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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끄저김 Feb 02. 2023

찌질함에 대한 가벼운 단상

홍상수 영화 속 등장인물이 불편한 이유

홍상수 영화를 싫어한다.

정확하게는 홍상수 영화는 훌륭한 작품이 많다고 생각하지만, 홍상수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남자인물들을 싫어한다.


그리고 최근에 본 '사랑도 리콜이 되나요' 역시 등장하는 모든 남자들에게 도저히 정을 줄 수가 없어서 영화를 보는 내내 힘들었다.

흔히 말하는 쪽팔린 행동을 하거나 찌질한 행동을 할 때 유독 감정이입이 잘되는 탓에...

"제발 그러지 마"라고 붙들고 싶은 장면이 유독 많아서 영화를 끝까지 보는 것이 힘들었던 것 같기도 하다.


보통 원작이 있는 영화의 경우,

원작을 보고 영화를 보면 영화에 대한 만족도가 떨어지는 편이라서

이번엔 일부러 영화를 먼저 본 것이었는데..

조금도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던 롭이

그나마 소설 속에서는 조금 더 설명이 된 덕분인지 아주 조금은 롭을 마주하기가 편해졌다.


무엇보다 닉 혼비의 글솜씨에 반했다.

말 그대로 술술 읽히게 너무 잘 쓴다.

남의 잡생각을 이렇게 재미있게 읽어 본 적이 있나 싶을 정도로


그렇게 소설에 몰입하게 되니, 롭이 지난 과거를 회상할 때 나는 어땠나 자연스럽게 돌아보게 됐다.


'결혼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한 이유'라는 글에서도 이야기했지만

기본적으로 '나'라는 인간이 이모양이다 보니...

상대가 바뀌어도 결국 연애 패턴이 비슷해진다고 느낀 적이 많다.


감정기복 없는 성향이

연애만 하면 상대 감정에 쉽게 휘둘리고

혼자 지낼 때 안정 그 자체인데

연애 중일 때는 혼란 그 자체다.


이런 큰 흐름이 바뀌지 않다 보니, 점점 연애와는 거리가 멀어졌다.

나만 '가만히' 있으면 이성이 접근할 리는 없는 삶이기 때문에

나만 '나대지' 않으면 연애할 가능성 자체가 낮아져서 연애하지 않는 삶을 유지하는 것 역시 어렵지 않았다.


또한, 남자여자가 아닌 '친하고 가까운 사이'로 좋은 사람들이 주변에 많아지는 것에 대한 만족도도 높았다.


사랑한다는 것은 내 삶에 한 사람이 '탄생'하는 것과 같은 느낌이고

이별한다는 것은 내 삶에 한 사람이 '죽음'을 맞이하는 것과 같은 느낌을 줄 만큼 내 삶에 큰 파도가 덮치는 일이었기 때문에

다신 없을 축복 같은 일이자 다신 없을 고통 같은 일이었다.


사랑하고 싶어서 사랑한 적은 없다.

(이승우 작가의 '사랑의 생애' 속 표현을 그대로 빌려) 사랑의 숙주가 돼버린 듯, 자유의지는 없어진 채 내 몸과 마음을 내준 것과 같다.


그래서 누군가를 사랑하는 내 모습을 스스로 잘 못 받아들인다는 생각도 하게 됐다.

내가 아닌 나를 마주하는 느낌이고, 누군가를 사랑하는 나는 언제나 낯설다.


어쩌면, 그래서 홍상수 영화 속 남자들과 이번 영화 속 롭을 그렇게 싫어했는지도 모른다.

저런 모습이 나에게 나올까 두려워서 더 보기 힘들어한 건지도 모른다.


그래서 결국에는

오히려 저렇게까지 자신을 마주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롭이 더 불편했던 것 같기도 하다.


초등학교 때 받은 크리스마스 카드를 포함해서, 군대에서 받은 편지까지 별 의미 없는 내용으로 가득 차 있어도 유독 편지만큼은 버리지 못하는데

헤어진 여자친구에게 받은 편지는 한 번도 다시 펼쳐본 적이 없을 만큼 과거를 마주하는데 겁이 많은 나와는 달랐다.


롭만큼 구질구질해지지 않으려 노력한 기억만 있을 뿐

롭만큼 아파해보지도 끝까지 가보지도 못했다.

롭처럼 지난 과거를 정면으로 마주할 자신도 없다.

지난 과거, 특히 굳이 들추고 싶지 않은 지난 일은 애써 묻어두려고 하고, 심지어 기억에서 잘 지우기까지 한다.

나의 찌질함과 구질구질함을 들킬까 봐 두려워 애써 쿨한 척한 기억만 어렴풋 남아있다.


언제쯤 정면으로 나의 찌질함을 마주할 수 있을까? 싶지만...

아직은 그러고 싶은 마음 자체가 없다.


역시... 홍상수 영화는 보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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