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울문화재단 Jul 27. 2015

담벼락에 색색의 숨을 불어넣는 거리의 디자이너

그래피티 아티스트 레오다브

정형화된 방식이 없다. 지켜야 할 규칙도 없다. 스프레이를 붓 삼아, 낡은 벽을 캔버스 삼아 낙서하듯 그림을 그리는 그래피티 아트는 자유와 일탈을 대변하는 ‘거리의 예술’이다. 레오다브는 어두운 골목에 형형색색의 숨을 불어넣는 그래피티 아티스트다. 그래피티 아트에 대한 편견을 넘어 하나의 독립적인 장르로, 더 많은 사람과 소통하고자 하는 그는 거리에서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
(사진 제공=레오다브)


1998년 가을, 우연인 듯 필연처럼 그래피티 아트를 처음 접하게 되었다. 힙합에 푹 빠져 상지대학교 힙합 동아리 턴테이블즈(현 마야인더 프리스타일)에서 활동하던 시절이었다. 해외의 뮤직비디오에서 그래피티를 본 선배들이 미대생이던 내게 “동아리방을 저렇게 꾸며보라”고 했다. 그래피티가 무엇인지, 어떤 재료를 가지고 그림을 그려야 하는지도 모르던 때였다. 다만 다채로운 색상 조합과 자유로운 표현 방식, 그 안에 담긴 강렬한 메시지에 이끌렸던 것 같다. 물론 그래피티 문화가 힙합과 맥을 같이한다는 점도 한몫했을 것이다. 


어쨌든 나의 첫 번째 그래피티는 페인트와 유성매직을 사용해 완성됐다. 그러곤 기념사진을 찍어 인터넷 사이트에 올렸는데, 그때부터 서서히 나를 찾아주는 사람들이 늘어 오늘날까지 오게 됐다. 그래서일까? 지금도 나는 그래피티 작업 자체가 음악처럼 느껴진다. 손끝에서 분사되는 스프레이 소리, 그 소리를 듣고 압력을 조절하는 미세한 손동작이 내게는 비트이자 음악이다.


(사진 제공=레오다브)


예술과 이야기로 거리를 채색하다


그래피티 아티스트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것은 군 제대 이후부터였다. 사실 나는 그래피티를 전문적으로 배운 적이 한 번도 없다. 그저 혼자 해외 작가들의 작품을 찾아보며 틈나는 대로 그림을 그렸다. 특히 뱅크시(Bankcy)와 매드시(MadC), 두 작가를 좋아해서 영향을 많이 받았다. 


레오다브(LEODAV)라는 태그네임을 지은 것도 이맘때쯤이다. 군 복무 중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작품집을 보고 감명받았기 때문이다. 다빈치는 다방면에서 천재적인 재능을 보였는데, 그중 그림을 그리는 재능이라도 닮아보자는 뜻에서 지은 이름이다. 한국에서는 아직 대중화되지 않은 그래피티 문화의 르네상스 시대를 열고 싶다는 의미도 담았다. 


그러고는 개인 작업, 공공장소에 그림을 그리는 벽화 작업, 그래피티를 접목한 인테리어나 디자인 작업 등을 진행해왔다. 특히 2013년부터 시작한 ‘독립운동가 스트리트 아트’가 기억에 남는다. 말 그대로 거리에 독립운동가를 그리는 프로젝트인데, 삼청동 골목의 담벼락을 시작으로 현재는 인천 등지에도 작품을 남기고 있다.


독립운동가를 그리겠다고 결심한 이유는 간단하다. 무언가 의미를 전달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담은 그래피티로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과 공감하고 싶었고, 더 많은 사람이 독립운동가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기회를 갖길 바랐다.


작품을 완성한 이후 삼청동에 다시 찾아갔을 때 내 그림 앞에서 사람들이 독립운동가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고, 사진을 찍고,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보고 기뻤던 기억이 난다. 그래피티 아트의 매력은 바로 그런 것이다. 순식간에 거리가 미술관이 되고, 그 공간을 공유하는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다는 것.



전형적이지 않은, 그래서 특별한


그래피티 아트에는 정답이 없기 때문에 아티스트마다 각자의 작업 방식이 있을 것이다. 나는 스텐실 작업을 할 때 도안에 포토샵으로 스탬프 효과를 준 뒤 출력해서 보고 그리거나, 이미지를 합성한 후 나름대로 음

영을 채워간다. 하지만 그래피티를 처음 시도하는 사람에게는 포토샵을 이용해 스탬프 효과를 주고 출력해서 잘라 쓰는 것이 좀 더 쉽다. 다 자른 스텐실 도안을 뒤집고 벽에 고정한 후, 적당한 거리(15~20cm)를

유지하고 스프레이를 뿌리는 것이다.


자기 자신의 색깔을 숨기지 말고 표현하자는 의미를 담은 나의 그래피티 스타일 ‘러브 카모(Love Camo)’의 경우 검정 스프레이를 이용해 태그네임을 써넣고, 그 안에 자유롭게 카무플라주 문양을 넣는 식으로 작업한다. 색상을 보통 마젠타, 블루, 옐로, 화이트, 블루 순으로 사용한다. 채색이 마무리되면 그러데이션으로 살짝 입체감을 주고, 태그네임 옆에 좋아하는 문구를 적으면 끝이다.


시간이 날 때마다 디지털 작업도 하는데, 얼마 전엔 빅뱅 컴백 콘서트의 ‘How Gee’ 그래피티를 디지털로 작업했다. 이처럼 그래피티 아트는 반드시 지켜야 할 규칙이나 정형화된 표현 방식이 있는 건 아니다. 자신에게 잘 맞는 방법을 찾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사진 제공=레오다브)


내 젊은 날의 기록, 그리고 우리 시대의 기록


처음 그래피티 아트를 시작할 때, 그래피티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곱지 않았다. 저항으로부터 발생한 문화이기 때문일까. 하지만 그것보다도 힘들었던 것은 그때도, 지금도 여전히 그래피티 작업을 할 수 있는 공간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압구정 터널처럼 젊은 아티스트들이 합법적으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공간이 늘어났으면 좋겠다. 그래야 우리나라에서도 키스 해링이나 바스키아 같은 멋진 아티스트들이 탄생할 수 있지 않을까.


스프레이로는 정교한 그림을 그릴 수 없을 거라는 편견 때문에 작품 의뢰를 받고 작업에 착수하려다 보류되는 경우도 왕왕 있었다. 지금은 그때보다야 조금 형편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그래피티라는 용어를 잘 모르는 사람이 더 많다.


그래피티 문화의 저변 확대를 위해 기울이는 노력 중 하나가 바로 ‘그래피티 스쿨’이다. 그래피티 스쿨에서는 아이들에게 마음껏 낙서할 수 있는 시간을 주고, 잘 그린 그림과 못 그린 그림의 구분 없이 누구나 재미있게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도록 지도한다. 표현 방식이나 도구에도 제한을 두지 않는다. 그리기를 좋아하는 아이들은 스프레이나 물감으로, 만들기를 좋아하는 아이들은 픽셀(정사각형의 아크릴판 2cm×2cm, 여섯 가지 색상)로, 뜨개질을 좋아하는 아이들은 털실로 작업한다.


향후 더 넓은 분야에, 더 깊이 파고들어 작품 활동을 펼치며 그래피티를 알리고 싶다. 그래피티는 내 젊은 날의 기록이다. 나 자신의 기록이기도 하지만, 시대에 대한 기록이기도 하다. 내 이야기뿐 아니라 우리의 이야기까지 작품에 담는 작가가 되고 싶다.


(사진 제공=레오다브)


그래피티 아티스트가 되려면?


1. 정규교육이 필요한 건 아니지만 작화 테크닉이 필요 없는 것은 아니다. 그림에 관한 기본기를 닦는 것이 첫 번째다.

2. 그래피티 아티스트는 대부분 자신의 태그네임을 사용해 작품을 남긴다. 스스로의 정체성을 표현할 수 있는 태그네임을 갖고, 자신만의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3. 사물을 다른 눈으로 바라보고, 주어진 환경과 재료를 200% 활용하는 법을 익혀야 한다. 때로는 낡은 벽의 얼룩이나 균열을 적절히 이용하고, 주변의 사물까지 작품에 녹여야 한다.



글・사진 레오다브

1998년 그래피티를 시작했다. 2013년 독립운동가 스트리트 아트를 선보여 주목받았고 2014년부터는 AOA, GDX태양, 빅뱅, 지누션, 타이거JK 등 여러 뮤지션의 뮤직비디오・앨범 재킷 그래피티를 제작해왔다. 현재 인천아시안게임 그래피티 스쿨을 이끌고 있으며 패션, 인테리어, 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 중이다.



* 이 글은 「문화+서울」 6월호에 게재되었습니다.

서울문화재단에서 발간하는 월간지 「문화+서울」은 서울에 숨어있는 문화 욕구와 정보가 원활하게 소통할 수 있도록 예술가들의 창조적 힘과 시민들의 일상을 이어주는 다리가 되고자 합니다. 「문화+서울」에 실린 글과 사진은 서울문화재단의 허락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서울문화재단의 친구가 되어주세요.

>서울문화재단 페이스북

>서울문화재단 블로그

>서울문화재단 「문화+서울」 웹진

매거진의 이전글 ‘특별한 추억’을 새겨준 서울의 극장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