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종류의 일, 그러니까 뭔가 신비롭고 환상적인 일은 항상 겨울에 일어났다. 겨울에 내리는 하얀 눈이 인간 안에 잠들어 있는 태곳적 신성을 깨우기 때문일까. 영원히 지속되는 겨울의 나라에서 네 남매가 위대한 사자와 사악한 마녀를 만나듯, 소녀도 그날 그러했다.
소녀는 옆집 아줌마를 따라나가기 시작한 동네 교회의 후원으로 청소년들을 위한 수련회에 참석 중이었다. 소녀는 수련회가 열리는 대학의 어느 강의실 중간쯤 책상과 의자가 붙어 있는 일인용 자리에 앉아 강단에 서 있는 젊은 남자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남자는 문득 발걸음을 멈추고 창밖을 향하는 눈과 맹수에게서 달아나다 마주친 절벽의 끄트머리처럼 종국에는 아래로 떨어지는 입매 때문에 슬프고 위태로워 보였다.
남자는 자신을 시골의 개척교회 목사라 소개하며 말을 이었다.
" 여러분, 영원한 것을 위하여 영원하지 않은 것을 포기하며 사는 것은 가치로운 일입니다. 저는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세속에서 벗어나 하나님을 섬기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저의 부모님은 부유하고 명망 있는 분들이었으나, 저는 그분들의 삶에서 진정한 만족과 평화를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대학을 잘 가고 좋은 직장을 얻고 멋지고 예쁜 사람 만나서 결혼하면 행복할 것 같지요? 아니요, 절대 그렇지 않아요. 사람은 하나님을 떠나서는 절대 행복할 수가 없어요. 우리는 세상의 가치에서 자유로워져야 합니다. "
소녀는 남자가 마음에 들었다. 가진 것을 모두 포기한 채 신을 위해 봉사해서도 그의 말에 감동되어서도 아니었다. 그가 부잣집 아들이기 때문이었다.
언젠가 그는 빛나는 영생으로 가득하지만 가난으로 점철된 이 삶에 지겨워지면, 아비의 집으로 돌아가 허기를 이기지 못한 다이어터가 음식을 탐하듯, 게걸스럽게 그 모든 향락을 누릴 수 있을 테니까. 그것은 소녀가 언제나 꿈꾸던 삶이었다. 온몸으로 향락을 움켜쥐고 지겨워질 정도로 꾸역꾸역 삼키는 삶.
특히나 발에도 맞지 않는 싸구려 운동화가 헐떡거리는 것을 들키지 않으려고 발끝에 힘을 주며 버스에 오를 때, 여러 세대가 함께 쓰는 셋집의 공동 화장실에 누가 싸놓은 길쭉한 똥을 보았지만, 어쨌든 거기서 볼일을 봐야 할 때 더욱 그랬다.
자기소개를 시작으로 40분가량 성령의 인도하심에 대해 강의를 한 남자가 마무리하며 말을 이었다.
"'시편 27편에서 다윗은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라고 고백합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위정자와 대적이 여러분을 치려고 할지라도, 선하신 하나님께서는 영원히 여러분을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소녀는 멍청하게 앉아 '사모님은 어떤 분일까?, 사모님은 긴 생머리의 예쁜 얼굴을 했지만 얼굴에 어울리지 않는 허름한 옷을 입고 교회 장의자에 앉아 기도하겠지?, 사모님은 자신도 모르게 남편이 부모의 곁으로 돌아가길 바라고 있지 않을까?' 등의 엉뚱한 상상을 하다가,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라는 목사의 말에 맥락 없이 울음을 터뜨렸다.
"양육권을 달라는 소리도 안 하더라. 여자에 미쳐서 자식은 눈에 안 보이는 거지, 어쩜 이렇게 자식을 쉽게 포기할 수가 있니?" 일 년 전쯤, 외도한 아빠와 이혼한 소녀의 엄마는 이렇게 소녀에게 말했다. 소녀는 엄마의 말에 솟아오르는 슬픔은 창자 속에 가두고,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잘 됐네".
그렇게 가둬 두었던 슬픔이 지금 토사물처럼 역류하여 소녀를 뒤덮었다. 소녀는 남자를 통해 뒤늦게 아빠에게 버림받았음을 받아들였다. 신이라는 퇴로가 있음을 확인한 후였다.
남자는 이어서 외쳤다.
"빛이요 구원이요, 생명의 능력이신 여호와께 우리가 구할 것은 단 한 가지입니다.
그것은 바로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그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당신의 성전을 사모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강하고 담대하게 여호와를 기다리십시오! 그가 구원하실 것입니다."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보이리라. 여러분 주께 부르짖으십시오. 세상이 알지도 측량할 수도 없는 크고 은밀한 일을 보이실 것입니다. 말씀을 붙잡고 주여 세 번 외치며 기도드리겠습니다. 주여 주여 주여"
소녀의 아빠는 그녀의 곁을 떠났고, 소녀의 엄마는 그녀의 아픔과 불안에 무심했다.
소녀는 통곡하며 기도했다. " 하나님, 아빠가 저를 버렸어요. 하나님도 아시죠? 하나님은 저를 영원히 떠나지 않으실 건가요? 하나님 감사합니다. 저 같은 사람도 사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소녀는 '신은 나를 영원히 버리지 않으리라. 나는 이제 신의 끝없는 사랑 속에 살리라' 생각했다.
사방이 깜깜해지더니 옆에 앉아 기도하던 사람들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하얗고 동그란 빛이 소녀를 비추었다.
무대에 오른 모노드라마 배우를 비추듯 빛은 우주에서 모든 만물을 지우고 오직 소녀만을 조명했다.
주위에서 웅성거리던 다른 사람들의 기도 소리가 사그라들더니, 고요한 가운데 소녀 자신의 기도 소리만이 알파와 오메가 되신 신 앞에 울렸다.
갑자기 헛구역질이 올라왔다. 소녀는 자신이 죄를 토해내고 있다고 생각했다. 육신의 부모에게 버림받은 죄였다. 소녀는 오랫동안 헛구역질을 해댔다. 신이 임재하였고 그녀는 자신을 잊었다.
한참 뒤 소녀가 눈을 떴을 때 그녀는 강의실 한복판에 앉아 있었다. 눈을 멀뚱 거리며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다른 아이들과 함께. 소녀는 생각했다. '이건 비현실이야'
그날 이후 소녀는 다른 사람이 되었다. 소녀는 뭔가에 사로잡힌 것 같기도 했다. 소심하던 소녀는 명랑한 척하며 교실 칠판 구석에 '나랑 같이 교회 갈 사람'이라고 적었다. 일요일에 교회에 가면 제일 앞자리에 앉아서 예배를 드렸고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하여 매 예배시간마다 울었다. 그리고 그녀는 영원한 사랑을 약속한 신에게 자신의 모든 인생을 바치겠다고 다짐했다. "내 인생을 드릴게요. 나를 받아주세요, 나의 하나님"
실제로 소녀는 온 힘을 다해 신과 한 약속을 지켰다. 시간이 흘러 고3이 되어서도, 심지어 수능을 앞두고도 수요예배, 금요철야 기도회에 참석하고, 토요일에는 교회 주보와 전도지를 만들고, 일요일에는 아침 일찍 교회에 가서 어린이 예배 보조 교사로 섬기고, 성가대, 찬양단으로 봉사했다. 학교에서는 점심시간에 시간을 내서 성경 모임을 했고, 방학 때는 대학생들이 임원으로 있는 기독 학생 운동의 유일한 고등학생 임원이 되어 공부할 시간을 쪼개어 방학 내내 수련회를 준비했다.
소녀는 간호사 선교사가 되어 의료 선교를 떠나겠다고 다짐했고, 어느 지방 국립대 간호학과에 합격했다.
그 사이 함께 교회를 다니던 남동생이 이제 교회를 가지 않겠다고 하였다.
"나는 못 믿겠어, 처녀가 어떻게 아이를 낳아? 어떻게 죽은 사람이 부활을 해? 누나는 그게 믿어져? 그게 상식적이야? 교회 사람들도 지겨워, 옆집 아줌마가 집 사면 뭘 해? 자기 자식한테 가위로 입을 찢어버린다고 말하는데? 누나 정신 차려! 성경 그거 이야기야. 진짜가 아니고 그냥 이야기라고, "
소녀는 파르르 떨며 소리를 내질렀다.
" 나는 믿어져, 나는 그게 상식적인지 아닌지 생각 안 해, 나는 그냥 믿어. 그냥 믿어지는 거야. 성령님이 믿게 하시는 거야. 아니! 성경은 이야기 아니야. 하나님 말씀이야. 너나 정신 차려! 너나 정신 차리라고!"
남동생은 그날 이후 교회에 나가질 않았고, 소녀는 남동생이 내질렀던 상식적이라는 말이 자신의 믿음에 멱살을 단단히 움켜쥐는 것을 느꼈다. 하나님을 향한 그녀의 사랑이, 녹슬고 찌그러진 양철 대문이 큰 바람 앞에 맥을 못 추듯 플럭 플럭 소리를 내며 흔들리듯 했다. 그래서 소녀는 더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다. 열성을 다해 예배를 드리고 전도를 하며 마귀의 시험에 들지 않도록 해달라고 기도했다.
수능이 끝난 후의 게으르고 지루한 겨울이었다.
갯벌을 잔뜩 묻힌 채 추위에 벌벌 떨며 일터에서 돌아온 엄마가 씻은 뒤 벌게진 얼굴로 전기장판이 켜진 이불속으로 들어와 눕자 소녀는 대뜸 말했다.
"엄마, 예수님을 믿으면 천국 가고 아니면 지옥 가. 나랑 같이 교회 다니자, 성경에 그렇게 쓰여있어!"
엄마는 피곤한 듯 눈을 감으며 대답했다.. "그래? 그럼 엄마는 하나님이 없었으면 좋겠어. 외할머니는 절에 다니셨거든, 엄마도 어렸을 때 외할머니 따라서 절에 갔던 기억이 생생하게 나. 절에 가서 맛있는 것도 먹고, 참 좋았어. 외할머니는 좋은 분이었는데 고생만 하다고 돌아가셨어, 그런데 죽어서도 예수님을 안 믿는다고 지옥에 가면 엄마는 너무 억울할 것 같아."
소녀는 언뜻 엄마가 지혜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는 예수님을 절대로 믿지 않으리라. 엄마가 복음을 진리로 인정하는 순간, 외할머니는 지옥에 갈 테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녀가 열성으로 교회 다니는 것을 보고만 있었던 것은, 그것이 소녀의 유일한 안식처임을 알았기 때문이리라.
소녀의 엄마는 알다가도 모를 사람이었다. 분명히, 무식한 사람인데 지혜로웠고, 애교도 타협도 없는 차가운 사람인데 다정했다.
예를 들면, 소녀의 엄마가 명절에 아무도 찾지 않는 동네 노인들을 찾아가서 명절 인사를 드리고 선물을 내밀곤 했다. 화투를 칠 때 까는 납작한 초록색 담요를 덮고 있던 또는 혼자 신 김치에 라면을 끓여 먹던 노인들은, 엄마의 손을 잡고 고맙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소녀는 그럴 때 엄마가 낯설고 성스러웠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다고 엄마가 천국을 못 간다니! 자기 자식에게 악독한 말을 퍼붓는 집사님은 구원받는데, 평생 가난과 냉대 속에 살아가면서도 최선을 다해 자식을 먹이고 키우는 우리 엄마가, 자신보다 더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을 돌보는 나의 엄마가, 예수님을 믿지 않는다는 이유로 죽어서도 안식을 누리지 못하고, 불지옥에서 영원히 고통을 받는다니!
교회에서는 사람이 하나님이 에덴동산에 심어둔 선악과를 따먹은 죄로 낙원에서 쫓겨났다고 하였다. 그 죄인의 자손인 우리 또한, 불순종의 대가인 원죄를 가지고 태어난 죄인이라 하였다. 그러니 엄마도 태생부터 죄인인 것이었다. 찰나의 순간, 엄마가 외로운 노인들을 고독에서 구원하였다 해도.
그런 이유로 복음은 한때 소녀를 구원했지만, 다시 절망케 했다.
대학생이 된 소녀는 남자를 만나 연애를 했다. 연애를 하면서 소녀는 깨달았다.
"나는 선교사가 되고 싶지 않아, 나는 이 사람과 결혼을 하고 싶어."
언젠가 신이 그랬듯, 그녀에게 사랑이 임했다.
그녀는 눈동자와 숨소리, 입술과 혀로 남자를 자신의 영혼에 채웠다. 세상은 멈추었고, 그녀는 완전해졌다.
남자의 손가락을 만지작 거리며, 소녀는 생각했다. "지옥이라도 좋아. 너와 함께라면"
몇 번의 계절이 채 지나기도 전에 그의 사랑은 싱겁게 끝났으나, 소녀는 여전히 그의 사랑에 헐떡였다.
사랑이 떠나자 소녀는 뭍에서 팔짝거리는 물고기처럼 숨을 쉴 수가 없어서 몸부림을 쳤다.
고통의 의미를 찾을 수가 없었다. 신을 배반한 자신에게 주는 형벌인가 싶었다. 소녀는 고통을 느끼는 생에 자신을 가둔 것을 원망하며 있는 힘껏 신을 저주했다. 전지전능하다는 신이 준 이 슬픔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어서 신을 용서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이미 지옥에서 살고 있었기에 죽음 이후의 삶이 두렵지 않았다. 그래서 소녀는 남자가 자신에게 그랬듯 간단히 신에 대한 사랑을 거두었다.
소녀는 한동안 숨을 들이마시고 내쉴 때마다 우악스럽게 신의 어깨를 잡고 흔들며 소리쳤다.
왜 줬다가 뺐어? 이렇게 될 줄 당신은 알고 있었지? 그렇지?
지옥? 거기가지옥이라고? 아니, 아니야! 바로 여기가 지옥이야!
어떻게 처녀가 아이를 낳아?
어떻게 예수가 나를 위해 죽어?
어떻게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
하늘로 올라갔다고? 그럼 지금 어디 있는 거야?
말이 안 되잖아. 이 모든 게!
소녀는 이후에 자살을 기도하며 수면제를 삼켜 정신병원에서 치료를 받았고, 시시한 사랑을 몇 번 했고, 취업도 했다.
남자는 바래졌고, 신은 지워졌지만, 소녀는 여전히 알 수 없는 슬픔 속에 사위어가며, 시간이 가는 대로 삶이 요구하는 대로 그냥 그렇게 살았다. 소녀는 삶이 끝없는 고통, 그 한가운데에 있다고 생각했다.
물기 없는 나뭇잎들이 거리를 덮어 발밑에서 바스락 소리가 나던 늦가을이었다. 친구 보배의 남동생의 부고 소식이 들려왔다. 일찍이 발병한 간암이 빠르게 진행되어 황망히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장례식장에서 만난 보배와 가족들은 애끓는 심정을 가누지 못하며 오열했다.
소녀는 그 모습을 보면서 생각했다.' 세상의 모든 상실은 지독하게 아프구나. 인생을 창조했다는 빌어먹을 신, 시팔 좆같다.'
젊은이의 죽음 후에도 계절은 바뀌어갔고 사람들은 살아갔다.
소녀는 해가 바뀌고 짙은 녹음이 아파트 단지를 두를 때쯤, 친구 보배의 고향집을 방문했다.
보배 엄마는 좀 야위어 있었으나 어딘지 모르게 차분하고 평안해 보였다.
소파에 앉은 보배 엄마는 눈시울을 붉히며 소녀에게 말했다. "법인이 가는 길에 배웅해줘서 정말 고마웠다. 내가 경황이 없어서 인사도 제대로 못했네... 우리 아들 생각하면 아직도 마음이 많이 아프지만, 부처님께 우리 법인이 극락왕생하게 해달라고 기도를 드리고 나면 마음이 한결 편안해진단다. 절에 가면 스님이 좋은 말씀 해주시고, 보살님들도 위로해해 주시고.. 그래도 나는 법인이가 내 아들로 태어나줘서 너무 고맙고 행복했다."
소녀는 이러면 안 되지 하면서도 참지 못하고 물었다.
"아줌마는 부처님이 진짜라고 믿으세요?"
보배 엄마는 살짝 웃으며 대답했다.
"글쎄... 나도 잘 모르겠지만, 깨달으면 그게 부처이지. 네 안에도 부처가 있고, 내 안에도 부처가 있고 우리 보배 안에도 부처가 있지. 인생이 극락 같으면 극락에서 사는 거고 지옥 같으면 지옥에서 사는 거지. 죽음 이후를 내가 어떻게 알겠어... 그냥 법인이가 좋은 곳에서 편안히 있다고 믿어야 하는 거야. 그래야 내가 사니까..."
소녀는 그 순간 머리에 가득하던 물음에 운명이 답하였음을 깨달았다.
신이 소녀를 버린 것이 아니라, 인생이란 원래 고통과 슬픔을 피할 수 없다는 것.
신앙은 신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끝없는 상실과 고통 속에 살아가는 인간을 위해 존재한다는 것.
다른 종교에서 얻는 위로와 안식이, 소녀가 신앙 안에서 얻었던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
어쩌면 모든 종교가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 '그래도 살아'
소녀는 가슴이 뻐근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이제 하나님께 돌아갈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야, 이것 봐, 우리 고등학생 때 사진, 근데, 너 진짜 못생겼다."
방에서 나오던 보배가 고등학교 졸업앨범과 함께 찍었던 스티커 사진들을 앞으로 내밀었다.
소녀는 그러니까, 혜영은 사진들을 손에 쥐고 바람에 흔들리는 작은 들꽃처럼, 춤 주듯 어깨를 들썩이며 한참을 웃었다.
혜영의 힘 있는 웃음소리에 그녀 안에서 부활한 부처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엄마 변화 경영전문가 아난다 인요가 박미옥 선생님 비롯 위대한 나를 찾는 여정에 나선 언니들과 한 달 동안 조셉 캠벨의 책을 읽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조셉 캠벨의 빛나는 지성과 신화의 본질을 뚫는 직관에 감탄했다. 하지만 그보다 삶으로 살아낸 그의 이상과 낭만적 열망에 더욱 감동스러웠다.
글과 말로만 살지 않고 삶으로 문자를 빚어낸 이들이 그렇듯 그의 삶 자체가 영감이고 신화였다.
성경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 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지이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물이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히브리서 12장 4절)
이 구절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진리는 인격적이고 운동성이 있어서 인간의 깊은 의식과 내면을 포함한 삶 전체를 변화시키고 신 앞에서 우리의 표층뿐만이 아니라 그 내밀한 속까지 다 드러낸다. 그리고 운명은 우리를 그 진리 앞에 세워 결산을 받아낸다.
나는 운명이 조셉 캠벨에게 준 결산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눈을 돌려 본다. 흔들리는 바람에 흔들리는 들꽃처럼 존재하는 아름다움, 우주적인 춤인 그의 삶 자체를! 그리고 나도 그처럼 진리 앞에 나로 존재하는 진실된 삶을 살아내고 싶다는 소망을 품는다. 나는 믿는다. 나는 분명 그러하리라고.
나는 이 책을 읽고 에세이 말고, 시나 소설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한 소녀에 대한 짧은 이야기를 완성했다.
나는 이 이야기에 내가 알게 된 진실을 진실하게 담고 싶었다.
이것은 종교에서 답을 찾고 의심하고 실망하고 타락했다가 결국 깨닫는 개인의 이야기이다.
나의 이야기는 신앙 앞에 순결한 삶을 살고 신에게 헌신하는 이들을 폄훼하려는 것이 아님을 알려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