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와의 면담: 두 번째.

쿠* 십 인용 전기밥솥: 엄마를 만족시키려고 애쓰는, 착한 딸 콤플렉스

by 열매 맺는 기쁨

나는 아난다 박미옥 선생님 비롯 동반 수련자들과 함께 하루 3개의 물건을 비우고 3개의 기쁨을 찾는 공간 살림 프로그램을 진행하던 중 내 삶의 군더더기를 비우지 못하는 이유를 찾아 집안의 쓰레기들과 면담을 진행하기로 하였다. 오늘은 그 두 번째 시간이다.

포털사이트 NAVER 최저가 캡쳐 사진



가격: 네이버 최저가: 125,400원

스펙: 10인용, 에너지 효율 1등급, FULL스텐 커버, 분리형 내솥, X WALL 다이아몬드 코팅, 2중 모션 패킹, 15중 안전장치, 음성안내


개인면담 개물(物) 면담 ; 쓰레기의 변



뭐라카노 이게, 나를 쫒가낸다고?! 으이고 디 가스나야! 느그 엄마가 무슨 심정으로 나를 사서 니한테 보냈는 줄 아나?

니 엄마는 아아들 키운다고 고생하는 니가 아까워서, 한 끼라도 손수 차려서 맥이고 싶은데, 이 놈의 딸내미가 너무너무 멀리 사니까 마음만 맨날 아웠는기라. 그라는 중에 홈쇼핑에서 를 보고 이걸로 우리 딸내미 맛있는 밥 편하게 해 으면 좋겠다 싶어서 나를 딱 샀던 기다.


느그 엄마가 목 아파가면스, 겨울에는 차가운 바닷물에 손을 담궈가면스, 여름에는 하루 종일 땡볕에서 얼굴 익혀가면스. 그 고생고생을 해서 번 돈으로 나를 사서 니한테 보낸기다. 그런데 니가 나를 쫒가다고? 니는 맨날 니 생각만하제? 니가 제일 똑똑하제? 이 문디 가시나야 철 좀 들어라.


들어봐라 스나야, 느그 엄마는 그냥 니한테 뭐라도 해주고 싶었던기라, 니 어렸을 때 너무 없이 키워서 미안코, 못해 맥인 것도 미안코, 못해 입힌 것도 미안코, 그냥 부족한 지가 니 엄마인 게 미안한기라. 게 지 최선이었는데도. 느그 엄마가 너무 어진 사람이니까.


이제와 서라도 못해줬던 거 다 보상해주고 싶은데, 니는 이제 너무 멀어졌제. 느그 엄마 손에는 여전히 별 것이 없. 고만 애만 타다가 딱 나를 발견하기라. 그때 느그 엄마 눈이 반짝반짝했었다.


다 큰 딸내미가 아아 낳아서 엄마가 됐는데도 느그 엄마한테 니는 아직도 아아다. 엄마 손이 필요한 아아. 엄마 밥이 필요한 아아.


봐라, 지금은 느그 아아들이 어려서 밥을 많이 안 묵고 그래서 내처럼 큰 십인용 밥솥은 필요 없으보여도, 아아들 커봐라, 저 압력밥솥으로는 택도 없다. 저 쬐맨한걸로 누구 입에 풀칠을 해?시간 금방 간다. 아아들 금방 큰다아.


니 생각 안나나? 니도 중학생 때는 만날 김치찌개에 밥 두 그릇씩 먹었다이가, 압력 밥솥 저걸로 끼니때 마다 밥하기 청시리 귀찮다. 내가 여기 있는거를 그냥 까묵어 삐고 아아들 크면 꺼내서 써라.



사서 고생하지 말고. 는 그게 문제다 사서 고생하는 거. 좀 편하게 살아라. 남들처럼. 문디 가스나야.


우리 집 벽장 속에 한자리 차지하고 있는 십 인용 전기밥솥




1. 의견


경상도 여가 사고 경상도 여자가 쓰던 거라 그런가, 참 찰지게 조잘조잘 댄다. 욕하는 것 같이 들리지만 아니니, 오해 마시라. 저것 말하는 게 꼭 우리 외할머니 같다.


내가 저것을 사용하지 않은지 오래되었으나 품에 끼고 있던 이유는 바로 우리 엄마였다. 땀 맛, 바닷 맛 나는 돈으로 산 거니, 간단히 비울 수가 없었다. 엄마의 시간과 돈을 내가 낭비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전기밥솥이 필요 없었다. 이미 압력 밥솥 사용한 지 오래되었고, 밥 맛도 좋아서 만족하던 참이었다. 밥이 남으면 냉동실에 뒀다가 필요할 때 전자레인지에 데워 먹으며 되니 내내 따뜻하게 보관할 수 없다고 불편하진 않았다.


어느 날 엄마는 홈쇼핑에서 전기밥솥을 사서 나에게 보냈다. 나는 쓸데없는데 돈을 썼다고 택택 거리면서도 물릴 생각은 못했다. 엄마의 호의를 거절할 요령이 없었던 것이다. 엄마의 마음이 무엇인지 잘 알기에 그럴 수가 없었다. 나는 오래도록 엄마의 착한 딸이었다.


사용해 보니, 확실히 10인용 압력밥솥은 우리 살림에는 너무 컸다. 내솥이 커서 맛있게 밥을 지으려면 어느 정도 양의 쌀이 필요했기에, 밥을 많이 짓게 되고, 양이 많아서 먹는데 오래 걸리니 결국 밥이 딱딱하게 굳었다. 아이에게 그런 밥을 줄 수가 없어서 새 밥을 해줬다. 새 밥을 하니 남는 밥이 또 생겨 결국 남는 것은 버리게 되었다. 악순환의 반복이었다.


전기밥솥 자리를 많이 차지해서 고민이던 중에 갓 지은 밥이 노랬다. 고무 패킹을 갈 때가 되었던 것이다. 그때부터 사용하지 않고 아예 붙박이장 안에 넣어두었다.

처음부터 거절할 걸 그랬다. 내가 필요한 것은 내가 이것저것 따져보고 적당한 것으로 살 테니, 돈 낭비하지 말라고 분명하게 알줄걸.


엄마가 날 떠나지 않고 키워준 것만으로도 나는 감사하다고, 나는 이제 행복한데 엄마가 그러지 않을까 봐 걱정이 된다고, 나는 엄마가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엄마가 번 돈은 세상에서 가장 귀한 자신을 위해 쓰라고, 낯 간지러워도 표현할걸 그랬다.


이것은 내 삶의 군더더기인가? 아닌가?


나는 확실히 말할 수 있다. 이것은 내 삶의 군더더기이다. 하루 종일 밥이 따뜻하게 준비되어 있어야 할 이유가 없다. 무척 비효율적이다.


나는 이제 엄마를 실망시켜야 할 때임을 안다.


엄마는 나를 위해 평생을 헌신할 필요가 없다. 항상 따뜻하게 나를 품어주기 위해 준비되어 있으려고 엄마의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아도 된다. 나는 자랐고, 더 이상 어린아이가 아니다.


나는 결심한다. 이제는 정말 엄마를 실망시켜야겠다고. 엄마가 자신의 삶을 살 수 있게, 나쁜 딸이 되어야겠다고.


2. 물건과 관련된 나의 욕구

엄마의 죄책감을 덜어줌

엄마 말을 잘 들어서 엄마를 만족시키는 착한 딸이 됨



3. 물건과 관련된 나의 감정

엄마에 대한 죄책감, 미안함

착한 딸 역할에 대한 부담감


4. 우는 구체적인 이유

살림규모에 비해 용량이 너무 크다.

자리를 많이 차지한다.

색상이 마음에 안 든다.

압력밥솥으로 하는 밥이 더 맛있다.

내가 원해서 구매한 물건이 아니고 주어진 거다.


엄마에게 용기를 내서 이런저런 이유 때문에 전기밥솥을 비우겠다고 했다. 엄마는 내 설명을 듣더니, 내 말이 맞다고 했다. 마침 엄마 집에서 사용하던 게 오래되었다며, 8월에 우리 집에 올 때 가지고 가서 엄마가 사용하겠다고 했다.

엄마는 과일을 제외하고 일체 사서 보내지 않기로 약속했다. 휴~


결론: 너는 쓰레기로소이다.

(대신 우리 엄마 잘 부탁한다 ~ 문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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