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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끄저김 Apr 25. 2023

EP 5. 영업종료까지 남은 시간

영업종료까지 1년이 채 남지 않았습니다.

내년 4월에 계약이 종료되니깐, 

아마도 철거기간을 계산하면 3월 중으로는 영업을 종료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계약 이후, 인테리어 공사 기간 등으로 소요된 시간과 지인들만 초대했던 가오픈 기간까지 제외하면 정식 영업을 시작한 지는 아직 1년이 채 되지 않았지만,

영업종료까지는 이제 1년이 채 남지 않게 된 것이다.


브런치에 작가 등록을 할 때 앞으로 어떤 글을 쓸거냐는 질문에 나는 “망해가는 과정을 글로 기록하고 싶다”라고 답했고, 그렇게 브런치 작가 등록이 완료됐다.


계획대로 되는 일은 없다고들 하지만, 이번 계획만큼은 완벽하게 계획대로 되고 있다.


“자아실현” 같은 말로 포장하고 싶은 생각도 없고,

“인생 최대의 사치를 부리는 시기” 정도가 가장 적당한 말 같긴 하지만,

처음으로 자영업자의 삶을 살아본 시기이기도 하고,

(실제로는 놀기만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긴 하지만…) 너무 놀기만 했던 뉘앙스를 풍기는 데다가

독서모임, 영화모임, 글쓰기모임, 지인모임의 공간 등으로 다양하게 활용하면서

막연히 꿈꾸었던 일들을 하나하나 완성해 둔 공간이기도 하니

인생 최대의 사치를 부리면서 이룩한 자아실현 정도로 정리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


readrink라는 이름이 어떤 장소에서 다시 계속 이어질지,

아니면 다시 직장인의 삶으로 돌아갈지,

아니면 내가 지금 자영업자가 될 줄 몰랐던 것처럼, 내가 지금은 생각지도 못하고 있는 무언가를 하고 있게 될지

아직은 모르겠지만, 우선은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을 시작할 시기는 맞는 것 같다.


그래도 확실한 것은, 나에게 필요한 시간이었던 것만큼은 부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지금 이 나이가 아니었으면, 부릴 수 없는 객기이기도 했고

그래서 지금의 경제적 마이너스가, 나에겐 얼마든지 커버 가능하다는 확신이 있기도 했고

이런 시기를 겪은 뒤에는 내 삶이 다시 직장이라는 공간 안에서 이어질지, 내가 아직은 생각하지 못한 공간에서 이어질지는 알 수 없지만

그곳이 어디든지 지금의 시간이 그곳에서 보내는 시간을 조금은 더 잘 견딜 수 있게 만들어주기에는 충분하다는 생각도 함께 든다.


마케팅이라는 직무에도,

회사라는 조직에도,

꽤 많은 회의감이 몰려오던 시기였고,

삶 전체를 봐도, 길어야 100년인 시간 중 늙고 기운이 없을 나이에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상황이 된다면

과연 그건 내가 원하는 삶일까 라는 질문에 내 대답은 확실히 No였다.


크게 사고를 쳐본 적도 없고, 무난하게만 살아왔던 과거의 시간들이

관성대로 살던 대로 살게 만들 것만 같았고,

꼭 그것이 나쁜 삶이라고 생각해 본 적도 없었지만,

동시에 내 인생 최대의 사치이자 일탈을 해보고 싶은 마음에 불을 지피기도 했다.


전체 삶에서 내가 건강하고 할 수 있는 것이 많은 나이일 때 저질러야 실패로 인해 치러야 할 대가 역시 빠르게 감당하고 극복해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언젠가 이렇게 보낸 2년의 시간을 후회할 날이 올 수도 있지만,

내가 선택한 결과에 대한 대가가 두려울 만큼 약하진 않으니 그 또한 내가 견뎌내야 할 몫으로 잘 남겨두면 되겠지 뭐.


무엇보다 살면서 처음으로 무모하다 싶을 만큼 저지른 일에 대해 꽤 큰 만족이 나에게 보상으로 돌아오기도 했다.


살던 대로 살았으면 평생 만나보지 못했을 사람들과 더 가까워질 수 있는 기회가 생기기도 했고,

편하게 함께 보낼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아지트’의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하기도 했으니깐.


물론, 좋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다.

경험도 없던 초보 자영업자였으니깐…

최소한만 했던 인테리어였는데도 불구하고, 업체 잘 만나기가 이렇게나 힘든 일이구나 다시 한번 뼈저리게 느껴보기도 했고,

주변 가게에서 넘어오는 소음과 냄새까지는 내가 예상한 범위를 너무 넘어서, 주변 가게에서 단체 회식이라도 잡히면 차라리 손님이 계신 상황 자체가 죄송할 지경이었으니깐..


동시에, 이렇게 부족한 게 많은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많지는 않지만, 꾸준히 찾아와 주시는 손님도 계시고

그렇게 찾아와서 나에게 이 공간이 좋다고 건네주는 말 한마디 한마디는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소득대비 지출의 폭이 아무리 크다 한들

너끈히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주기도 했다.


회사생활을 하면서도 당연히 보람을 느끼고, 큰 성취감을 맛보기도 했다.

내가 준비한 기획안과 내가 직접 진행한 PT로 광고주의 선택을 받을 때도 그랬고,

내가 가장 좋아했던 무한도전이라는 프로그램의 PPL도 맡아서, 가요제 앨범에 내 이름이 들어가고, 모든 프로모션을 기획했을 때도 그랬으니깐…


다만, 오로지 나 혼자만의 성과는 당연히 아니었기 때문에

readrink를 통해 경험한 감정은 또 달랐다.


‘인정욕구’에 목말라하는 인간유형은 아니라고 생각했으나,

온전히 내 힘으로 일궈낸 것에 대해 다수는 아니어도, 알아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내게는 큰 보람이었다.


그래서, 이 고마움을 최소한 자주 찾아오신 손님들에게는 알려야 할 것 같았다.

readrink 계정의 인스타그램이 있긴 하지만, 인스타그램에 올릴 글은 아닌 것 같기도 했고…

왜 readrink를 만들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부터 운영 중인 과정은 brunch에 (나름 꾸준히) 올리고 있었으니깐,

최소한 이 장소에서는 readrink가 더 이상 운영되지 않게 된다는 것을 영업종료가 임박한 시점에 알리는 것은 예의가 아닐 테니…


정말 영업종료가 임박한 시점에는 자주 찾아와 주신 손님들에게 어떤 식으로든 보답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있는데,

이것도 계속 고민해봐야 할 일인 것 같다.


무엇보다 정말 고마웠다는 마음만큼은 확실하게 전달해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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