웅, 현실감 넘치는 무협의 언어로


극단 파랑곰을 이끄는 박웅은 2009년 한국콘텐츠진흥원 문화콘텐츠 기획창작공모전 우수상을 수상한 <죄수의 딜레마>등 몇 편의 희곡을 꾸준히 발표했다. 특히 2015년 1월 두산아트센터가 젊은 예술가를 지원하는 프로그램인 ‘두산아트랩’에서 연극 <치킨게임>을 쓰고 연출해 주목을 받았다.


그가 2014년 서울프린지페스티벌에서 처음 공연해 ‘두산 빅보이 어워드’를 수상한 <치킨게임>은 TV 토론쇼를 무대 위에 재현한 독특한 연극이다.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을 소재로 국가정보원장과 야당 국회의원이 등장해 설전을 벌이는 설정의 이 작품은 극중 문자 투표로 승자를 가리는 인터랙티브 토론쇼 형식으로 이뤄졌다. 두산아트랩에서 호평을 받은 뒤 9월 대구 수성아트피아에서는 메르스 사태를 소재로 한 <치킨게임-에피소드2>가 공연됐다.


1996년 연세대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한 그는 대학 시절 연극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연극에 빠져들었다. 특히 2007년 학교에서 제적당한 뒤 본격적으로 연극을 만들기 시작했다. 주로 배우와 작가로 활동해온 그는 <치킨게임>으로 연출가로 데뷔했다.


“1996년 연세대 점거 농성이 벌어지는 동안 학교 근처 풍경을 보면서 제가 세상을 바꾸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했어요. 흔히 사람들이 지금보다 더 나은 세상에 살게 만드는 게 ‘정치’라고 하는데, 제게는 연극이 정치의 수단인 셈이죠. 제 연극을 본 관객들의 삶에 변화가 오길 기대하면서 희곡을 쓰고 있어요. 그동안 배우로 무대에 서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에 연출은 생각지 않고 있다가 <치킨게임> 당시 극단 소속 연출가가 외부 작품을 맡는 바람에 제가 하게 됐어요.”


이번에 뉴스테이지에서 그가 선보이는 <生이 死를 지배할 때>는 ‘대한민국 최초의 순수 무협극’을 지향하는 작품으로 정파와 사파의 치열한 다툼을 그렸다. 삶과 죽음이 비장하게 그려지는 무협물은 흔히 허황된 판타지로 인식되지만 우리가 사는 현실도 비정한 무림과 별반 다를 바가 없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제가 생각하는 순수 무협물은 협(俠)과 의(義)를 숭앙해 자신의 삶을 위해 생명을 기꺼이 내놓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중국 출신)김용의 소설들이에요. <협녀> 같은 영화가 나왔지만 우리나라에서 여전히 낯선 무협극 형식을 토대로 한 연극을 만든 것은 단순히 무협을 좋아해서라기보다는 환상을 베이스로 하면서 현실감을 주는 스토리텔링을 위해서였죠. 아마도 관객들이 <生이 死를 지배할 때>를 볼 때 처음에는 매우 낯설게 느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다양한 문파의 혈투가 우리 삶의 모습으로 서서히 치환되는 것을 경험할 수 있을 겁니다.”



정주영 연출 <#검색하지마>(1. 21~24)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
박웅 연출 <生이 死를 지배할 때>(1. 14~17)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
박정규 연출 <안녕, 파이어맨-강기춘>(1. 28~31)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



정주영, 느리지만 꾸준히 독특한 깊이로


뉴스테이지에 선정된 세 연출가 가운데 홍일점인 정주영은 한국예술종합학교(이하 한예종) 극작과 출신으로 현재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인문정보학과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다른 두 명과 비교해 연극계 현장에서 활발하게 활동한 것은 아니지만 그는 2012년 CJ 크리에이티브마인즈의 연극 부문 첫 번째 공모에 <미자에게는 미심쩍은 미소년이 있다>(연출 박혜림)를 응모해 선정되는 등 극작 활동을 꾸준히 해왔다. 그리고 이번에 발표하는 <#검색하지마>의 원형에 해당하는 <검색하지마>를 2014년 한예종 재학 당시 쓰고 연출하기도 했다.


<미자에게는 미심쩍은 미소년이 있다>는 망상에 빠져사는 주인공 미자를 통해 삶을 유희하는 방식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작품이다. 젊은 세대의 결핍과 욕망, 그 사이에서 빚어지는 고통을 다루면서도 진지함 속에 유머를 품고 있다는 호평을 받은 바 있다. 당시 심사위원과 연출가는 독특한 상상력과 분명한 취향을 지닌 미자가 작가 자신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실례로 그는 일본 대중문화에 대해 오타쿠 수준의 깊이를 가지고 있다.


“고등학교 시절 막연하게 문화예술 분야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어릴 때부터 글쓰기를 좋아했기 때문에 극작과를 선택했지만 한예종 전문사 시절과 지금의 박사과정에서는 연극학 자체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다만 그동안 느리지만 꾸준히 희곡 습작을 해왔어요. 우리 세대의 경우 영화적 문법에 익숙하지만 제 자신은 연극 무대가 가진 한계와제약, 규칙 등을 좋아하기 때문에 희곡을 쓰는 것 같아요.”


그가 선보이는 <#검색하지마>는 방과 후 교무실에서 벌어지는 젊은 여선생과 남자 고등학생 사이의 미묘한 대화를 그리고 있다. 그리고 그 대화를 통해 개인의 욕망을 드러내는 온라인 정체성, 제도와 사회적 절차에 따라 확고하게 자리매김하는 오프라인 정체성의 간극을 보여준다.


“학교를 제외한 외부에서 연출하는 건 처음이에요. 사실 그동안 무대를 만드는 것 자체에는 도통 관심이 없어서 조연출도 해본 적이 없어요. 그래서 이번 공연을 앞두고 겁먹지 않기 위해 프리프로덕션을 탄탄히 준비했어요. 좋은 스태프들과 좋은 배우들 덕분에 큰 문제없이 해왔습니다.”



박정규, 소시민의 이야기에 마음이 간다


극단 안녕팩토리를 이끄는 박정규는 뉴스테이지에 선정된 연출가 가운데 <안녕 사서들> <안녕, 파이어맨>에서 주목받지 못하는 소외계층에 대한 이야기를 밀도 있게 풀어낸 덕분이다. 그는 2014년 <안녕, 파이어맨>으로 신작희곡페스티벌에서 수상하기도 했다.


고향인 원주에서 고등학교 졸업 후 성인 게임방에서 일하던 그는 친구를 따라 뒤늦게 한예종 연극원 연출과에 입학한 남다른 과거를 가지고 있다. 바로 이런 경험들이 도서관 사서나 소방관 등 우리가 평소 잘 몰랐던 사람들의 모습에 주목하도록 만든 것으로 보인다.


“어린 시절 막연히 작가가 되고 싶다는 꿈은 있었지만 막상 전공은 왠지 멋있어 보이는 연출과를 선택했어요. 지금은 희곡이 굉장한 장르라는 것을 알지만 대학 입학한 후 한동안 희곡이 너무 어렵게 느껴졌어요. 제가 희곡을 분석하는 능력이 부족한 것 같기도 하고요. 그래서 시와 소설 수업을 많이 들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희곡 안에 소설적 내러티브와 시적 페이소스가 공존한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게다가 요즘은 연출을 하더라도 극작과 병행하는 게 필요해서 희곡을 열심히 쓰고 있습니다.”


이번에 뉴스테이지에서 선보이는 <안녕, 파이어맨-강기춘은 누구인가>는 그가 2013년부터 소방관을 소재로 쓰는 <안녕, 파이어맨> 시리즈에서 새로운 에피소드를 담았다. 주민 신고로 고양이를 구하려다 아파트 난간에서 떨어져 죽은 소방관의 이야기를 소재로 한 이 작품은 소방관과 관련한 제도적 문제를 넘어 소시민의 소소한 고충을 그렸다.


“제 작품의 배경인 가상의 도시 원척은 고향인 원주와 군 생활을 한 삼척을 조합해 만든 이름입니다. 제가 당시 의무소방원으로 근무하면서 직접 겪은 소방관들의 삶에서 소재를 가져왔어요.”



다양한 장르의 작품 만들어보고파


남다른 개성과 강렬한 자기애를 가지고 있는 세 연출가는 앞으로 연극에만 머무르지 않고 장르의 구애 없이 다양한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바람을 공통적으로 드러냈다. 사실 이들은 이미 영화 시나리오나 웹 드라마 부문의 제안을 받았거나 작업 중이다. 박정규의 경우 <안녕, 파이어맨>을 소설화 하는 작업에 나선 상태다.


2015년 10월 대학로 서울연극센터에서 <검색하지마>의 낭독공연이 있은 후 관객과의 대화에 참여한 정주영 연출.


원래 신인 아티스트 인터뷰는 정말 재미있거나 아니면 아예 재미없거나 둘 중 하나다. 기존 아티스트에게선 찾을 수 없는 재기발랄함으로 인터뷰를 흥미롭게 만드는 경우 혹은 긴장과 조심스러움 때문에 뻔한 내용만 이야기하다 끝나는 경우로 확연히 나뉘기 때문이다. 뉴스테이지에 선정된 박웅, 정주영, 박정규와의 인터뷰는 시종 유쾌했다. 박웅의 경우 연극을 만드는 한편 중개무역을 한다고 밝혀 다른 두 연출가를 깜짝 놀라게 만들기도 했다. 톡톡 튀는 개성을 가진 이들의 작품이 남다른 입담만큼 재미있을지 기대된다.



글 장지영 국민일보 기자, 공연 칼럼니스트

사진 김창제


* 이 글은 「문화+서울」 1월호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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