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을 위한 인형극이 열리는 아지트 ‘다락극장’
기억에 남는 소극장들은 대체로 지하 공간에 둥지를 틀고 있다. 좁고 가파른 계단을 빙빙 돌아 내려가는 그 길은 다른 세계로 가는 시간처럼 느껴지곤 했다. 다락극장은 이와는 다른 방식의 깊이감이 있는 곳이다. 그곳은 어른을 위한 인형극이 열리는 묘한 아지트다.
합정역 7번 출구에서 상수역 방향, 인근에 비해 비교적 한적한 독막로 6길 골목을 걷다가 의자에 앉아 물끄러미 길을 바라보는 인형을 마주친다면 거기가 바로 다락극장이다. 입구에 접한 매표소를 지나 곧 만나게 되는 벽면의 그로테스크한 인형들이 체코의 아주 작은 동네 소극장에 들어선 듯 단출하면서 독특한 느낌을 전한다. 인형 전시 공간을 지나 안으로 좀 더 들어가면 등장하는 아늑한 공연 공간. 얕은 계단식의 객석에 사람이 차고 공연이 시작되면 이곳은 비로소 ‘다락’처럼 비밀스러운 곳이 된다. 입구에서 봤던 인형이 공연에 등장하며 생명력을 얻고 관객에게 말을건다. 알 수 없는 언어지만 어찌된 일인지 모두 알아들을 수 있는 것 같다. 현실에서는 불가능해 보이는 일이 한 시간의 공연 동안 일어난달까.
다락극장이 문을 연 것은 지난 2014년 12월. 체코에서 대안연극을 공부하고 돌아온 문수호 연출가가 작업실로 사용하려고 이 공간을 얻었는데, 인형을 제작하고 극을 쓰다 보니 자연스레 공연까지 하게 됐다. 매표소, 작업실, 전시 공간과 공연 공간의 세세한 부분까지 모두 공동운영자인 프로듀서 문수영 씨와 연출가 겸 극작가인 문수호 씨, 공연의 모든 음악을 작곡하는 체코인 혼자 클라스(Honza Klas) 세 사람이 직접 다듬고 만들었다. 이들의 공연도 마찬가지. 한 시간 정도 진행되는 인형극에서 작곡, 극작과 연출, 인형 제작, 연기, 공연 중간에 삽입된 애니메이션 제작까지 두세 사람이 직접 한다.
“애니메이션은 처음 만들어봤어요. 저희가 직접 하면서 다른 재미를 찾게 된 케이스죠. 특별한 스타일을 추구하기보다는 이렇게 만들면서 점점 저희 스타일이 갖춰지는 것 같아요.”(문수호)
문수호 씨는 한국에서 무대미술을 전공하고 대안연극에 관심을 가지면서 체코에서 이를 공부하고 극단 ‘퍼즐(Puzzle)’에서 활동했다. 답이 있는 퍼즐이라기보다는 기존의 것을 해체하고 새롭게 재구성하는 의미로서의 퍼즐이라고. 그가 원하고 지금도 추구하는 것은 ‘이미지 연극’ 즉 언어가 아닌 이미지로 관객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형태의 극이다. 다락극장의 모든 공연은 체코어로 진행하지만 관객이 극을 이해하는 데 전혀 무리가 없는 것은 이미지만으로 이들의 의도가 충분히 전달되기 때문이다.
“무대미술을 공부하다 보니 연출도 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그런데 한국에서 연출을 하려면 극작 과정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더라고요. 극작을 거치지 않고도 분명 극을 이끌 방법이 있을 것 같다, 관객과 커뮤니케이션하는 다른 과정이 있을 것 같다, 고민하다 인형극의 본고장인 체코에서 대안연극을 공부하게 됐죠.”
서사가 아닌 음악과 오브제, 이미지로만 작업하고, 거창한 메시지보다는 보편적으로 겪고 공감할 수 있는 다양한 감정을 즉각적으로 전달한다. 공연이 끝나면 조용히 다가와 ‘무슨 뜻이냐’고 물어오는 관객도 많지만 “여러분이 느낀 것, 그게 전부”라고 답한다. 문수호 연출가는 관객이 많은 생각을 하기보다는 그저 머리를 쉬면서 충분히 즐기길 바란다.
“살다 보면 얼마나 스트레스가 많아요. 열심히 해도 안 되는 세상인데 공연장까지 와서 고민하게 하고 싶진 않아요. 반나절 만이라도 좋은 기분을 가져간다면 저희에게도 보탬이 되죠. 14세 이상으로 관람 연령 제한을 두는데 20~50대가 볼 것, 놀것이 10대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이에요.”
여건상 많은 관객을 수용할 수는 없지만 주말에는 회당 평균 30~40명의 관객이 극장을 찾는다. 인적이 드문 골목에 위치한 것에 비해 꽤 많은 수다. 첫 공연에는 관객이 단 한 명이었지만 1년 동안 잔잔하게 입소문을 타고 찾는 사람이 꾸준히 늘었다. 그중에는 여러 번 극장을 찾는 ‘단골’도 많고, 그래서 적극적으로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하나의 레퍼토리를 보완·완성해간다. 하나부터 열까지 쉬운 게 없어 보이지만 “핸디캡이 없으면 대안도 없다”는 게 운영진의 생각이다.
“단점을 굳이 피하진 않아요. 위치도 외지고 공간도 넓지 않아 사업장으로는 절대 부적격이지만 ‘찾아오는 과정이 재미있네’ 생각하면 위치는 장점이 되고, 저희가 제공할 수 있는 건 ‘편안한 의자’가 아니라 앉아 있는 시간을 지루하지 않게 하는 거라 거기 충실하게 되죠.”
1년 남짓한 시간 동안 금?토?일요일 정기적인 공연 스케줄을 지켜왔다. 한 공간이 대중에게 인식되는 데엔 그런 성실성이 중요하다. 극단 ‘퍼즐’은 다락극장에서의 공연 외에도 외부 행사나 해외 공연도 진행하기 때문에 정기 공연이 이들을 지치게 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이들은 ‘공연하면서 우리가 오히려 관객으로부터 큰 에너지를 얻는다’며 장난스레 웃었다. 운영 1년을 넘긴 시점에서 이들이 가진 새로운 계획은 ‘타인의 이야기를 공연 레퍼토리에 담는 것’이다. 자신들의 이야기로 극을 구성해온 이들에겐 의미가 큰 작업이다.
“공연을 결과적으로 볼 땐 전과 다르지 않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관객에게 그걸 부러 강조하고 싶지는 않아요. 늘 그렇듯이곳에서 나름의 즐거움을 얻어갈 수 있다면 그걸로 좋은 거니까요.”
·주소 서울시 마포구 독막로6길 27(합정동 360-1 1층)
·공연 시간 매주 금요일 저녁 8시, 토·일·공휴일 오후 3시, 6시
·공연 문의 및 예약 info@divadlopuzzle.cz | 070-8237-6082
·홈페이지 www.divadlopuzzle.cz
글 이아림
사진 제공 예다락극장
* 이 글은 「문화+서울」 1월호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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