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와의 면담: 다섯 번째

크래프터 C50 CSR 클래식 기타: 문화를 향유하는 우아한 삶

by 열매 맺는 기쁨

나는 아난다 박미옥 선생님 비롯 동반 수련자들과 함께 하루 3개의 물건을 비우고 3개의 기쁨을 찾는 공간 살림 프로그램을 진행하던 중 내 삶의 군더더기를 비우지 못하는 이유를 찾아 집안의 쓰레기들과 면담을 진행하기로 하였다. 오늘은 그 다섯 번째 시간이다.

포털사이트 네@버에서 검색한 최저가

가격: 최저가 560,000원

스펙: 상판-시더원목, 측판/후판:로즈우드, 넥: 마호가니, 인레이: 목재, 헤드머신: 클래식 크롬 머신헤드, 바디 피니쉬: 무광




개인면담 개물(物) 면담: 쓰레기의 변명


네가 나를 만질 때 나는 왜 내가 지금 여기에 있는지 알 것만 같았다. 나는 온전히 너에게 나를 맡기고 나의 온 감각에 집중했다. 그제야 나도, 너도, 세상도 보였다.

수줍고 서투른 너도 좋았다. 어쨌든 너는 나를 숨김없이 나를 사랑했으므로 시간이 흐른 어느 날 농익은 너와 내가 언젠가 함께 온 몸으로 능숙하고 아름다운 노래를 함께 부르리라 믿었다.


너의 왼쪽 무릎에 나를 앉히고 나를 품에 안고 손가락으로 정확한 곳을 찾아 짚고 쓸어내리던 너를 기억한다. 나는 그때 너의 손길에 일일이 반응하며 흥얼거리다가 소리를 내 지르다가 멈추었다가 나지막이 속삭이다가 고요한 평화 속으로 사그라들곤 했다.


그때 혹시 너도 언젠가 내가 느꼈던 것을 너도 느꼈을까? 손가락의 움직임만으로 절정에 오른 카타르시스와 무지개 빛 환희. 나를 공명하며 울려 퍼지던 조화로운 음들과 오랫동안 떨리던 나의 온 육체. 어머니의 자궁 속처럼 나를 포위하던 잔잔한 만족감.


언젠가 너와 나는 닳고 낡고 늙겠지, 모든 감각의 끝이 결국 다다를 곳은 소멸 아니던가.


그래, 운명과 세월을 거스를 수 없다면 나는 빛나는 낭만 속에서 빛바래져 가리라, 삶의 시작처럼 삶의 마지막도 온몸으로 담담히 맞이하리라. 너의 손길에 떨리던 몸으로 잉태한 그날의 음악처럼 공기와 함께 속삭이듯 삶에서 멀어지리라.


잊히는 열정이지만, 그럼에도 나는 참 행복했다. 너도 그랬지?


삼 개월의 공간 살림 세리머니에 동참하면서 드디어 대피공간 안의 물건들을 비웠다. 대피공간에 기타 하나 덩그러니.


1. 의견

어릴 때 잠시 피아노를 배운 적 있었다. 음악적 재능이 없었던 탓인지, 나보다 늦게 학원을 다닌 친구가 먼저 콩쿠르 대회에 나갈 때 나는 겨우 체르니에 입문했다. 음악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탓에 대학 다닐 때 짬을 내어 다시 피아노 학원을 등록했다. 간단한 코드 반주법을 배운 후 소나티네를 치다 말고 취직과 상관없는 악기 연주에 에너지를 나누는 것이 사치처럼 느껴져서 피아노는 그만 포기해 버렸다.


다시 악기 배우기를 도전했던 때는 직장생활을 시작한 지 3년째 접어든 해였는데. 그때 당시 나는 미국 간호사 면허증을 따기 위해 공부를 시작했고 1년간의 정신보건간호사 2급 과정을 시작하던 참이었다. 연주하는 삶에 대한 선망을 버릴 수 없었던 탓에 바쁜 시간을 쪼개서 욕심을 부려가며 기타 학원도 등록했다. 그렇게 나는 낙원상가로 가서 어설픈 코드를 잡아보며 클래식 기타를 구매했다. 나의 첫사랑. 나의 첫 악기.


나는 1년 동안의 강습을 받은 후 로망스 연주를 끝으로 결혼 준비와 미국 간호사 시험 준비에 바빠져서 학원을 관뒀다. 그렇게 나는 기타와 멀어졌고 첫째 아이 출산 후부터는 일 년에 서너 번 잠시 꺼내볼 뿐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왜 이 기타를 비우지 못하고 있을까? 나는 왜 이 기타를 소유하고 싶은 걸까?


이 기타는 가진 것 적은 내가 습관적으로 그러했듯, 경제성을 따져서 차선의 것으로 구매한 것이 아니었다. 이것은 나의 최선이었다. 내가 번 돈으로 처음 가져보는 사치품이었다. 마음에 꼭 드는 물건이어서 부족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이것은 내게 그저 완벽했다. 아이들은 좀 더 크고 내 시간이 생기면, 다시 연주를 시작할 테니 저 완벽하게 나를 흡족시키는 것을 비우지 말자 생각했다.


독서가 주는 낭만과는 달리 이것은 좀 더 적극적인 방법으로 아름다움이 주는 기쁨에 닿았다. 이러한 능동성을 통해 나는 확실하게 행복했다.



악기 연주는, 내가 바라고 마지않던 좀 더 우아한 세계로 나를 인도하는 듯했는데, 이것은 내게 실용성이나 경제적 가치 또는 생계와 상관없이 그저 즐거워서 하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내게 너그러운 마음으로 악기라는 선물을 주고 어린 시절 느꼈던 문화에 대한 결핍과 콤플렉스를 치유했다. 나는 어린 내게 말했다.


" 아이야 음악은 너를 아름다운 곳으로 데려가지, 또 다른 세계가 열리는 거란다. 다행스러운 것은 이건 일 년에 한 번 있는 축제가 아니라, 일상이어서 네가 원하면 언제든지 그곳에 다다를 수 있어. 언제든지 말이야."



좀 더 아름다운 삶을 위한 나의 욕망, 삶과 죽음 사이의 찰나에 노을빛처럼 낭만적이게 존재하고 싶다는 소망, 그리고 동물적 삶의 수준을 넘어서 문화를 향유하는 어떤 세계에 어떻게든 가까워질 수 있다는 어리석은 믿음이 나를 저 흔들리는 여섯 개의 선으로 인도했다. 그리고 나는 아직 이것을 포기할 수가 없다.

아마도 내가 진정한 의미의 미니멀리스트였다면, 몇 년간 연주된 적 없는 클래식 기타를 대피공간에 놓아두는 일은 하지 않았으리라. 적게 소유하며 의미 있는 삶을 사는 강박이 역설적이게 내 인생을 좀 퍽퍽하게 한다면 작은 어리석음 하나쯤 내 공간에 들여놓겠다. 그래, 나는 좀 기만적인 미니멀 리스트, 또는 어리석은 옵티멀 리스트, 바꿔 말하면 꽤 낭만적인 옵티멀 리스트가 되리라. 이것이 진실한 나이다.


이것이 나의 한계라면 겸허히 받아들이겠다. 나는 나에게 가장 친절하고 편안한 방식으로 비움을 실천하겠다. 그리고 진실한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겠다.



2. 물건과 관련된 감정

흡족함

기꺼운

축복받은

더없이 행복함

황홀함

흥분이 됨

기쁨에 겨움

기분이 들뜸

고무됨

만족스러움



3. 물건과 관련된 욕구

창조성 소통 정서적인 안정, 영감, 휴식, 재미


그래, 나도 기억해. 내 배와 가슴에 닿던 너의 촉감을. 네가 내던 음에 맞춰 속삭이듯 노래 부르던 그날을. 그리고 내 마음에 번지던 작은 기쁨의 순간을! 나도 네가 그리워! 그동안 외로웠지? 정말 미안! 나를 조금만 더 기다려줄래?


결론: 너는 쓰레기가 아니로소이다!

이전 05화쓰레기와의 면담: 네 번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