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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문화재단 May 26. 2016

무대의 중심에서 움직임을 만나다

2016년 PLAY-UP 아카데미 프로그램 정규과정① <움직임의 ...

초등학교 2학년 때 자전거를 처음 배웠다. 운동신경이 부족한 데다 겁까지 많았던나는, 뒤에서 자전거를 잡아주던 아빠가 손을 놓을까 봐 전전긍긍이었다.그런 나에게 “자꾸 넘어져 봐야 혼자서도 탈 수 있는 거야”라며 격려하던 아빠의 목소리가 떠오른다.아빠의 말씀이 옳았던 건지, 몰래 손을 놓은 아빠 탓에 새 자전거에 작은 흠집이 생겼고내 무릎에는 그보다 훨씬 큰 피멍이 들었지만, 그 이후로 나는 정말 자전거를 타고 쌩쌩 달리게 되었다.



PLAY-UP 아카데미, 그게 뭐죠?

4월부터 9월까지 서울연극센터에서 진행되는 PLAY-UP 아카데미


10년도 더 넘은 이 기억은 어느새 잊혀버렸다. 그 이후로는 너무나도 자연스레 자전거를 타게 됐으니 말이다. 그런데 4월의 어느 월요일, 이미 잊은 줄 알았던 생애 최초의 감각을 다시 마주할 기회가 찾아왔다. 고재경 마임이스트의 강의로 첫 막을 올린 PLAY-UP 아카데미 수업에서였다. 


서울연극센터의 연극 창작지원 프로그램 중 하나인 PLAY-UP 아카데미는 현장에서 활동 중인 연극인들의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재교육 프로그램이다. 대학로 문화예술의 거점이자 PLAY-UP 아카데미가 진행되는 서울연극센터는 혜화역 4번 출구 앞에서 만날 수 있다. 한껏 설레는 마음으로 서울연극센터에 들어서니 이번 PLAY-UP 아카데미 수강생, 그중에서도 고재경 마임이스트의 강의를 들으러 온 연극인들이 모여 있었다. 강의 시작 10여 분 전, 수강생들이 제각각 흩어져 몸 푸는 데 열중이다. 



공간과 시간을 지배하는법 

수강생들이 중력과 몸의 중심을 느끼는 다양한 움직임에참여하고 있다


강의가 시작되자 고재경 강사는수강생들과 함께 두 팔과 두 다리를 비롯한 온몸을 이용해 궤적을 그린다. “넘어져 봐야 몸의 중심이어딘지 깨달을 수 있어요. 과감해지세요.” 이 말, 어디선가 들어본 기억이 있다. 그러고 보니 오늘 강의 주제가 ‘중력의이해와 몸의 조정’이었다. ‘중력’이라니 익숙하고도 생소한 개념이다.1분 1초도 빠짐없이 중력의 지배를 받고 있지만 나를 포함한 많은 이들에게 중력은, 중학교 때 달달 외우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러나 이 순간 아카데미룸에서만큼은 한 사람도 빼놓지 않고 자신을 끌어당기는 중력과 그로 인해 생기는 몸의 무게중심, 그 중심에서발생하는 내 몸의 방향성에 집중하고 있다.


공간을 궤적 안으로 끌어오는연습이 끝나자 뜬금없이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시작한다. 고재경 강사는 술래가 되어 참가자들에게자유롭게 움직이다 갑자기 멈추기를 주문한다. 단, 조건이있다. 멈추는 순간 자신의 중심이 어디에 실려 있는지 감지할 것. 그러다예고도 없이 10분간 멈춘 상태를 유지하기도 한다. 처음에는중심 느끼기에 온 정신을 쏟던 수강생들의 얼굴이 점점 일그러진다. “우울해지지 마세요. 지금 이 시각, 이 공간과의 싸움에서 지면 안 됩니다. 호흡을 놓지 마세요.” 수강생들의 표정에 찡그림이 늘어나자 고재경강사의 목소리가 빈틈을 후비고 들어온다. 


어린 시절 하던 수많은 놀이에서술래는 무조건 피하고 싶은 역할이었지만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만큼은 예외였다. 술래의 한 마디로온 세상이 정지하는 걸 보면 뭐라도 된 마냥 으스대는 기분이 들었다. 오늘 수업에서 수강생들은 자신의몸에 대한 술래가 되는 법을 배우고 있다. 그들이 움직임을 멈추는 순간 관찰자인 나는 폼페이 유적지에서 있는 기분을 느낀다. 



작은 거인 고재경

고재경 마임이스트가 시종일관 밝은 기운으로 공간을채운다


고재경 강사는 매우 작은체구에도 불구하고 수업을 진행하는 내내 자신의 궤적으로 아카데미룸을 가득 채운다. 강의 이름을 <움직임의 경제적 효율성>이라고 지은 이유를 물으니, “우리는 습관적으로 필요 없는 움직임을 행하곤 합니다. 무대 위에서불필요한 움직임은 잡음을 만들어 관객의 주의를 분산시키죠. 연기와 호흡을 낭비하지 않고 적재적소에 사용해야움직임의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습니다.”라고 답해주었다. 더불어그는 수업 끝에 이렇게 덧붙였다. “억지로 기쁜 연기나 슬픈 연기를 하지 마세요. 흘러간다는 것은 자연스럽다는 것입니다. 자연스럽게 흘러가면서도 필요한순간에 공간과 시간을 붙잡아 배우의 움직임으로 일상의 환영을 만들어내세요. 관객은 거기에 빠집니다.”


전문 연극인들을 대상으로하는 수업이다 보니 고재경 강사의 말이 어렵게 느껴진다. 이번 수업의 보조강사를 맡은 김정 연출가는“연극에서 자주 거론되는 illusion(환상, 환영)이라는 개념은 살아있는 배우의 몸과 소리, 호흡을 통해 관객이 상상할수 있는 모든 것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인데요. 가령 배우 혼자 서 있는 공간이 배우의 호흡으로 군중으로가득 찬 광장이 되기도, 황량한 사막이 되기도 한다는 것이에요. 이번강의의 초점은 거기에 있는 것 같아요. 관객이 나의 몸(배우의몸)을 보고 상상하게 하고 싶은 환상을 정확하게 표현하기 위해서 불필요한 움직임과 방해요소들을 최대한제거하는 것이죠.”라고 설명해주었다.


수업이 끝난 후 다 함께 둘러앉아 궁금했던 점을묻고 대답하는 시간을 가진다


3시간의 수업이 쏜살같이 흐르고 강의실을 나서는데 내가 밟고 있는 이 땅이, 나를 둘러싼 눅눅한 공기가 새삼스럽다. 걷고 또 멈추는 아주 일상적인움직임이 괜스레 어색하다. PLAY-UP 아카데미의 특별한 세 시간이 그간의 무의식을 잠시나마 초기화시킨모양이다.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을 새롭게 느끼며, 이 묘한전율을 공연 내내 지속하는 것이 배우의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PLAY-UP아카데미는 이제 막 출발선을 끊었다. 정규, 심화, 특별과정으로 나눈 11개강좌는 올해 9월까지 쭉 이어질 예정이다. 배우, 안무가, 연출가 등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이 독특하고 실용적인 강좌를진행 중이니, 익숙한 움직임과 낯설어지고 싶은, 그렇게 더욱가까워지고 싶은 이들은 서울연극센터로 향해보자.



글·사진 방원경서울문화재단 시민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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