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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문화재단 May 19. 2016

지금 대한민국의 웃픈 현실을 풍자로 끝을 보다

<귀.국.전(歸國展)> - commercial ...

남산예술센터에서 <귀.국.전(歸國展)>이란 타이틀로 총 3개의 연극을 공연했다.

4월 7일부터 4일간 공연되었던 ‘불행’은 이 시대의 ‘불행’을, 4월 14일부터 4일간 공연한 ‘그녀를 말해요’에서는 세월호 참사로 딸을 잃은 엄마들을 만났다. 그리고 4월 21일부터 24일까지 동일하게 4일간 공연되어진 ‘commercial, definitely - 마카다미아, 검열, 사과 그리고 맨스플레인’은  지금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폭력과 모순을 폭로한다.



먼저 이 연극은 제목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귀국전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뜻 그대로다. 하지만 이 연극의 창작자들은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학생들이 아니다. 그렇다면 이 제목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이들은 작은 세상(골방, 연습실, 소극장)에서 ‘돌아온’ 이들이다. 아마도 이방인의 시선으로 바라본 세상에 가까울 게다. 또 하나 ‘검열’을 피할 목적으로 사용되기도 한 걸 고려하면 지금 시대가 얼마나 창작자의 영혼을 옥죄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럼 ‘commercial, definitely’의 의미는 무엇일까. ‘확실히 상업적인’으로 번역할 수 있는 제목에서 뭔가 상업적이지 않은 냄새가 풍겨온다면 이 글을 읽은 당신은 이 연극이 '메타연극(meta theatre - 연극에 대한 

연극)'임을 눈치 챌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부제도 대충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1~2년간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사건이 떠오른다면 연극의 분위기가 감지되지 않는가. 마카다미아는 ‘땅콩 회항’으로 유명한 대기업 간부를, 검열은 정부의 문화예술계 길들이기 시도를, 맨스플레인은 man + explain의 신조어로 대체로 남자가 여자에게 잘난 체하며 아랫사람 대하듯 설명하는 것을 말한다.


여기서 잠깐 연출가의 말을 들어보자.


"올해는 예술가 검열과 국가의 사과를 피할 수 없다고 생각을 했기 때문에, 올해의 부제는 ‘마카다미아, 검열, 사과, 그리고 맨스플레인’이 되었습니다. 이 인물들은 올해도 여전히 자신의 잘못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 채로 자신을 과시할 예정인데요. 이런 인물들을 통해서 국가의 뻔뻔한 폭력과 모순의 문제들을 유머러스한 방식으로 폭로할 예정입니다."




그렇다. 이 연극은 지금 대한민국의 현실에 메스를 가하고 풍자라는 렌즈를 통해 들여다보고 있다. 정치, 사회 풍자를 넘어 연극(계)에 대한 풍자, 남산예술센터에 대한 풍자, 급기야 극 중 인물의 자기 풍자까지 그야말로 풍자의 끝을 보여준다. 자기 풍자야말로 높은 단계의 비판 형식임을 고려할 때 이 연극은 단순히 웃자고, 상업적으로 성공하자고 만든 연극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또한 이 제목과 부제는 연극을 보고 난 후 관객에게 상업적인 게 무엇인지, 비판이 무엇인지 되묻는 질문일 수도 있다. 실제로 공연 후 관객과의 대담시간에서는 이 연극이 상업적이냐고 객석에서 묻자 연출가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공연장에 들어서면 4개의 같은 의자와 스탠드 마이크, 거대한 백스크린이 보인다. 

암전 후 공연이 시작되면 백스크린으로 62 : 24 : 00 이란 숫자가 거꾸로 돌아간다. 등장인물들은 이 시간이 0이 되면 관객들이 지루해지기 시작하는 시간이라면서 연극이 끝날 거라고 말한다. 그리고 철저하게 과학적인 증거로 엄청나게 어려운 그러나 믿을 수 없는 수학 공식을 스크린으로 띄운다. 실제 이 연극의 공연시간은 85분이다.



그리곤 4명의 연기자는 각자의 캐릭터로 85분을 폭풍같이 끌어간다. 부제에서 말한 그 캐릭터들이 과장된 연기를 할 때 마다 객석에선 웃음이 터져 나왔고, 때론 한숨과 침묵이 흘렀다.   


가장 큰 웃음을 준 인물은 '마카다미아'인데 자기는 작년에도 나왔다며 인기가 있어서 또 나왔는데 도대체 얼마나 더 사과해야 하느냐며 절규에 가까운 연기를 하는 대목에선 풍자의 끝을 느낄 수 있었다. 심지어 자기는 이 캐릭터 때문에 다른 연기를 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다고 '심각'하게 고백한다. 물론 이것 또한 자기 풍자.


이들은 자신의 정당성을 끊임없이 역설할 뿐 어떤 것도 생산해내지 않는다. 형식적으로 공연예술계의 스타일리쉬해 보이는 모든 요소를 끌고 들어왔지만, 진정성이 전혀 느껴지지 않은 이들의 모습에서 실제 인물들이 겹쳐진다. 그때마다 헛(비)웃음과 함께 씁쓸함이 밀려오기도 한다. 동어반복은 사람을 웃기고 질리게 하다고 했던가. 그 무렵 연극은 끝나고 있었다.



공연 후에 이어진 대담도 흥미로웠다. 

귀국전의 관계자 3명과 연기자 1명이 나와 연극에서 말하지 못한 진솔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구자혜 연출가의 말을 들어보자.


"공연에서 보여진 4명의 공통점은, 사과하지 않거나 잘못된 방식으로 사과하는 인물들인데요. 이들을 통해 저는 대한민국이 지금 제대로 사과하지 않는 사회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슈가 되는 문제를 어떤 방법으로 전달해야 대중들에게 효과적으로 어필할 수 있을까. 분석적이고 직설적인 화법이라면 저널리즘 형식이 어울릴 것이다. 하지만 연극에서 그렇게 한다면 관객들은 불편(지루)해하고 예술적인 가치 또한 많이 떨어질 것이다, 풍자의 형식이라면 어떨까. 무릇 좋은 예술작품이란 내용이 형식 속에 침전되어 전달되는 법이다. 비판도 예술적으로 강렬하고 유머러스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이 연극을 추천한다. 아니, 지지한다. 



연출가가 어느 인터뷰에서 밝히 바 있듯이 어찌 보면 이 연극은 사실 아무것도 없는 연극일 수 있다. 즉 (상업적인)제스처만 있다고 할 수 있는데 묘하게도 그 반복되는 어떤 허망함이 관객들에게 무언가를 전달하고 있다. 지금 미디어를 통해 볼 수 있는 것은 권력자와 모리배들의 (거짓)제스처 뿐이라고.     


비판이 이 연극의 최종 목적은 아닌 것 같다. 비판은 수단일 뿐 상업적인 연극에 대한 더 크고 근본적인 생각을 하게 만든다는 점에 이 연극은 여러모로 관객에게 고민거리를 안겨준다. 이런 걸 바로 예술작품을 보고 난 후에 오는 ‘좋은 불편함(부담감)’이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어떤 모습으로 마음에 비춰지고 있을까.

“서는 데가 바뀌면 풍경도 달라지는 거야”

-드라마 "송곳"

‘천국’에서 ‘헬조선’까지 각자 다른 세상이 모여서 살고(죽이고) 있는 건 아닐까.     



이 연극(들)의 진정한 성공은 상업적인 이윤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연극을 보고 무대 밖 세상에서 연대의 끈을 잡는 것이라고 믿는다. 이 절망의 귀국전이 희망의 출국전이 되길 간절히 바란다.



글·사진 김정욱서울문화재단 시민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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