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열매 맺는 기쁨 Aug 29. 2024

꿈의 예언

로맨틱 러브에 대한 융 심라학적 이해 We, 로버트 A 존슨

그녀는 전에 본 적 없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는 그녀를 잘 알지 못했지만, 어쩌다 마주칠 때 그녀는 대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던지, 입꼬리를 올려, 위아래의 고른 이가 다 보이도록 조용히 웃었다.


하지만 그날 그녀는 손 아래로 눈을 내리깔고 입을 조그맣게 모으고 있었다. 언제나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천천히 내 곁을 지나던 그녀가 아기 새처럼 어깨를 모으고 내 앞에서 머리를 숙였다. 나는 평소 탐욕스럽다며 속으로 몰래 그녀를 조롱하곤 했지만, 그 순간에는 그녀에게 연민을 느꼈다. 그녀는 진실했고, 겸손했다. 그녀는 내게 온갖 노력을 다했지만 회사가 매각되었다고 말했다. 그녀는 내가 다니는 회사의 오너였다. 나는 내가 줄을 잘 못 섰다는 사실에 실망했다. 그리고 새로운 오너가 남자임을 직감했다. 나는 그의 거대한 힘을 느꼈다. 두렵지는 않았다. 그는 압도적이나 중립적인 존재일 것이었다.


이것은 내가 몇 달 전에 꾼 꿈의 내용이다. 이 꿈은 나의 무의식이 나에게 보낸 디엠이다. 나의 무의식은 아주 은밀하게, 또 매우 친밀하고 개인적인 방식으로, 내가 앞두고 있는 나의 의식의 전환을 알리고 있었다. 주요 내용은 이랬다. '나는 의식의 다음 차원을 살게 될 것이다. 이것은 영혼의 일부를 살아내는 일이며, 고통은 불가피하다.'


내가 하는 말이 매우 난해하게 들리겠지만, 사실 이것은 매일 우리가 사는 부조리한 일상과 다를 것 없다. 사랑에 빠져서는 안 되는 사람과 사랑을 하거나, 쓰지 말아야 하는 곳에 돈을 쓰거나, 먹지 말아야 하는 음식을 먹는 아이러니가 사실인 것처럼, 나의 이 말도 안 되는 것 같은 예언도 사실 실제다.


이 꿈에 나오는 여성 오너는 나의 자아다. 관찰자는 현실을 사는 나다. 회사는 나의 영혼이다. 새로운 남성 오너는 참된 나다(융이 말한 The Self). 비 전문가이나 본인 된 입장에서 이 꿈을 보다 세밀하게 해석하자면, 나는 곧 개인적인 욕망과 환상을 위해 마음껏 운영하고 착취하던 나의 영혼을 본질적인 자신에게 돌려줄 것이다. 역동적이게 움직이던 불안한 나의 의식이 나의 영혼을 그 고귀한 자리에 돌려줌으로 깊은 바다와 같이 매우 정적이게 변할 것이다. 이토록 안정적이고 온화한 상태에 이르기 위해서는 나는 매우 의식적으로 고통을 살아내게 될 것이며, 이것은 고통스럽다는 것까지 포함하여, 뱃속에 잉태된 아이가 태어나는 것과 같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다. 삶은 내가 어디에 자리를 잡는다 해도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해 회피한 고통에 대한 정산을 요구할 것이기 때문에, 이 고통을 직면하는 것이야말로 말로 군더더기 없이 지혜로운 일일 것이다.


나는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완벽한 이상을 내면세계로 돌리고, 잔잔한 슬픔과 소소한 기쁨이 가득한 땅의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나는 신성하면서 동시에 인간적이기에 이 이상의 상실이 고통스럽다. 아끼던 물건 잃어버리듯, 좋아하던 사람과 헤어지듯, 바라던 삶을 살지 못하듯 아프다. 나는 내가 이룬 모든 것이, 신이 내게 준 편애적인 애정이라 생각했었다. 전투적으로 좋은 사람이 되고, 필사적으로 멋진 사람이 되는 것이 내 인생의 전부인 줄 알고 살았던 세월만큼 나는 두렵고 흔들린다. 하지만 운명이 나를 깨운다. 자꾸만 나를 깨우치게 하고 나를 이끈다.


이 삶은 좋고 멋진 것과는 상관이 없다. 내 안에서 만들어지는 세상의 힘으로 담백하게 밖의 삶을 사는 것이기에, 인스타그램의 세상에 비하면 초라하고 부족해 보일 수 있다. 이것은 특권을 버리고, 생산성을 낮추고, 목표를 지우는 일이기에, 머리가 아니라 몸을 굴려야 할 것이다. 아마도 겉으로 보기에는 나는 지금 보다 더 촌스럽고 투박해질 것이다.


하지만, 그리고 그렇지만 이것은 그야말로 나의 깊은 어머니와 나의 넓은 아버지를 현존하는 나로 살아내는 일이며, 나와 함께 여태껏 없던 세계를 창조하고 가꾸는 남편을 사랑하는 일이고, 지금 내 삶의 이유인, 내 아이들을 제대로 키워내는 일일 것이다.


나는 결심한다. 겉모습에 지나치게 신경 쓰지 않기를, 나를 존엄히 대하고 책임지기를, 잠시 다른 사람 만족시키기 위해 오랜 시간 정성스럽게 가꾸어 온 나의 질서와 본질을 훼손하지 않기를. 다시 한번 더 고통을 기꺼이 살아내기를.


나는 오늘 조금씩 흰머리가 나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잠시 놀랐지만, 곧 받아들이곤 머리를 쓸어 넘겼다. 나도 보통의 사람이라는 것을 흰머리 몇 올이 친절히 알려주는 것 같았다. 모두 함께 늙고 죽는 이 삶을, 형체 없는 두려움에 넘기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이혜영으로 사는 이 삶이야말로 내가 그토록 살고 싶어 하던 바로 그 삶이다.


진화는 태초부터 시작되었고 아직 진행 중이다. 그리고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다. 나는 오늘 밤 꿈꾼다. 날마다 새로운 꿈을 꾼다.




아난다캠퍼스에서 일살림 집중과정 중입니다. 의식의 전환을 앞두고 있습니다. 예언은 이루어집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