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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끄저김 Sep 29. 2022

독서모임 서비스를 시작한 이유

취향의 비무장 지대 by 이동진 영화 평론가

이동진 영화평론가를 좋아한다.

그가 김이나 작사가가 진행하던 <톡이나 할까>에 출연했을 때 나눈 대화 중 이런 말이 오갔었다.(정확하지는 않다..^^)


“大 알고리즘의 시대" 우리의 취향이 도둑맞고 있다. 그래서 내가 뭘 좋아하는지 모르는 사람들의 고민이 많은 것 아닌가 싶어요. <톡이나 할까> - 이동진 편


너무 공감되는 말이었다.

개인적으로 IT 업계에 오래 머물면서, 알고리즘/큐레이션 같은 말들에 더 쉽게 노출된 삶을 살아왔는데

개인적으로 저런 류의 단어들이 불편하게 느껴졌다.


취향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내 취향을 누군가 의도를 갖고 만들고 있다는 기분이 주는 불편한 감정 같은 것들이 있었다.


이걸 좋아한다고 믿게 만들고

이것만 좋아하게 만드는 것 같은?


다양한 것들을 접해야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정확하게 알 수 있는 환경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취향이 지나치게 좁아지도록 미디어 환경이 움직인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그런데, 취향뿐만 아니라 인간관계도 마찬가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걸 정확하게 지적한 포인트가 아래와 같은 대화로도 이어졌다.

나이를 먹으면 점점 더 일종의 구심력이 생겨서 관계나 취향이 좁아지게 마련이죠. 의도적으로라도 그걸 넓히려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정말 좁은 취향 속에만 살게 돼요. <톡이나 할까> - 이동진 편


내가 트레바리라는 독서모임 서비스를 하고 있는 이유에 대한 설명을

이 문장으로 대체해도 전혀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초중고를 졸업하고

대학에 가고, 취업을 하고, 회사를 다니고,

이런 과정 속에서 결국에는 나와 맞는 사람을 찾게 되고

그들과 어울리게 되고, 그들과 친해진다.

(또한, 자연스럽게 나와 비슷한 환경의 사람들만 만나게 되는 구조로 세월은 흘러간다.)


그렇게 알고 지내는 지인들과의 시간은 너무나 좋고, 날 좋아해 주는 그들에게 너무나도 고맙다.

그런데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만 어울리려고 하다 보니, 내 세계가 좁아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나도 의도적으로 내 세계를 넓히려는 노력을 하려고 이것저것 찾아보기 시작했는데,

모순 같아 보이지만, 취향을 기반으로 한 커뮤니티는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그런데 취향은 단순히 수단일 뿐, 이성 만남을 목적으로 하는 것 같은 커뮤니티 서비스가 대부분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던 중에, 지인을 통해 ‘트레바리'라는 서비스를 알게 되었고,

20만원 정도의 돈을 내야 하고, 독후감을 써야 모임에 나갈 수 있다는 나름의 진입장벽이

오히려 매력 있게 다가왔다.


최소한의 필터링(필터링이라는 표현이 너무 거친 것 같긴 하지만…) 역할을 충분히 할 것이라는 판단이 들자,

머뭇거릴 이유는 없었고, 바로 모임에 참석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너무나도 운이 좋았던 것 같은데

파트너를 포함해서 멤버 모두가 너무나 좋은 분들이었다.


그렇게 처음 맺은 인연은 대부분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고,

올해부터는 처음으로 파트너도 시작하면서, “취향존중"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처음 트레바리를 시작하는 이유와 관련 있는 워딩이기도 했고,

다양한 취향을 가진 다른 사람들이 만나서, 다양한 생각을 나누기를 원했다.


“취향의 비무장 지대”

취향에서 싸우려고 하면 안돼요.
취향이 평등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다만 싸우지 말자는 거죠.
취향에는 설득할 수 없는 측면이 있죠.
어떤 사람들이 ‘취향'이라고 말하는 것의 상당수는 교양이에요.
반대로 또 어떤 사람들이 ‘교양'이라고 말하는 의미의 상당은 사실 취향이죠.
이 두 가지를 섞어서 써요.
그런데 취향 자체를 권력으로 생각하는 힙스터가 있죠.
어떤 특정한 취향을 가진다고 해서 그 취향을 갖지 못한 사람들을 계급적으로 얕잡아보는 일군의 사람들 또, 그 깔아보는 맛으로 덕질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실제로는 본 조비를 좋아하면서 본 조비를 좋아한다는 말을 하지 않는 허위의식을 가진 부류도 있고요.
또 자신이 최상위 취향을 가지고 있다고 뻐기고 싶어 하는 부류도 있죠.
그런데 진짜 훌륭한 향유자들은 에어 서플라이를 좋아하면 에어 서플라이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사람이죠.
 HOT가 비틀스보다 위대하다고 말할 수는 없죠.
그렇지만 비틀스보다 HOT를 좋아할 수 있죠.

<잡지사 인터뷰 중 일부 발췌>


위 내용도 이동진 평론가의 인터뷰 중 하나였다.

멋진 말이라고 생각했다.


취향을 갖고 싸운다는 게 말이나 되는 일인가.

취향은 존중하는 것이고,

취향은 큐레이션이나 알고리즘에 의해 세뇌되는 것이 아닌, 다양한 경험을 통해 찾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난 이번 주에도 

나와는 다른 삶을 살아왔고, 

나와는 다른 취향을 갖고 있고,

나와는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러 트레바리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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