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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문화재단 May 18. 2016

유족에서 엄마로, 엄마에서 개인으로

<귀.국.전(歸國展)> ‘그녀를 말해요’


어느덧 세월호 2주기다. 아이들은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으며 진실 또한 밝혀지지 못한 채 2년째 그대로 방치되어 있다. 이 참담한 현실을 변화할 수 있는 정치가 그동안 제 역할을 하지 못 했다. 무력감에 빠진 사람들에게 또 잔인한 4월이 찾아왔다. 집단적인 상처를 위로해줄 수 있는 유일한 것이 예술밖에 없을 때, 나는 조금 서글퍼진다. 그럼에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기에 세월호를 다룬 공연 ‘그녀를 말해요’를 보러 남산예술센터로 향했다.



표를 받고 10분 전, 미리 객석으로 들어갔다. 나처럼 혼자 온 관객 몇몇만이 넓은 객석에 드문드문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나 걱정도 잠시, 공연 시간이 임박해오는 그 몇 분 안 되는 시간에 객석은 사람들로 가득해졌다. 안심했다. 세월호를 기억하려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구나.라고 생각하며.    

 


유족에서 엄마로
 
공연이 시작되면 배우 한 명이 관객석을 향해 질문을 던진다. 그런데 대답을 듣지 않고 다음 질문을 던진다. 질문이 세 개 이상 넘어가자 이것은 유족을 향한 인터뷰 질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질문 내용과 질문하는 배우의 표정은 굉장히 조심스러웠다. 세월호 사고로  잃은 자식에 대한 질문은 물론 유족의 사사로운 생활에 대한 질문도 이어졌다. 배우는 질문하고 또 질문한다. 마치 대답하는 사람이 앞에 있는 것처럼 누군가와 눈을 맞추고 고개를 돌려 또 다른 누군가와 눈을 맞췄다. 그러니까 극은 질문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다음에 등장한 배우는 자신이 인터뷰한 유족의 특징에 관해 서술한다. 단어의 선택, 목소리 톤, 발음과 억양, 손짓의 사용, 침묵의 느낌까지 관객에게 전달한다. 묘사가 너무 생생해서 마치 인터뷰이가 내 앞에 있는 것만 같았다. 듣고 있으니 이 공연은 배우들이 실제로 세월호 유족들과 인터뷰를 진행했었고, 그것을 바탕으로 극을 만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런 방식의 연극은 처음이어서 신선했다. 허구적 스토리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실제 당사자가 등장하는 다큐멘터리도 아니었다. 배우는 연극적인 구성을 통해 무대 위에서 실제 이야기를 ‘전달하는 사람’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배우는 크게 세 가지 종류의 대화를 풀어나갔다. 첫째로 질문하는 인터뷰어의 입장, 둘째로 대답하는 인터뷰이에 대한 묘사, 마지막으로 그들은 직접 유족이 되어 생생한 표정으로 실제 그들이 했을 법한 말들을 재현했다. 



세월호의 비극에 공감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집회 현장에 나가서 멀리서나마 유족을 바라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나 역시 여러 현장에서 그들을 마주쳤지만 단 한 번도 말을 걸어볼 생각은 하지 못 했다. 그들에게 위로가 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으나 어떤 말을 건네야 할지 몰랐고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녀를 말해요’는 유족에게 다가가지 못했지만 유족을 궁금해하고 위로하고 싶은 나 같은 관객을 향한 공연이었다. 배우들은 ‘대신’ 조심스러워했으며 ‘대신’ 물어봐 줬다. 그리고 유족의 사소한 버릇 하나하나까지 생생하게 묘사해줬다. 그럴수록 유족은 ‘유족’이라는 커다란 사회적 범주에서 이름을 가진 한 아이의 ‘엄마’로 점점 구체성을 띄게 되었다.



엄마에서 개인으로
 
공연이 진행될수록 세월호 유족은 유족에서 엄마로, 엄마에서 구체적인 역사를 가진 한 개인으로 정체성이 변하고 있었다. 같은 아픔을 경험했지만 각자의 성격에 따라 그것을 극복해내는 방식과 태도는 달랐다. 공연을 통해 유족과 엄마의 이미지가 점점 벗겨지고 한 ‘개인’이 남겨졌다. 세월호는 불특정 다수가 언제라도 당할 수 있는 사고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사의 충격이 너무나도 큰 나머지 우리는 희생자와 유족을 어떤 특별한 사람들이라고 괄호를 치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역사적인 사건으로부터 예술이 기능할 수 있는 지점은 여기에 있다. 온갖 추상적인 범주로 박제화된 집단의 이미지를 한 ‘개인’으로 끊임없이 호명하는 것, 다른 이들과 구분되는 ‘그녀’(혹은 그)만의 사소한 버릇과 사사로운 스토리를 진술하는 것, 그럼으로써 구체적인 성격을 띤 한 인물로 역사를 제시하는 것. 이것이 예술만이 가능한 역할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참사 2주기가 흘렀고 총선이 끝났다. 공연을 통해 만난 유족들이, 아니 엄마들이, 아니 ‘그녀’의 마음이 더 편안해지는 한 해가 되길 바란다. 



고국을 돌아보는 3개의 연극 <..>
 
‘그녀를 말해요’는  ‘불행’, ‘commercial, definitely –마카다미아, 검열, 사과, 그리고 맨스플레인’ 과 함께 <귀.국.전> 이라는 큰 주제 기획전에 포함된 작품이다. 통상적으로 ‘귀국전’이라는 타이틀은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예술가들이 작품을 선보일 때 사용되었으나 이번 ‘귀.국.전’에 참가하는 창작자들은 외국이 아닌 사적인 골방과 허름한 연습실에서 돌아와 바라본 고국에 관한 이야기다. ‘귀국전’은 한때 ‘검열’을 피하기 위해 사용하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요즘 상황을 보면 불행하게도 예술작품에 대한 ‘검열’은 ‘한때’의 이야기가 아닌 듯싶다. <귀.국.전>의 타이틀이 지금 현재 더욱 절실하고 절묘하게 다가오는 까닭이다.
 
 

글·사진 오재형서울문화재단 시민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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