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와의 면담: 세 번째

삼성 노트북 센스 Q 45: 소멸에 대한 두려움

by 열매 맺는 기쁨
포털사이트 네이버 검색을 했더니, 연식이 오래되어 싼 값에 중고거래됨을 확인할 수 있었다. 판매자의 3~4만 원 하는 금액도 판매자의 희망사항일 뿐이다.


나는 아난다 박미옥 선생님 비롯 동반 수련자들과 함께 하루 3개의 물건을 비우고 3개의 기쁨을 찾는 공간 살림 프로그램을 진행하던 중 내 삶의 군더더기를 비우지 못하는 이유를 찾아 집안의 쓰레기들과 면담을 진행하기로 하였다. 오늘은 그 세 번째 시간이다.


개인면담 개물 면담: 쓰레기의 변명


안녕? Y야 오랜만의 네 얼굴 보니 참 좋다. 넌 그저 좀 더 성숙해 보일뿐 내가 생각했던 그대로야. 10년이 넘는 세월. 우리는 참 오랫동안 서로에게 속해있었네. Y야 그거 아니? 나는 지금도 널 보면 처음 만났을 때처럼 설레어.

병원 실습 후 네가 나와 함께 밤을 새워가며 리포트 쓰던 모습이 회로에 박혀 잊히질 않는다. Y 네가 나를 만질 때 네 손끝에서 나는 토닥토닥 소리가 나는 좋았어. 너는 내게 참 다정했지, 하루도 빠짐없이 나를 만나러 와주었어. 그 시절 난 네가 있어 외롭지 않았다.


Y야 나는 아직도 그때 네가 쓴 리포트들이며, 너의 사진들을 버리지 못하고 있어. 그 시절의 것들을 고스란히 간직하면, 언제든지 그때로 돌아갈 수 있을 것만 같아서 말이야. 너와 함께 하던 그 시간들은 내 생에 가장 소중하고 빛나던 순간이었어.


Y 너의 청춘의 모든 순간들을 내가 꼽을 수 있어서 참 좋다. 건대 병원 심장내과중환자실에서 죽음 앞에 서 있던 살결 고운 할머니 이야기를 적으며 눈물 훔쳤던 것, 지원한 병원에 채용되었다는 합격 발표를 보고 소리를 꺅 지르던 것, 좋아하던 남자아이에게서 기다리던 채팅이 와서 회신할 문장을 골랐던 것.


Y 야, 나는 있잖아, 이제 그만 나를 보내려는 네가 참 밉다.

향한 내 마음은 변함없는데 넌 이렇게 식었구나.

나는 여전히 너의 흔적을 품고 사는데, 나는 네 것이었고 너는 내 것이었는데 이렇게 우리 헤어진다니 믿을 수가 없다. 나는 네게 무엇이었니? 나는 너에게 애원하며 매달리고 싶어. 제발 나를 버리지 말아 줘. 항상 나를 찾지 않아도 돼. 그냥 우리 함께 했던 그 시절이 그리울 때, 가끔씩 나를 찾아와 주면 안 될까? 다시 한번만 더 생각해 주면 안 될까? 나는 네가 없인 살 수가 없어.

벽장 속에 있던 오래된 노트북 두 개.

1. 의견


그렇다. 노트북은 내 삶의 격동기를 함께 해왔다. 컴퓨터를 택배로 기숙사로 집으로 보내다가 대학 3학년이 되어, 잦은 병원 실습을 가게 되면서 마련한 노트북이었다.


무거운 컴퓨터 대신, 가볍고 작은 노트북을 갖게 되어 참 좋았다. 과제도 영화도 채팅도, 싸이월드도 하면서, 취업 후에는 과제와 밀린 업무, 각종 자격증 공부를 하면서 나의 청춘을 함께 했다. 노트북은 그야말로 20대 나의 청춘의 총집합체인 것이다.


저 노트북을 사용하지 않게 된 것은 바이러스 때문이었다. 바이러스가 걸리자 원하지 않는 사이트가 계속 열렸다. 치료 후에는 윈도 XP 보안 서비스가 완료된다고 하였다.


더 결정적인 이유는 스마트폰이었다. 노트북이 없어도 스마트폰으로 많은 것을 할 수 있었다, 설상가상 아이를 낳아 휴직을 하면서 노트북을 켤 일이 없어졌다. 그렇게 노트북은 벽장 구석 신세가 되었다.



는 기쁨의 순간을 멈출 수 없었고, 이미 지나간 시간을 되돌릴 수도 없었다. 하루하루 늙어가는, 빛의 속도를 도저히 거스를 수 없는, 그리고 물리적인 시간이라는 거대한 장벽을 뛰어넘을 수 없는 인간의 한계를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노트북 안에는 내가 존재했다는 수많은 간접증거들이 존재했다. 그리고 내가 그런 증거들을 수집했던 이유는, 시간을 통제하고 싶은 욕망 때문이었다.


그 어떤 것으로도 나의 존재 자체를 박제할 순 없었으나, 시절이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진이나 글, 들었던 음악과 영화는 소유할 수 있었다.


나는 별 의미 없는 자료들까지 버리지 못했는데, 훗날 추억할 것도 이야깃거리도 없는 나를 마주할까 봐, 언젠가 내 삶의 의미는 무엇이었나 의문이 들까 봐, 쓸데없는 것이라 느껴 버렸더니 거기에 정말 중요한 삶의 의미가 숨어 있을까 봐 걱정스러웠기 때문이다.


비우지 못하는 것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잊혀가는 순간들을 어떻게든 부여잡고 싶은 가 있었다.

어떻게든 누군가에게 기억되고 싶은 욕망으로 들끓는 내가 보였다.


좀 더 진실에 가깝게, 핵심을 콕 집어서 말하자면 소멸의 두려움 떠는 내가 쓰레기들을 끌어안고 있었다.


나는 그렇게 소유로 존재를 입증하기 위해 존재로서 존재하지 못했다.


현재를 살기 위해 군더더기는 덜어내야겠다. 이제 나는 노트북과 이별할 수 있겠다.

죽음이 두렵다고 삶을 살아내지 못하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으니까 말이야. 안녕, 잘 가. 그동안 정말 고마웠어.


2. 물건과 관련된 나의 감정

두려움

전전긍긍

울적함


3. 물건과 관련된 나의 욕구

정서적인 안정

안도


4. 비우려는 구체적인 이유

성능이 더 좋은 노트북이 있다.

보안이 취약하여 사용하려면 업데이트가 필요하다.

중요한 자료는 선별하여하여 외장하드에 저장하면 된다.


노트북아! 너는 내가 널 만져주길, 너를 들여다보길 오랫동안 기다렸구나. 미안해. 정말. 나는 말이야 이제 너를 보내주려 해. 오랜 세월 나와 함께 해 주어 정말 고맙다.

나는 이제 너를 보내면서 인간인 나는 언젠가 죽음 앞에 서리라는 것을 인정한다. 그래, 잊힘도 자연의 순리인 것을.


결론: 너는 쓰레기로소이다.



이전 03화쓰레기와의 면담: 두 번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