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치미술가 최정화
“저의 직업은 최정화입니다.” 자신을 한마디로 소개해달라고 하자 최정화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실제로 그는 설치미술가이면서 인테리어, 건축, 무대디자인, 영화미술, 연극미술 등 다양한 분야의 작업도 꾸준히 해왔는데, 1년 중 3분의 2를 해외 전시 스케줄로 보낼 만큼 해외에서 더 유명한 작가이기도하다. 내년 전시 준비로 정신없이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최정화 작가를 종로에 있는 작업실에서 만났다.
서울문화재단 직원들은 매일 최정화 작가의 작품 속에서 산다. 2006년 재단 건물을 ‘노출콘크리트’ 기법으로 리모델링하고, 2015년 말 재단 건물 앞에 <과일나무>라는 공공미술작품을 설치했기 때문이다. 건축과 인테리어를 혼자 공부해 현재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의 전체 아트디렉션을 하고 있고, 내년엔 미국 보스턴의 아시아현대미술전, 핀란드 헬싱키 키아즈마에서의 개인전, 일본 2개 도시에서의 트리엔날레 참여를 비롯해 전 세계 스케줄이 이미 꽉 짜인 상태다. 2014년 가을, 서울역을 휘황찬란하게 바꿔놓은 전시 <총천연색>(문화역서울 284, 2014. 9. 4~10. 19)이 국내 첫 개인전이었다는 사실은 그래서 좀 놀랍기도 하다.
데뷔한 지 30년 만에 ‘이제 시작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는 최정화 작가는 “누구나 예술가고, 모든 것이 예술”이란 말을 늘상 한다. 하나의 전시장 같은 그의 작업실에선, 현관 앞에 있는 슬리퍼를 신고 돌아다니다가 이 슬리퍼들이 모여 하나의 작품이 되어 있는 걸 보게 되거나, 바닥에 앉아 밥상 위에 맥주를 올려놓고 먹다가 그 상들이 하나의 탑처럼 쌓여 작품이 되는 걸 보는 게 그저 흔한 일이다. 예술가의 역할을 “세상에 균열을 내는 것”이라고 말하는 그는, 그러면서도 ‘예술의 아름다움이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을 놓지 않는다. “일상이 예술을 넘어 신(神)”인 것 같다는 최정화 작가는 자신의 작업을 관통하는 주제를 “Your heart is my art”라는 한 문장으로 표현했다.
1. 2014년 가을, 문화역서울284는 최정화 작가의 ‘총천연색’ 작품들로 반짝거렸다.
2. 최정화 작가의 설치작품 <청소하는 꽃>.
천지인(天地人)이라고 얘기하는데, 만물을 구성하는 요소는 하늘과 땅, 그리고 사람이에요. 음양오행(陰陽行)은 음과 양, 그리고 음양에서 생겨난 오행(화수목금토)으로 세상을 움직이죠. 실제로 이건 우리 일상이 얼마나 정신적인 힘에 의해 움직이는지, 또 대자연과 얼마나 관련되어 있는지의 문제랑 연결됩니다. 제가 밥상으로, 소쿠리로 계속해서 탑을 쌓고 있는데, 이런 탑들이 다 천지인이에요. 밥상탑은 밥 잘먹고 잘살게 해달라고 만든 거죠. 제 작업에서 ‘쌓는다’는 것은 제 뜻을 하늘에 전하기 위한 건데, 사실 정확히 말하면 하늘이 아니라 작품을 보는 여러분에게 제 마음을 전하려는 거예요.
예전에는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아니에요. 저는 작가라면 기독교도 공부하고, 이슬람도 공부하고, 모든 종교를 다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근데 재밌는 건 불교는 공부할수록 종교가 아닌 것 같아요. 교리도 없고, 형태도 없고, 아무것도 없어요. 그저 마음만 다스리는 거죠. 저는 제 작업을 ‘원시 바로크’라고 얘기하는데, 바로크 고딕과 태초 문화, 원시 문화가 합쳐진 게 제 작업인 것 같아요.
그 작품은 사람들이 정말 좋아했는데, 특히 청소하는 분들이 보시고 더 행복해했어요. 해외에도 많이 나갔는데, 일본・대만・중국・프랑스 파리에서도 전시했죠. 작품에 유머가 있어서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았어요. 그리고 보기에도 아름답죠. 그게 중요해요. 아름다움을 아름답게 표현하는 아름다움이 일반적인 아름다움이죠. 그런데 아름다움이 무엇일까 생각하게 하는 아름다움, 전 이게 더 중요한 것 같아요. 아름답지 않았던 게 아름답게 되고, 쓰레기가 예술로 둔갑하고.
제 작업이 한국에서 얘기하는 정통 미술이 아니라고 해요. 근데 예술에 정통-비정통이 어디 있어요. 그냥 감동시키면 되는 거지. 비주류는 항상 주류에 영향을 주죠. 그런 의미에선 비주류라고 할 수 있는데, 밖(해외)에선 주류이기도 해요. 사실 국내에서도 작업을 많이 하고 싶은데… 왜 안 시켜줄까요? (웃음) 국내와 해외의 반응은 좀 달라요. 해외에서는 있는 그대로 반응하는데, 우리는 그것마저 남의 눈치를 보죠. 현대미술은 설명서가 필요 없어요. 각자의 생각이 현대미술인 거고, 그 생각이 예술인 건데, 우리는 온갖 이유를 들며 각자의 판단조차 못하게 만들죠. 내 생각이 틀려도 되니 작품을 그냥 자기만의 방식대로 해석하면 돼요. 역사에 대한 해석도 개인마다 다른 건데, 심지어 미감(美感)에 대한 부분은 어마어마하게 다른 거죠. 근데 그 다른 미감이 생기기 위해선 다른 걸 알아야 하고, 전체를 알아야 해요. 개체의 진화가 종의 진화를 만드는 것과 같은 거죠. 한국의 문제는 ‘문화 건설국’이란 거예요. 문화는 ‘건설’로 되는 게 아니거든요. 문화는 스며들고, 스며들고, 또 스며들어서 언제 꽃이 필지 모르는 씨앗이에요. 공기 같고, 물 같고, 태양 같은 건데 그걸 어떻게 ‘건설’해요.
리모델링 작업할 때 콘셉트가 ‘건물이 줄었어요’예요. 요즘엔 ‘핫한’ 장소에 가면 노출콘크리트로 된 세련된 건물이 많이 있는데, 그때는 많지 않았어요. 이번에 재단 앞에 설치하는 작품 <과일나무>도 대중에게 상상력을 제공할 수 있는 나무예요. 처음 리모델링할 때 세웠던 조경 계획은 나뭇잎으로 건물 전체를 감싸는 거였는데, 구현하지 못해서 아쉬웠어요. 이번 작업이 약간의 위로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저는 똑같아요. 모든 예술은 다 공공성이 있어요. 저는 작품을 소유하는 1%의 관객보다 나머지 99%의 관객이 더 중요해요. 제 작업을 완성시키는 것도 사실은 관객이죠. 관객들이 가지고 온 소재들이 합쳐져서 작품이 완성되고, 관객들이 손으로 만져야 완성되는 작품도 있어요. 그 지점이 바로 제 작품이 해외에 많이 가게 되는 이유겠죠. 돈을 내고 미술관 안에 들어가야지만 볼 수 있는 게 아니라, 건물 밖에서 관객들에게 가까이 다가가기를 원하죠. 1년 중 3분의 2는 해외에 있는데, 해외 프로젝트는 2년 전, 3년 전, 아무리 빨라야 1년 전부터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 있어요. 그런데 한국에서는 두세 달 안에 작업을 진행해야 돼요. ‘공공(公共)’이라는 뜻은 시간과 공간이 함께 가는 건데, 그렇게 급하게 진행하면 ‘공공’이 될까요? 좀 더 장기적인 비전을 갖고 진행했으면 좋겠어요.
외톨이였죠. 초등학교 6년 동안 전학을 여덟 번 다녔어요. 매번 교단 앞에 서서 ‘새로 전학 온 누굽니다’ 하는 게 너무 지겨웠어요. 학교가 싫었죠. 그래서 혼자 놀고. 물건을 모으고 줍는 데는 일가견이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 하는 것들이 그때부터 형성됐겠죠. 미술을 시작한 건 고등학교 3학년 때예요. 고3 때 수학 시험을 보는데, 수학은 거의 빵점이었으니 답안지에 그냥 감독관 얼굴을 그려서 냈어요. 감독관 선생님한테 두들겨 맞으면서 교실에서 교무실까지 내려가는데, 지나가던 미술 선생님이 그 답안지를 보고 자기가 혼내겠다고 하면서 저를 데려갔어요. 그러더니 저보고 미술 해라, 그러시더라고요. 그래서 갑자기 미술을 하게 됐죠.
입시 미술은 저에게 큰 영향을 줬죠. 아주 네거티브한 방향으로, ‘저것만 안 하면 된다’. 그리고 제가 미술을 늦게 시작했기 때문에 좀 더 자유로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미술대전에서 2년 연속으로 상을 받고 나서는 작품을 다 불태웠는데, 저는 지금도 이렇게 얘기해요. 미술을 잘하려면 미술만 빼고 모든 걸 하라고요. 특히 입시 미술은 대한민국 모든 사람에게 악영향을 주죠. 교육 자체가 잘못되어 있고, 예술대학의 태도도 잘못되어 있어요. 실기(實技)의 ‘기’는 기술이거든요. 근데 예술은 기술이 아니에요. 그렇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건데, 어떤 방법으로든 생각을 전달하면 되는 거예요.
원래 일상과 예술에 차이가 없었어요. 그런데 우리가 예술을 너무 높여놓은 거죠. 그래서 전 ‘내려와라! 놀자!’ 하는 거예요. 얼마 전 호주에서 열린 아시아 퍼시픽 트리엔날레(Asia Pacific Triennale)에서 전시한 작품은 10m 높이의 천장에 줄을 늘어뜨리고 그 아래 병뚜껑을 모아놓은 거였는데, 오늘 주최 측에서 메일이 왔어요. 거기가 놀이터가 돼서 아이들이 신나게 놀고 있다는 거예요. 관객 반응이 최고라고. 저는 예술의 지위가 아티스트에 의해서 높아지는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예술은 어떤 특별한 사람의 것이 아니라, 그냥 우리 모두의 것이에요.
그럼요. 저는 예술을 건축에 비교하는데, 건축이 되기 위해선 설계 하나만 있는 게 아니라 개념설계, 기획설계, 실시설계, 그리고 시공이 있어요. 제 작업은 이 단계가 다 들어가는거죠. 첫 번째 개념을 구상하면서 개념어, 스케치, 드로잉, 재료, 계획서들이 다 들어가고, 그다음에 전문가들이 실제 설계를 해요. 사실 찰나(刹那)와 영원(永遠)은 같은 거예요. 영원은 거대하고 찰나는 작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아요. 찰나도 영원이고, 영원도 영원이에요. 제 작업은 구상이 다인 것 같아요. 그렇지만 그 구상 속에는 완성으로 가기 위한 길이 굉장히 조직적으로 짜여 있어야 하죠. 혼자 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그때 기분을 어떻게 말로 표현하겠어요. 전쟁이고, 테러죠. 한 공공기관 청사를 소재로 한 설치작업이었는데, 우리나라 전통색인 오방색 천을 사용했어요. 그 작품을 싫어할 수 있죠, 자기 생각과 다르면. 근데 철거하고 없애는 건 문제예요. ‘보기 싫다’는 이야기가 있어도 그냥 놔두고 계속 이야기를 만들어냈으면 더 좋았겠죠. 사실 프레젠테이션을 통해 준비하는 첫 번째 단계에서 다 설득됐다고 생각했어요. 제 작품을 잘 알아주는 사람도 있지만, 유독 불만인 사람들도 있죠. 그게 현실이고. 그런 다른 것들이 공존해서 균형을 잡아가는게 중요하죠. 그때 여러 언론에서 이 내용을 기사화해준 덕분에 철거되면서 더 유명해졌잖아요.
미불미불이(美不美不二)라는 말이 있어요. 아름다운 것과 아름답지 않은 것이 다르지 않다. 즉 두 개가 같은 거라는 얘기죠. 이건 결국 자신감에 대한 얘기기도 해요. 여러분에게 생활에 자신감을 가지라고 얘기해주고 싶어요. 이게 제일 중요한 얘기죠. 모두가 자신감을 가지면 이 나라가 이렇게 엉성해지지 않아요. 그리고 미술 하는 사람들에게 ‘미술만 빼고 딴 거 해라’라는 말을 자주 하는데, 이건 미술을 좁게 보지 말라는 얘기예요. 미술 안에서 미술을 보면 미술밖에 안 보이잖아요. 모든 게 예술인데, 예술이 잘 안된다고 얘기하면 안돼죠. 더 심하게 얘기하면, 서울에 살면서 예술이 안된다고 하면 그건 바보예요. 이렇게 자극적인 도시에서 말이죠.
인터뷰가 끝난 후 최정화 작가는 두 장의 사진을 보여줬다. 자신의 ‘싸부님’이라며 보여준 사진 하나는 인도 거리에서 찍은 것으로, 몸통은 있는데 다리가 없는 의자와 다리는 있는데 몸통이 없는 의자를 끈으로 묶어 하나의 의자가 된 것을 담은 사진이었다. 또 다른 한 장은 뻥튀기 트럭에 적힌 ‘뻥’이라는 글자를 찍은 사진인데, 이런 캘리그래피를 만들어내는 뻥튀기 아저씨야말로 진정한 예술가라고도 했다. 최정화 작가의 작품에서 옆집 아줌마의 웃음소리가, 땀 흘려 일하는 동네 아저씨의 거친 숨소리가 느껴진다면, 그 안에서 ‘싸부님’과 ‘뻥튀기 아저씨’를 발견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글 이정연 서울문화재단 홍보팀 차장
사진 김창제, 서울문화재단
작품사진 최정화 작가 제공
* 이 글은 「문화+서울」 1월호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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