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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문화재단 Jul 24. 2015

‘특별한 추억’을 새겨준 서울의 극장들

종로 ‘국제극장’, 충무로 ‘대한극장’… 옛 극장의 추억

누구나 마음 속에 간직하고 있는 ‘추억의 영화’가 있습니다. 50대 이상 중년 남성들은 극장에서 쌍절곤을 돌리는 이소룡과 <외팔이 드라곤> 시리즈의 왕우를 보고 나와 친구들과 ‘거리 대결’을 벌인 기억이 있을 겁니다. 중년 여성들도 <로마의 휴일>과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닥터 지바고> 등 고전 명작을 보며 웃고 울던 추억을 간직하고 있을 겁니다. 지금은 대형 멀티플렉스 체인이 곳곳에 있고, 다양한 영화가 매주 쏟아져 나와 영화를 보는 일이 큰 즐거움으로 느껴지지 않지만 예전에는 극장에 가기 며칠 전부터 잠을 못 이룰 정도로 설렜습니다. 극장 예매 시스템이 없던 시절에는 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 매표소 앞에 줄을 서야 했습니다. 특히 화제작이 개봉할 때는 그 줄의 길이가 매우 길었습니다. 매표소 앞에서 시작된 줄은 극장 인근 주택가까지 구불구불 이어져, 뒤쪽에 서 있는 사람들은 ‘이 줄이 극장 매표소 줄이 맞나’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였습니다. 당시에는 암표상도 많았습니다. 암표상들이 노리는 대상은 주로 데이트하는 남녀였습니다. 데이트 상대를 줄 세워놓는 게 미안한 남성들이 생색을 내기 위해 지갑을 잘 열었으니까요.


<사진1> 종로구 세종로에 있던 국제극장 (사진 제공=김천길)


원조 ‘영화 1번지’ 종로와 충무로


우리나라에 극장이 처음 들어선 것은 1910년대였습니다. 서울 종로에 우미관과 단성사가 처음 생겼고, 을지로 국도극장(개관 당시 이름은 ‘황금연예관’이었다가 광복 이후 개칭)도 그 시기에 개관했습니다. 1930년에는 충무로에 스카라극장(처음에는 ‘약초극장’이었다가 광복 후 ‘수도극장’으로 이름이 바뀌었으며 1962년에 다시 개칭)이 생겼고, 광복 후 중앙극장이 문을 열었습니다. 또 1957년에는 충무로에 명보극장도 들어섰고, 종로3가 피카디리극장과 세기극장은 1960년에 개관했습니다. 세기극장은 1979년 서울극장으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사진1>은 서울 종로구 세종로 현 광화문빌딩 자리에 있던 국제극장 전경입니다. 1956년 국제문화관으로 문을 연 이 극장은 1959년 3월 국제극장으로 이름을 바꾸고, 본격적인 영화 개봉관으로 재탄생했습니다. 개관을 앞두고 ‘근일개관(近日開館)’이라는 간판을 붙여놨네요. 당시 개관 기념작으로 앤서니 만 감독이 연출한 마리오 란자 주연의 <세레나데>가 상영됐습니다. 1,600석 규모의 이 극장에서는 <자유부인> <연산군> 등 유명 한국 영화를 비롯해 <러브스토리> <대부> <타워링> 등 대작 외화들이 관객과 만났습니다. 국제극장은 1985년 서울시의 재개발계획에 의해 헐릴 때까지 20여 년간 800여 편의 영화를 상영하며 2,00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모았습니다.


서울 중구 퇴계로에 위치한 대한극장은 1956년 1,900여 관람석을 갖추고 개관했습니다. 이 극장에서는 <벤허> <사운드 오브 뮤직> <킬링 필드> <마지막 황제> 등 주로 대작들을 상영했습니다. <사진2>는 1958년 대한극장의 모습입니다. 당시 이 극장에서는 <위성내습>이라는 SF영화를 상영했습니다. 이 영화는 잭 아널드 감독이 연출한 3D영화인데 영화 제목 앞에 ‘입체영화(立體映畵)’라고 한자 약자로 써놓았어요. 이 영화의 원제는 ‘잇 케임 프롬 아우터 스페이스(It came from Outer Space)’로 외계인이 인간을 조종한다는 내용을 담았습니다.


2000년 5월 신축 공사를 위해 잠시 문을 닫았던 이 극장은 2001년 12월 지하 1층, 지상 8층 규모의 8개 상영관을 갖춘 멀티플렉스로 재탄생했습니다.


위에 거론된 극장들은 모두 개봉관입니다. 개봉관에서 처음으로 상영된 영화는 재개봉관으로 넘어간 후, 마지막으로 한 번 들어가서 두 편을 볼 수 있는 동시상영관에서 그 ‘생명’을 마감했습니다.




<사진2> 중구 퇴계로에 위치한 대한극장의 1958년 모습. (사진 제공=김천길)



필름이 끊어지면 격려의 박수를 보내던 옛 극장의 추억


요즘 멀티플렉스 극장들은 안락한 의자와 온몸을 감싸는 음향 등 최첨단 시설을 갖췄습니다. 또 영화 화면에 맞춰 의자가 움직이고, 바람과 물이 나오는 특수 상영관도 생겼습니다. 이런 극장에서 영화를 보면 매우 편안하지만 옛날 극장처럼 추억이 쌓이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초등학교에 다니던 1970년대에 아버지, 어머니 손을 잡고 처음 극장에 간 날이 지금도 또렷하게 생각납니다. 영화 제목은 생각나지 않지만 대형 화면에서 사람들이 움직이는 것 자체가 신기했습니다. 상영 중간에 필름이 끊어져 한참을 기다리기도 했습니다. 사람들은 짜증을 내지 않고, 영사 기사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냈습니다. 영화 상영 중에도 이동 판매원이 과자와 음료수를 팔러 다녔습니다. 사이다 한 병을 사주시며 “재미있느냐”고 물으시던 어머니의 밝은 얼굴이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물론 지금 어린 세대들은 멀티플렉스가 추억의 갈피에 자리 잡겠죠. 그래서 훗날 ‘내가 어릴 때 극장이 이랬어’라고 말하며 흐뭇한 미소를 지을 겁니다.




사진 김천길 전 AP통신 기자. 1950년부터 38년 동안 서울지국 사진기자로 일하며 격동기 한국 근현대사를 생생하게 기록했다.
글 김구철 문화일보 문화부 기자. 대중문화팀장으로 영화를 담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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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문화+서울」 7월호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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