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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문화재단 Jan 19. 2016

당분간 나오기 힘든 스타연주자, 조성진

조성진 신드롬, 클래식 음악계에 어떤 영향 미칠까

클래식 음반이 아이돌을 제치고 음반 판매 차트 1위를 기록했다. 공연 티켓은 50분 만에 매진됐다. 그의 음반을 사기 위해 음반 매장 앞에 줄을 서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2015년 쇼팽 국제 콩쿠르 우승자 조성진의 이야기다. 신드롬이 여기서 그칠지 클래식 음악계 전반에 호재로 작용할지 주목되는 시점이다.


1, 2  2015년 10월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열린 2015 쇼팽 국제콩쿠르에 출전해 열연하는 피아니스트 조성진.



실력만큼 운이 따라 완성된 ‘조성진 신드롬’


피아니스트는 실력으로 만들어져도, 스타는 운이 있어야 완성된다. 피아니스트 조성진은 적당한 예다. 지난 2015년 10월 쇼팽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한 조성진은 실력만큼이나 운이 좋았다. 제 17회 쇼팽 국제 콩쿠르는 10월 20일(폴란드 현지시각) 끝났다. 한국 시간으로는 10월 21일 수요일 오전 7시쯤 결과가 발표됐다. 요즘 뉴스는 거의 모바일로 읽힌다. 특히 출근길에 뉴스를 보는 사람이 많아, 오전은 각 언론사가 손님을 최대한 끌어모으는 때다. 이런 점에서 쇼팽 콩쿠르의 결과 발표 시점은 ‘손님 끌기’에 최적화했다.


조금 단순한 비교를 해보자.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는 한국 시간으로 5월 31일 일요일, 부조니 콩쿠르는 9월 5일 토요일 결과가 나왔다. 두 콩쿠르 모두 규모가 큰 국제 대회고 한국인들이 우승했다. 하지만 결과가 휴일에 나오는 바람에 중요하게 처리되지 못했다. 뉴스를 접한 사람은 적었다. 반면 조성진의 쇼팽 콩쿠르 우승 소식은 주중에 대형 뉴스로 연속 보도되다가, 이후에는 소프트한 주말 뉴스로 가공돼 계속 소비될 수 있었다.


발표 시점만 탁월했던 것은 아니다. 이번 쇼팽 콩쿠르는 조성진을 위해 짜인 듯했다. 그나마 유력하다 점쳐졌던 참가자들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1~3 라운드 동안 탈락하거나 스스로 출전을 포기했다. 또 쇼팽 콩쿠르 주최 측은 올해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까지 만들어 꾸준히 정보를 보냈다. 유튜브 채널을 통해서는 지체 없이 참가자들의 연주를 내보냈다. 출전자들의 인터뷰는 매끄럽게 편집돼 업로드됐다. 콩쿠르를 지켜보는 청중의 수가 증가했음은 물론이다. 우승자에 대한 관심과 흥미도도 급격히 높아졌다.


이런 환경에서 조성진은 ‘실력’이라는 마지막 무기를 활용했다. 세 번의 무대를 거쳐 진출한 마지막 라운드에서 지치기는 커녕 더 강해졌다. “앞선 본선 무대에서는 너무 긴장해 내 연주소리도 들리지 않았는데, 결선에서는 손이 저절로 연주하고 나는 그 음악을 즐기고 있었다”고 할 정도였다. 한 일본 평론가가 “프로 야구 선수가 고등학교 리그에 게임하러 온 것 같다”고 표현 했을 정도로, 그의 연주는 돋보였다. 


이 모든 것이 말 그대로 ‘맞아떨어져’ 조성진 신드롬을 만들었다. 쇼팽 콩쿠르 실황 음반을 사기 위해 사람들이 음반 매장에 줄을 섰다. 첫 발매된 3만 장은 며칠 만에 모두 소진됐다. 음반이 나오기 전부터 예약 판매량으로 가수 아이유를 제치고 1위에 오르기도 했다. 2016년 2월 예정된 국내 연주회는 티켓 판매 50분 만에 매진 사례를 치렀다. 공연기획사는 결국 같은 날 공연을 한 차례 추가했다. 새로 오픈된 티켓 2000여 장은 35분 만에 모두 팔렸다. 조성진의 음반 구매자 중 약 40%는 클래식 음반을 처음 사본 사람들이다. 공연 티켓을 산 사람들은 젊다. 인터파크에 따르면 구매자 중 42.4%가 20대, 29.4%가 30대다. 70% 이상이 2030세대라는 뜻이다.


영국의 음악 평론가 노먼 레브레히트는 “현재 가장 빠른 속도로 음반이 팔리는 피아니스트” “근 몇 십 년 동안 한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클래식 음반”이라고 조성진과 그의 음반을 소개했다. 한국에서뿐 아니다. 조성진의 음반은 미국에서 안드레아 보첼리의 음반보다 많이 팔리기도 했다.


3 꿈의 무대라 불리는 쇼팽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한 조성진이 취재진들에게 둘러쌓여 박수를 받고 있다.



클래식 스타를 수용할 국내시장 확대돼야


사실, 실력 있는 한국 연주자는 조성진뿐 아니다. 조성진을 계기로 함께 주목받는 젊은 남성 피아니스트 층만 해도 두텁다. 10년 전 쇼팽 콩쿠르에 입상한 임동민・동혁 형제가 1세대다. 그 뒤로 김선욱・윤홍천・김태형・김준희 등 연주력 좋은 피아니스트가 포진하고 있다. 범위를 넓히면 스타성 있는 연주자들을 더 많이 찾을 수 있다. 피아니스트 손열음, 바이올리니스트 클라라 주미강, 신현수, 소프라노 황수미, 현악4중주단 노부스 콰르텟 등은 대중음악계의 스타와 견줘도 뒤지지 않을 만큼 매력적인 연주자들이다.


하지만 조성진만한 대중적 클래식 스타는 이제 몇 년 내로 나오기 힘들 것이다. 실력뿐 아니라 시점・분위기까지 모두 들어맞기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관건은 운 좋게 만들어진 조성진이라는 스타를 어떻게 활용하느냐다. 어려운 문제지만 답은 단순하다. 무대를 늘리는 수밖에 없다. 조성진 이전에 이미 있었던, 그리고 앞으로 배출될 실력 있는 연주자들의 무대가 늘어나는 게 해답이다.


한 피아니스트의 푸념이 기억에 남는다. “연주를 아무리 잘해도 자국 청중이 두텁지 않으면 외국 매니지먼트들은 관심이 없어요. 공략할 만한 시장이 없는 거니까요.” 국제 콩쿠르에서 천신만고 끝에 우승하고 돌아와도 국내 연주 기회가 없다면 별 의미가 없다는 뜻이다. 따라서 음악계와 연주자들의 과제가 ‘해외 정복’인 시대는 저물어간다. 문제는 국내시장이다. 지금 국내 무대에는 젊고 새로운 청중이 확 늘었다. 이들의 구미를 잘 분석해 관심이 조성진 이외의 다른 연주자에까지 미치도록 하는 일이 남았다. 이번 쇼팽 콩쿠르에서 확인한 조성진의 ‘운’을 보면, 이런 시나리오도 마냥 어렵지만은 않을 듯하다.



글 김호정 중앙일보 문화부 클래식담당기자

사진 제공 크레디아, 프레데리크 쇼팽협회


* 이 글은 「문화+서울」 1월호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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