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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매 맺는 기쁨 Sep 12. 2021

이 모든 게 재능 때문이라니!

느린 독서회 파이널 에세이: 인디 워커 이제 나를 위해 일합니다.


나는 학교에서도 교회에서도 직장에서도,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금발의 웨이터가 서빙한 빨간 김치처럼 주변과 어울리지 못한 채 한참을 겉도는 존재였다.

언뜻 보기엔 무난하게 잘 지내는 것처럼 보였지만 어떻게든 적응하고 생존하고자 한 온갖 노력의 산물이었을 뿐, 깊숙이 들여다보면 나는 꽤, 자주 정신적으로 소외된 상태였다.

학교에서는 드라마니 연예인이니 하는 친구들의 대화가 소모적이고 무가치하게 느껴져서 열의를 갖고 참여할 수가 없었고, 교회에서는 신앙이라던지 믿음이라던지에 회의감을 느낄 때, 의심이나 질문 없이 신을 섬기는 신도들 앞에서 변절자가 아닌척하느라 진땀을 뺐다.

직장에서는 마음이 아파 입원한 환자에게 냉담히 대하는 몇몇 동료들을 보면서 정신과 간호사는 친절하고 따뜻한 태도가 업무라고 가르치고 싶은 마음을 애써 감춰야 했다.

내가 가진 신념을 굽힐 수 없는 나는 어디에도 진심으로 속할 수가 없었고, 이런 나를 나 스스로도 참 이상한 사람, 이질적인 존재라 여겼다. 나는 나를 속일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 때문에 나는 좀 고달프고 외로웠다. '그냥 좀 대충 살지. 남들 하는 만큼, 남들 사는 만큼.' 하는 마음이 불쑥 올라왔다가 완고하고 도도한 자아를 이기지 못하고 사그라들곤 했다. 여기까지 읽으면 내가 잔다르크처럼 진리의 수호자인 줄 알겠지만 물론 아니다. 나는 속물적이고 계산적일 때도, 나를 속이며 적당히 살 때도 많았다. 하지만 내가 설득당한 확고한 신념의 문제만큼은 양보할 수가 없었다.

학교에서도 교회에서도 이런 '이상한 나'는 견딜만했다. 내 마음을 알아주는 친구 한두 명은 꼭 있었고, 진리에 의문을 가지긴 했으나 성도의 의무는 져버리지 않았으므로. 하지만 직장에서는 좀 달랐다.

직장에서는 '이상한 나'가 '미운 나'로 격하될 때가 있었다. 날개 잃은 천사처럼 나라는 우주의 바닥까지 추락할 때는 그 충격이 아주 커서 내 존재가 휘청할 정도였다. 돈을 받고 하는 일이라 싫은 일 좋은 일을 가려할 수가 없었고, 혼자 하는 일이 아니고 협력해야 하는 일이라 무리에 나를 맞춰야 했으며, 반드시 해야만 하는 기본 업무가 있었으므로 내 능력의 한계치는 용납되지 않았다. 결정적으로 업무와 상관없는 내 재능은 너무나 쓸데가 없었다.

나는 이럴 때 내가 치가 떨리게 싫었다.

환자에게 차갑게 굴던 동료는 단 한 번에 혈관주사를 놓는데, 환자들의 마음을 헤아리며 최선의 간호를 제공한다고 믿었던 내가 바늘로 환자의 혈관을 여러 차례 헤집어 놓고도 혈관주사 놓기에 실패했을 때.

심리극을 진행하고 애프터 때 '극의 진행이 훌륭했다'라는 평을 받았는데, 곧이어 발생한 응급상황에서 나는 발만 동동 굴리고, 간호사의 자질을 들먹이며 속으로 정죄하던 동료가 나 대신 유능한 손놀림으로 환자를 살릴 때.

정성껏 환자를 돌본다고 노력했으나, 아무도 하지 않을 법한 아주 사소하고 이상한 실수를 연달아서 할 때.

위중한 환자 앞에서 간호사에게 진심과 태도는 두 번째 자질이었다. 엄밀히 따지면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되는 옵션 같은 것. 임상에서 환자에게 정말 필요한 간호사는 냉담하던 불친절하든 간에 진짜로 생명을 살리는 간호사, 육체적 아픔을 덜어주는 간호사였다. 나는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능력 없는 내가 환자를 돌보다가 결국 진짜 필요한 도움을 못주는 것은 아닌가? 아니, 도움은 커녕 환자를 죽이게 되지 않을까? 몹시 두려웠다.

연말에 인사고과 시기가 되면 나는 언제나 현 보직에 있기를 희망했다. 정신과 외의 타 부서에서는 버틸 수 없을 거라던 몇몇 선배들의 조언 때문이었고, 임상에서 매번 느끼는 나의 태생적 한계를 나 스스로가 잘 알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렇게 나는 학교를 막 졸업한 쌩 신규 간호사처럼 업무에 어설프고 서투른 올드가 되어 있었고, 이제 정말 업무 전환을 해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을 때 아이가 생겨 육아휴직을 했다. 긴 휴직 중에도 나는 복직과 퇴직 중간에 앉아 하루에도 수십 번씩 자리를 옮기며 복직 쪽으로 기웃, 퇴직 쪽으로 기웃거리며 갈바를 정하지 못했다.

나는 자주 내가 간호사라는 직업의 극단에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동시에 이렇게 쉽게 직장을 그만둘 수 없다는 마음의 소리가 들려왔다. 단순히 돈이 문제가 아니었다.

우선 나의 한계를 시험해보지 않고 도망치는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지금 도망치면 평생 나를 따라다닐 열패감에 시달리리라 예상이 되었다.

바로 눈앞에 있는 이 관문만 통과하면 진심과 실력 둘 다 갖춘 간호사가 될 수 있을 것만 같은데, 내 인생에 이 작은 조각 하나 맞춰진다면 여태껏 고민했던 새로운 삶의 시작, 예를 들면 직업을 통한 이민이나 해외 취업, 서열을 매기지 않는 나라에서 아이를 키우고 싶다는 소망의 실현 등의 수많은 가능성이 촤르륵 열릴 것만 같은데. 이렇게 도망간다니 말이 되니? 라며 나를 다그치게 되었다.

퇴직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나는 내가 육아 휴직할 때 도움을 준 직장 상사와 주치의를 그리 쉽게 배신할 수가 없었다. 둘째 아이를 낳기 전에 3개월간 직장에서 일해야 했지만, 3개월의 병가를 받아 마음 편히 첫째를 돌보며 둘째를 출산했다. 간호국을 설득한 상사와 진단서를 작성해준 주치의 덕분이었다. 내가 이렇게 그만두면 그 둘의 신의를 배반하는 것뿐만 아니라 육아휴직의 나쁜 선례를 남겨 후배들에게도 악영향을 끼칠 것 같았다.

나는 이 책의 질문에 답하면서 이상한 나라고 심지어 때때로 미운 나라고 생각했던 나의 모습이 재능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결함이 아닌 재능이라니 너무 놀라웠다.

이 모든 것이 혼자 생각하기를 좋아하는 것, 다른 사람의 감정이나 심리상태를 본능적으로 감지하는 것, 친밀한 관계에서 기쁨을 느끼는 것, 모든 존재의 연결성을 믿는 것, 세상에 대한 관심과 앎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 찬 것 때문이라니!

나는 실제로 나의 대부분의 재능이 일반 간호사의 삶에서 적용되기는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재능은 실무보다는 이론의 세계에 서 더욱 빛날 자질들로 보였다.

동시에 나는 이 책을 통해 한 번도 꿈꾸지 않았던, 그런 삶이 있을지 상상도 못 한 간호사의 모습을 발견했다.

꼼꼼한 손과 날카로운 관찰력이 필요한 임상의 간호사 말고, 통찰력과 공감능력이 필요한 간호사. 혁신적인 간호정책을 만들어 내고, 당연한 것에 품는 철학적인 질문을 통해 새롭고 다양한 간호 문화를 만드는 간호사. 간호사를 상담하고 조언하는 간호사. 간호사만이 쓸 수 있는 글을 쓰는 간호사.

생각이 여기까지 다다르자, 내가 정말로 작가들이 말한 '자신의 길을 찾은 평범하고 위대한 사람'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작가들의 제안처럼 죽음 앞에 나의 욕망을 가져다 보았다. 그러자 내가 정말로 원하는 것은 '성취'가 아니라 '경험'이라는 것이 분명해졌다.

진실된 내가 되는 경험.

소중한 이들 특히 가족과 농밀한 시간과 사랑을 나누는 경험.

계산 없이 열망에 따라 보는 경험.

실패하더라도 이상에 도전하는 경험.

내가 가진 재능을 마음껏 펼쳐보는 경험.

나로 인해 단 한 사람이라도 절망 가운데 섰다가 다시 살아갈 용기를 얻는 경험.

세상이 나로 인해 더욱 살만해지는 경험.

죽음 앞에 선 내가 몇 평 집에 사는지, 직업이 뭔지, 얼마짜리 가방 메는지, 책을 썼는지 못썼는지 같은 시답잖은 군더더기에 둘러싸여 있다고 생각하니 참으로 가련하고 안타까웠다.

내게 정말로 중요한 것은 진실된 나로 산 충만함이겠구나. 다시 살아도 똑같이 살아 낼, 수많은 경험으로 가득한 그 충만한 삶 말이다.

다시 돌아가서 나는 '어떻게 나를 위해 일할 것인가', 즉 '어떻게 직업을 경험'하겠는가에 답해야겠다.

1. 복직한다. (남편이 휴직 후 아이를 돌본다/ 직장 적응에 관한 불필요한 걱정과 불안을 단식한다.)

2. 최소 1년, 가능하다면 3년 이상 임상을 경험한다.

(쓸 수 있는 글: 어설픈 올드의 육휴 후 직장 적응기, 또는 적응에 실패한 퇴직기/ 임박한 죽음을 24시간 지켜보는 간호사의 관점에서 보는 삶과 죽음에 대한 글/ 현장에서 경험하는 간호사의 자전적인 글/ 정신과 환자들의 환상의 세계, 극단의 감정에 관한 글 등 )

3. 학위를 딴다면 간호학으로 한다. (이건 고민이 더 필요하다.): 이렇게 생각하게 된 배경: 직장 내에서 간호사라는 정체성에 전문성을 더하려면(입증하려면), 학위 자체가 필요하다.

4. 심리학이나 글쓰기, 상담 등의 필요한 영역은 학위 과정이 아니라, 다른 플랫폼을 이용해서 공부한다.(심리상담, 분석 심리학에 관심이 많은데 학위과정을 하고 싶기도 하다. 고민이 더 필요하다.): 이렇게 생각하게 된 배경 : 직업을 바꾸지 않는 이상, 나의 전문성은 간호학에 있다. 심리학 상담 글쓰기 등은 차별화 전략이다. 굳이 학위가 필요 없다.

5. 복직 후 병원 근무하면서 다음 진로를 고민해 본다. 키워드는 #글 #소설 #여행 #프리랜서 # 가족

나는 구체적인 질문 두 개를 마음에 품으며 오늘 하루를 접는다.

나는 누구인가? 그리고 나는 누가 될 것인가?





*이 에세이는 엄마 변화경영전문가 아난다 인요가 박미옥 선생님 비롯 위대한 나를 찾는 여정에 나선 언니들과 한 달 동안 함께 읽은 '인디 워커 이제 나를 위해 일합니다. 박승오, 홍승완 지음'을 통과한 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아이 둘 가정 보육 중인 저는 책 읽는 시간을 낼 수 있을까 고민하느라 독서회에 뒤늦게 합류했습니다.

복직이 두려웠기에 이 책을 통해서 퇴직할 이유를 찾고 싶었습니다만 복직할 이유를 찾아 버리고 말았습니다.

매일 밤 둘째 아이를 재우고 책을 읽으러 거실에 나왔다가 엄마 빈자리에 잠에서 깬 아이 울음 소리에 다시 방으로 달려가 젖을 먹여 재우기를 반복하는 를 보며 '미쳤구나' 생각했어요. 그리고 한 달 뒤 여정에 다시 합류하겠다는 저를 보니 '미쳐도 단단히 미쳤구나' 하는  탄식이 절로 나옵니다.

 

그런데, 이렇게 가슴이 뛰는 걸까요? 는 이제 를 찾는 여정을 멈출 수가 없습니다. 이제 시작인걸요. 

탁탁탁, 운명의 수레바퀴가 돌아가는 소리가 귓속을 가득 채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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