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전 비누 공유 연맹 29

by 인디캣

홍콩에서 돌아온지 수개월이 지났지만 나는 제정신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사실 제정신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나는 이빨의 위챗 아이디를 받아왔지만 그를 추가하는 것이 너무 걱정돼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홍콩의 마약중독자랑 연락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지 알 수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그는 주에 1번은 교회에 가는 크리스천이기도 했다. 십계에는 술을 마시지 말라고만 나와있을 뿐 마약을 하지 말라는 이야기는 없었다.


이빨은 필로폰, 아이스를 너무 많이 했고 마약을 한 후에 양치를 하는 것을 잊어버렸다. 병원-감옥에서는 이빨이 아예 없는 흰머리의 강도도 있었는데 그는 아이스를 너무 많이 한 나머지 죽 이외의 다른 음식을 못 먹는 상태가 됐다. 한국처럼 값싸게 치과 진료를 받을 수 없었기에 모국에 사는 그는 훔친 돈으로 자신의 생계를 이어나갈 뿐 이빨을 고치는 일에는 도무자 나설 수가 없었다.


나는 집에 있는 동안 글램을 해보기도 했지만 글램을 통해서 내게 답변을 해온 여자는 아무도 없었다. 후지록페에 갔을 때의 사진을 올려봤는데 사람들이 후지록페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기도 했거니와 나는 배가 나온 아저씨일뿐 다른 누구도 아니었던 것이다. 예전에는 나도 배가 이렇게 심각하게 나오지는 않았는데 모국의 감옥생활 동안 빠진 살이 요요 현상이 오며 88kg을 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점점 양복이 몸에 맞지 않게돼 새로 옷을 사서 입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허리는 사이즈가 맞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배가 나온 나와 배가 나오지 않은 나. 40대가 된 나와 20대였던 나. 요즘에는 스윗 포티, 스윗 피프티가 유행인데 이들은 자신이 동안이라고 두말할 나위 없이 꽁꽁 믿을 뿐만 아니라 20대 여성에게도 거리낌 없이 플러팅을 날리는 사실상의 여성자살 유도자들이었다.


여자들은 자신에게 대시하는 남자의 수준이 너무 떨어지면 치욕감을 견디지 못해 자살한다. 라고 트위터에 써봤지만 일론 머스크가 봐줄 일 없는 내 SNS는 어디에도 통하지 못했다.


모국을 다녀온 다음에 바뀐 것은 오랫동안, 거의 10년 가까지 다녔던 동네 정신과를 대학 병원으로 바꾼 것 뿐이었다. 대학병원에서 만난 의사는 이전 정신과 의사가 별의별 약을 다 줬다면서 3~4알 정도로 약을 정리해줬다. 약이 바뀌었는데도 내가 느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단지 아침이 되면 너무 많이 졸리고 밤에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다는 것 뿐이다.


내 삶은 전혀 변하지 않는 일들로만 구성돼 있다. 쓰레기 같은 직장, 발전이 없는 교우관계, 매일 더 나오게 되는 하복부 비만, 88kg을 넘어버린 나. 나는 누굴까. 나는 살아있을까. 또 언제까지 살아야 될까. 자살사고가 반복되서 찾아오고 밤에 잠이 잘 오지 않는다.


나는 미쳤고 더이상 이 세상에 뭔가를 남기고 싶은 생각도 사라졌다. 나는 천재도, 신도 아니고 그저 비루한 인간일 뿐이다. 나는 패배했고 여기서 더 이상 뭔가를 하고 싶지가 않았다.


A는 내 이야기를 듣고 그거 참 나랑 같은 상황이라고 답을 해주었다. 자신도 홍콩에 가서 말도 안되는 사법적 처리로 인해 고통받았고 단순 성추행으로 한달 반 동안 수감되는 불행한 사고를 겪고 말았다는 것이다. 나는 A와 나의 이야기 중 어느 것이 내 이야기이고 A의 이야기인지 점점 구분할 수 없게 됐다. 나 자신이 A와 동일한 사람이 된 것 같았고 우리는 어떤 것을 하기 전에도 이미 그것이 서로 꼭 해야 할 이야기처럼 같은 반복으로 느껴졌다.


나는 살아가면서 누군가의 후생으로 반복된 일을 거듭하고 있다는 느낌에 사로잡혔다. A와 나는 홍콩에서 처음 만났고 이후에는 온라인으로 교류하다 최근에야 우크라이나 어딘가에서 같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사람들은 우크라이나 군도 마약 중독자는 잡아가지 않는다며 그에게 위로를 전했고 A는 자신이 누구인지 또는 자신이 A인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


이런 이야기들과 상관없이 A는 자신이 이제 40대에 접어들고 있으며 중년의 위기가 자신을 덮칠거라고 말하곤 했다. 산다는 것은 곧 죽어간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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