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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문화재단 Jul 28. 2015

악기의 변신은 무죄

채소 오케스트라, 얼음 악기, 3D 프린터 바이올린

악기는 의외로 우리 생활과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작은 플라스틱 통에 쌀을 조금 채워 흔들면 훌륭한 셰이커가 되고 유리잔에 물을 채워 두드리면 마림바와 같은 아름다운 소리를 얻을 수도 있다. 음악가들은 훨씬 괴팍한 실험을 하기도 한다. 채소로, 얼음으로, 최근에는 3D프린터로 완전히 새로운 악기를 만들거나 기존의 악기를 새롭게 구현해내는 것이다. 한계를 실험하는 이들로 인해 음악은 더욱 다양해진다.


현재 널리 보급되고 연주되는 악기들의 재료에는 어느 정도 공통점이 있다. 공명이 잘되면서 내구성이 좋고 음이 일정하게 유지되는 재료들로 역사적으로 검증을 거친 것들이다. 여러 문화권에서 공통적으로 쓰이는 대표적인 재료는 나무일 것이다. 그 외에도 (동물보호법이 발효되기 이전에는) 동물의 신체 부위(가죽, 뼈 및 털), 극히 드문 경우지만 (주술적인 이유 등으로) 인간의 뼈, 산업혁명을 거친 후에는 플라스틱과 철 등이 악기의 재료로 활용 돼 왔다. 하지만 소리를 내는 데에 반드시 이런 재료만 사용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여러 단점과 제약이 다소 있다고 하더라도 특색 있는 색다른 재료로 악기를 제작하기도 한다.   




채소 악기로 구성된 오케스트라


‘비엔나 베지터블 오케스트라(Vienna Vegetable Orchestra)’는 채소로 만든 악기에 마이크를 달아서 공연에 사용하면서 살아 있는 악기의 소리를 표현하고자 하는 단체다. 그날 쓰일 악기를 그날 만들면서 순회공연을 여는 비엔나 베지터블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하루는 아침에 장을 보러 가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곳에서 채소를 보면서 저녁 공연에 쓸 악기를 구상하고, 이것들을 사들인 후 반나절에 걸쳐서 악기 제작에 들어간다. 


이들의 공연 레퍼토리는 단원들이 악기의 정확한 모양새와 연주법을 미리 알기 힘들기 때문에, 사전에 작곡된 곡이라고 해도 즉흥적인 요소가 일부 들어가는 유동적인 음악으로 채워진다. 실제로 이들이 연주하는 스타일은 프리재즈, 노이즈 뮤직, 전자음악 등으로 분류된다. 


기아에 허덕이는 가난한 나라도 많은 상황에서 채소를 그렇게 낭비(?)해가며 공연을 여는 것이 과연 온당한지, 의문을 품는 (안티)팬들도 없지 않지만, 이들이 소비하는 자원과 에너지는 오히려 기존의 정형화된 악기 제작에 사용되는 자원보다 규모가 적으며 이들이 환경에 미치는 악영향도 극히 미미하다고 한다. 게다가 공연이 끝나면 악기를 국으로 끓여서 관객들에게 수프를 나눠준다고 하니, 공연을 여는 비용으로 뒤풀이 음식까지 해결하는 셈이다. 공연이 진행되면 될수록 악기가 조금씩 부러지거나 닳아 없어지기도 하고, 식재료의 파편들이 무대 위로 흩날리다 보니 일반적인 음악 공연에 비해서는 다소 지저분하다는 애로사항이 있기도 하지만, 악기의 재료가 주는 신선한 생동감을 관객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목적을 위해서는 기꺼이 감수하는 부분이다. 단원 열 명으로 구성된 이 단체는 칼과 드릴 및 주방도구를 가지고 다니면서 평균 한 달에 두어 번 공연을 열며 전 세계를 누빈다.  


이글루 안에서 얼음 악기로 연주하는 ‘아이스 뮤직’ 공연 장면.


이글루에서 얼음 바이올린과 얼음 기타로 듣는 블루스 


스웨덴 북부에서는 기타리스트 찰리 섹스턴(Charlie Sexton)과 린지 베릴(Lindsey Verill)등으로 구성된 뮤지션 팀이 ‘아이스 뮤직(Ice Music)’이라는 공연을 이글루 안에서 열었는데, 이때 사용된 모든 악기는 얼음조각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기타와 베이스, 타악기 등으로 이루어진 이 밴드의 음악을 듣기 위해서 모든 관객은 두꺼운 재킷으로 중무장을 한 채 눈을 뚫고 이글루 안으로 들어가 객석에 자리를 잡아야 했다. 이들은 덴마크와 스웨덴의 가수들과 협업해 블루스와 앰비언트, 즉흥연주가 뒤섞인 열린 장르의 음악을 선보였다. 공연을 준비하기 위해 최대한 조심스럽게 악기를 제작하고는 있지만 워낙 내구성이 약하기 때문에 리허설을 하다가 악기에 손상이 가기도 한다. 실제로 바이올린 같은 경우는 공연이 시작되기도 전에 금이 간 적이 있고, 한번은 공연 전에 기타가 완전히 박살 나서 기타 대신 벤조를 들고 연주했다고 한다. 하지만 경미한 손상일 경우 입김만 조금 불어넣어도 복구가 가능하기도 하며, 영하 5도 정도로 온도를 유지하면 연주에는 큰 지장이 없다. 물론 체온으로 악기가 녹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연주자도 두꺼운 옷으로 무장해야 하고, 연주 중간중간에 드라이아이스를 동원해서 최대한 악기 주변 공기의 온도라도 낮게 유지하려고 한다. 하지만 조명과 연주 자체의 충격과 마찰 등으로 인해 온도를 영하 5도로 유지한다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은 아니어서, 대부분의 경우 공연 도중에 악기가 녹는 것이 확연히 드러난다(실제로 악기에서 고드름이 생기기도 하고 음색의 변화가 일어나기도 한다). 



3D 프린터로 스트라디바리우스를? 


3D 프린터가 개발되면서 물건을 얼마나 정교하게 복제할 수 있을지에 대한 궁금증과 실험이 끊이지 않았다. 레코드판(LP)을 복제해 재생해보기도, 악기를 복제해서 연주해보기도 했다. 스트라디바리우스를 복제해 연주 시범을 한 바이올리니스트 사이먼 휴위트 존스(Simon Hewitt Jones)의 시도에서 그러한 예를 볼 수 있다. 한편 이름은 3D 바이올린이지만 기존의 바이올린과 전혀 다른 구조와 형태를 지닌 새로운 프린터용 바이올린이 개발되기도 했다. 이는 2015년 4월 뉴욕 재비츠 센터(Javits Center)에서 열린 ‘3D 프린터 쇼’에서 선보였던 것으로, 2개의 줄과 활로 연주된다는 점은 기존의 바이올린과 동일하다. 새로운 재료와 현대의 테크놀로지를 활용해 악기를 창조 및 재탄생시키는 시도는 음악계에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으면서 우리의 고정관념을 떨쳐버리게 하는 좋은 역할을 맡고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다시금 전통적으로 이어온 견고하고 아름다운 악기들의 가치를 새삼 되새기게 하는 부작용(?) 또한 낳는 듯하다. 결국 새로운 악기가 발명되는 것에 맞춰서 그것을 연주할 인간의 능력도 개발돼야 하는데, 그 변화의 속도를 과연 인간이 따라잡을 수 있을지가 어쩌면 더 큰 변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 자료 출처
www.vegetableorchestra.org
www.wsj.com ‘In Sweden musicians play hot licks on ice instruments’
www.bbc.com ‘The wierdest musical instruments’



글 신지수 

음대 작곡과를 졸업하고 유학을 마친 후 현재 대학교에서 강의하고 있다.
현대음악 작곡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음악에 대한 글을 쓰는 것을 즐긴다.
홈페이지 www.jeesooshin.com | 블로그 jagto.tistory.com


* 이 글은 「문화+서울」 7월호에 게재되었습니다.

서울문화재단에서 발간하는 월간지 「문화+서울」은 서울에 숨어있는 문화 욕구와 정보가 원활하게 소통할 수 있도록 예술가들의 창조적 힘과 시민들의 일상을 이어주는 다리가 되고자 합니다. 「문화+서울」에 실린 글과 사진은 서울문화재단의 허락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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