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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끄저김 Feb 02. 2023

내가 책을 읽는 이유

트레바리 멤버들과 연말 모임을 하던 중, (어떤 대화흐름 끝에 나온 질문인지는 까먹었지만)

“OO님은 책을 왜 읽어요?”라는 질문을 받았다.


일단, 난 생각이 깊지 못하다.

따로 글을 쓰는 모임을 시작한 이유 중에 하나도, 조금이라도 생각을 깊게 하기 위함도 있었다.


잘 떠들긴 하는데 깊게 생각하고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 뇌와 입이 같은 곳에 위치했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툭툭 내뱉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트레바리에서 다른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들으면 놀랄 때가 많다.

정말 나처럼 생각을 깊게 하지 않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시피 할 정도로 많은 생각 끝에 나온 이야기를 들으면 다시 한번 반성하게 된다.


이런 이유도 갖고 시작한 글쓰기 모임에서 스스로 조금이나마 내세울 수 있는 것은 한 번도 빠지지 않고 글을 썼다는 것 외에는 사실 없다.


평소 하던 생각을 정리하는 목적으로 쓰는 글이 많긴 하지만,

글 역시 말하는 것과 크게 차이가 나지는 않는다.


했던 말을 조금은 정리해서 쓸지는 모르겠지만,

우선 글 쓰는 속도 역시 매우 빠르다.


한번 쓰기 시작하면, 사실 말할 때와 비슷한 속도로 거의 동시에 두 손이 움직인다.

그래서 내 글에서 깊이 따위는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꾸준함’이 주는 힘은 믿기 때문에,

지금 당장 무엇인가를 억지로 고치려는 노력보다는 꾸준히 쓰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중이다.


처음 질문으로 다시 돌아가서, 책을 왜 읽냐는 질문에 대해 난 이렇게 답했다.

“모르는 게 많고 많이 부족해서요.”

깊게 고민하지 않고, 생각나는 대로 나온 대답이기도 했고

누군가는 내가 겸손하다고 말해줬지만

사실이다.


과학대중서를 좋아하는 이유도 내가 정말로(X100) 모르는 이야기가 많아서 좋아한다.

그리고 건방지게도 (마찬가지로 아는 것도 없으면서) 경영학 전공에 광고/마케팅 업종에 몸 담았다는 이유로 광고, 마케팅, 경영, 자기계발서적은 또 싫어한다.

(자기계발서적이 싫은 이유는… '나한테 이래라 저래라'하는 것 같은 뉘앙스가 너무 기분이 나빠서 싫어하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조금 더 자세히 따로 써봐도 될 것 같긴 하다.)


그런 반면, 에세이는 좋아한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는 것도 좋아하기 때문이다.


에세이가 가볍게 읽을 수 있지만,

한 사람의 생각이 책으로 나오기까지의 과정을 생각해 보면

만원 남짓한 돈으로 얻을 수 있는 타인의 경험과 생각의 가치는 너무나도 고귀하다.

(이런 면에서 자기계발서적에 대한 혐오는 모순일 수 있겠다..)


같은 이유로, 한 사람의 이야기에 집중하는 TV프로그램이나 다큐멘터리도 좋아한다.

(시즌2까지만 좋아했지만) 대화의 희열이라는 프로그램이나

(내가 싫어하는 출연자가 나오면 안보지만) 유퀴즈나

흔히 말하는 지성인들이 총출동하는 알쓸 시리즈도 챙겨보는 이유 역시 에세이를 읽는 이유와 같다.


소설책을 읽는 이유는 영화를 보는 이유와 같다.

내가 살 수 있는 인생은 한 번뿐이지만, 

타인의 상상력이나 경험으로 만들어진 또 하나의 이야기를 읽고 보는 것은

보너스 인생을 하이라이트로 압축해서 경험해 보는 기회를 주기 때문이다.


어떤 생각을 할 때 깊게 파고드는 것을 못하는 성격이나

영화 한 편 역시 영화관처럼 날 다른 짓 못하게 가둬두지 못하면 집중하지 못하는 등

ADHD 성향이 높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최근 읽은 “젊은 ADHD의 슬픔”에도 꽤 많이 공감했다.


내가 감정기복이 없는 것을 자랑처럼 말하곤 했는데

어찌 보면, 감정기복을 느낄 수도 없을 만큼 한 감정에 집중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싶었다.


우울한 생각은 의도적으로 하지 않으려고 한다 치지만

즐거운 생각도 마찬가지다.


그 어느 때보다 혼자 보내는 시간이 늘어난 요즘에도

무언가 깊게 생각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타고난 성향 같아 쉽게 고쳐지진 않겠지만

지금까지 써온 글이 나의 '짧은 생각'과 '생각 없음'을 조금은 보완해 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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