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와의 면담: 네 번째

입지 않는 아이들 옷: 좋은 사람이 되어 타인에게 사랑받고자 하는 욕망

by 열매 맺는 기쁨

나는 아난다 박미옥 선생님 비롯 동반 수련자들과 함께 하루 3개의 물건을 비우고 3개의 기쁨을 찾는 공간 살림 프로그램을 진행하던 중 내 삶의 군더더기를 비우지 못하는 이유를 찾아 집안의 쓰레기들과 면담을 진행하기로 하였다. 오늘은 그 네 번째 시간이다.

박스 안에 보관 중인 아이들 옷의 일부

가격; 한벌당 1만 원~10만 원 사이.

스펙: 1살~5세 사이즈, 소재 다양, 컨디션;양호, 부피; 한 박스


개인면담 개물(物) 면담: 쓰레기의 변명


안녕하떼요. 저는 자랑스러운 메이드 인 코리아 청바지입니다. 저는 만들어진지 십 년 되었지만, 세짤이 입는 옷입니다. 여기에는 일본 말, 미국 말, 중국 말, 베트남 말하는 옷들도 많기 때문에 그중에서 한국말을 제일 잘하는 제가 이야기하겠습니다.(훌쩍)


저는 저를 입던 아이들이 커져 더 이상 입지 못하게 되어 여기 살고 있는 친구를 위해 여기까지 왔뜹니다. 그런데 이 아줌마는 내가 불편하게 생겼다며 박스에서 한 번도 꺼내 주지 않았뜹니다.(훌쩍훌쩍)

여기 있는 옷들 중에 어떤 옷뜰은 3년이 넘게 박스에 있었뜹니다.(훌쩍)



저는 진짜 엄청 멋찌게 찢어진 청바지입니다. 저는 어른들이 입는 옷 같이 생겼습니다. 저도 멋찌지만, 제 친구들도 멋찝니다. 예쁜 치마도 있뜹니다. 원피쑤도 있뜹니다. 멋쟁이 엄마들은 우리를 보면 좋아합니다. 이 아줌마는 멋쟁이가 아니라서 우리를 싫어합니다.(흐느낌)


이 아줌마는 원피쓰를 입으면 놀 때 발에 걸려 넘어진다고 합니다. 청바지를 입으면 다리를 굽히기가 힘들다고 합니다. 반바지를 입으면 넘어질 때 상처가 생긴다고 합니다. 옷은 스타일이 생명인데 예쁜 옷보다 편한 옷이 제일이라고 합니다. (분노)


이 집에 사는 애들도 이상합니다. 집에서 입던 내복을 입고 밖에 나갑니다. 입었던 옷만 계속 입씀니다. 집에 옷이 많은데 꺼내서 입질 않씀니다(의문, 분노)


우리들은 쓸데없지 않습니다. 우리들은 쓰레기가 아닙니다. 우리를 아이들에게 안 입히는 저 아줌마가 이상한 거라고 이 연사 소리 높여 두 손들고 외칩니다!!!!(분노분노 울음)


1. 의견


몇 년 전 야무진 올케가 조카들이 어릴 때 입었던 옷 중 깨끗한 것만 추려서 우리 집 아이들 입으라고 택배로 보내주었다.


요즘은 5살 된 딸아이가 공주옷만 입으려 들지만 그땐 엄마가 입히는 대로 입던 때였다. 나는 평소에 패션에 관심이 없었고, 아이들 어릴 땐 비싸고 예쁜 옷보다는 놀기 편안한 옷이 제일이라 생각해서 옷을 물려준다고 했을 때 무척 좋아했다.


그런데 막상 택배를 열어보니, 옷들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는 브랜드, 깔맞춤에 관심이 없었지만 땀 흡수가 잘되는 소재인지 활동하기 편한지는 중요하게 여겼다. 물려받은 옷들은 대부분 보기에만 좋은 옷들이었다. 올케는 나와 달리 옷을 세련되게 입는 멋쟁이였다.


집에 이미 입지 않는데 가지고 있는 옷들이 많았다. 불편해 보여서 못 입히고 쌓아둔 빈티지 원피스가 이미 집에 한 박스 있었는데 올케가 보내준 옷까지 더하게 된 것이었다.


입지 않는 건 누굴 나눠주거나 버리고 싶었으나 남동생네가 셋째 계획이 있다 하여 함부로 비울 수가 없었다. 셋째가 생기면 멀끔한 옷은 다시 물려줘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안 입는 옷, 입는 옷, 입을 옷을 포함하니 집 아이들 옷으로 가득 차서 폭탄처럼 터질 지경이었다.


사실 올케는 내게 옷을 잘 맡아두었다가 자신이 필요해지면 도로 보내달라는 부탁을 하지 않았다. 그저 지레짐작으로 내가 가지고 있다가 필요할 때 센스 있게 보내주면 올케가 좋아하겠지 하고 생각했던 것이다.


올케와 남동생을 배려하며 셋째 조카가 입을 수도 있는 옷들을 우리 집에 쌓아두는 것, 그들의 편의를 위해 내 삶을 양보하고 포기하는 것은 내가 착하고 좋은 사람이기 때문일까. 그렇다면 나는 왜 착한 사람인 걸까.


나는 오래도록 다른 사람을 위해 나를 뒷전으로 미루는 것이 너무 익숙했다. 타인에게 사랑받고자 하는 욕망, 적어도 미움받고 싶지 않다는 그 욕망 때문이었다.


나는 왜 사랑받기를 원했을까. 아마도 나의 본능이 말했으리라 가정 불화 속에서 엄마가 나를 떠나지 않으려면 나는 필사적이게 사랑스러워져야 해. 잠시 집을 나간 엄마를 대신해서 나를 돌보는 친척들에게 미움받지 않으려면 착해져야 해. 안정적인 돌봄을 받지 못한 어릴 때의 나는 다른 사람들의 배려를 받아야 생존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으리라


한때 그것은 굵은 비와 사나운 태풍으로부터 나를 보호해줄 단단한 오두막이었지만, 어른이 된 지금의 나에겐 너무 낡아 무너지기 직전의 으스스한 폐가가 되어버렸다.


니는 나에게 진실하지 못했다. 그동안 나는 나를 기만했다. '이런 짐 더미에서 질식할 것만 같아도 괜찮아,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고마워하잖아. 사랑받고 있잖아' 하면서.


나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정갈한 삶에 대한 나의 필요와 욕구를 간단히 무시했다. 이런 태도는 나의 삶뿐만 아니라 우리 가족의 삶 그리고 우리 가족의 공간 일부를 포기하게 만들었다.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공간과 가정이라는 본질을 흐렸다.


보시다시피 이것은 내 삶의 군더더기다.

나는 이제 나의 삶을 어지럽히는 군더더기는 비우고 지금이라도 나의 삶을 살이야겠다.

나를 외면하면서까지 다른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으려는 나를 비우고 기꺼이 미움받겠다.


나는 나의 공간에서의 온전한 쉼을 통해 삶에 대한 영감을 얻고, 내가 살아갈 밖의 세상으로 성큼성큼 나아갈 힘을 재충전하고 싶다. 나는 우리의 공간에서 가족들과 살 비비며 마음껏 사랑을 주고받는 시간을 보내어, 이곳에는 위로가 있음을 알고, 때때로 아니 사실 자주, 힘겹고 절망스럽던 삶에서 철벅철벅 돌아온 날, 이 따뜻하고 아늑한 피난처에 안겨 그것에 맞서 싸울 용기를 얻고 싶다. 나는 정말로 이곳의 군더더기를 비워 나의 성소, 우리 가족의 성소를 간절히 회복하고 싶다.


막내 조카가 태어난 지 백일이 되었다. 나는 아기 용품 몇 개를 올케에게 보내면서 올케가 보낸 옷 중 안 입는 옷들이 있는데 나중에 막내에게 입힐 거면 같이 보내겠다고 했다.


올케는 두 형제가 입던 거라 셋째인 딸에겐 안 입을 것 같지만 옷을 보내면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겠으니 택배로 보내라며 흔쾌히 말했다.


아 맞다. 우리 올케는 멋쟁이 었지.

아이쿠야! 귀한 막둥이 딸에게 두 형제가 입던 보이쉬한 옷을 입힐 사람이 아니었는데 나는 도움이 되겠다며 미련스럽게 그걸 이고 지고 있구나!

남동생 집에 보낼 아이 옷과 용품들을 박스 포장했다.

2. 물건과 관련된 감정

고민스러운

곤란한

골치 아픈

불편한

갑갑한



3. 물건과 관련된 욕구

타인에게 사랑받고 싶음



누군가의 추억 한 귀퉁이를 차지했을 옷들아. 비록 인연이 닿지 않아 쓰임 받지 않고 가지만, 우리 아이들을 위해 이곳에 머물다 가주어 고맙다. 좋은 주인들 만나 알뜰히 쓰임 받으렴! 나는 이제 너희들에게 이별을 고한다. 안녕히!


결론: 너는 쓰레기로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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